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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키스팁] Growing Pains 14. 10. 07

복숭아세포군 2014. 10. 7. 23:33

Growing Pains

 

 그립다. 버키는 자신이 내뻗은 오른발의 바로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비둘기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설마하니 이 낡고 우중충한 시골동네의 구석탱이 골목을, 겨우 일주일가량 떠나 있었다고 해서, 그립다라는 감상으로 바라보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틈이 사정없이 갈라져 그 사이에 노랗게 변색된 잡초가 삐져올라와있는 아스팔트길을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채 걸어가는 비둘기가 사람들의 다리사이를 요령있기 지나쳐가면서 단 한 번도 날갯짓을 하지 않는, 작고 낡은 동네. 버키는 옛날부터 사람이 있건없건 날개짓을 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보이는 그 비둘기들이 끔찍하게 싫었더랬다. 한 번은 집 이층에 열어놓은 창문 안 쪽으로 느릿하게 퍼덕이는 날개소리와 함께 비둘기가 거실로 들어와, 햇살이 쏟아져들어오는 거실바닥을 그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채로 종횡무진 돌아다니는데, 아직 손발이 짧고 작은 어린아이였던 버키가 그 비둘기를 쫓아내기 위해 얼마나 기를 썼는지 비둘기가 다시 창밖으로 나가고 난 뒤에 열이 나 쓰러질 정도였었다. 그 어린아이가 끊임없이 쫓는데에도 단 한 번도 날개를 퍼덕이지 않고 오로지 두 다리로 거실을 빠르게 달려대기만 하던 소름끼치는 비둘기. 버키는 자신의 군화의 바로 앞을 지나가는 또다른 비둘기를 거의 찰 듯한 기세로 오른발을 움직였다.


 하여간 그런것들을 전부 포함해서, 물론 저 망할 비둘기들의 허접한 날개짓도 다 포함해서, 그리웠다. 이 오염된 시골의 공기냄새가 이토록 그리워질 줄이야. 버키는 그간의 일주일이 일주일이 아니라 일년처럼 느껴졌었다. 물론 그것은 입대후의 첫 장기훈련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거였다. 어쨌든 버키 반즈로써도 고향을 이렇게 장기간 떠나있었던 적은 이번이 태어나 처음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 다섯번 미만의 장기훈련을 세달에 걸쳐 치르고 나면, 버키 반즈는 정식으로 한군데의 부대에 배치되어 그제야말로 고향을 영영 떠나 그 지명을 정확히 알 수조차 없는 전장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버키는 익숙하게 여기저기가 얼룩덜룩한 고향의 그리운 거리를 천천히 걸어다니며 뿌듯한 가슴을 넓게 펼쳤다. 겨우 일주일 떠나있는 걸로도 가슴이 이렇게 간지러움을 느낄만큼 아직은 고향을 떠나는 것이 조금도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달에 걸쳐 훈련이 반복되고 나면, 오히려 이 동네의 공기가 낯설어지게 될 것이리라. 버키는 코를 훌쩍이며 자신의 고향이 낯설어지는 그 날의 자기자신을 상상하였다. 아직은 상상속의 버키 반즈가 지독하게 낯설었지만, 곧 그 낯섬조차도 그리워지겠지.


 버키 반즈는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스티브 로저스를 찾고 있었다.

 자신이 돌아오는 오늘, 스티브가 자신의 마중을 나오지 않은 것이 버키에게는 너무나 이상했다.


 장기훈련을 위해 훈련터로 떠나는 차를 타기 직전에, 스티브는 인파에 먹혀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는 태어난 그순간부터 언제나 또래보다 훨씬 체구가 작았고, 단 한 번 이라도 와이셔츠의 소매를 접지않고 입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버키는 그렇게 작은 그 친구의 모습을 찾는 것에 언제나 자신이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를 인파속에서 찾아내는 것은 그의 부모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있었고, 때로 버키는 그 친구를 찾는 것이 인파속의 자신의 부모님을 찾아내는 것보다도 쉬웠다. 입술을 붉게칠한 여성의 챙이 넓은 모자에 대부분 얼굴이 가려진 스티브, 덩치가 큰 막노동자의 털이 수북한 오른쪽 팔 뒤에 있어 거의 대부분의 몸통이 보이지 않는 스티브, 심지어 그는 쉴새없이 점프하는 어린아이가 높게높게 흔드는 양손 뒤에 숨겨질때도 있었다. 일주일전, 새로 입대한 십대 혹은 이십오세 미만의 젊은 예비군인들이 첫 훈련터로 향하는 그 날에도 어김없이 스티브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모습이 가려져 있었다. 마을에서는 마치 축제날과도 같은 지프차 퍼레이드가 준비되어 있었고, 지프 여러대가 줄지어 떠나는 시간대에는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기를 흔들며 차들을 배웅하였던 것이다. 버키 반즈는 그 날 처음 입었던 군복의 새옷의 냄새에 코를 훌쩍이며 퍼레이드를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 있을 스티브를 찾았다. 물론, 버키가 그를 찾아내는 데에 그다지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버키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손을 흔드는 중년여성의 뒤에 서 있던 스티브를 향해 달려가 그의 오른손을 꽈악 잡았다. 사람들의 함성소리에 버키는 자기가 내지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던 스티브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스티브는 작은 얼굴에 커다란 눈동자만 동그랗게 뜬 채로 버키를 올려다보았고, 버키는 순간 스티브의 눈동자가 꼭 흘러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버키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자신의 목소리가 스티브에게 닿지 않음을 깨닫고 단지 대열로 돌아가기 전 단 한순간, 붙잡은 스티브의 손을 더욱 꽈악 쥐었다.


 그때 스티브의 손이 너무 차가워서. 솔직히 입대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그대로 스티브를 오른쪽 어깨에 들쳐메고 집으로 들어가 스티브에게 있는 담요를 전부 다 덮어주고 난로의 불을 활활 태우고 싶었는데. 버키는 휘파람을 불며 일주일만에 익숙해진 군모의 챙을 매만지며 골목의 코너를 돌았다. 이 익숙한 길을 두 다리로 걸으면, 앞으로 한블록만 더. 스티브 로저스가 사는 집이 나올 것이었다. 버키는 이제 약 십분뒤에 스티브가 사는 아파트 문을 주먹을 쥔 오른손으로 노크 할 것이었다. 솔직히 그가 마중을 나오지 않은 것에 다소 화가 나 있으므로 노크소리는 조금 격정적인, 쾅쾅쾅하는 수준이 되겠지. 그리고 스티브가 모습을 드러내면 왜 마중을 나오지 않았느냐는 단 한줄의 대사를 백번정도는 할 것이다. 포옹을 하면서. 그리고 그것에 대한 상심을 핑계로 오늘 밤이 깊을때까지 계속 무릎베개를 요구해야지. 버키는 스스로의 생각에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령 그 행동에 스티브가 화를 내도 어쩔 수 없었다. 버키는 일주일 내내 스티브와의 재회의 날을 상상하며 고된 훈련을 버텨온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장기 훈련 중 너무 힘들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때를 제외하고, 버키는 거의 대부분을 스티브를 떠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 이유는 버키도 알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항상 스티브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은, 훈련을 떠나기 전부터- 버키가 입대를 결정하기 전부터 계속 되어왔던 것이어서, 버키에게는 자신이 스티브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버키는 이제는 언제부터 자기가 스티브를 그리워하는지따위를 헤아리지조차 않았다. 버키 반즈에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버키는 여전히, 스티브를 생각할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묵직한 통증을 느끼곤 했다. 둔탁한 고통은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날은 종일 스티브의 얼굴을 쳐다본 적도 있었다. 책에 집중할 수 없다면서 그만 좀 쳐다보라고, 너도 니가 들고있는 책을 좀 읽으라고 스티브가 아무리 화를 내도 그 날은 스티브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버키는 단 한줄도 읽지않은 책을 배위에서 매만지면서 한번씩, 왜 스티브의 얼굴을 종일 바라보고만 싶어지는 지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때론 그 마음이 깊어져 스티브를 자꾸 만지고싶어지기도 하였다. 스티브를 만지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 오히려 그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고, 버키는 스티브를 보지 못하는 날이면 더욱 스티브가 보고싶어서, 그리워서, 그런 날은 아예 스티브를 만지고싶다는 생각에 잠긴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만 있었다. 그런 날 밀려오는 가슴 통증은 거의 버키를 미치게 만들었었다.


 사실, 버키는 그 통증의 이유를 그다지 알고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째서나 왜란 단어가 통증의 고통보다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슴속에서 몽실몽실하게 퍼져있는 감정에는 어떠한 이름도 필요치 않았다.


 버키 반즈는 단지, 언제나 그곳에 있는 스티브 로저스만을 생각했다. '그곳'이란, 어디여도 상관없었다. 그저 자기옆이기만 하다면.


 아니면 내가 그의 옆이거나.  






 그리고 상념속에서, 버키 반즈는 비둘기의 날개가 푸드득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래서 버키는 반무의식으로 날개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한 회색이 가라앉은 하늘높은곳까지 열마리정도 무리지은 비둘기가 빠르게 날개짓하며 한꺼번에 날아가고 있었다. 버키는 조금도 눈이 부시지않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비둘기는 점점 까만 점처럼 흩어지더니 반대편의 멀고 높은 건물 옥상위로 한마리씩 한마리씩 사라져갔다. 버키는 구름의 부스러기처럼 허공을 흩날리는 날개의 깃털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허공의 먼지보다도 불결한 것처럼 느껴져서 버키는 어느덧 지상에 점점 다가오는 비둘기의 깃털들을 피했다. 그러다가 버키는 골목의 구석,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에 모여 쓰레기통에서 흘러나온 이물질들을 쪼아먹고 있었을 게 분명한 저것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른 것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스티브의 집으로 가는 길의 가장 좁은 골목이었다. 버키는 십년전-어쩌면 십오년쯤은 더 된 일인지도 모른다-에 스티브와 함께 그 좁은 골목에서 공놀이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공은 아직 키가 작은 버키의 얼굴만큼 컸다. 공이 버키의 것이었는지 스티브의 것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않고, 단지 실밥이 여기저기 터져서 한참 놀다보면 꼭 스티브가 터져있는 실밥부분에 손을 다쳤던 것만이 기억이 났다. 그맘때쯤 스티브의 손바닥에는 그래서 항상 촥촥 그어져있는 가벼운 생채기가 끊이지 않았었는데. 버키는 모퉁이를 돌아 양옆의 건물의 그림자에 둘러쌓여 어두운 골목으로 다가갔다.


 양옆의 건물의 그림자에 둘러쌓여 어두운 골목. 골목안은 빛 한 점 없었고 더욱 축축하였다. 골목안쪽의 그늘에 눌려진 묵직한 공기가 버키의 어깨위를 내리눌렀다. 버키는 회색으로 내리깔린 우중충한 하늘, 그 아래에 더욱 땅을 감추는 그늘, 쓰레기통보다 더 몸집이 커져 사정없이 밖으로 비져나온 더러운 쓰레기들과, 그 쓰레기들과 함께 뒤엉켜있는 스티브 로저스를 보았다. 스티브는 두 팔이 묶인 채 어떤 사내에게 펠라치오를 해주고 있었다. 사내는 스티브의 부드러운 금색의 머리칼을 쥔 채 스티브의 머리를 흔들어댔다. 때때로 사내는 스티브의 묶여있는 두 팔을 더욱 강하게 잡아당기기도 하였다. 스티브의 신음이 목구멍에 걸린 채 남자의 성기를 흔들며 입밖으로 흘러나왔다. 사내는 스티브가 헛구역질을 하는 소리를 낼때마다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그 주변에 있던 몇몇의 사내들은 노골적으로 웃으면서 스티브의 신음을 즐겼다. 그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몇은 바지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성기를 쥐고 스티브를 향해 흔들고 있었고, 몇몇은 스티브의 벗은 다리를 더듬고 있기도 하였다. 버키는 눈을 깜빡였다. 스티브의 앙상한 팔다리가 흔들릴때마다 버키의 눈동자가 흔들려서, 그 모습은 마치 환상처럼 일그러졌다. 버키가 여전히 기억하는 아직 어렸던 스티브의 손바닥 위에 촥촥 그어져있던 가벼운 생채기. 스티브의 두들겨맞아 엉망이 된 얼굴을 바라보면서, 버키는 사소한 상처와 질질 이어지는 잔병치레를 끊임없이 하던 어린날의 스티브를 떠올렸다.


 네가 몸져 누울 때마다, 나는 무력감에 언제나 슬픈 기분에 휩싸이곤 했는데. 자신의 무력함이 너무 싫어서 토할 것 같았어. 배아래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역한 기운을 느끼며, 버키 반즈는 허리를 숙여 토악질을 하였다. 강하게 역류하는 위산의 냄새를 맡으면서, 버키는 아랫배에 솟구치는 뜨거운 불같은 것을 두 손으로 꽈악 움켜쥐었다. 이게 뭐지? 이게 뭐더라? 버키는 침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덜덜 떠는 두 손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이 자신의 두 손이고, 지금 자신이 제정신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났다는 사실또한 한참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단지 침에 젖은 아랫입술에 연거푸 말을 던졌다. 이게 뭐지? 지금 이게 뭐더라?


 네가 내옆에 있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아니면 내가 네옆에 있거나

 그 모든 생각들이

 헛되게 산산이 부서지는

 

 지금 이런걸 뭐라고 하는거지. 심장이 부서질 것 같다. 스티브. 가르쳐줘. 마음이란 것은 산산이 부서지면, 그 뒤에는 어떻게 되는건데.


 









 버키 반즈가 오른주먹의 둔탁한 고통을 느낀 것은 또한 그후로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였다. 한결같은 토기에 여전히 속이 역했지만 버키는 더 이상 토해낼 것이 없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대부분의 남자들이 두들겨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들중에는 뼈가부러진 이들도 있었고, 상처가 패여 뼈가 밖으로 드러나있는 이들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버키의 손에 잡혀있는 남자는 앞니가 전부 부러져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엉엉 울고 있었다. 이빨조각을 토해내며 뭐라뭐라 웅얼대며 빌고있는 것 같은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버키는 자신이 멱살을 움켜잡고있는 남자의 엉엉우는 일그러진 얼굴과, 그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과 거의 비슷하게 망가져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스티브 스티브, 스티브는? 버키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스티브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스티브는 여전히 두 손이 묶인 채로 초점없이, 버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술밖으로 미끄러지는 정액이 스티브의 배위에까지 떨어졌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버키는 자신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소리쳤다. 자신의 비명과 같은 목소리가 스티브를 향한 건지 아니면 이미 널부러진 놈들을 향한 건지 버키도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스티브의 표정없는 얼굴을 향해 버키가 소리쳤을 때는 이미, 스티브의 눈물은 말라버린지 오래였고.












 "ㅡ이러지 마!! 버키!! 이러지 마!!" 두 손을 마구 휘저으며 저항하는 스티브의 멱살을 움켜쥔 채로 버키는 거의 강제로 스티브를 샤워실의 욕조로 쳐넣었다. 스티브의 여전히 힘이 없고 연약한 몸은 버키가 힘으로 끌어당기는대로 끌려갔고, 스티브는 버키의 손에 붙들린 채 욕조까지 거의 질질 끌려가다시피하였다. 스티브는 손에 잡히는대로 마구 집어던지거나 하며 손을 휘두르다가 욕조앞 샤워커튼을 움켜쥐고 손을 마구 흔들었다. 그러다 샤워커튼이 한꺼번에 끊어지면서 전부 버키의 등위로 쏟아졌다. 버키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스티브를 욕조바닥에 앉혔다. "싫어!! 싫어 버키!! 놔 줘!!" 그리고 스티브가 자신의 군모를 내치고 군복의 단추가 떨어질만큼 사납게 옷을 잡아당겨도 신경쓰지 않고 샤워기에 물을 틀어 스티브의 얼굴을 향해 물을 뿌렸다. 그리고 버키는 오른손으로 스티브의 입을 벌리게 하였다. 스티브의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비명이 물줄기를 뚫고 흘러나왔다. 버키는 스티브의 저항하는 두 다리를 자신의 몸으로 누르며 스티브의 입 속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씻어야했다. 전부 씻겨내야만 했다. 물줄기는 사정없이 스티브의 입속을 괴롭혔다. 버키가 손가락으로 스티브의 혀를 누르다시피하여 샤워기의 물은 가감없이 스티브의 목구멍을 넘어왔다. 스티브는 켁켁대며 고개를 저었고 물은 그대로 스티브의 입밖으로 흘러나오기도, 코로 넘어가 콧구멍으로 흘러나오기도 하였다. 스티브는 고개를 마구 저으며 저항하였고 버키는 쯧, 하고 혀를 찼다. "가만있어!!" 버키가 소리치자 스티브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스티브의 눈물에 깜짝놀란 버키가 순간 스티브의 입안에서 손가락을 빼내었고, 스티브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손톱을 세워 버키의 목줄기를 길게 그었다. 버키의 읏, 하는 소리와 스티브의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욕조를 울리며 뒤엉켜흘렀다. 피를 뚝뚝 흘리며 버키는 이를 뿌득 갈았다. 아닌데.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내가 원한 오늘은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나는 너의 마중을 원했고, 너는 나를 마중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무릎베개를 해달라는 정당성이 생겼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를 둘이서 함께 나누며, 저녁을 먹고, 그리고 다소 강제적으로 너의 무릎베개를 즐기면서, 나는...


 "스티브..."


 나는 너를 구하지 못했어.


 버키는 이 말을 겨우 목구멍 너머로 집어삼켰다. 스티브가 이 말을 얼마나 싫어할지 버키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스티브. 스티브. 스티브.


 나는 너를 구하지 못했던 거야.


 그렇지?


 










 "....미안해...."


 한참후에, 한참후에. 한ㅡ참 후에. 겨우 정신을 차린 버키가, 스티브의 목을 끌어안고 그렇게 중얼였다. 스티브는 버키의 품안에서 멍하니 눈물을 뚝뚝 흘렸다. 버키못지않게, 스티브도 오늘의 재회를 기다렸었다. 버키는 떠났을때와 똑같은 군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스티브의 어깨를 감싸안을 것이었다. 아니면 일주일 전 떠나기 직전에 그랬던 것처럼 스티브의 손을 잡을지도 몰랐다. 스티브의 손은 항상 차갑고, 상대적으로 버키의 손은 언제나 따뜻했다. 잘지냈어, 꼬맹이? 스티브는 버키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금방 떠올릴 수있었다. 버키는 항상 스티브에게, 네가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가려져있든 금세 너를 찾아낼 수 있다고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스티브는 버키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내심 버키를 비웃었었다. 스티브가 생각하기에는 버키보다 자기가 훨씬 대단했다. 버키. 난 언제나 너의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는걸. 설사 네가 없어도, 난 너의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단 말이야. 마치 어제도 만난듯이.


 스티브는 오늘을 위해 버키가 제일 좋아하는 스튜를 아침부터 만들었었다. 버키는 스튜를 먹으면서 훈련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할 것이었고, 스티브는 다소 느껴지는 부러움을 제대로 감추지도 못한 채 버키의 말을 경청할 것이었다.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스티브를 버키는 다소 놀리기는 할 것이지만, 그래도 버키는 스티브를 비웃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가 입대하고싶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중 그를 비웃지않는 사람은 버키밖에는 없었다. 버키는 단지 언제나 스티브를 걱정할 뿐이고, 스티브는 물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그가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일따위, 정말로 버키에게 들키고싶지 않았던거였는데.


 스티브가 여자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동네의 찌질한 사내들에게 둘러싸이는 것은, 십대때부터 있어왔던 일이었다.


 그들은 하나이기도 하고 둘이기도 하고, 오늘처럼 무리지어 오기도 하였다.


 스티브는 언제나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반항하면서, 스티브는 자신이 그들을 끊임없이 거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물론 그들의 폭력앞에서 스티브는 힘없이 스러졌다. 매번. 그들은 강제로 스티브를 묶었고 스티브를 그들의 손쉬운 더치와이프처럼 다루었다.

 

 물론 고통은 언제나 죽음처럼 밀려왔고, 그래도 스티브는 그 무엇보다 단단한 자신의 마음으로 자신을 지켜왔다. 몸은 그들에게 항상 져와도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신했다.


 그들과 싸우는 것은 언제나 스티브 로저스, 자기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버키.


 버키.


 네가 도와주러 오는 것을 언제나 꿈꿨어.


 네가 나를 구해주러오는 장면은 언제나 멋졌지. 눈물날만큼.


 그래서 더욱, 네가 아는 것을 바라지 않았어.


 네가 평생 아무것도 모르길 바랐는데.




 

 


 아닌데.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내가 원한 오늘은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단지 나는 너의 얼굴을 보면서 웃으면서, 네가 무사히 돌아왔음을 기뻐하는 친구의 웃음을 보여주고싶었다. 정말로 그러고싶었던 것 뿐이었는데. "...어서와." 버키의 가슴에 얼굴을 뉘인 채, 스티브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버키의 몸이 희미하게 떨려, 스티브는 버키가 울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버키. 미안해. 네가 나때문에 슬퍼하는 건 정말로 보고싶지 않았는데. 스티브는 곧 눈을 질끈 감았다. 속눈썹에 맺힌 그의 눈물이 송글송글 굴러떨어졌다. 버키의 따뜻한 품. 버키의 진한 냄새. 버키의 그리운 목소리. 그리고 스티브는 그 모든 그리운 것들을 그러안은 채, 버키의 품안에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다녀왔어. 자신의 울음사이로, 버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스티브는 언제나 버키의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떠올릴 수 있고말고. 그러니까 울지 마. 울지말아줘. 나 때문에. 스티브는 계속 그렇게 생각했다. 버키의 품안에서. 









   

 


 

 


- done

 버벤츠라면 스티브가 저런 일을 당하고 난 뒤에 상냥하게 보듬어 줄 것도 같은데, 내안의 버키는 서툰부분이 있는 남자라서 오히려 제감정을 주체못하고 감정이 앞서서 막 함부로 할 것(?)같은 느낌도 좀 있어요. 욕조씬은 다소 생략? 억제? 하긴 했는데 (억제란 단어가 더 맞을 듯) 사실은 버키의 감정이 폭발할 것처럼 되어버렸다...란 느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흠. 스티브는 자신의 신념이 어릴 때부터 너무 뚜렷해서, 오히려 주변사람이 상처받을 것 같은 경향이 좀 있죠. 물론 스티브는 배려가 넘치는 너무나 상냥한 사람이지만, 타인을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감출 것이고 그런점이 버키에게 상처가 될 것입니다. 그런 생각에서부터 발전된 글이어요. 좀 더 살을 붙이는 쪽이 날 것 같기도 하지만, 일단 엉성하게나마 이렇게 올리고 다음에 제대로 생각을 확장시켜서 좀 더 재밌는 글을 써볼게요 :) 이번글은 걍 이렇게 마무리합니당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