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키스팁] なぜ 泣く 15. 07. 22
なぜ 泣く
( 새드엔딩, 캐붕있습니다..)
하늘이 수국색이다.
저 구름은 누가 저렇게 찢어놓은 것일까.
스티브는 눈을 감았다.
그대로 눈을 뜨고싶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눈꺼풀은 어쩔 수 없이 안쪽부터 흔들리며 스티브의 자각을 서두른다. 스티브는 슬펐다. 슬퍼서 꼼짝도 하고싶지 않았다. 생각도 하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스티브는 스티브이기전에 캡틴 아메리카였고 그래서 그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캡틴 아메리카이기 이전의 삶이 훨씬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길이보다 더 농후하게 사는 것에 집중되어있는 캡틴 아메리카로써의 삶이 꼭 스티브의 삶 전체인 것처럼 느껴져서, 스티브는 도저히 생각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의 내용은 앞으로의 해체된 쉴드의 뒤치닥거리일 때도 있었고, 떠났거나 여전히 남아있거나 한 어벤저스의 누군가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였고, 앞으로의 세계에 대한 걱정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스티브가 긴 속눈썹을 한 번 아래로 내리깔고 다시 한 번 위로 들어올리면, 이전의 생각은 먼지처럼 사그러들고 스티브는 단지 머나먼 길을 다시금 떠나게 된 자신의 오래된 친구이상의 존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었다. 아아, 내가, 어째서 너를 구하지 못한 것일까. 버키. 앞으로도 나는 너를 구하지 못하게 되는걸까.
스티브는 기대어, 어딘가에 기대어, 자신이 기대고 있는 것에 대한 이름을 떠올리지도 못할정도로 참담해진 마음을 품에 안고 어딘가에 기대어, 그대로 어깨를 움츠렸다. 등 위로 날개죽지나 척추의 형태가 드러날 정도로 허리를 바싹 숙이고 몸을 움츠렸다. 스티브는 70년 전의 크게 웃고 어깨를 전부 펴고 걸었던 자신의 오랜 친구, 그 이상의 존재를 회상했다. 나는 왜 그때 너의 뻗은 손을 잡지 못했을까. 버키. 내가 차라리 그때 너와 함께 기차아래로 뛰어내렸다면. 오늘이란 비극은 영원히 생기지 않았을텐데. 스티브는 눈동자가 짓잇겨 아파올 정도로 눈을 꽈악 감고 얼굴근육에 힘을 주었다. 스티브는 죽은 버키 반즈를 취하지도 않는 술을 홀로 마시며 애도하던 그날밤을 떠올렸다. 너를 보내는 밤. 너무 슬퍼서 채 너를 위한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던 밤. 죽은 너보다 너를 잃은 나자신을 더 가엽게 여겼던 그 밤.
순순히 미국으로 돌아와 (아니,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버키는 결코 미국을 떠난적이 없었다. 그가 뉴욕에서 가장 멀리 간 곳은 기껏해야 아칸소를 지나 댈러스정도까지였다. 하릴없이 그곳으로 향하다, 버키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브루클린에서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너의 기억에도 나의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은 그 작은 브루클린 브릿지.) 위원회에 출두한 버키 반즈는, 해체된 쉴드의 뒷수습의 와중에도 위원회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에 오르게 되었다. 당연했다. 그는 쉴드 속 하이드라라고 하는 어둠의 모든 정점에 있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 우두머리와 그 정체를 정확히 끄집어내지 못하는 이상, 쉴드 속에서 도사리던 어둠에 대해 그나마 설명해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버키 반즈인 것이다. 하지만 버키는 상당히 말이 느렸고, 그나마도 위원회가 바라는 대답을 거의 해주지 못했다. 그의 의식체계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누군가가 위원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위원회는 너무나 뒤처져 있었다, 하이드라가 사용한 인간을 부수는 최첨단의 무언가를 이해하기에는. 버키는 21세기를 거의 알지 못하는 (버키가 21세기에 적응한 부분이라곤 그저 무기로써 사용가능한 도구들의 사용법 일체뿐) 약 70년 전의 사람이었고, 오랜시간 세뇌와 냉동을 반복하면서 말을 길게 하는 법을 잊은 것이다.
버키는 그것이 이상하지 않았나 보다. 그는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버키는 자신이 말을 길게 하는 법을 잊은 것에도, 자신이 원래의 자신의 삶보다 훨씬 먼곳까지 와버린 이런 모든 상황들에도, 화 한 번 내지않고 그저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버키는 위원회들이 답답하게 둘러싼 심문소에서, 자신을 위해 준비된 의자에 앉아, 많은 시간을 무언가 말하기 보다 오히려 긴 호흡을 들이마시는데에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마치 의식같은 시간들이었다, 버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긴 호흡의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버키는 길게 호흡하고 천천히 입을 열어, 드문드문 짧게 말을 내뱉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꿈 속의 캡틴 아메리카..." "단 한발의 총알을, 기본적으로, 이마 한가운데에." 이런, 언뜻 의미없어 보이는 말들을. 위원회 중 누구도 그 조각난 말의 앞부분이나 이어지는 뒷부분을 상상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중에서 버키가 가장 길게 한 말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갔다왔어. 그곳을 보고나자 난... 그래, 난 이곳으로 돌아와야되겠다, 싶더군."
"그의 실물이 보고 싶었어."
그것이었다.
그래서 스티브는 버키가 위원회에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가 스티브 로저스의 이야기를 꺼낸 덕분에. 위원회는 스티브를 통해서 버키와의 대화를 끌어내 그들이 알고싶은 걸 알고자 했고, 스티브는 그들의 속내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버키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가 왜 위원회로 출두했는지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위원회들이 심문소에 가두어놓은 버키의 담담한 표정에서, 스티브는 꼭 그가 전부 포기한 것처럼 느껴졌고 그것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이미 위원회에서 열었던 청문회를 겪어 그들에게 질려버린 나타샤는 스티브에게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들은 상상력이 없고, 캡틴 아메리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상징에도 상관없이 너를 찢어버릴 수도 있을거라고. 스티브는 나타샤의 적나라한 충고에,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단지 좀 슬펐다. 그들은 왜 멋대로 버키를 찢고 있는 것일까. 지금 이순간에도 그들이 버키를 여러갈래로 찢고 있을거란 생각을 하니 스티브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버키는 너무나 담담했고, 그 포기한 듯한 무표정에 스티브는 가슴이 아팠다.
스티브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적어도 위원회들이 생각하기에는. 정작 버키는 스티브를 앞에두곤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고, 단지 그 밤색 눈동자를 빛내며 스티브의 파란 눈동자를 한 번 쳐다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스티브도 입을 다물었다. 둘사이의 정적이 무거워지고, 그 무거운 정적을 견디지 못했던 건 정작 두사람이 아니라 주변인들이었다.
그리고 위원회는, 버키 뷰캐넌 반즈를 다시 냉동상태로 돌리기로 결정하였다.
버키.
나는 대체 너를 몇 번을 잃어버려야 하는 걸까.
나는 대체 너를 몇 번을 죽여야할까. 우린 영원히 함께 하기로 했는데.
네가 그랬잖아.
나에게 그랬잖아.
스티브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위원회 중 누구도 캡틴 아메리카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의 알 수 없는 탁상공론에서 완성된 결론은 그 누구에게도 의미가 없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정당성은 단지 '본보기'일 뿐이었다. 캡틴은 그렇다면 기꺼이 그 본보기가 되어 목을 내놓겠으니 버키를 돌려달라고 외쳤는데, 그들은 결코 캡틴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도리어 "너의 버키 뷰캐넌이란 게 대체 어느시대에 존재했었던건데?"라며 울부짖는 캡틴을 비웃었다. 스티브는 무력하게 돌아와야만 했다. 거의 나타샤의 부축을 받으며 무력하게. 그래서 지금, 스티브는 어깨를 움츠린 채 그 어느때보다 무거운 방패를 등에 업고, 솟은 날개죽지 위로 흘리지 못하는 눈물대신 비릿한 맛이 나는 땀을 흘리며, 누가 저 구름들을 저렇게 찢어놨을까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구름은 찢어져있고 하늘은 수국색이고, 수국이 아직 수국색인 계절에서 스티브 로저스만이 시들어 있었다. 그래서 스티브는 아까부터 도저히 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단지 스티브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내친구, 그 이상의 존재가 된 그를 구해낼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전에, 어떻게 해야 그를 '구한다'는 형태가 될지를 생각했다. 스티브는 그가 바라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길 바랐다. 신이시여, 비오니, 나를 구하시는 것처럼 그를 구하소서.
밤이 내렸다.
내린 밤 위에 수놓인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푸르게 빛나고, 스티브는 훌쩍 건물과 건물사이를 뛰어넘으며, 스파이더맨을 떠올렸다. 그 가볍고 날쌘 몸이 소리없이 건물과 공기를 가르는 것이 부러워서. 스티브는 아이언맨을 또한 떠올리기도 하였다. 날아가는 소리는 요란하지만, 그 누구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그 빨간 생명력. 스티브는 헐크도 부러웠다. 그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커다랗게 된 몸짓으로 버키, 그곳에서 너만을 떠오듯 하고싶어.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과는 상관없이, 스티브 로저스는 결의에 찬 눈동자를 빛내며 버키 반즈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잠입하는 데에 그 어떤 감시역에게도 들키지 않고 성공해냈다.
스티브가 버키의 병실에 잠입하기 직전에, 그에게 그가 가장 원하는 물건을 건네준 나타샤는, 코끝이 빨개져 있었다. 그녀의 하얀 얼굴 위에 뺨이 아닌 코끝이 붉어지는 것은 거의 처음 보는 것이라, 스티브는 무심코 그녀의 얼굴을 신기하게 쳐다보게 되었다. 눈썹을 아래로 하고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스티브의 단단한 뺨위로, 나타샤는 천천히 양손을 감싸고 스티브의 턱 위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대었다. 눈을 살포시 내리깔은 나타샤의 속눈썹이 젖어 있어서, 그녀가 지금 울고싶어하는 거란 걸 스티브는 그제야 깨달았다. 울지 않는 나를 대신해서? 울지 않는 나를 대신해서. "버키를 위해주는거야?" 스티브의 나지막한 말에, 나타샤는 평소처럼 희미하게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놈을 왜." 그럼 날 위해주는 거구나. 이 새까맣게 칠해진 텅 빈 공간에, 나와 버키가 아닌 다른 존재또한 아직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해주려고 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그를 구해야해. 스티브는 나타샤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병실의 창문을 소리없이 열고 병실로 잠입하자 마자 목줄기를 딴 위원회쪽 감시역은, 스티브의 손안에서 단 한 번의 스텝을 밟고 그대로 아래로 고꾸라졌다. 스티브는 손바닥에 묻은 이름도 모르는 청년의 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병실 한 가운데의 침대 위 버키 반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요란한 병실의 다양한 기기들이 번쩍여 때때로 버키의 눈을 감은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스티브는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천천히 손을 뻗어 버키의 단단한 이마위에 손바닥을 갖다대었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버키의 체온은, 오랜만이었다. 스티브는 정말로 오랜만에 그의 얼굴을 보는 거 같았다. 그의 단단하고 부드러운 이마, 그의 지그시 감은 평온해보이는 길고 가는 눈, 그의 아랫입술이 조금 더 두터운 입술. 스티브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단 한순간도 쉼없이 그의 몸속으로 떨어져가는 다양한 약이 섞인 액체는, 이대로 버키를 잠들게 한 채 점점 그의 모든 것을 그대로 심연에 빠지게 만들 것이다. 그는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데, 그이상 더 어떻게 그를 찢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이대로 버키는 다시 냉동된 채 차라리 죽은 것보다 못하게 존재하게 되겠지. 위원회가 최종적으로 그의 삶의 종착점을 멋대로 결정내릴때까지, 계속. "나는... 도저히 그것을 참을 수가 없어." 버키의 이마를 매만지는 스티브의 손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스티브는 버키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대고 눈을 꼬옥 감았다. "버키. 나는 그것만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나는, 이제, 캡틴 아메리카가 되고나서 단 한 번도 꿈꿔본적이 없는 것들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너를 위해서만 살 거야. 스티브는 희미하게 웃는 얼굴 그대로 나타샤가 준 주사기를 품에서 꺼내어 버키의 목 굵은 목정맥에 주사를 놓았다. 버키는 희미하게 꿈틀거리는 가 싶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스티브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 번 버키의 목언저리 어딘가에 자신의 얼굴을 뉘인다. 버키의 어깨가 젖어갔다. 그것은 스티브의 눈물이었다.
약은, 버키 뷰캐넌 반즈에게 꿈을 보여준다. 약은 일종의 마약이었다.
그래서 약은, 현재 버키가 가장 바라던 것들을 가장 좋은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버키가 가장 행복했던 때로 되돌아가서.
그래서, 버키가 눈을 뜨자, 버키는 스무살이었고, 늘 입는 반팔티를 입은 채였으며, 자신의 소중한 스티브 로저스의 침대위였다.
버키는 순간 잠시 어리둥절하여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아야했고, 하지만 왠지 기억속에 한쪽손이 이미 없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데 자신의 젊고 힘줄이 바짝 선 깨끗한 두 손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점점 그 한쪽 손이 없었던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기억은 정말 꿈처럼 느껴졌다. 버키는 생경감에서 금방 벗어났다. 맞아, 난 오늘도 떼를 써서 스티브와 같은 침대를 썼다. 스티브는 어젯밤에도 굉장히 투덜대면서도, 그래도 자신의 작은 몸을 더욱 작게 접고선 이불을 들춰 내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줬었지. 나는 스티브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 작은 몸을 있는힘을 다해 껴안고 내품에 가둬 다시는 나가지 못하게 만들고싶었지. 그렇게 머릿속이 터질 것처럼 사랑이 넘치는데, 하지만 버키는 겨우 스티브의 어깨 위로 자신의 팔 하나만을 둘렀다. 그를 전부 내것으로 하고싶었지만, 하지만 그런짓을 했다간 너를 전부 잃어버릴 것 같아서. 버키는 스티브가 없는 삶을 견디지 못할 듯한 자신의 작은 가슴을 한탄하며 잠을 청했다. 침대에서는 스티브의 냄새가 났고, 머리위에서는 스티브의 잠에 빠져 아주 작게, 작게 들리는 귀여운 숨소리. 버키는 어둠속에서도 한 번씩 눈을 떠 스티브의 자는 얼굴을 쳐다보았다. 잠을 자고 있다가도 문득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내가 왜 자고 있는가를 떠올리며 눈을 떠서 다시 스티브의 얼굴을 바라보았더랬다. 아아, 내 스티브. 내 작은 친구. 그 이상의 존재. 너의 자는 얼굴을 영원히 바라보고 싶어.
그걸 반복하며 잠을 설쳤으니, 기상시간이 늦어지는 게 당연했다. 버키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미 침대위에 없는 스티브가 어딜갔을까 생각하며 하품을 했다. 버키의 큰 몸이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는지, 스티브는 그 타이밍에 다시 침대방으로 걸어왔다.
"깼어? 버키."
"응. 굿모닝."
"굿모닝. 아침 만들었는데 먹을래?"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도 이어지는 스티브의 아침인사에, 버키는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같이 되서 견딜 수가 없어서, "음," 버키는 본인도 알 수 없는 말투와 목소리로 "음," 음음거리다 두 손을 양옆으로 뻗었다. 스티브는 작은 얼굴에 비해 너무나 큰 두 눈동자를 더욱 크게 뜨면서 자신을 향해 벌려진 버키의 두 팔을 낯설게 쳐다보다가, 버키가 여전히 단호한 얼굴로 음음거리며 자신이 달려와 품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리는 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결국 양 팔을 벌린 버키의 품 속으로 쏙하고 들어갔다. "왜이러실까, 아직 잠이 덜깼어?" 품안에서 고개만을 빼꼼 위로 든 채 자신을 쳐다보는 스티브가 너무 귀여워서, 버키는 결국 양뺨을 붉히고 말았다. "나도 잘 모르겠다." 너는 왜이렇게 작을까. 얼굴도 작고 어깨도 좁고 팔도 이렇게나 앙상하고. 버키는 한 손으로 스티브의 어깨를 여전히 끌어안은 채 거의 스티브와 뺨이 맞닿다시피 얼굴을 가까이하고서는 나머지 팔로 스티브의 앙상한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살풋이 손을 들어 스티브의 손도 따라 들리게끔 하고선 혀를 차는 것이었다. "쯔쯔. 이 팔목하곤. 대체 얼만큼 잘먹여야 여기에 살집이 좀 붙을까." 스티브의 웃음소리는 버키의 목덜미를 간지럽게 했다. "난 기왕 붙을 거 살보단 근육이 좋은데." "바보야. 토대없이 지붕부터 올릴 생각이냐. 살이 있어야 근육이 붙지." "아침 저녁 트레이닝으론 부족한가봐. 이제 너따라 훈련받고 다니고 그럴까싶은데." "와 제발 그것만은 그만둬주세요 스티브 로저스씨... 십분만에 호흡곤란으로 쓰러지는 거 보고싶지 않으니까. 상상만해도 벌써 심장이 다 지끈거려." "쳇." 아랫입술을 비죽이며 삐치는 스티브의 얼굴이 귀여워서, 버키는 꼭 툭튀어나온 아랫입술을 손으로 콱하고 잡아버리고 싶었다. 이대로 끌어안은 스티브의 너무나 작은 소리로 뛰는 심장위로 얼굴을 묻고 깊고 깊게 호흡하고 싶었다. 네가 살아있음을 내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거야.
어째서 이럴까. 오늘은.
마음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네가 모르는 앞으로의 길을 더는 견딜 수가 없다.
너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어. 너에게 모든 것을 들키고 싶어. 너에게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버키는 스티브를 끌어안고, 그의 목덜미에 자신의 얼굴을 묻은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버키?" 스티브가 자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목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이며, 버키 반즈는 깊게 호흡했다. 마치 앞으로 할 짧은 말을 내뱉을 수 있는 힘을 끌어모으는 의식같았다. 그순간의 호흡은.
스티브.
스티브.
"널 갖고싶다."
"...버키?"
"갖고싶어. 전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드니, 스티브가 순간 굳은 채 그 커다란 눈동자만이 일렁이는 빛에 휩싸여 버키를 보고 있었다. 버키는 코끝을 붉히며 입술을 당겨 어설프게 미소지었다. "네 전부가 필요한 거 같아. 버키 반즈란 녀석은." 그 어쩔 수 없는 녀석은. 버키는 그렇게 말하고 여전히 스티브의 목을 끌어안은 그대로, 나머지 한 손만을 뻗어 스티브의 굳은 뺨을 손등으로 천천히 쓸었다. 내가 하는 말 뜻을 알겠어? 그의 뺨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곧 스티브가 버키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그 뺨을 발갛게 붉히자, 부드러운 것 위에 더욱 말랑해지기까지해졌다. 버키는 스티브의 새빨개진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자기도 모르게 더욱 상냥한 눈을 하고 스티브를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버키의 양뺨도 화끈거리기 시작했고. "지, 지금까지 그런 말 한 번도 한 적 없잖아." "응." "이때까지 그런, 그런 기색, 너 한 번도," "응." 제대로 내뱉은 문장도 그렇지 못한 문장에도 전부 답하며, 버키는 그러나 스티브를 품에서 놓아줄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여전히 스티브의 작은 몸을 자신의 품에 가둔 채였다. 버키는 스티브의 곤란해하며 이마까지 붉어진 얼굴을 내려다보며 꼭 그에게만 들릴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가느다랗게 속삭였다. "응." 그리고 그 말이 끝이었다. 버키는 참지 못하고 스티브의 입술에 키스했다.
스티브의 입술은 아주 작았다. 버키가 그의 입 속으로 자신의 혀를 전부 밀어넣자 스티브의 작은 입 속은 순식간에 가득 찼다.
스티브의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뺨에 닿자, 버키는 속으로 웃었다. 그의 속눈썹이 간지러워서.
"버키, 그만..."
아아, 그 말은 못들은 걸로 하자.
그렇게 할래.
그렇게 하게 해 줘.
스티브.
스티브의 상의를 목 위에까지 올리고 그의 드러난 상체위에 두 손을 갖다대자, 스티브의 거의 한줌인 상체가 대부분 버키의 커다란 손안에 잠기게 되었다. 스티브는 새빨개진 얼굴로 입을 꼬옥 다물고 있었는데 그래도 눈을 희미하게 뜬 채 버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키는 두근대는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경으로 스티브의 가슴위에 입맞추었고, 스티브는 꼭 그대로 튀어오를 것처럼 몸을 튕겼는데, 버키는 긴장으로 죽을 것 같아서 입술위에 닿은 감촉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스티브의 몸이 너무 작아서, 드러난 갈비뼈가 너무 애처로워서, 쑥 안으로 들어간 배꼽이 그저 눈에 걸려서, 버키는 그 어느때보다 조심스럽게, 상냥하게 움직이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래서 버키의 손안에는 거의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고 그래서 움직임이 느렸다. 버키의 입술이 스칠때마다 스티브는 가느다랗게 떨었고 목구멍을 작게하며 소리를 참았다. 소리 내, 버키의 말에 스티브는 그제야 희미하게 숨을 내뱉었고, 내뱉은 스티브의 가느다란 숨 속에 그의 젖은 신음이 천천히 섞여왔다.
버키는 꼭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넌 어째서 이렇게 작은걸까. 넌 어째서 이렇게 소중한걸까.
난 어째서 이렇게나 울고싶은걸까.
널 안고 있음에도 널 안고싶다.
소리치고 싶다.
넌 내거라고 소리치고 싶어.
그리고 버키는 스티브의 벗은 몸을 끌어안으면서, 그의 내부속으로 조심스럽게 자신을 밀어넣으면서, 그의 작고 연신 떨리는 어깨를 감싸쥐면서, 버키는
버키는 뚝뚝 눈물을 떨구었다.
그의 눈물은 전부 방울, 방울이 되어 스티브의 어딘가로 떨어졌다.
"버키, 어째서 울어."
나도, 나도 모르겠어. 네가 날 울려.
"버키, 버키..."
스티브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의지하여, 버키는 더욱 많은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 방울, 방울마다
자신의 행복을
절감하면서
버키는
지금, 자기보다 더 행복한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버키는
긴 호흡과 함께
그의 이름을
나의
"스티브....."
"...티브," 버키의 아랫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스티브는 보지 못했고, 버키의 가느다란 숨소리와 같은 목소리는 그래서 스티브에게 들리지 않았다. 스티브는 버키의 호흡이 완전히 잦아들 때 다시 고개를 들었고, 버키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얼굴 위로 눈물을 떨구었다. 왜 이제와 눈물이 흐르는 걸까. 널 위한 눈물은 한방울도 남아있지 않아. 이건 또다시, 나를 위해 흘리는 거야. 난 앞으로 네가 없는 긴 삶을 살아야하니까, 어째서 이제와 이런 생각들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네가 없는 긴 삶을 살아가야 할 각오를, 왜 이제와 나에게 다시 하게 하는지. 내가 전부 포기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좋았을텐데. 너와 함께 가는 걸 선택하는 인간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스티브는 눈물을 가르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따윈 집어치우라고, 나에게 말해줘. 일어나서 나를 꾸짖어줘. 버키." 어서, 어서. 그리고 버키는, 꼭 스티브의 중얼거림에 반응한 것처럼 눈물을 한줄기 흘렸는데, 버키의 눈물을 보자 스티브의 푸른 눈동자가 일렁였고 그 일렁임은 꼭 언젠가의 수국의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버키, 어째서 울어." 버키, 어째서 울어. 스티브는 그렇게 중얼이며 웃는 얼굴 그대로 버키의 심장위에 굵은 칼을 내리꽂았다. 버키의 몸은 단 한번의 튕겨오르는 것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스티브가 내리꽃은 칼을 받아들였다. 스티브는 버키를 두 번 다시 냉동시킬 수 없었다.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위원회따위가 버키의 앞으로의 인생을 멋대로 정하게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앞으로의 버키 반즈의 인생은, 앞으로의 버키 반즈가 스스로 정해야만 했다. 꼭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앞으로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면, ...그렇다면 내가 정하겠어. 너의 앞으로를 내가 정할게. 내멋대로.
그래서 모든 것을 내가 짊어질게.
모든 고통을 내 등 위로 할게.
모든 남은 슬픈 것들을 오로지 내가 다 껴안을게.
스티브의 강한 힘이 들어간 오른손의 움직임에 중력이 더하여, 버키의 심장은 한 번에 꿰뚫어졌고,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강철검은 깊숙이 박히어 그대로 버키 반즈의 심장의 체온과 기능을 동시에 빼앗았다.
"좋은 꿈 꿨어? 버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꿈이었어야 할텐데."
네가 꾸는 마지막 꿈은
이 세상 존재했던 앞으로도 존재할 그 어떤 꿈보다도 가장 좋은 꿈이어야 해.
제발.
하지만 스티브는 버키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스티브는 웃으며, 울면서, 버키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언젠가의 댄스홀, 입술을 붉게칠한 아름다운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고 그녀와 춤을 추며,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에 입술을 묻은 채 빙글빙글 끝없이 음악속을 헤매이는 꿈이었을까. "세상에서 제일 좋은 꿈이었어야 할텐데." 같은 말을 반복하며, 스티브는 버키의 목을 끌어안았다. 버키의 몸이 아직 따뜻했고, 그것이 스티브를 더욱 슬프게했지만... 어쨌든 지금의 스티브의 슬픔은 그래서 스티브의 몫이었던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오로지 스티브를 위해 존재하는, 단 하나의 슬픔이었다.
"버키..."
이제 그 이름 또한, 오로지 스티브의 것으로 남아,
앞으로 영원히.
- done
스티브라면 이런상황에서 버키를 죽이고 끝을 낼거란 생각은 결코 들지 않습니다만... 하여간 결말을 죽음으로 끝내겠다고 정해놓은 시점에서 달렸습니다. 선택지는 1. 버키만 죽인다 2. 버키를 죽이고 스티브도 따라 죽는다 이 두개였습니다만, 이렇게 됐네요. 결국 내 안의 스티브는 캡틴 아메리카를 놓아버리는 선택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레몬(히소카)님께서 주신 리퀘였습니다. 사실 버키멸팁으로 무언가 써달라고 하셨는데... 이, 이걸 버키멸팁이라고 해도 될지 ;ㅅ; 재밌게 봐주셨음 기쁠거예요. 제목은 나제나쿠, '어째서 울어' 입니다.
+ 덧. '하늘이 수국색이다'. 이 문장은 트위터에서 에이님이 쓰신 문장이에요. 넘 이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