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키스팁] Do you know that, Bucky 14. 06. 04
Do you know that, Bucky
버키 반즈는 왼쪽의 어깨 위와 오른쪽 팔꿈치보다 아래 총 두군데에 총알이 박혔다. 횡경막을 스친 총은 버키의 뼈를 부수었을 망정 방탄복에 총알이 튕겨져 나가 총알이 박혀들지는 않은 것이었다. 그것이 오늘 버키에게 겨우 주어진 행운의 부스러기였다. 스티브는 그가 입고있던 방탄복이 제대로 일을 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숨을 끊어쉬었다. 그가 버키의 상태를 확인하였을 때에는 이미 구멍이 난 곳에서부터 피가 흘러나와 버키의 방탄복 안쪽에 전체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평생 따라다닐지도 미미한 고통이 지속되는 상처를 오늘 얻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은. 그래도 어쨌든, 목숨만은. 스티브는 이를 콱 깨문상태로 그대로 버키의 방탄복을 잡아당겨 줄을 끊어버렸다. 손에 들려진 방탄복을 아무렇게나 팽개치니 먼 곳에서 버키의 방탄복이 퍽하고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버키는 거의 기절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이정도의 총알이 박힌다고 금방금방 죽음과 기절의 경계선에 헤매이고 다닐만큼 기가 약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횡경막은 사람의 급소 중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 제아무리 버키 반즈라 하더라도 오늘만은 도저히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입에 게거품을 내뿜으며 헤매기 위해 사경을 더듬어 가기 시작했다. 스티브는 차라리 버키가 고통속에 빠져 제정신이 아닌 쪽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미 고통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면, 더한 고통따윈 느끼지 못할테니까. 스티브는 버키의 상의를 전부 잡아찢어 그의 상처 속을 손가락으로 헤집어냈다. 어깨부터 한 손으로 그의 생살을 찢고 후벼파내어 총알을 빼내었다. 오른쪽 팔꿈치보다 아래의 총알에도 똑같은 짓을 감행했다. 스티브의 오른손이 손목에 가까운 곳에까지 버키의 피로 찌들고 나서야 스티브는 두 개의 총알을 전부 빼낼 수 있었다. 손톱끝에 이르러서는 핏물이 마치 배긴것처럼 스티브의 손틈사이로 스며들어 차라리 검어보이기까지 하였다.
버키 반즈의 상처를 꽁꽁 싸매고 그 소년의 몸을 포대자루처럼 들쳐엎은 채, 스티브 로저스는 긴 거리를 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날은 차가웠고 바람은 모래가 섞여 건조하였지만 날카로워 그의 뺨을 스칠때마다 그에게 새로운 상처를 안겨주었다. 입안으로 자글거리는 모래와 작은 자갈에 스티브는 수시로 침을 뱉어줘야만 했고, 그럴때마다 피의 덩어리같은 것이 침과 함께 뭉쳐서 떨어져나가곤 하였다. 등 위로 슬금슬금 번져나가는 버키 반즈의 붉은 피가 서서히 스티브의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스티브 로저스의 가슴에서 하얗게 빛나던 별이 소년의 피로 물들어가는 바로 그때, 스티브는 바람에서도 태양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온기를 느꼈다. 사람의 피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뜨겁구나. 벅. 마치 방금 그것을 깨달은 사람처럼, 스티브는 뜨거운 피로 어깨위가 흥건한 채로 대지를 꾹꾹 밟아 그 길고긴 거리를 끊임없이 걸었다. 스티브가 생각하기에, 길은 그다지 길지도 멀지도 않았다. 바람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태양은 있거나 없거나 하였다. 그리하여 뜨거운 낮도, 차가운 밤도, 스티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거나 그 무엇도 아니거나 하였다. 그래서 하루가, 이틀이, 삼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흘러간 것이었다.
스티브 로저스의 등 위에서, 버키 반즈는 한번씩 현실을 헤매이며 눈을 떴다. 그러다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께무륵 다시 기절해버리곤 하였다. 그가 깨어 있건 잠이 들었건 상관하지 않고, 스티브는 수시로 그를 다시 내려놓았다. 그곳은 바위위이거나 수풀위이거나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길 위이거나 하였다. 그의 상처 전부가 울리지 않도록 그를 내려놓고 스티브는 그의 상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또 압박하기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소년이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상관하지 않고, 스티브는 그의 입술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어 그의 목구멍 너머로 깨끗한 물을 흘려보내 주었다. 깨끗한 물은 그대로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버키 반즈의 모든 기관으로 흘러내려갔다. 스티브는 어디에서든 물을 구했다. 그것은 강이거나, 호수이거나, 메마른 나무껍질의 너머이거나, 바위와 바위사이의 이끼이거나 하였다. 그렇게 구한 물을 조금씩 입 안에 머금어 전부 버키의 목구멍 너머로 흘려넘겨주곤 하면, 스티브는 언제나 버키 반즈의 입속에서의 씁쓸하고 비릿한 그의 피맛을 느끼곤 하였다. 그런가하면 버키의 말캉한 혀끝이나 깊게 파인 잇몸 안쪽의 벌어진 상처의 흔적이거나 하는 것을. 어쩌면 이 피맛은 버키의 피가 아니라 자신이 흘린 피의 맛이거나 하기도 하겠지. 마지막 자신의 입안에 조금 고일 깨끗한 물 한모금을 자신이 꿀꺽 삼키면서, 스티브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리는 스티브 로저스의 등위에서, 겨우 입을 한 번 열은 버키 반즈는, " ...우리 키스했죠? 캡. " 그런 세계에서 가장 아무래도 상관없을만한 그런 질문을 했다. 스티브 로저스는 입가가 헤진 파란색 마스크 너머로 피식, 하고 웃음을 흘리면서 " 그래, 맞아. 그것도 제법. " 그렇게 대꾸해주었다. 버키의 메마르고 갈라지는 목소리는 너무나 희미해서 스티브는 그가 자신의 몸위로 흘리는 피가 번지는 소리보다도 버키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 퍼스트키스가... 너무 딥해요... " 입안의 상처가 몇 개인지 헤집고, 입 안의 구석구석을 전부 탐하다니. 스티브는 버키의 말을 그때그때 간신히 간신히 들으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 구석구석으로 물을 흘려주려고 그런 거야. 별다른 의도는 없다구. " 소년은 아주 조금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가 웃음을 흘릴때마다 그의 몸에서 피가 넘쳐 흘렀다. 그렇게 웃지 말아. 이녀석아. 스티브는 그렇게 생각했다. " 다음에 제가 보답할 땐 캡이 한 것보다 더 대단한 걸로 해드릴테니까요. " " 동정이 그게 가능하겠어? " " 저라고 영원히 동정이란 법 있나요. "
" 다음엔 제가 별다른 의도를 넣어서 해드릴거니까요. 캡. "
그리고 웅얼대면서, 기대를 하란건지 각오를 하란 건지, 스티브는 솔직히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소년이 왜 이렇게 사경을 헤매는 이런 순간에까지 농담에 필사적인 남자로 컸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또 께무륵 기절해버렸는지 아까보다 더 무게가 느껴지는 버키의 팔다리를 다시 단단히 잡으면서, 스티브는 또 한 번 소년을 처음 만났을 때의 날을 떠올리며 혼자서 조용히 웃음지었다. 머리 하나 크기보다도 더 작았던 소년. 팔다리가 길었지만 아직 얇았고 피부가 하얘서 훈련중에 일어난 생채기 주변이 금방 붉게 변하곤 했었다. 그때부터 네가 피를 흘리면 참 진하고도 붉은 색이겠구나,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더랬지. 스티브 로저스는 눈을 깜빡였고, 그때마다 그의 긴 속눈썹 위에 쌓이는 먼지가 파르르르 하고 떨렸더랬다.
이번 캡틴 아메리카의 침투작전은 작전을 수행할 때마다 돌아오는 길이 20일 넘게 걸렸으며, 다행히 철수하지 않고 캡틴 아메리카와 그의 사이드킥 버키 반즈를 믿고 기다렸던 작전본부 덕분에 버키 반즈는 귀환하자마자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은 긴급으로 시작하여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버키 반즈는 잘 견뎌내었고, 캡틴으로 하여금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작전의 실패가능성과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의견이 논의 되어 이러한 작전수행을 또다시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캡틴 아메리카는 버키 반즈가 회복실에 누워있는 내내 회의삼매경이었으며, 그동안 그자신의 부러진 뼈나 총알이 스쳐지나간 자리를 단 한번도 신경쓰지 않았다. 캡틴 아메리카의 세럼 속 자가치유능력이 캡틴의 상처를 회복시켰지만 부러진 뼈는 미묘한 어긋남이 남은 채로 아물어버렸고, 그것은 평생동안 캡틴 아메리카를 쫓아다니는 미미한 고통의 시작이 되었지만, 군인치고 그런 고통이 없는 종자가 어디있겠는가. 그런점을 스티브 로저스는 눈꼽만큼도 신경쓰지 않았더랬다.
어느날, 완전히 수정하여 고쳐준 캡틴 아메리카의 유니폼을 다시 지급받으며
스티브 로저스는 캡틴 아메리카의 유니폼의 어깨부분을 가만히 매만졌다.
그 위에 흥건했던, 버키 반즈의 피.
알고있나? 버키.
너의 그 날의 피가 그렇게 따뜻했던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가를.
사람의 피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나 뜨거운 것이였어.
너에게 감사한다. 이 모든 것에도.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는 맹세를 새삼 되새기며 천천히 유니폼을 입는 것이었다. 그 진한 파란색의 유니폼을.
- done
+ 원작버전이라는 느낌으로 읽어주세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썼으니까. 무비버키스팁 원작버키스팁은 설정이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어서 (아시겠지만 무비버키는 소꿉친구고 원작버키는 아니라능..) 그냥 버키스팁으로 뭉뚱그리지 말고 둘을 좀 나눌까 생각하기도합니다... 아마 나누진 않겠지만 ㅋㅋㅋㅋ
+ 한 30분 걸린 듯. 왠지 동정인 버키 반즈.. ㅋ.. ㅋㅋ 캡틴 아메리카의 사이드킥이 된지 얼마 안 되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아 재밌어 ㅍvㅍ 동정 버키가 스티브 따먹었으면(...) 좋겠다 왜 스티브 안따먹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