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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키스팁] In between 14. 10. 01

복숭아세포군 2014. 10. 1. 02:12

 In between

(스티브ts 스텔라)



 버키가 눈을 가느다랗게 하고 쳐다보고 있다. 입 안에 가득 나에게 할 말을 머금고서. 내 방의 유일한 의자를 항상 나에게 양보하고, 그는 부츠도 벗지않은 두 다리를 접어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앉고는 그렇게 나를 물그러미 쳐다보고는 했었다. 그를 위한 의자를 살까. 하지만 이 작은방에는 또 하나의 의자를 들일만한 공간이 없어서. 그래서 나는 그냥 공장에서 얻어온 지푸라기가 섞인 솜더미를 엮어 낡은 무명천을 씌운 쿠션하나를 그의 지정석 옆에 두었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런거였지. 하지만 버키는 내가 자기가 늘 앉는 그 자리옆에 어제는 없던 쿠션이 놓여져있는 것을 발견하면 분명,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을 것이었다. 무척이나 기뻐할 것이었다. 쿠션을 끌어안으며 나에게 몇번이고, 몇번이고 너무 좋아 스텔라-라고, 그렇게 말할 것이었다. 그는 분명 내가 한 일에 대고 '고작 그런 거'란 표현은 쓰지 않을 것이었다.


 물론 그날, 쿠션을 발견한 버키는 딱 내 기대대로의 웃음을 지어보였었지. 그의 웃음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겨있으려니, 그가 불편해보일정도로 작게 접은 다리를 쭈욱 펴더니 어느새 일어나 성큼성큼 내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버키를 바라보았다. 그가 언제쯤 다가오나 했다. 분명 오늘안에는 그 말을 들을 줄 알았거든, 나도. 그래서 각오하고 있었고, 각오하고 있을 때 네가 말해주길 바랐어. 나도 알아. 네가 곧 전장으로 향할 거라는 걸. 너의 입대는 너에게 영장이 나오기전부터 이미 너 스스로 지원한 일이었고, 네가 스스로 입대하길 원했다고 말한 그 날부터 나는, 우리에게 올 것이 분명한 오늘을 각오하고 있었는걸. 책을 접어 무릎에 올려놓으니, 버키가 내 바로 발치에 와 다시금 앉았다. 이번에도 다리를 불편하게 접는다. 버키의 앉는자세는 정말로 좋지 못하다. 상사에게 언제나 허리를 곧게 펴라고 지적을 받는 것이 아닐까? 내가 늘 그런식으로 너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처럼.


 그가 내 치마의 밑단을 움켜잡는다.


 "ㅡ아ㅡ스텔라."


 "응."


 치마 끝자락이 그의 커다란 손안에서 주름지며 구겨져가는 것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버키의 가마위로 손바닥을 올렸다. 버키의 정수리는 항상 뜨거웠고, 거칠한 머리카락은 미지근하게 식어있다. 둥그렇고 매끈한 뒷통수는 나의 작은 손바닥안에 착 달라붙을만큼 선이 예뻤다. 내가 손가락을 가볍게 세워 버키의 뻣뻣한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넣으며 마사지하듯 그의 머리칼 속을 꾹꾹 누르니, 버키는 스르르 눈을 감으며 내 왼쪽 다리위로 머리를 기대어왔다. "나 내일 가." "...그래." 치마에 쌓인 채로도 왼쪽다리주변이 타인의 체온으로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버키. 버키는 항상 따뜻했었다. 몸이. 언제고, 스타킹을 두개씩 겹쳐신는 것보다 네가 매만져주는 쪽이 훨씬 따뜻해라고 내가 말했을 때의 버키의 표정이 기억난다. 눈아래의 깊은 주름, 붉게 물드는 코끝. 그거 유혹하는 거야 스텔라? 어미가 뭉그러져 가느다랗게 떨리는 그 날의 버키의 목소리가 참 좋았었는데. 스커트를 걷어올리고 드러난 맨다리를 아프지 않게 잡고, 내뿜던 버키의 뜨거운 숨결은, 여전히 내 기억과 내 왼쪽다리에 화상을 입힌 채로.


 그래. 너.

 너.

 내일 가는 너.


 "스텔라. 이거 좀 부탁해도 돼?"


 "......"


 버키가 건네준 버키의 군복은 색이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손으로 잡으니 손바닥으로 그 깊은 색이 물들어 버릴 것처럼. 버키가 테이블의 반짇고리가 담겨있는 바구니를 꺼내어 자신의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버키를 내려다보니 여전히 둥그런 가마만 보이고, 그 아래 툭 튀어나온 이마선을 따라 곧은 콧날만이 보이는데, 그래서 표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짐작은 갔다. 나는 버키의 머리를 다시 한 번 매만져주고 버키가 가져다준 소쿠리속에서 긴 바늘을 꺼냈다. 버키의 군복과 최대한 비슷한 색의 실을 신중하게 골라내어 천천히 바늘에 꾀는데, 버키가 문득 위를 올려다보았다. 버키의 가라앉은 눈동자 속에는 나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잔뜩 일렁이고 있었다. 그래. 버키. 네가 가지고있는, 나에게 들려주고싶은 그 수많은 말들중에서, 넌 분명 몇 개는 나에게 전할 것이고 몇 개는 네 스스로 삼켜 소화시켜버리고 말겠지. 나도 알아. 그래서 나는 늘 기다렸다. 네가 나에게 전하고싶은 말만을 신중하게 고를 수 있게 너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다. 사실은 그 모든 말들을 다 그냥 나에게 해버리길 바라지만, 넌 상냥해서 나에게 그 어떤것도 지우질 않지. 그 무엇도.


 나는 너의 요람에 잠기어 부드러운 호흡을 하고 있어. 매일같이.

 그것은 조금도 나를 답답하게 하지 않아.


 하지만 그것이 나의 눈물을 멈추게 만드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버키, 네가 아무리 상냥해도, 그것이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너는 모르는 것 같아.


 Bucky Barnes. 그의 군복 가슴에 그의 이름을 새기면서 그렇게 내내 눈물을 흘렸는데, 그동안 버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너의 당황을 진정시키기엔 너무 역부족이야. 왜냐면 나도 내 눈물을 어떻게 멈출 수 있는지 모르는 걸. 나는 그저 흘리는 눈물을 멈추지도 못하고, 너의 이름을 수놓는 손또한 멈추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던 네가 곧 차분해져서는 내 눈물에 미간을 찌푸리며 미소를 짓기 시작해도, 네가 다시 내 무릎위에 얼굴을 뉘이고 눈을 감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렇게 그저 이런 것들뿐인 것이다. 그래서 방울지며 떨어진 내 눈물은 버키의 진한 색 군복을 더욱 진한 색 속으로 잠기게 하였고, 또 몇방울은 버키의 뺨 위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무릎에는 버키 얼굴의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않고 단지 그의 존재감만이 지긋하게 나를 누르고 있었다.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너의 체온만이 가득해.


 "스텔라."


 손을 뻗어 내 뺨을 감싸고, 버키의 메마른 입술이 내 입술에 닿을때에도 난 여전히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스텔라. 나 꼭 살아서 돌아올테니까." 당연하잖아. 그런 당연한 말을 왜 굳이 해. 내가 지금 눈물 흘리고 있는 것은 네가 돌아오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것이 아닌데. 그렇다고 나를 두고 떠나는 네가 야속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네가 전장으로 향한다는 것에 대한 각오가 모자른 것도 아니고... 그런 것들이 아니야. 하지만 어째서 계속 우는거냐고 네가 물으면, 난 솔직히 대답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것 같아. 버키. 어째서 그 이유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눈물이 그 어느때보다 이렇게 뜨겁게 끓어오르는 지 조차도.


 버키의 입술은, 다소 거칠하고, 조금 말라있고

 따뜻했다.


 그가 다시 내 스커트를 들추고 내 왼쪽다리를 두 손으로 감싸쥔 후, 구두를 벗겨내어 드러난 내 작은 발끝을 모아쥐고 키스했을 때는, 솔직히 얼굴이 화끈거렸고.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지.


 네가 내 눈물을 멈춰주길 바라지 않아. 내가 흘리는 눈물은 나 스스로 닦아낼 거야. 내가 그럴 수 있는 여자라는 걸, 버키 너도 알잖아.


 난 단지, 바라고 있어.


 다음에 또, 내가 눈물 흘리는 이유가

 역시나 너이기를.


 언제나 너를 위해서만 울게 해줘. 흘리고 난 뒤엔 나 스스로 눈을 닦고 힘차게 일어설게.


 나의 모든 눈물의 이유가 되어줘. 버키.


 오직 너만.


 너 혼자만.


 



 "...버키."


 "응?"


 "...감기걸리지마."


 "...야, 그거... 그거 진짜 내가 너에게 해야 할 대사야 스텔라..."


 그리고 내 목을 끌어안고 또 키스하면서, 버키는 입술과 입술을 겹친 그대로 '그래, 비록 총탄에 맞을지언정 감기만은 꼭 걸리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겠어'라고 중얼거렸다. 입술을 겹친탓인지, 어미가 뭉그러져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버키의 목소리. 나는 버키의 단단한 어깨를 두 손으로 가득 끌어안았다.

 

 

 

 

 

 

- done

 

사이좋은 버키스텔라. 딱붙어서 꽁냥대는 버키스텔라. 전쟁터에 나가기 바로 직전의 마지막 꽁냥.

사실은 입가에 마구 생크림 묻히며 케이크를 나눠먹는다거나 서로의 모자를 쓰며 논다거나 버키가 스텔라의 머리칼을 가지고 논다거나,

스텔라의 무릎베개를 한채로 버키는 눈을 감고있고 스텔라가 책을 읽어준다거나, 스텔라가 귀를 파주면 버키는 저도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다거나

뭐 그런 걸 좀 더 잔뜩 쓰고싶었습니다. 단편적 망상으론 글을 이어가기가 좀 힘들지만요. 그래서그런가 글도 좀 짧긴 짧습니다만. 솜사탕같은 느낌의 스텔라가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