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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튼스팁] Black cat 13. 02. 24

복숭아세포군 2014. 3. 20. 18:30

Black cat

 

 

 유레카! 잠에서 막 깨어나자마자 피터는 방금 꾼 꿈속의 기똥찬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천장을 향해 크게 외치었다. 이런 엄청난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다니! 내 꿈은 천재야! 이건 그 어떤 빌런도 한방에 처치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이야! 어머 이건 꼭 알려야해, 다른누구도 아닌 바로 캡틴에게! 캡틴은 내 말을 듣자마자 어메이징을 끝없이 반복하게 될거야! 감탄하는 표정으로 넌 대단해, 스파이더맨! 그렇게 외치고 또 그... 머, 머리를 쓰다듬어주겠지 우헤헤헤. 머릿결방향으로 위에서 아래로 쓱쓱. 아이 좋아라. 피터는 자기 손으로 자기머리를 쓸어내리는 어눌한 행동을 하면서 얼굴을 붉히다가 곧 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감추는 모자를 쓰는양 급하게 스파이더맨 코스츔 가면을 뒤집어썼다. 캡틴이 마시는 모닝커피가 채 바닥을 보이기도 전에 도착하려면 지금부터 빨리 서둘러야 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깜짝 놀래켜줘버릴까? 숨어있다가 갑자기 창문에서 짜란~! 캡틴은 날보고 커피를 쏟거나 아니면 뿜겠지, 꺄하하하!

 

 물론, 스티브는 자신의 방 창문 바깥에 양손 양발을 붙인 채 나타난 전체적으로 빨간색의 실루엣을 보았어도 깜짝 놀란다거나 그탓에 커피를 쏟거나 뿜거나 하지는 않았다. 절대, 네버. 애초에, 스티브는 이미 모닝커피를 다 마시고 난 뒤이기도 하였고. 물론 아직 커피의 여운이 남은 하얀색 머그컵엔 이미 없는 뜨거운 물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는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스티브는 자신의 키보다 약간 높은 곳의 창에 붙어있는 스파이디를 바라보며 그저 거의 표정이 없었던 얼굴에 연한 미소를 띠었을 뿐이었다. 피터는 스티브의 미소를 보고 약간 고개를 갸웃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멎쩍은 기분이란 바로 이런 순간의 내 기분을 표현하는 말이겠지. 피터는 그제야 어색하게나마 오른손을 들어 스티브에게 손을 흔들었다. 스티브는 아침의 햇살을 등진 피터의 가면에 둘러싸인 얼굴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침대의 옆 테이블 아래쪽에 있는 단추 중 가운데 파란 단추를 눌러 창문을 열었다. 창문은 돔이 열리듯 양옆으로 열렸다.

 

 막 샤워를 마쳐 보송보송한 느낌의 스티브는 하얀 블라우스에 트레이닝바지를 입고 있었다.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도 잠그지 않아 벌려진 가슴골사이로 검은고양이의 꼬리가 살랑이고 있었는데, 그것이 별로 간지럽지 않은 듯 스티브는 고양이의 그런 장난어린 행동을 막지않고 내버려두고 있었다. 피터가 처음 스티브를 봤을 때부터 스티브의 품안에 있던 그 검은 고양이는 눈이 갸르스름했으며 전체적으로 슬림하고 길었다. 스티브가 왼손으로 고양이를 들고 있었는데 고양이의 엉덩이와 뒷다리 두개는 스티브의 왼쪽팔뚝의 대부분에 걸쳐 있었고, 앞다리 두개와 얼굴부분은 스티브의 어깨부분에 걸쳐져 고양이는 스티브의 뒷목위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어, 고양이 키웠던가요 캡틴? 아침인사를 잘라먹으며 피터는 제일 궁금하던 것을 물었고, 스티브는 단지 고양이의 무게와 따뜻한 온도에 만족한 듯 눈을 내리깔며 가볍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아침 일찍 왠일이지, 스파이더맨? 생각외로 부지런한 친구군.

 

 나 또 지각하면 이번에야말로 화장실청소일테니까 아침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일찍 온 거에요. 꼭 말씀드릘게 있어서요 캡틴! 들어봐주세요, 들으면 아마 깜짝놀랄거에요! 난 나도 모르게 유레카를 외쳤다고요! 분명 캡틴도 그럴거에요, 그렇게 말할거라구요, 그리고 내머리를 이케이케, 아 아니 이건 아니고.

 

 ...? 뭐라고?

 

 아니, 뒷말은 취소예요! 없던걸로 해요! 하지만 앞말은 기억해요, 그러니까 내 말을 들어봐요 캡틴!

 

 그래, 듣고 있어. 하지만 좀 더 천천히 말해봐. ─기왕이면 말의 두서를 가지고, 스파이디.

 

 스티브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썹을 구부리며 웃는 것에 뒤따라 고양이가 가느다랗게 야옹하고 울었다. 꼬리가 양옆으로 움직이다 스티브의 굵은 팔뚝을 한 번 감았다. 저 쉴드의 국장조차도 저도모르게 혀를차며 '십대들이란' 이라고 외쳤을 정도다. 60년 전 사람인 캡틴 아메리카가 요새 십대, 특히나 '자신이 생각해낸 자기가 생각해봐도 완벽하게 기가막힌 생각'을 막 전달하려고 흥분하고 들뜬 십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 생각이 정말로 기가막힌 생각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찰이 미리 없었으면 없었을수록 그 흥분도는 점점 더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스티브는 그저 가느다랗게 지은 미소 그대로 눈썹만을 조금 눕히며 스파이더맨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면 안쪽에서 피터의 얼굴이 점점 흥분에 새빨개져 갔다. 머릿속에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캡틴의 얼굴이 폭주기관차처럼 심장에 펌프질을 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완벽한 방법이에요. 그야말로 획기적인 방법이죠! 먼 곳에 있는 빌런들도 한방에 쳐부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인데, 어, 나와 누군가의 힘을 합치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어메이징 퍼펙트하게 적을 쳐부술 수가 있어요!

 

 호오. 그거 흥미롭군. 너와 누구의 힘이 필요한거지?

 

 나와, 호크아이씨요!

 

 ...호오.

 

 순간 스티브의 굵고 연한색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으나 피터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스티브 품 안의 고양이가 가느다랗게 그르렁대더니 쫑긋하게 세운 귀를 까딱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그 동물은 천천히 스티브의 목에서 떨어지더니 스파이더맨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피터는 고양이의 태도에 눈치를 채지 못하고 그저 새빨개진 얼굴로 스티브를 주시하고 있었다. 고양이를 진정시키듯이 고양이의 목주변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긁으며 스티브가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래, 어떤 방법이지?

 

 이제 흥분을 감출생각도 없이 스파이더맨은 두 손을 마구 헤집으며 다리로 좌우를 한 번씩 차대면서 열심히 자신의 생각을 어필했다. 어필에 집중한 나머지 존칭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거에요, 바로 그거! 호크아이씨의 무엇이든 꿰뚫어버리는 놀라운 활실력과 나의 엄청난 신축성으로 멀리까지 뻗는 거미줄을 이용하는 거죠. 일명 스파이더-호크아이! 내가 호크아이의 발바닥에다 내 거미줄을 붙여서 그대로 던지면 호크아이는 굉장히 멀리까지 날아갈 거고, 그대로 적을 조준, 쏴버리는 거에요! 그러니까 평소 호크아이의 반경을 세배에서 많게는 열배까지 늘리는 것이 가능한거죠! 귀환도 물론 어렵지 않아요, 내가 일케일케 당겨버리기만 하면 호크아이는 바로 전장에서 벗어나 내 옆으로 돌아올 수 있을테니까! 정말 완벽, 완벽하지 않아요?! 이제 앞으론 나와 호크아이씨를 합해 천하무적이라고 쓰게 되는거라구요!

 

 ...스파이더-호크아이라.

 

 그냥 말그대로잖아. (-.-)

 

 그러나 착한 스티브는 흥분한 스파이더맨의 얼굴을 향해 '그냥 말 그대로잖아'라는 말을 던져 그를 무안하게 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 변함없는 미소로 지그시 틴에이저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구 있는대로 흥분하던 피터는 곧 눈앞의 캡틴의 미지근한 반응에 뻗은 두 팔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그러니까 내 생각과는 다른 반응인데, 어 그게 그러니까...

 

 .....별... 별로..인..건...가...요??

 

 ......

 

 스파이더맨은 눈을 깜빡였고 스티브는 그저 가만히 미소짓고 있을뿐으로. 그의 품안의 고양이만이 가느다랗게 울었는데 그 소리가 꼭 비웃는 소리인 것 같았다. 순간 할말을 잃은 피터가 눈을 깜빡이며 침울하게 입을 다물자, 스티브가 훗, 하고 소리를 내어 웃더니 가느다랗게 울어대는 고양이를 양손으로 들어 어깨위로 올리면서

 

 ─좋은 생각이지만, 안타깝군. 스파이더맨. 내가 아는 한 호크아이는 그런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적의 과녁을 놓치지 않네.

 

 하였다. 스티브의 어깨위로 올라간 고양이가 가볍게 귀를 까딱였다.

 

 아.. 어... 음... 스파이더맨은 그제야 말문을 잃고 더듬다가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벼워 보이는 태도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음, 아 나 지각하겠네! 볼일이 다 끝났으니 저 이만 가볼게요 캡틴! 그제야 부랴부랴 핑계거리로 학교를 들먹이며 서두르는 행색을 보이는 스파이더맨이 좀 귀엽게 느껴지기 시작해-아니, 뭐 첫만남때부터 스파이디는 귀여웠었지만 오늘은 제법 꽤나 귀여웠던 것이다- 스티브는 웃는 얼굴 그대로 눈꼬리를 좀 더 부드럽게 하며 손을 뻗었다. 스티브의 미소짓는 파란색 눈동자색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스티브의 크고 두꺼운 손이 피터의 가면을 뒤집어쓴 머리위의 어딘가를 찾는가 싶더니 곧 피터의 머리를 두 어번 쓰다듬었다. 피터의 머리는 작고 스티브의 손은 커서, 두 어번 쓰다듬었을 뿐인데 피터는 자신의 머리전체에 전부 따스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스티브의 웃음기섞인 목소리가 온화하게 흘렀다.

 

 다음부턴 이런 볼일이 없어도 상관없으니 언제든지 찾아오도록. 마치 오늘처럼. 스파이디.

 

 ......아.

 

 ...와우.

 ...캡틴, 당신은 정말 감동이에요......

 

 뒷말은 목이 메여 차마 말하지 못하고, 스파이더맨은 가면이 벌개진 얼굴을 가려주어 정말 다행이다란 생각을 하면서 스티브가 다시 열어준 창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는 아직 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몇 번 창문 위에서 미끄러졌지만 다행히 밑으로 추락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고 건물과 건물사이를 건너가 금새 점이 되어갔다. 창밖으로 멀어져가는 아침하늘 어딘가의 스파이더맨을 바라보다가 곧 아련해질정도로 그가 멀어지자, 스티브는 웃는 얼굴 그대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품안의, 고양이를

 살며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고양이가 또, 입을 벌리며 가느다랗게 울었다.

 

 가지런한 고양이의 이빨이 귀여워서, 스티브가 소리죽여 웃으며 손가락으로 고양이의 송곳니를 쿡쿡하고 눌렀다. 고양이는 크게 야옹-하고 울면서 안으로 말아쥔 앞 발을 뻗어 스티브의 손가락을 아프지 않게 꾹꾹 눌렀다. 고양이 발부분의 보드라운 살의 감촉이 기분을 노곤하게 해주어서, 스티브는 고양이가 자신의 손을 전체적으로 꾹꾹 누르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아니 오히려 더 해주었으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른 손으로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양이의 머리전체가 스티브의 손안에 갇혀, 귀가 한 번 접히다 다시 섰다. 고양이가 속살이며 다시 울음을 내뱉자, 스티브도 가느다랗게 웃었다.

 

 ─너도, 클린트. 괜히 쉴드의 이런 어이없는 인체실험에 참가하지 말고, 차라리 스파이디처럼 새로운 필살기를 고안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어때.

 

 야-─옹. 

 

 ... 금방 원래대로 돌아온다곤 하지만, 역시 건강이 걱정되잖아.

 

 스티브가 속삭이자, 고양이도 또 가느다랗게 울었다. 스티브는 손가락 끝으로 고양이의 콧잔등을 가볍게 매만졌다. 콧잔등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 d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