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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키스팁] Merry Christmas, Mr. Captain 13. 12. 24

복숭아세포군 2014. 3. 20. 18:25

Merry Christmas, Mr. Captain 

 

 

 

캡틴 아메리카의 크리스마스 특별 포상으로 포로를 해방시키자는 안건이 드디어 수리되었다. 그런데 이 수리되었다는 말은 안타깝게도 포로를 해방시키기로 결정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의견도 있다는 것을 높은 사람 몇몇이 알게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솔직히 나는 그가 그 얘기를 꺼낼 때부터 좀 어이가 없었는데-전쟁포로를 풀어주고 싶다는 의견 자체에 어이가 없었다기보다는 그 말을 실제로 들어줄 상사가 미군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어쨌거나 그는 그 일에 열성을 다 하는 것 같았다. 군의 높은 인간들은 대부분 코앞까지 다가온 크리스마스에 센티멘탈해지기라도 한거냐는 식의 비꼬는  태도이다. 애당초 슈퍼솔저와 센티멘탈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기라도 한단 말인가, 라면서.

 

 미군부대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단 하나의 희망의 별, 슈퍼솔저 캡틴 아메리카는 그 존재자체만으로 인간의 마음을 뒤흔드는, 말하자면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존재에게 휴머니티는 불필요하다. 사람들이 그에게 바라는 것은 동정이 아니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높고 숭고한 이상과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강인한 육체. 오로지 위만을 쳐다보는 시선과 쫓아가고 싶어지는 등을 가진. 그리고 캡틴 본인의 진정한 상정이 어떻든 하여간 미군은 그에게 완벽한 상징성을 부여하는 데에 성공했다. 위에서 추진하고 아래에서 추켜세운다. 그렇게 캡틴 아메리카는 완성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사실은 때때로 감성적이 돼는, 의외로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언제나 나뿐인 건지도 모른다는 것도. 늘 그의 등을 쫓으며 달라붙어있는 나이기에 알게 되는 것도 있는 것이다. 앓는 소리 한 번 하지 않는 그의 등에 때로 묵직한 피로가 수습할 길 없는 슬픔으로 쌓이는 것을, 그래서 그는 밤이 되면 자기위해 허리를 둥글게 말아 몸을 작게 움츠린다는 것을, 그럼에도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한 얼굴로 마스크를 고쳐 쓴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번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바의 656부대의 포로수용의 참사를 견디지 못하고 이번안건을 발의하였다. 656부대의 대대장은 자신의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보급품을 빼돌려 자신의 잇속을 차린 흔한 비열종자였다. 자신의 병사마저 얼려 죽이는 비열함인데, 수용중인 포로들에게는 또 얼마나 잔인한 칼날을 휘둘렀겠는가. 캡틴과 내가 656부대 포로막사의 실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그 날, 나는 캡틴의 넓은 어깨 바로 뒤에 서서 그들의 시궁창보다 더한 악취에 코를 막는 시늉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캡틴이 나를 포로막사의 바깥으로 밀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나의 포로를 대하는 태도가 캡틴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캡틴이 준 죄책감을 가슴에 담고 막사바깥에서 등을 쭈욱 펴고 캡틴의 움직임만을 쫓았다. 내가 하고 있던 버키의 마스크에도 부끄러워 차마 눈을 돌리는 일도 할 수 없었다. 캡틴은 마스크를 쓴 채 그 모습 그대로 포로막사를 한 바퀴 천천히 돌았다. 서두르는 기색도 불쾌한 기색도 조금도 없었다. 막사밖에 서 있는 나에게까지 스멀스멀 밀려오는 악취에도 아랑곳 않고 막사 안에서 죽어가는 포로들의 모습을 둘러보는 그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침착해져가는 것 같았다. 포로 중 누군가는 캡틴에게 미군의 더러운 창녀라며 욕을 했고, 누군가는 그의 발치에 침을 뱉었다. 그럼에도, 가령 캡틴은 자신의 마스크에까지 그들의 더러운 가래가 튀어도 미동도 하지 않았으리라. 단지 묵묵히 자신의 눈으로 막사안의 모든 사정을 확인할 뿐. 그것만이 자신이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이라는 듯이.

 

 그리고 역시, 그가 의외로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나뿐이므로-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그날도 나뿐이었다.


 그리고 캡틴은 캡틴 아메리카의 권한으로 656부대의 대대장을 군법회의에 회부하여 처단하고, 부대의 상층부를 싹 갈아엎어버리기까지 하였다. 거기다 포로막사 개선 또한 지체 없이 시작하여 포로들은 깨끗한 막사로 옮겨지고 훌륭한 식사에 청결한 시트, 심지어 전용 군의관까지 배치되었다. 그러나 캡틴은 역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생각의 결과가 바로 '크리스마스 특별 포상으로 포로를 해방시키자는 안건이 드디어 수리되었다'인 것이다. 

 

 캡틴이 또 나를 스쳐 상층부의 막사로 향해 달음박질을 치고 있었다. 무언가 서류들을 잔뜩 챙긴 채.


 포로해방 일로 이곳에 머물게 된 캡틴을 따라 나 역시 이부대에 장기체류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일에 너까지 끼어들 필요는 없다는 명령에 따라 비교적 한가해진 나는 캡틴의 행동을 단지 눈으로 쫓으며 태연히 사과나 씹어 먹기 일쑤였다. 바로 지금처럼. 

 

 그래. 바로 지금처럼. 겨울의 사과는 달디 달았고, 잇속까지 울릴 만큼 시렸다.

 

 " 캡. 당신 설마 산타클로스가 되고 싶은 거예요? "


 회의안건을 잔뜩 들고 군부막사로 걸어가는 캡틴의 뒤에 어느새 달라붙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캡틴은 내가 다가온 기색을 진작부터 눈치 챘는지 전혀 놀라지 않고 단지 나를 살짝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 넓은 어깨너머로. 그보다 한 뼘 이상 작은 키에 훨씬 좁은 어깨를 움츠리며 나는 캡틴의 따가운 시선에도 기죽지 않고 간신히 웃어 보일 수 있었다. 이럴 때 버키의 마스크는 정말로 큰 도움이 된다. 나는 남은 사과귀퉁이를 멀리까지 던져버리고는 두 손을 들어 머리위로 깍지를 끼며 캡틴의 빠른 보폭에 맞춰 몸을 조금 서둘러 움직였다. 캡틴은 단지 잠깐 날 위해 할애했던 시선을 곧 거두고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단단히 움켜쥐는 서류들.

 

 " 버키. 나는 이제와 캡틴 아메리카외의 존재는 되지 않아. "


 " 하지만 그 안건이 백 프로 통과된다면, 그때부터 당신은 낯선 포로들의 훌륭한 산타클로스가 될 거예요. "


 " 난 낯선 포로들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우리나라의 군을 위해서지. 군의 상층부가 바로서야,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모든 병사들의 마음이 꺾이지 않는다. "

 

 " 당신의 진위가 어떻든지 간에 상관없다고요. 이런 식으로 결과가 결국 선행이 되는 일은. "

 

 " …그런가. "


 하긴 자네 말이 맞겠지. 버키. 그렇게 말하고 가볍게 내 등을 내려치고는 캡틴은 마스크를 쓴 채로 막사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길게 내쉬는 나의 한숨은 의미 없이 흩어졌다. 겨울공기 속으로.

 

 

 

 

 

 포로해방의 안건이 수리된 뒤에도 캡틴의 동분서주는 끝나지 않았다. 포로해방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캡틴은 달리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그의 적군(포로)들을 위하는 것 같은 행동은 점점 더 아군들 사이에서 좋지 못한 시선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런 사소한 잡음은 캡틴의 귀에 들리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

 

 캡틴은 아름답다. 마음이.

 그리고 그 아름다운 마음은, 때때로 주변사람들이 전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밝게 빛난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 내가 그의 주변에 사소한 경계를 세우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편히 쉬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를 가든 사사건건 내가 눈에 띄어서 캡틴은 지금 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음에 다름이 없다. 맞다. 솔직히 지금 나는 그에게 비밀로 하고 그의 보디가드를 자처하고 있는 중이었다. 불순분자들이 불시에 캡틴을 덮치거나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혹은 그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내가 있을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이지구의 어디를 뒤져봐도 캡틴 아메리카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캡틴이 당할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나는 단지, 가능하면 그에게 반발하는 아군들이 그에게 싸움을 거는 그런 일 자체가 없기를 바라고,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캡틴 몰래 일을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캡틴은, 이 나라를 위해 존재하게 된 사람인데. 모든 행동들이 오직 조국 외에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결과물인데.


 그런 그의 생각을 반발하는 이 나라 사람이 있다니,

 그것을 그 사람이 알게 되다니.


 그런 생각을 하면할수록, 내가 속이 상하는 것이다. 대체 이보다 더 속상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 버키. 자네 혹시 지루한가? "


 그가 군부막사로 들어가는 것을 따라가지 않고, 바깥 천막기둥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어느새 선 채로 잠이 든 건지. 나는 캡틴의 목소리에 방금까지 꿈에서 헤매다 이제 막 벗어난 사람인 것 마냥 굼뜨게 눈을 떴다. 흐릿한 상위로 캡틴의 지긋하게 바라보는 깊은 눈동자색이 천천히 선명해져갔다. 나는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 모처럼 주어진 자유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않고 나를 졸졸 쫓아다니기만 하다니. 자유도 누릴 줄 모르는 사람 손에 들어가면 단지 지루한 것이 되는가보군. " 캡틴의 끄트머리에 웃음이 녹아있는 목소리에 편승하듯 따라 웃으니, 잠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 같다. 나는 약간 어긋난 것 같은 기미를 보이는 목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두어 번 어깨를 움직였다. " 지루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캡틴 뒤를 따르는 일은 그저 스릴의 연속일 뿐이죠. 그리고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구요. " 그리고 그게 내가, 버키가 있는 이유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의 걸음에 보폭을 맞추어 뒤를 따라 걸었다. 발아래로 입자에 물기가 남아있는 흙이 흐트러지는 자박자박 소리가 났다. 그의 거의 소리 없는 걸음걸이와 나의 군화가 울리는 소리가 아무렇게나 엉겨 붙었다가 다시 흩어짐을 반복하였다. 캡틴은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리깔며 연하게 웃었다.

 

 " 뭘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벅. 차라리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반대하고 있다면 널 이해하기가 쉬울 텐데. "


 나는 콧방귀와도 비슷한 한숨을 내쉬며 두 팔을 들어 팔짱을 꼈다. 바람이 싸늘하게 식어 간혹 스쳐지나갈 때마다 손끝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 내가 당신을 반대하는 일이 생길리가 없잖아요. "


 " 그럼 넌 지금 대체 뭘 걱정하고 있는 거지? "


 " 내가 뭘 한다고요? 하하. 버키는 아무 근심걱정도 없는데요. "

 

 " 거짓말. 나에 대한 걱정으로 계속 안절부절 못하고 있잖아. "


 " ……. "

 

 어떻게 알았을까.

 왜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으면서, 사실은 전부 알고 있는 걸까.

 내가 정말 당신을 속일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라도, 단 한순간이라도 올까.


 " 뭔가? 버키. 뭔가 할 말은 없는 건가? "

 

 그렇게 말하고 또 나를 돌아보는 캡틴은, 언제나 같은 깊은 눈동자를 빛내고 연하게 웃고 있었다. 마스크너머로도 선명한 눈가의 웃음주름이 갈래갈래로 퍼져 마스크 안쪽까지 깊게 이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는 그의 나이를 감히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짐작하고 있을 요량이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는 나에 대한 전부를 아는데, 나는 그에 대한 한치 앞도 알 수가 없어. 알고 있는지 알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심지어 그는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곳에 서 있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아주 가까이, 너무나 멀리. 손 뻗으면 닿을 듯도 하고, 한없이 뻗어도 언제까지 엇나갈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 지금이라면 언제든 상담을 받아주지. " 

 

 " ……. "


 캡. 

 나는 걱정돼요.

 당신이 혼자, 영원히 혼자 일까봐.


 당신이 고독할까봐.

 캡틴 아메리카라는 마스크에 잠겨서

 영원히 캡틴 아메리카이기만 할까봐.

 

 " ……. "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도저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내뱉어봤자 돌아오는 그의 대답은 '당연히, 그러기로 각오했으니까.'일 게 뻔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버키 반즈, 캡틴 아메리카의 버키이므로, 나 또한 영원히 버키 반즈여야만 했다. 나또한 '당연히, 그러기로 각오했으니까'이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들을 입 밖으로 내뱉어 캡틴에게 내가 이 마스크를 무거워한다거나 부담을 느낀다거나 심지어 싫증을 낸다던가 하는 생각을 추호라도 하게 해서는 안 됐다.

 

 그러니까, 캡. 그러니까 나는 단지, 당신은 그런 사람인데. 당신은 그 아무도 가본적 없는 오롯한 캡틴 아메리카의 길을 혼자서 쭈욱 걸어갈 사람인데, 그 길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 길을 방해하는 자들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의 앞길을 힘들게 만드는 자들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의 생각을 방해하는 자들이 하필, 당신이 필사적으로 보호하려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당신이 알게 되는 것만큼의

 

 슬픈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단지 그것뿐인데요.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것이 내 눈앞에서 현실이 되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조율할지에 대해서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였고

 그래, 결국

 나는 이성보다 먼저 몸이 움직이는 순간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늘, 캡틴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고 분석하고, 그의 생각을 미리 읽어 사려 깊게 행동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인 실수. 캡틴이 그를 대신해서 내가 다치는 것을 당연히 싫어하리라는 것을 예상했어야했다. 그리고 한발먼저 뛰어가 그를 향한 칼날을 내 몸으로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치지 않고 나또한 챙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어야했던 것이다, 이 멍청한 버키 반즈야. ─하지만 찰나의 순간이 되면, 인간은 누구나 정직해지는 법이라. 나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결국 나 자신보다 캡틴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고 있던 나의 본질을 드러내게 되었다.

 

 캡틴의 등을 노리고 빼어든 잭나이프를 크게 치켜든 채 달려온 건장하고 사나운 병사의 앞을 막아서기 위해서, 나는 캡틴의 육중한 어깨를 나의 끝이 뾰족한 어깨로 밀어붙여야했다. 나에게 밀리기 전에 자신에게로 달려오고 있는 병사의 악에 받침에 대해서는 이미 눈치 채고 있었을 캡틴이었겠으나, 그는 사각에서 밀어오는 나를 순간 어떻게 하는 것에는 실패하였고, 바로 그 순간이 이 현장의 모든 것을 좌우했다. 병사는 그대로 나이프를 휘둘렀고 나는 간신히 나이프의 길을 틀어 배한가운데를 찔리지는 않았으나 대신 왼팔의 접히는 부분을 찔리고야 말았다. 나이프는 깊게 들어왔다. 살과 뼈를 깊게 파고든 나이프는 곧 반대쪽으로 그 끝이 삐죽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대로 더 찔리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바깥으로 돌아 나온 캡틴의 주먹이 병사의 왼쪽 뺨을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젖은 기운이 올라오는 흙바닥으로 허물어지는 병사와, 그의 머리채를 집어 들고 다시 한 번 주먹을 내리치는 캡틴의 확인사살. 나는 내 왼팔의 통증이 밀려오기 전에 캡틴을 공격한 병사가 656부대소속임을 알아보고-틀림없이 656부대 전대대장의 오른팔 격 병사이리라- 상심을 느끼고 있었다. 조만간 왼팔의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와도, 이 상심보다 더 거세지는 않으리라.


 " 버키! "

 

 괜찮아요. 캡. 난 괜찮아요.  


 실제로 전신을 관통하는 고통이 0.1초의 공허 뒤에 한꺼번에 몰려왔는데, 그것은 마치 파도처럼 달려오는 말 수백 마리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땅울림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고통은 그동안의 일로 상당히 익숙했기에 그 정도의 가감을 이제 구분하기가 어려울정도로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나는 슈퍼솔저만큼 상처와 고통에 강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고통을 참는 법은 터득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왼팔에 꽂혀있는 나이프는 스스로 뽑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지 않고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어 상처를 잽싸게 감쌌다. 그 와중에 캡틴이 달려와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나의 팔을 내 목 위까지 들어 올리고는 내 손수건만으로 성에 차지 않는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천 조각을 아무렇게나 잡아 찢어 내 팔을 더욱 칭칭 감는 것이었다. 이제 전신에 퍼진 찔리고 뚫린 고통보다 그 직접적인 상처를 틀어막은 압박감이 더 나를 장악하고 있었다.


 캡틴의 목소리가 가까웠다.


 " 젠장. 이거였나? 네가 걱정하고 있던 게. "


 " …예. 이거였어요. "


 그의 뿌득 갈리는 잇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나이프에 찔린 후유증으로 몸이 떨리고 비지땀이 떨어졌다. 하지만 나의 신체적인 고통은 솔직히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당신이 상처받았다는 것 앞에서는. 예. 캡틴. 이거였어요. 당신이 상처받길 원하지 않았어요.


 " 캡.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의 진위가 어떻든지 간에 상관없다고요. 이런 식으로 결과가 결국 선행이 되는 일은. …그것도 아군에게가 아닌, 적군에게 베풀어주는 온기는 말이죠, "

 

 " ……. "

 

 " 언제나 삐뚤어진 시각을 만들게 돼요. 철없는 한심한 것들에 의해 왜곡되어버려요. 모두가 당신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거죠. "

 

 " 버키…. "

 

 " 나는 당신이 전장 외에서 다치길 바라지 않아요. "

 

 물론 전장에서도 다치길 바라지 않아. 캡틴의 긴 한숨소리가 물길을 머금고 길게 흘러내렸다. 그의 단단하고 묵직한 손바닥이 내 어깨를 짚고 깊게 눌렀다. 그 누르는 힘이 당신의 등에 실려 있는 무언가의 무게같이 느껴져. " …나도 네가 다치는 것 따윈 결단코 바라지 않는데. "


 물론이에요. 잘 알고말고요. 당신의 마음은 잘 알아요. 캡.

 내 마음보다 더 선명하게 알고 있죠.


 아아. 결국 전부 다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결국 그는 상처를 받았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의 파란 눈동자가 흔들린다. 깊고 조용한 슬픔으로.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문득 공기가 뺨에 닿는 느낌이 이상하게 선명해서 고개를 드니, 역시나. 어느새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 메리 크리스마스. 캡틴. 당신을 알고 난 후로 두 번째의 크리스마스예요. "


 " …벅, 너란 녀석은… "

 

 어느새 펑펑 내리기 시작한 눈에 내 목소리마저 묻힐 것 같았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이 캡틴의 손바닥 온기만은 눈 속에 파묻히지 말고 오랫동안 옆에 있어주기를. " 메리 크리스마스. 버키. " 그의 목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이렇게 그가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눈이 내리는 밤의 고요함 덕분이겠지. 나는 기뻤다. 

 

 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마음이 왜 이렇게 간절한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이순간이 정말로 기뻤던 것이다. 


 그의 마음을 지키지 못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나는 이렇게나 행복할 수 있는 걸까.

 그의 옆에 있을 수 있는, 지금 이순간이.

 

 이렇게도.

 

 

 

 

 

 

 

 

- done

 

+ 이글은 캡틴 아메리카 오른쪽 크리스마스 합작에 출품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