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키스팁] ever been mine 13. 11. 23
ever been mine
버키는 저녁의 자유시간이 되면 늘 기분이 좋았다. 그의 새까만 머리칼 아래의 주름하나 없는 앳된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것은 제법 볼만한 것이었다. 불길을 조금 죽여놓은 모닥불 앞에 평평한 돌 하나에 걸터앉아 그는 준비된 군대식을 재빠르게 처리하고 늘 가슴주머니에서 무언가 한 장을 꺼내 그것을 바라보며 싱글거렸다. 일렁이는 모닥불의 오렌지색에 물들어 그의 얼굴빛이 조금 노란색을 띠었는데 그때문에 버키의 웃음지을때마다 생기는 연한 팔자주름이 꼭 춤을 추는 것처럼 흔들리는 것이었다. 그가 꺼낸 그 무언가의 한 장은 아마 사진인 것 같았는데, 때가묻고 가장자리가 조금 헤진 것으로 보아 그의 손때가 어지간히 묻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소중한 누군가의 사진인거겠지. 그러나 우리들 중 아무도 버키가 매일밤 보고 있는 그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여자이지 않겠는가? 물론 버키는 우리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니 설마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그래도 고향에 두고온 연인이 있을 가능성이 아예 제로일 수는 없는거다. 무엇보다 세상의 어느 틴에이저가 자기 부모님, 소꿉친구, 혹은 애완견의 사진을 보고 저렇게 희희낙락할수가 있겠느냐고.
독일의 격전지를 조금 벗어난 어느 시골의 작전부대 74사단의 인원은 총 열세명이었다. 물론 사령관을 포함해서. 그것이 이주일 전부터 열네명이 되었는데 마지막에 투입된 이병이 버키 반즈였다. 버키라니. 그 이름은 모히어로군인의 로빈의 이름이 아닌가. 처음 우리들은 그의 이름을 마구 웃어주었고, 우리들의 영문모를 첫대면의 비웃음에도 버키는 머리를 긁적이며 의외로 느긋한 맞대응 웃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열네명중 몇명은 그래서 버키가 나이에 비해 성숙한 녀석이구나하고 생각했고, 몇몇은 벨도없는 여린녀석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후자들은 어떻게든 버키를 건드리려고 했는데, 버키는 이주동안 큰일을 내지않고 용케 잘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다. 나는 소년의 웃음에서 소년의 섬세한 상냥함을 보았다. 그리고 그간의 이주동안 소년의 섬세한 상냥함은 사건을 피해가는 예리함으로 빛났고, 나는 순수하게 소년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버키 반즈는 지켜보기에 재미난 소년이었다. 군인에 몇 없는 타입이다.
물론 나는 우리 사령관에게서 혼자 전해들은 비밀명령을 수행중이기도 했다. 버키 반즈의 옆에 늘 붙어있는 것은 명령 때문이었다. 사령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는 임시로 우리 부대에 속한 것에 불과하고 조만간 다른 부대로 이동할 것이다. 그 기간동안 그가 좋지못한 일에 얽히지 않도록 네가 항상 옆에 붙어 있도록.' 이렇게 말했다. 이주전에 전해들은 말이니 솔직히 대부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고, 하여간 대충 이런 이미지의 내용들이었다. 나는 우리 사령관이 이런 말-어떤 말이냐면 어느 개인을 편애하는 듯한-을 하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군인의 대부분을 그의 부하로써 지내고 있었으니까. 그렇다, 그래서, 버키 반즈의 개인적인 성향과는 상관없이, 하여간 버키 반즈는 나의 흥미를 크게 끌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일적으로도 물론 사적으로도.
" 대체 누구기에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천국에 있는 것 같아? "
" ...아, 네? 잘 못들었습니다. "
말을 놓쳤다는 것을 숨기지도 않고 사진에서 눈을 떼며 버키가 고개를 들어 내쪽을 쳐다보았다. 모닥불을 사이에둔 거리감은 가까워보이기도 하고 또 멀어보이기도 하였다. 오렌지빛때문일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버키의 십대특유의 새하얀 뺨위에 붉은 홍조가 피어올라 있었다. 어쨌거나 그 홍조는 지금의 버키를 낮시간의 버키보다 훨씬 더 행복해보이게 했다. 저렇게나 행복할 수 있는건가. 누군가의 초상화 하나로.
" 사진말야. 시간이 날때마다 거의 매일밤 보고 있잖아. 너의 이글대는 검은색 눈이 사진에 구멍이라도 뚫을 것 같아. "
" ...아하. 하하하. 구멍이 나면 안 되죠. 이제 어디가서 쉽게 구하지도 못할 겨우 손에 넣은 단 한장인데요. "
그렇게 말하고 깨끗한 이너셔츠를 쭈욱 꺼내어 사진의 표면을 닦아내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사진을 다시 가슴주머니에 넣는다. " 대체 누군데 그래? " 몇번째인지도 모를 똑같은 질문을 불쑥 또 내뱉어버렸다. " 으음. 노코멘트요. " 그리고 역시나 똑같은 대답. 손가락 하나를 들고 좌우로 흔드는 것도 나름 귀엽긴 하지만. 나는 쳇, 하고 웃음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두 손을 들어 머리를 짚고 돌위에 드러누웠다. 왜 버키가 저것하나 알려주지 않는다고 이렇게 섭섭한 기분이 들까. 나는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저 소년에 관심이 있는가보다했다. 모닥불속의 장작들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허공으로 솟았다. 뒤를 따르며 너울이는 검은재들.
모닥불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방해하는 것은 두꺼운 장화의 바닥이 두동강을 내는 나뭇가지의 부러지는 소리였다. 나는 슬그머니 감은 눈을 떴다. 나와 버키가 피워놓은 모닥불이 사람이 다가오는 소리에 꼭 반응하는 것처럼-사실은 군인들의 몸이 움직일때마다 흔들리는 대기의 흐름을 따라 너풀대는 거겠지만-좌우로 더욱 넘실거렸다. 다가오는 세명, 아니 네명의 군인들. 둘은 대머리였고 한명은 까무잡잡한 피부를, 또 한 명은 진한 나무색의 머리칼을 하고 있었다. 쯧... 이건 좋지 못한 상황인데. 나는 본능적으로 혀를 차며 눈을 완전히 떴다. 어떤 타이밍으로 상체를 일으키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좌우로, 군인들과 버키를 돌아가며 눈동자를 굴렸다. 약 이주동안 버키가 아슬아슬하게 피해왔던 바로 그 상황이다. 아까 말한 '후자'녀석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정말 좋지 못한 상황이다.
" 여어. 캡틴's 로빈. 오늘은 왠일로 그 퍼킹사진을 보지않고 있구만? "
나무색머리는 지나치게 사납고 끝이 갈라지는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욕정에 들뜨는 것을 내가 눈치채지 못하면 좋았을텐데. 쳇.
고개를 잽싸게 돌려 소년을 바라보니 버키는 좌우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흠잡을데가 없는 영업용 미소였다. 이마위로 흘러내린 검은 고수머리를 손끝으로 훑어 귀뒤로 넘기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 뭔가 좋지못한 발걸음을 들어서요. "
버키는 내가 그들의 발걸음을 듣기보다 더 먼저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는 소리다. 예사소리가 아닌 것 같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쨌든 나는 사령관이 잠시 자리를 비운 이 저녁시간동안 그가 나에게 부여한 임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키에게 두어발자국 다가갔다. 그리고 여전히 평평한 돌위에 앉아 몰려온 군인들에게 미소띈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버키의 어깨위에 손을 올렸다. 모여든 네 명의 불손한 기운이 정면에서 느껴졌다. 정말 좋지않다. 저들은 우리 부대중에서도 언제나 육박전에 투입돼는 강인한 육체를 자랑하는 군인들이다. 나는 일부러 더 인상을 찌푸리며 목구멍을 긁는 소리를 냈다. 조금의 위협이라도 되었으면 해서.
" 너희들, 사령관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문제를 일으킬 생각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주면 좋겠는데. 일을 일으키면 뒷맛이 결코 좋지 못할거야. "
그렇게 말하는 내 손에 힘이 들어간 걸 눈치챘는지, 버키의 시야가 살짝 나의 얼굴에 닿았다. 이런, 그런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날 보지 마. 그래 솔직히 자신이 없는걸. 저 네명을 상대로 한다는 건. 나무색머리가 어깨를 흔들며 킬킬대었다.
" 이봐, 오버하지 말자구. 내가 무슨 문제를 일으키려고 한다는 거야? 나는 단지 거기 앉아있는 곱상한 년과 잠깐 볼일을 해결하고 싶은 거 뿐이야. "
" 년? 여기엔 년이 없는데. "
" 오, 그래. 맞아. 거기에 앉아있는 건 엉덩이가 탱탱한 틴에이저뿐이지. 그래서 말야, 지금부터 내가 그를 my bitch로 만들까 하고 말야. "
" you are fuck-- "
난 욕을 섞으며 그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쳤고 내 목소리가 숲의 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의 거친 욕설이 그들에게 경각심을 좀 심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일부러라도 더 목소리를 높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차를 가한 것 같다. 그들의 성급한 마음에. 그들은 성큼성큼 거리를 좁혀오며 건들거렸다.
"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끝날테니까. 매번 보고 히히거리는 그 좋아하는 년 사진이라도 붙들고 눈 좀 감고 있으면 다 끝나 있을거야. 얼마나 쉬워? "
" 너희들, 지금 자신들이 무슨 소리 하는지 알고는 있는거겠지? "
" 아, 알다마다. 사진속의 아무개년보다는 거기에 앉아있는 푸딩 벅이 훨씬 쓸모가 있다는 뜻이잖아. "
나무색머리가 외설을 내뱉을 때마다 주변의 다른 군인들이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웃음을 흘렸다. 버키의 어깨를 짚은 나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버키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손바닥에 닿은 어깨가 뜨거웠다.
나와 그들, 버키외엔 다른 부대원들이 보이지 않았고 아마 그들은 이미 저 네명에게 얽히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안다. 좁은 구역에서 남자들끼리 버둥대는 부대의 몇몇 기강이 서지않은 부대에는 이런 일쯤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나이가 비교적 어리고 팔다리에 힘이 없는 곱상한 사내는 영락없이 굶주린 자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74부대는 기강이 없는 부대가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아마 시골구석의 대기상태가 길어져 욕구불만이 쌓인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난 버키 반즈가, 호랑이굴에 풀어놓은 토끼 한마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지저스. 확실히 버키는 얼굴이 곱상하고 아직 몸이 작고 말랐다. 옷위로도 탄탄하게 단련된 육체라는 것을 알 수 있을정도로 건장했지만 그렇지만 십대는 십대일뿐이지. 갑자기 버키 반즈를 우리쪽 부대로 파견하기로 한 상층부의 누군가에게 욕지꺼리가 끌어올랐다. 어쨌거나 버키가 이자리에 없었다면, 저들이 저렇게 눈이 돌아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저들은 단지 거시기에 정자가 너무 쌓인 것뿐이고,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이런 몹쓸짓을 할 정도의 개념없는 인간들은 아닌 것이다. 단지 저들은, 버키 반즈를 외부인으로 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버키 반즈의 정중한 태도에서 느껴지는 새까만 눈동자의 거리감을, 저들도 느끼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 너도 그만 그자리에서 비키고 지프에 들어가 잠이나 자는 게 좋을 거다. 오늘밤 나는 꽤 거칠 예정이거든. "
내뱉는 속된 말들에 나머지 군인들도 호응하는 듯 젖은 웃음을 흘렸다. " 아니면 구경할래? 구경꾼이 있는 것도 꽤 좋거든, 실은. " " 그런태도가 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너희들은 지금 너희들의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자각이 없는 어리석은 문제아들일뿐이야. " " 헤헤, 그럴지도. 하지만 문제아는 항상 매력적이지. " 젠장. 사실 나는 니들이 거시기를 어떻게 놀리든 니들 섹스취향이 어떻든 전혀 신경쓰고싶지 않다. 문제는, 나는 임무를 수행해야한다는 것이고 그 임무는 버키 반즈를 불필요한 일에 휘말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나는 침을 꿀떡 삼키며 이상황을 어떻게 타계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고, 역시 가능성있는 해결책은 단 한가지밖에 없었다. 버키를 어둠이 진하게 깔려있는 숲의 깊은 곳까지 도망치게 한다. 그동안 내가 네명을 막아 버키가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다. 그리고 그뒤는 불보듯 뻔했다. 아마 이 네명은 내가 피어둔 모닥불에 날 집어던지고 복날에 개패듯 날 대하겠지. 쏟아지는 폭력을 피할 길은 없을 것이다. 나는 각오를 해야 했다. 그래, 좋다. 뼈라도 부러지면 그대로 퇴역군인의 코스를 걸어주지. 어쨌거나 난 마지막 명령을 따름으로써 군인의 명예는 지킬 수 있을 것이고 그것에 만족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버키 반즈가 천천히 일어났다.
내가 짚고있는 어깨의 내 손을 집어들어 무리하지 않고 떼내고서는. 나는 당황하여 눈을 치켜떴고, 버키는 그런 나에게 그저 가장 첫날 보았던 그 부드러운 웃음을 띠어보였다. 키는 나와 거의 같지만, 어깨폭은 나보다 훨씬 좁은 그가 나에게 안심하라는 듯한 미소를 보이고는 모닥불을 건너 성큼, 욕정한 군인들에게 다가가다니.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어버버버, 하며 손을 버키에게로 뻗었다. 가지마! 라는 의미였는데, 버키는 살짝 고개를 젓고는 그저 웃음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주름하나 없는 매끈한 눈주변에 자글한 눈주름을 지으면서 짓는 깊은 웃음이라니. 버키. 네가 그런 웃음도 띄울 수 있었단 말이야?
" 헤이. 진정들해요. 내가 상대를 안하겠다고 한 건 아니잖아요? "
버키는 그렇게 웃으며 두 손을 흔들었다. 군인 넷은 다가오는 버키를 능글스런 웃음 그대로 팔짱을 고쳐끼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주춤한 채 버키의 뒷모습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 왼쪽으로 흔들리는 진한 머리칼로 덮인 뒷통수만을. 아 이런, 내가 어떻게 해야하지? 이대로 품안의 칼을 꺼내어 뛰어들어야 하나? 아니면 계속 지켜보고 있을까? 버키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앞을 향해 뻗었다. 그의 목소리는 어둠속에서도 선명한 힘이 담겨 있었다.
" 걱정하지 않아도 다들 한번씩 해줄테니까요. 내가 아직 젊어 정력이 넘쳐나니 한 번에 네명은 무리도 아니에요. 대신에 순번은 지켜야죠. 내 거시기는 하나뿐이니까. "
" ...뭐, 뭐? "
" 왜요? 아무리 나래도 한 번에 구멍 네 개를 쑤실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걱정안해도 한 명당 오분이면 충분히 천국으로 보낼 테크닉정도는 있으니까 마지막 순번이래도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게 될거예요. "
그리고 버키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다른 손을 다 내리고 가운데 손가락만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새빨갛고 건강한 혀를 길게 빼내어 자신의 가운데 손가락을 가장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핥아올리는 것이 아닌가. " 오럴섹스가 얼마나 기분좋은가 정도는 제대로 가르쳐줄 수 있어요. 아주 맛들어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어드리죠. "
...하하하!
나는 진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웃음을 흘릴만한 상황도 아닌데 한 번 웃음이 터지고나니 멈추지가 않아서 나는 어느새 배를 감싸안고 목이 터져라 웃고 있었다. 눈물까지 찔끔 흘릴 정도였는데 슬쩍 보니 버키가 그 사람좋은 웃음을 지은 채로 또 한 번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게 아니겠는가. 네명의 군인들은 잠시 벙찐 채 눈을 깜빡이다가 곧 얼굴을 붉히면서 크게 욕지꺼리를 내뱉었다. 웃을때가 아니었구나 그러고보니. 욕지꺼리와 함께 군인 한 명의 커다란 주먹이 버키의 얼굴을 겨냥에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다급한 상황이라니, 아 젠장, 웃을시간에 뛰어가 버키의 목덜미라도 낚아채 뒤로 도망치게해야만 했는데. 그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단지 " 버키!! " 그를 애타게 외치는 소리를 내뱉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정리되기까지는
5분
아니,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그 시간이 정확한건지에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내가 내 눈을 의심해버렸던 것도 그렇고 당황한 나머지 발이 굳어 전신의 감각을 잠시 잃었던 것도 그렇고 해서, 정확하게 몇분이 흘렀는지를 체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단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네명의 군인들이 전부 망가진 얼굴을 하고 피를 흘리며 버키의 주변에 쓰러져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고, 버키는 짧게 숨을 내뱉으며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버키의 나지막한 목소리. " 그 사람을 모욕하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야. " 너네들이 무슨말을 하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 사람을 모욕하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그래, 버키는 분명히 그렇게 말하였다.
몇 번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나는 몇 분전에 있었던 상황을 꼭 눈앞에 화면을 재생하는 것처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떠올리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나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자기 머리를 노리고 내려치는 커다란 주먹을 그 주먹을 내지른 군인의 가슴에까지 바짝 다가가 쉽게 피하고서는, 그대로 뻗은 손바닥으로 배를 강타! 나무색머리는 피섞인 침을 토하며 그대로 무너졌다. 버키는 무너지는 군인의 몸을 살짝 피해 그의 등을 밟고 크게 뛰어올라서는 두번째 군인의 목줄기를 다리하나로 비틀고, 곧이어 세번째의 군인의 허벅지 안쪽을 찬 후, 그가 몸이 무너지는 것을 놓치지않고 그의 콧잔등과 입술에 크게 주먹을 내리쳤다. 그리고 쏟아지는 핏줄기와 깨지는 앞이빨들. 네번째 군인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정도의 엄청난 속도였다. 버키의 눈동자가 가느다랗게 변해, 나는 날카롭게 벼린 은색칼과 같은 살기를 느꼈다. 그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오싹함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 버키의 피묻은 오른손 주먹이 마지막 남은 군인의 배를 한 번, 군인이 피를 토하기도 전에 그의 뺨을 두번, 군인의 고개가 옆으로 꺾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의 턱을 마지막으로 가격했다. 피를 토하며 군인은 낙엽처럼 춤추다 쓰러졌다. 뽀얀 밤의 먼지가 하얗게 일어났다.
버키
버키 반즈는
그저 그 웃음.
그 한가운데에 서서, 그저 내가 보아왔던 그 섬세한 웃음을 지을뿐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던 사령관이 돌아오는 것으로 일은 수습되었다. 사령관은 네 명의 군인을 군법으로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나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멀찍이 서 있는 둘의 대화가 바람결에 어렴풋이 들렸다.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는 버키의 말이었다. 이쪽이야말로 밑의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못해 미안하네. 마음에 담지 말아주게... 는 나의 사령관의 말. 존대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 버키쪽이었는데, 태도는 사령관이 더 저자세였다. 나는 말을 잃고 그저 우뚝 그자리에 서 있을뿐이었다. 드디어 대기상태가 끝났군요. 그가 날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말 지루한 이주였네요. 살풋 그런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버키가 벌써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짐이 담긴 배낭 하나만을 둘러맨채로. 나는 나도모르게 버키- 라고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버키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단지 어깨만을 조금 돌려, 짧은 경례를 하고는 다시 앞을 보았다. 사령관의 얼굴을 보니, 사령관은 그저 고개를 두어번 저을뿐이었다. 저 사인을 안다. 그래, 나에게 아무것도 깨닫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무언가를 내뱉지도 말라는. 그래. 나는 훌륭한 군인이니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야한다. 그래서 나는 어떤 생각이 스치는 것을 애써 누르고 곧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즉, 이주동안 함께 지냈던 버키 반즈가 대체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은 일말조차도. 나는 그저 버키의 등을 향해 그가 해준 경례에 대한 답을 서둘러 했다. 이제와 경례를 해봤자, 그에게는 보이지도 않겠지만.
단지 그의 품안에 늘 있었던, 지금도 그곳에 있는 그 작은 사진 하나의 주인공이 누구인지가 조금 궁금할 따름이었다.
이정도는 설마, 궁금해 해도 되겠지.
설사 상대가 모히어로군인의 로빈이라고 해도 말이다.
- done
+ 사진 에피소드 또 있네. 매우 좋아합니다 이런 느낌. 사진은 당연히 스티브 로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