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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스팁] What happened 17. 05. 12

복숭아세포군 2017. 5. 12. 00:55
What happened

 

 됐어, 가고싶은 곳따윈 없으니까. ​로키는 스티브의 질문에 그렇게 말하며 다시 읽고있던 잡지로 고개를 돌렸다. 스티브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로키는 스티브가 아침에 나갔을 때와 변함없는 자세로 변함없이 그 소파에 앉은 채 몇십권째인지 모를 잡지를 뒤적이고 있다. 설마 내가 외출해 있던 시간 내내 이러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로키의 발치에 어지러운 순서로 쌓여있는 잡지들을 보면 스티브의 그 예상이 그다지 틀린 것 같지도 않았다. 스티브는 머리를 긁적이며 마트에서 한아름 사 온 짐들을 일단 내려놓기 위해 부엌으로 걸어갔다. 로키가 앉아있는 소파가 놓여있는 거실과는 그다지 멀지 않았지만, 왠지 스티브는 부엌으로 걸어가는 그 길 내내 목덜미가 따끔거려 다리가 무거웠다. 식탁에 먹거리가 가득 담긴 종이봉투 두 개를 내려놓고 슬쩍 어깨너머로 고개를 돌리니, 아니나다를까 로키가 보고 있었다. 그 연하고 부드러운 눈매와, 눈매와 완전히 딴판으로 무뚝뚝하게 구겨져 있는 미간.


 로키는 지구로, 뉴욕으로, 스티브의 아파트로 온 후로 한 번도 외출한 적이 없었다. 스티브는 종일 방에 박혀 있기를 원하는 로키에게 의아해하며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밖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나? 종일 집에만 있으면 답답할텐데? 그리고 로키는 그런 질문들을 자기에게 쏟아내는 스티브를 도리어 의아해하는 듯 했다. 정말 내가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어? 내가 뉴욕시내를 거닐고 다닐 때 이 땅에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잊어버린 건 아니지? 로키는 스티브를 질책하려는 것도, 자기자신을 자학하려는 것도 아닌 듯이 그저 담담히 사실을 말한 것 같았지만, 하여간 로키의 그 말들은 결국 스티브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럼 대체 왜 온거야? 스티브가 차마 그 질문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으려니, 로키는 설풋 미소를 지은 것도 안지은 것도 아닌 표정을 띄웠다. "그냥 네 옆에 있을수만 있으면 돼." 그리고 꼭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다른 건 아무래도 다 좋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며 스티브를 결국 외면하는 로키의 뺨에는 희미한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스티브는 로키가 스스로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홍조를 보며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로키는 자기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감정에 휘말려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고 스티브가 있는 곳으로 와버린 것이다.


 스티브가 그런 로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로키도 강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런 일은 억압하고 강제한다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스티브는 그 폭군과도 같았던 데미갓이 이렇게까지 변화한 것에 내심 놀라워하면서도 그 놀라움을 티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변화하다, 그건 즉 전보다 더 철이 들었다는 뜻인데, 그런 말을 로키에게 그대로 했다간 로키가 꼭 화를 낼 것이 아닌가 말이다. 스티브는 그를 화나게 만들고싶지 않았다. 로키는 스티브가 한 번도 본 적 없던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그를 둘러싼 그 부드러운 공기를 스티브는 그대로, 그렇게 부드러운 채로 잘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티브는 로키가 자기 아파트에서 종일 나가지 않고 굴러다니는 데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가 지루해하지 않을 정도로 방에 잡지나 책들의 가짓수를 늘렸다. 밥도 매번 다른 걸 해주면 좋겠다 싶어 장도 자주 보게 되었다. 마치 오늘처럼 말이다. (그리고 로키는 기본적으로 스티브가 주는 것은 아무거나 다 잘 먹었다. 로키는 고요하고 침착하였으며, 모든 것에 담담하였다. 정말로 스티브의 옆에 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한 달이 넘어가자, 역시 스티브쪽에서 먼저 답답해지고 말았다. 로키와 함께하는 생활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지만, 한달 내내 방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방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로키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에 어떤 응어리가 생기고 만 것이다. 물론 방금 스티브의 "로키, 오늘도 하루종일 집에 있는 건가? 어디 잠깐, 산책이라도..." 런 걱정어린 말에도 로키는 태연히 "됐어, 가고싶은 곳따윈 없으니까."라고 대꾸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아보였지만 말이다. 스티브는 어쩔 줄 몰라하다 다시 로키가 앉아있는 소파로 돌아왔다. 로키는 무릎에 올려놓은 채 페이지를 뒤적이고 있던 잡지를 완전히 덮고서 고개를 들어 스티브를 바라보았다. 스티브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우물쭈물 거렸고, 로키는 스티브가 할 말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로키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공기처럼 화초처럼 숨을 나지막히 하고서, 스티브의 옆에 머물렀다. 스티브로부터 로키가 지구에 와있단 것을 알게 된 어벤저스들은 다들 '스티브의 아파트로 쳐들어가 그 데미갓을 쳐부수자.'와 비슷한 말을 한번씩은 꼭 하였다. 그럴 때마다 스티브는 아니야, 괜찮아, 라며 그들을 말렸다. 그저 공기처럼 화초처럼 숨을 나지막히 하고 있는 로키는, 정말로 어떤 위험도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스티브도 뉴욕사태라면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로키는 그 어떤 해악도 품고 있지 않은 존재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스티브는 머리를 긁적였다. 로키에게 이런 평온함을 느끼는 날이 올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로키. 정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나?"

 "...?"


 로키는 들고있던 잡지를 소파의 위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이 나을텐데? 스티브 로저스. 네가 다른 히어로녀석들을 이 아파트로 오지 못하게 중간에 막고있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그들 중 누구도 나와 대면하게 만들고싶지 않은 거겠지."


 그건 괜히 경계하고 공격적으로 나오는 그들과 마주하면 너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 고요한 공기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릴까봐, 그것이 걱정되어서. 그들은 스티브가 아무리 설명해도 좀처럼 로키의 지금 모습을 믿어주지 않았다. 분명 꿍꿍이속이 따로 있을건데 그걸 어떻게 믿고 봐주냐면서 말이다. 그러니 좀 더 상세히 설명해보라고 스티브를 때로 채근하였고, 하지만 스티브도 그 이상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 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눈동자를. 자신을 바라보는 저 눈동자 속의 감정에 대해서 스티브가 직접 자기 입으로 말하기에는, 로키의 눈동자는 너무나도 낯간지러운 감정을 띄고 있지 않은가.


 로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트 바로 앞까지 찾아온 고철녀석의 기운도 느낀 적 있어. 그들은 나를 신뢰하는 너를 도리어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도 사실 이렇게 순순히 날 받아들인 네가 좀 의아스럽기도 하거든."

 "...로키, 그건."

 "하여튼. 이런 상황이니, 밖으로 나가지 않는 쪽이 현명한 게 당연하잖아. 난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 그러니 너도 더는 걱정할 필요 없어."


 로키는 그렇게 말을 맺고나서 더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로키는 소파에 접어놓았던 잡지를 다시 들어올리려 했다. 그러고보면 이 집에 머무는 동안, 로키는 말수조차 줄어 있었다. 어떨때는 하루에 세마디도 하지 않은 날도 있었는데, 말수가 적은 로키란 것도 스티브가 가지고 있던 로키에 대한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티브는 로키가 주는 묘한 갭이 왠지 귀여워 웃음이 다 날 것만 같았다. "저기 그렇다면, 로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말해줘."


 "...그게 무슨 소리지?" 잡지를 펼치려던 손을 멈칫한 채로, 로키는 다시 스티브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의 날카로운 끝이 동그랗게 구부러져 스티브를 향한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렇게 놀랄만한 소릴 한건가... 정작 스티브는 자각없이 그렇게만 생각하며 눈을 깜빡였다. "아니, 꼭 아파트 밖으로 나가면 좋겠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방안에서라도 좋으니. 하고 싶은 건 자유롭게 하라는 말이야.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꼭 말하고." "......" 로키의 입술끝이 순간 아주 가느다래져, 스티브는 지금 로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이는 듯 했다. '무르군.'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스티브는 목덜미를 긁적였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을 거둘 생각은 없으니까. 홧김에 한 말도 아니고.


 "...오늘 저녁은 뭘 만들거지?"


 로키가 그렇게 물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깨아래로 흘러내린 검은색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올리는 동작을 하면서 스티브에게로 좀 더 다가온다. 앉아있을 때는 몰랐지만, 나란히 서자 역시 로키는 굉장히 키가 큰 남자였다. 스티브는 아주 마른 몸을 한, 그러나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로키의 하얀 조명이 떨어지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위로 들어올리며 "스튜를 할까하는데."하고 대답했다. 로키의 그림자가 스티브의 발치로 떨어지고 있었다.


 "배가 많이 고픈 게 아니라면 좀 기다려줬으면 해. 샤워를 먼저 하고 싶어서..."

 "......"


 그리고 로키가 양팔을 벌리자, 그 가느다랗고 긴 팔이 자신의 어깨넓이만큼 벌어지자, 순간 스티브는 몸을 움찔하며 저도모르게 방어태세를 띄울 뻔 하였다. 그러나 스티브는 팔을 올리지 못했다. 방어태세라니, 사실은 나도 속으로는 로키를 믿지 못하고 있었던 건가? 스티브가 그렇게 생각하며 팔을 들어올리려 하는 찰나 먼저 움직이고 있었던 로키가 이미 스티브의 상체를 꽈악 끌어안은 것이다. 로키의 긴 팔이 스티브의 허리를 스티브의 양팔째로 꽈악 조였다. 로키는 스티브를 홀드한 그대로 스티브의 등뒤에서 자신의 양손을 포갬으로써 빈틈 하나도 없이 자신의 팔, 자신의 품안에 스티브를 가두어버린 것이다. "?? 로, 로키?" "......" 로키는 의아해하며 놀라는 스티브를 그대로 들어올렸다. 로키는 무척이나 얇은 팔을, 스티브 로저스는 평균성인남성 이상의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로키가 팔을 위로 드는 대로 스티브의 몸도 그대로 위로 떠올랐다. 로키는 지구의 중력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로키는 자신이 들어올린 스티브의 몸이 그저 솜처럼 가볍게 느껴질 뿐이었다.


 "?! 로키. 지금 뭘 하는거야?" 순식간에 두다리가 허공에 떠올라버린 스티브는 당혹해하며 두 다리를 허우적댔다. 두팔은 아무리 움직이려고 용을 써도 로키의 팔안에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아 스티브가 허우적댈 수 있는 거라곤 다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빨리 내려줘, 내려놔." 로키는 품안에서 버둥대는 스티브를 더욱 꼬옥 끌어안으며 그의 배꼽이 있는 부분에 이마를 갖다대었다. 이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과, 포근한 체온과. ...진한 향기와. "싫어. 안 내려놔." 내려놓기는 커녕, 영원히 이렇게 있고 싶어지는데. 그리고 로키가 스티브의 쏘옥 들어가 있는 허리를 더욱 끌어안으며 스티브를 좀 더 위로 들어올리자 스티브의 버둥거림이 아까보다 더 심해졌다. "? 무슨 소릴 하는거야?!" 이런이런. 그 다리를 허우적댈 바에야 차라리 내 허리에 감는편이 더 나을텐데. 로키는 스티브의 배에 자신의 얼굴을 밀착시킨 그대로 샤워실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로키는 지구에 내려온 그 날부터 쭈욱 기분이 좋았다. 스티브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를 기분좋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이 가장 기분이 좋았다.

 지금이 가장 말이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뿐 입가에는 미소까지 다 어린 상태였다. "방금 그 입으로 말해놓고서. 설마 없던 일로 하려는 건 아니겠지? 스티브 로저스. 만약 그렇다면 너무나 정의를 수호하는 히어로답지 못한 태도잖아." 스티브는 로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했다. "?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어." 로키는 킥킥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네가 해줬음 하는 게 있으면 말하라며."

 

 "난 지금 너와 샤워가 하고 싶어."

 "...?! 하아!???!!!"

 "그게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이야."


 저녁 만들기 전에 샤워부터 하겠다는 그 말을,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말해줘'라고 말한 바로 다음에 해버린 네가 멍청한 거야. 스티브 로저스. 로키는 스티브를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며 샤워실로 향했고, 아직도 제대로 상황파악이 안 되는 스티브는 당황한 채로 머리를 좌우로 돌리며 로키가 샤워실로 걸어가는 양을 바라보았다. 로키가 성큼성큼 걸어갈 때마다 스티브의 힘이 빠진 다리가 한없이 흔들렸다. 그러다가 퍼뜩, 스티브는 드디어 로키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는 모양이다. "이, 이거 놔! 팔 풀어줘, 로키! 날 내려놓으라구! 내가 왜 너와 같이 샤워를, 로키잇...!" 뒤늦게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미 모든 것이 늦은 뒤였다. 스티브가 뒤늦게 그렇게 소리를 질러봤자, 로키는 스티브가 내지르는 소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샤워실의 문을 활짝 열어버리고 말았으니까.


 "?!!!!"

 "그만 버둥대라. 내가 널 놓칠리가 없으니까."

 "~~읏, 아...?"


 그리고 이윽고, 샤워실의 문은 활짝 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욱 빠르게 닫히고야 말았다.

 그 안에 로키와 스티브를 가둔 채 말이다.


 








- done


현재 트위터에서 리퀘박스란 것을 열어서요, 리퀘를 받고 있습니다. ㅎㅎ

이건 그 리퀘받은 것 중 내가 두번째로 쓴 연성이네요. 순서는 리퀘들어온 순이 아니라 내가 쓰고싶은 순이라는...ㅎㅎ

달달... 달달한 로키스팁 바라셨는데 이거 과연 달달한가...????? 달달한 거 같긴 한데 약간 영문은 알 수 없는 글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르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