[럼로우스팁] Bleak 14. 04. 26
Bleak
(스티브 ts)
럼로우가 스텔라에게 점심을 쏘겠다고 말했을 때, 스텔라는 솔직히 좀 풀이죽어있는 상태였다. 스트라이크팀과의 세번째 매치업을 끝내고 나서 스텔라는 여전히 자신의 명령을 무시하는 요원이 한 두 명 나오는 것이 전체의 작전을 위험하게 만들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70년전에도 이미 경험한 일로써, 부하가 자신의 명령을 어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상대와의 메꿀 수 없는 능력차를 보여주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스텔라는 그런 방법으로 부하를 휘어잡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이라면 뉴욕에서, 이미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뭘 더 증명해야한다는 말일까. 작전을 끝내고 그렇게 우울해하고 있던 스텔라에게, 럼로우는 그녀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두드리면서 그녀에게 자기가 점심을 쏘겠다는 말로 스텔라의 주의를 끌어당긴 것이다. 럼로우는 눈썹사이의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얼굴에 미안한 감을 띠고 의자에 앉아있는 스텔라를 내려보고 있었다. 입술이 우물쭈물 움직이는 것이 주저하다가 말을 걸었다는 느낌이었다. 스텔라는 럼로우의 표정을 바라보다 희미하게 웃었다. 자신의 부하의 태도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한다는 모습의 럼로우에, 솔직히 위로받은 기분이 들었다. 스텔라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점심메뉴가 뭐냐고 물었다. 럼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어깨를 두어번 내리치는 70년전의 감각을 갖고있는 여자를 향해 싱긋하고 유혹하는 것같은 미소를 띠었다. 드시면 깜짝 놀라실만한 엄청난 메뉴입죠. 물론.
스텔라가 진심으로 놀란 이유는, 그 후 럼로우가 스텔라에게 대접하기 위해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검은색 에이프런을 하고 몇 분 걸리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파게티 한접시를 뚝딱 만들어낸 럼로우에 대해서도 물론 스텔라는 솔직히 놀랬었지만, 그래서 럼로우가 요리를 하는 내내 식탁에 두 팔을 올려 턱을 괴고 럼로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스텔라는 몽실몽실 구름위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지만, 스텔라가 가장 놀랐던 것은 럼로우가 만들어 건넨 스파게티가 70년전 버키가 만들어준 맛과 아주 흡사하는 것에 있었다. 처음에 한젓가락 먹었을 때, 그 그리움에 스텔라는 눈물을 왈칵 쏟을 뻔 하였다. 70년, 70년하고도 훨씬 더 긴 시간이 흘렀다. 그 너무나 오랜 시간들을 책의 페이지 넘기듯 하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 슬퍼하였었는데. 스텔라는 혀가 기억하는 그 맛에 전신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몸을 붉혔다. 이 맛이였다. 버키가 언제나 스텔라에게 만들어주었던 스파게티가. 70년하고도, 더 오래전, 언제나 요리를 만들어주던 스텔라가 한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버키가 만든 요리가 먹고싶다고 말할 때마다 버키가 만들어주었던 바로 그 스파게티가. 토마토의 은근한 맛도 면의 삶아진 강도도 똑같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스텔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 맞은편에 앉은 럼로우를 바라보았다. 스파게티를 젓가락으로 쭉쭉 집어올려 국수를 먹듯하던 럼로우가 문득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거의 먹지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스텔라와 눈을 마주쳤다. 럼로우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접시위에 내려놓고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입에 안맞습니까?"
"...자네가 이 요릴 어떻게 알아?"
럼로우는 '?'한 시선으로 스텔라의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엑. 캡틴에겐 제가 스파게티도 모를 것 같은 남자라는 이미지였습니까? 이거 너무하시네."
"...아니, 아니 그런게 아니라. 이.. 요리,"
"...? 캡?"
"이, 요린... 그러니까..."
"......"
말을 내뱉을수록 목이 메였다. 스텔라는 포크를 접시에 내려놓고 아랫입술을 희미하게 깨물었다. 스텔라는 럼로우에게 지금 자신이 갖고있는 심정을 제대로 잘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가뜩이나 이렇게나 목이 메어오는데. 마치 금구시 되어 있는 버키라는 이름도 스스로의 입밖으로 내뱉을 자신이 없고. 70년이 흐르고, 이 70년 후의 세상을 평범한 현대인이 된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스텔라 로저스는 이세상 그 누구와도 버키 반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버키에 대해서 말한 적도, 물은 적도, 없었다. 스텔라 자신도 그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싶다고 생각해본적도 없었다. 스텔라의 가슴속에 있는 그는, 그 누구와도 말할 필요가 없는, 그 누구에게도 알릴 필요가 없는, 그 무엇에게도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버키 반즈는
그저 버키 반즈였다.
스텔라의 가슴속에 있는.
설마 그를 다시 가슴밖으로 끌어올리는, 설마 그를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것을 이 세상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이런 형태로. 혹시나 이 낯선 세상에서도 낯설지 않은 것을 만나게 된다면, 그것이 버키 너와 연관이 있는 물건이라 한다면, 스텔라는 어쩌면 그것을 스타크타워에서 발견할 거라 생각했다. 스타크타워에는 하워드가 남아있고 그와 너의 연결고리는 어디에서든 튀어나올 수 있으니까. 아니면 7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한 비엔나 슈니첼의 달콤한 끝맛에서 너와 함께 초콜릿을 나눠먹던 그 날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할까? 아니면 너의 옷깃에서 나던 코롱과 똑같은 청량한 향기가 나던 그 화장품으로 너를 만나게 될지도... 그 모든 것을 생각해왔지만, 상상해왔지만, 스텔라는 지금 자기 앞에 놓여진 이 상황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본적이 없었다. 네가 언제나 만들어준 그것과, 완전히 이렇게나 똑같은 맛으로. 게다가 아무와고도 나눠본적 없던 너를, 나는 오늘,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발견하게 돼었어.
"...스텔라."
스텔라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럼로우의 목소리에 깜짝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럼로우가 자기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그와 만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버키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럼로우의 깊은 목소리만이 남았다. 스텔라는 순간 동그랗고 커다랗게 뜬 눈의 망울을 흔들다가 곧 눈물을 툭하고 흘리고야 말았다. "......" 스텔라는 무언가 말을 내뱉으려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럼로우를 바라본 채 아랫입술을 떨었다. 동그랗게 뜬 눈 속눈썹이 파르르 흔들리며 럼로우를 해바라기 속에 담는다. 럼로우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미간을 찌푸리며 어느새 스텔라의 코앞까지 다가와서는,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스텔라는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며 또 한방울 눈물을 굴렸다. 쳇, 럼로우의 혀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 어느때보다도 럼로우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았다. 아아, 하지만, 럼로우. 자네에게 이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어. 이게 어떻게 된걸까. 자네가 어떻게 이 맛을 알고있어? 아랫입술을 떨면서 스텔라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이야. ...어떻게 알았어?" 럼로우의 희미한 웃음소리가 스텔라의 뛰는 심장 소리 사이사이로 뛰어들었다. "어떻게 알겠습니까. 내가 그걸. 난 그냥 내가 제일 잘 만드는 걸 만들었어요."
그리고 럼로우는 스텔라의 목을 끌어안고 그녀의 작은 입술에 키스하였다. 그녀의 입술에는 아무 화장끼가 없어서 조금 푸석했고, 럼로우의 입술은 그것보다 더 까슬거렸다. 스텔라의 동그랗게 뜬 눈이 더욱 커져 몇 번이고 깜빡이는 것을 럼로우는 왼쪽뺨에 닿은 그녀의 속눈썹으로 느끼고는, 그대로 스텔라의 어깨언저리의 풍성한 금발을 움켜쥐며 그녀의 고개를 꺾었다. 그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스텔라는 럼로우의 검은색 눈동자가 푸르게 일렁이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을 보고 있었다. 럼로우는 스텔라의 고개가 꺾이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그녀의 입술 사이를 비집어 자신을 침범시켰다. 그리고 한동안 이어지는 딥키스에, 허덕이는 스텔라의 헤매이는 시선과 붉어진 뺨과, 더욱 좁아져 떨리는 어깨를 훑는 것과도 비슷하게, 그녀의 허리를 안아들었다. 럼로우의 키스는 거칠고 빨랐다. 떨어지다 닿아오는 입술도 헤집는 혀끝도 전부 스텔라의 정신을 점멸시켰다. 그녀의 사고가 럼로우의 행동을 따라가지 못하고 스텔라는 두 손을 버둥거렸다. 스텔라는 그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럼로우의 키스에 맞춰가는 것도, 그의 가슴을 밀어내치는 것도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휩쓸려가고 있었다. 럼로우가 스텔라와 입술을 겹친 채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스텔라는 이름처럼 달콤했고, 그녀의 입안처럼 그녀의 전부가 자신에게로 그대로 녹아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럼로우는 한 손을 들어 그녀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옷 위로도 느껴지는 그녀의 봉긋하고 보드라운 가슴을 움켜잡으니, 그 속에 그녀의 심장이 파열할 것처럼 튀어올랐다.
"~~!!"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아무 말도 못 알아듣겠어.
사람의 말로 똑바로 해보세요. 캡틴.
그녀가 밀치면 힘이딸리는 럼로우가 속수무책으로 떨어져나갈 것도 알고 있었고, 그녀가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치면 그대로 뼈가 주저앉을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럼로우 머릿속에는 그것에 대한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대로 폭파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흥분해버렸으니까. 그녀의 눈물로. 럼로우는 그대로 스텔라를 테이블 위로 넘어뜨렸다. 테이블 위의 접시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는 소리를 내며 스파게티를 전부 쏟아버렸다. 토마토와 바질과, 또 뭐더라. 하여간 무슨 조미료를 이용해서 단기간에 만들어내어야 그 맛이 더해지는 스파게티. 럼로우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스텔라의 동그란 이마와 헝클어진 금발, 그 사이사이의 속눈썹, 그리고 자신의 키스에 촉촉하게 젖은 스텔라의 입술에 거의 미칠지경이 되었다. 붉어진 코끝을 찡긋거리며 럼로우는 스텔라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그녀의 상의 안쪽으로 손을 밀어넣고, 얇은 브라 너머로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자, 새가슴처럼 된 심장의 두근대는 소리가 럼로우의 손바닥에 닿았다. 이 소리에 무슨 말이 필요하지. 이 감촉에 왜 말을 더해야하느냔 말이야. 그순간부터 럼로우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스텔라와.
윈터솔저를 깨웠다는 소리를 뒤늦게 전해듣고, 럼로우는 천천히 침실에서 일어나 옷을 갖춰입고 윈터솔저가 있는 비밀의 방을 찾아갔다. 내내 자신의 침대에서 끌어안고 뒹굴었던 스텔라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아서 럼로우는 팔짱을 낀 채 킁킁거렸다. 그녀의 목덜미 깊은 곳에 송골송골 돋아나던 땀냄새가 벌써부터 그리웠다. 그리고 자신의 품안에서 흐드러지며 춤을 추던 그녀의 몸도. 럼로우는 피식, 하고 웃었다. 진심이라는 것에 놀라웠다. 하지만, 정말로, 진심으로, 럼로우는 바로 그때 세상이 끝나버렸으면 하고 생각했었다.
윈터솔저가 자신의 정복을 갖춰입고 마스크를 하는 모습을 벽에 기대어 지켜보면서, 럼로우는 팔짱을 끼고 윈터솔저의 등을 위에서 아래로 훑고 있었다. 럼로우는 그가 깨어나있는 모습을 지금 네번째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번째때에, 럼로우는. 세뇌와 고통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신음과 헛소리를 두서없이 내지르는 윈터솔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윈터솔저는 침대위에 누워 고통에 절규하면서도 간간히, 정말 간간히 지금은 완전히 잃어버린 버키 반즈로 돌아갔었는지, 스텔라를 불렀다. 스텔라를 찾았다. 럼로우는 그래서, 그 두서없는 헛소리에서, 버키가 스텔라에게 어떤 맛의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럼로우는 버키가 어떤 기념일에 어떤 종류의 물건을 선물하였고 그래서 스텔라가 보석보다도 더 좋아했던 선물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고, 스텔라가 자기보다 일찍 오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시계탑과 손목시계의 시간이 딱 맞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꽃은 하얗고 작은 것들이 모여서 피는 안개꽃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그래서.
그래서 럼로우는 그것들을 통해 스텔라 로저스를 유혹하기로 하였다.
버키 반즈의 스파게티가, 결정타가 될거라고도 예상하였다.
그녀를 자기것으로 하고 싶었다.
영원히.
"......"
럼로우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손바닥으로 그대로 얼굴을 감쌌다. 손끝에서 여전히 맴돌고있는 스텔라의 향기.
감미롭다.
이게 행복하다라는 감각이라면.
난 정말 행복하구나?
...이 죽음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 말이야.
"...윈터솔저."
럼로우의 목소리에 반응한듯, 윈터솔저는 느릿하게 움직였다.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춘 채 럼로우는 큭큭하는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처녀더라? 그녀." 윈터솔저는 럼로우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조금 갸웃하였고 럼로우는 그런 윈터솔저에겐 아무신경도 쓰지않았다. 젠장할 내가 너따위 자식따위 알게뭐냐. 럼로우는 더욱 크게 웃으며 어깨를 후들후들 떨었다. 세상에. 윈터솔저. 넌 영원히 모를거야. 품안의 그녀가 얼마나 꿈같은지를. 얼마나 환상같은지를.
"...이것봐. 윈터솔저. 그런 일은 영원히 없을테지만. 그래도 만약, ...정말로 만약. 네가 제정신을 차린다면, ...그땐, 네가 날 죽여도 괜찮아."
이런 빌어먹을.
기꺼이 너에게 죽임을 당해주지.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난 세상을 다 가진 남자라구.
네가 어떻게 알겠어?
이 행복감.
이 영원히 구제할 수 없는 지옥을 말이야.
- done
+ 이 무슨 앵슷의 냄새가...=ㅁ=.... 존시룬;;; (니가썼음) 근데 저기서 스텔라가 임신까지 하게 되면 진짜 앵슷의 극치겠네요....0ㅅ0;;
+ 스티브일때는 별다른 생각 없었는데, 스텔라버전이면 스텔라 진짜 럼로우에게 한방에 넘어갈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머야) 스텔라 얘 럼로우앞에서 휘청휘청(?) 하다가 그냥 훅 따먹()히고 끝나겠다고... <<<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썼음 ㅇㅇㅇㅇ 근데 나새끼 왜계속 럼로우스팁 쓰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시쯤부터 쓰기 시작해 1시간 반정도에 마무리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