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스팁] 상냥한 밤의 잠 14. 12. 16
상냥한 밤의 잠
"안자?" 스티브는 자기의 머리아래쪽에서 들리는 토니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바로 고개를 돌렸다. 스티브의 왼팔 겨드랑이 아래쪽에 머리를 붙이고 양손으로 배를 꽈악 껴안고있는 토니는 여전히 눈을 감고있는 채였다. "아, 미안하네. 내가 깨웠나?" 스티브는 오른손에 들고있던 한쪽면을 접은 책을 침대옆으로 내려놓으며 그대로 자신쪽 침대모서리에 켜놓은 전등을 끄기위해 손을 뻗었다. "됐어. 안꺼도 돼." 눈을 뜨지도 않았으면서 스티브가 서둘러 불을 끄려고 하는 것을 눈치챘다는 듯이 토니가 스티브의 오른손보다도 더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스티브는 살짝 미안한 기운을 담은 눈동자로 토니의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둥그렇고 반듯한 그의 머리를.
민소매차림의 토니는 같이자자면서 스티브의 침실의 문을 다짜고짜 열어제꼈다. 그때에도 스티브는 자기 전의 독서에 빠져있었다. 현실보다도 더 현실감이 느껴지는 유럽산 스릴러소설은 범인이 궁금해지는 것보다는 글속에서 풍겨나오는 음침한 박력때문에 더욱 스티브로 하여금 뒷장을 펼쳐보게 만들고 있었다. 스티브는 갑작스레 자신의 흐름을 탄 독서시간을 사정없이 깨어부수고 나타난 토니에게 저도모르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 감정을 토니에게 드러내보이지는 않았다. 스티브는 그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난 아직 안잘건데 괜찮나?"라고 말하고는 오른손에 쥐고있던 책을 흔들어 보여주었다. 스티브는 페이지가 적은 쪽의 면을 페이지가 많은 쪽 뒤로 돌려접는 식으로 책을 쥐고 있었다. 토니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스티브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스티브의 침실의 이불을 들어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스티브는 익숙하게 침대의 한쪽으로 몸을 당겼다. 그리고 방전체의 불을 끄고 자신의 머리맡에 놓여있는 전등 하나만을 켰다. 작은 침대옆 전등의 불은 고요한 어둠속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잠잠한 불빛이었다. "베개는?" "괜찮아..." 침대의 맨시트 위에 그냥 머리를 올리고 토니는 몸을 옆으로 접어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두 팔을 들어 스티브의 배위를 한참을 더듬다가 곧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타인에게서 뿜어져나오는 뜨거운 체온이- 토니에게는 스티브의 체온이, 스티브에게는 토니의 체온이- 몸에 닿아 스르르 녹아왔다. 스티브는 자신의 몸에 밀착한 토니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다소 불편하게 왼쪽팔을 든 채로, 토니의 이불밖으로 드러난 어깨까지 이불을 당겨주었다. 그리고 다시, 숨죽인 한숨, 다시 빠져드는 유럽산 소설. 스티브는 간간이 페이지를 넘겼고 페이지가 넘어가는 비슷한 속도의 간간이로 눈을 깜빡였다.
스티브는 책을 내려놓음으로써 덕분에 비게 된 오른손을 뻗어 토니의 둥그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가 드러날만큼 짧게 자른 토니의 짙은 밤색 머리칼이 스티브의 손안에서 까슬거렸다. 머리에 아무 기교도 부리지 않은 침대속 토니의 아무렇게나 흐트러져있는 머리칼은 태초의 그것처럼 부드럽고 편해보였다. "좀 더 쓰다듬어줘." 토니의 밤이나 잠등에 잠겨있는 것 같은 꿈속의 목소리는 스티브에게 웃음을 자아냈다. "잠에서 더 깨버리는 것 아닌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스티브는 토니의 리퀘스트대로 아까보다 훨씬 손바닥에 힘을 빼고 천천히 토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결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스티브의 기다랗고 굵은 손가락 마디가 목덜미의 어딘가를 스칠때 토니의 입꼬리가 스르르 위를 향했다. "아냐. 더 잠이 오는 것 같아." "그런가." 조용히 대꾸하며 스티브는 엄지손가락으로 토니의 이마를 아프지않게 눌렀다. 엄지손가락과 함께 아주 짧은 토니의 앞머리를 위로 쓸어올리면서, 스티브는 토니의 이마에 평소에는 그 짧은 앞머리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부분에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냈다. 스티브는 머리카락에 섞여 잘보이지도 않은 아주 작은 점을 바라보며 슬그머니 웃었다. 이런데에 점이있다는 걸, 토니는 알고있을까? 어쩌면 모를지도 모르겠는걸.
"섹스하고 싶다..."
"......"
그리고 스티브는 토니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손을 우뚝하고 멈추었다. 손바닥에 닿은 토니의 머리가 따뜻한 열을 내고 있었다. 스티브는 거의 들릴듯말듯했던 토니의 마지막 말을 더듬으며 머릿속으로 '...으응?'을 연발하였다. 토니는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숨결조차 잦아들어져있고... 으응? 토니가 지금 대체 뭐라고 했지? 스티브는 연거푸 눈을 깜빡였다.
"아, 벌써 다읽으셨습니까?" 스티브가 자신에게 건네는 책을 받아들며 클린트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캡틴 진짜 읽는거 빠르네요! 역시 아날로그세대는 다른건가." 책 빌려준지 나흘도 안 된 거 같은데. 스티브에게 유럽산 스릴러소설을 빌려준 클린트는 스티브가 웃는 얼굴로 대신하는 고맙다는 인사에 반색하며 스티브가 앉아있는 자리 맞은편에 자기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재밌던가요?" "재밌던걸. 다 읽기전에 손에서 떼놓기가 힘들어서 그냥 다 읽어버렸네. 하하." 클린트가 원하는 답을 해주고 스티브는 갖고 온 따끈한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그것이 꼭 거짓말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책이 재밌기는 했으니까. 그렇지만 이 짧은시간에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다 읽은 것에 대한 이유는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지난밤 스티브 로저스는 거의 한숨도 자지못했다. 토니 스타크가 잠결에 한 마지막말이 머릿속을 자꾸 맴돌았기 때문이다. 스티브는 덕분에 완전히 수면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밤새워 책의 나머지를 다 읽는 수밖에는 없었고. "이거 다음편도 진짜 재미있어요. 원하시면 다음편도 빌려드릴게요." "나야 좋지." 클린트가 정말 즐거워보여서, 스티브는 어쩌면 클린트라는 남자는 자신이 추천한 것을 상대방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얼마나 착한 사람일까. 스티브는 즐거워보이는 클린트를 보는 것이 또한 즐거워서 클린트가 원하는만큼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여자주인공 완전 매력적이지 않아요? 어째서 이혼녀란 단어는 이렇게 매력적인 울림을 가졌는지." "좋아하는 초점이 좀 이상한 것 아닌가 자네." "미망인이란 단어가 가지고있는 로망은 20세기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캡."
그리고 신나서 말을 잇는 클린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젯밤 스티브를 기어코 잠들지 못하게 했던 토니의 잠결의 말이 또 생각나서 스티브는 무뚝뚝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잠결에 내뱉은 진심이라는 게 아닌가. 스티브는 피곤한 듯 눈아래가 꺼지고 볼이 깊게 패인 채 잠에 빠져있던 토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턱주변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메마른 손바닥의 기운이 턱을 스치며 까슬까슬한 소리를 내었다. "...무슨일 있어요, 캡?" 소설책의 다음권의 좋은점을 큰 제스츄어를 섞어가며 이야기하다가 문득, 클린트는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않고 있는 스티브를 바라보다가 그렇게 내뱉었다. 스티브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것이,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사람의 태도였다. 스티브는 퍼뜩 혼자만의 생각에서 깨어나 다시 클린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응? 아니, 별일없는데. 하하." 스티브는 어색한 웃음을 띄우며 손을 흔들었지만 얼버무리기에는 이미 늦은감이 있었다. 스티브의 이상기온을 감지하고 그를 걱정하기 시작해 얼굴표정이 굳어버린 클린트를 바라보면서, 스티브는 결국 왼쪽눈썹을 찌푸리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모르게 뒷목을 긁적이며 연거푸.
"저기... 그게. 지난밤에 토니가 좀 마음에 걸리는 말을 해서. 그냥 그게 계속 생각나서 말일세."
"? 빅가이가 또 캡틴을 괴롭혔습니까? 그래 이번에는 또 어떻게 괴롭힙디까?"
"또는 또 뭔가. 그런 말투 그만해주게. 나라고 만날 그사람한테 괴롭힘만 당하는 줄 아는가."
"(그럼 아닙니까...) ...말 안끊을테니 계속 말씀하십쇼."
스티브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바지깊숙이 밀어넣은 체크셔츠의 주름이 스티브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미세하게 변했다.
"아니 정말, 진심으로, 그는 아주 좋은 남자야. 클린트. ...내가 스타크의 신세를 지기 시작한지 벌써 3개월이 넘어가는군. 그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호화로운 맨션이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웠지만, 어느새 그 부드러운 침대의 푹신함을 즐기는 내가 있네. 역시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달까... 스타크, ...토니는 그동안 나에게 정말 잘해주었네. 내가 그에게 신세를 지고있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끔 언제나 우스갯소리로 내 기분을 풀어주고, 날 편하게 그의 집에 머물 수 있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었지...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난 정말 편안했고, 즐거웠네."
"하지만 이제 그만 그의 집에서 나와야 할 것 같아." 스티브는 클린트에게서 시선을 약간 돌려 창문바깥의 어느 부분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숨겨져있는 쉴드의 본부와 가까이에 있는 이 카페에서도, 아주 멀리나마, 스타크 타워가 보이고 있었다. 구름 하나 없는 밝은 하늘은 날씨는 차가웠으나 그 파란색이 거의 여름과 닮아 있었고, 그래서 더욱 타워의 꼭대기까지 선명했다. 클린트 또한 스티브가 어느새 쳐다보고있는 스타크타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역시 그남자가 뭔가 캡한테 한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말이 나오죠." "그가 나한테 뭔가 한 게 아니네. 단지, 음... 그 집에 있음으로해서 내가 그의 일정량정도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뿐이네." "자유? 무슨 자유요?"
"...섹스할 자유말이네."
"?! 네?!"
클린트는 그리고 깜짝놀라 기염을 토했다. 설마 스티브 로저스의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올줄이야. 그것도 이런 타이밍에. 클린트도 빛처럼 빠른 속도로 다시 고개를 돌려 스티브를 빤히 쳐다보았다. 클린트의 눈동자가 평소의 두배로 커졌다. 스티브는 어느새 한손을 들어 제 뺨을 감추듯 괴고 있었는데, 그 뺨에 새빨간 홍조가 미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어제 토니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자려는데 토니가 잠결에 그렇게 말하더군 섹, ...그게 하고싶다고. 내가 함께 살고있어서 그는 그가 원하는 여성을 집에 데려오지 못하는 걸세. 나는 내가 그에게 그런 불편을 끼치고 있다고는 생각도 못하고..."
"자, 자자자 잠깐. 잠깐만요 캡." 클린트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대체 지금 캡틴의 말을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이 잔다고요? 지금 그러니까 그 토니 스타크와 같은 침대를 쓴단 말입니까?"
"응? 아니... 매일같이 같이 자는 건 아니네만. 물론 방도 따로고. 단지 가끔씩 토니가 한밤중에 불쑥 내 방으로 찾아와 그대로 함께 자는 일이 종종있어서..."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토니 스타크가 스티브 로저스의 침대로 가끔씩 요바이라고? 클린트가 너무나 경악스런 표정을 짓고있는게 이상한지 스티브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긁적였다. "그래서 나는 토니가 혼자 자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네만. 워낙 그사람의 일이니까 다들 한번쯤 그와 같이 자는 일정도는 경험이 있을 줄 알았고... 혹시 자넨 몰랐나?" 그런 걸 알리가 있냐-?! 랄까, 알았어도 절대로 같이 자주기 싫거든!! 클린트는 차마 입밖으로 그렇게 내뱉지는 못하고 속으로나마 열심히 스티브의 말에 딴지를 걸었다. "왜 자넨 몰랐을까." ...아니거든요, 캡틴. 나만 모르는게 아니라 세상사람 대부분 모르는 사실일걸요. 랄까, 아무리 전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토니 스타크라지만 토니 스타크에게 그런면이 있다는 걸 아는사람은 스타크의 부모님 또는 당신뿐일거라고? 애초부터 정말로 토니 스타크에게 그런 병(?)이 존재하기는 하는겁니까요!! 아니, 그럴리가 없다. 토니 스타크가 그럴리가 없지. 클린트는 곧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스티브의 고민이 뭔지,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는지, 그런 걱정으로 스티브를 채근하여 억지로 이야기를 들었던거였지만, 막상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니 그의 고민은 클린트로써는 무슨말도 어떤일도 해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클린트?"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스티브의 약간 불안해보이는 표정. 그의 양볼이 여전히 약간 붉었다. 하아, 아아. 양미간을 찌푸린 채 그사이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클린트는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빅가이는 딱히 누군가 섹스하고 싶은 여성이 있는 건 아닐테니까 그점은 걱정하지 마세요 캡틴..."
"아? 아아..."
그래서 클린트가 스티브에게 말할 수 있는 거라곤 거의 그정도 뿐이었다. 모르긴몰라도, 스티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사람은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나의 침대에 들어갈 정도로 단순한 사람이지가 않다고. 당신은 전혀 모르고 있지만, 그러므로 그 사람은 '다른 누군가와'를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당신'이에요.
당신의 침대.
당신의 옆.
당신과의 잠.
당신과의 섹스.
하지만 난 절대 말해주지 않을테다. 절대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거라고. 클린트는 옆에서 토니 스타크는 그렇게 잠결에 종종 잠꼬대비슷한 말을 내뱉곤 하는데 그것들 대부분이 진심이라고 느낀 이유는 가장 처음 들었던 잠꼬대가 역시 치즈버거가 좋아... 였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스티브의 옆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다짐했다. 그렇게 다짐하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또 책?" 토니 스타크는 이번에는 자기의 베개를 들고 있었다. 두 손으로 거의 토니의 상체크기만한 푹신해보이는 베개를 들고 스티브의 방 한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토니를 바라보며 스티브는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다음권일세." 스티브는 쥐고있던 책을 손안에서 한 번 흔들어보이고는 다시 자신의 허벅지위에 책을 올렸다. 그리고는 한손으로 자신의 한쪽이 비어있는 침대의 이불을 손으로 들추고는 침대위의 비어있는 공간을 토니에게 보여주었다. 이곳으로 올라와도 된다는 긍정의 표시였다. 토니는 그렇게 침대위의 이불을 들춰주는 스티브를 보는 것이 좋았다. 방금까지 아무리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해도, 자신의 이불 한쪽 귀퉁이를 열어주는 스티브의 얼굴을 볼때에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친듯이 잠이 쏟아지곤 했다. 토니는 길게 하품을 하며 스티브의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희미한 어둠이 내려앉은 스티브의 방을 능숙하게 가로질러 스티브의 침대위에 자신의 베개를 올리고는 베개위를 손바닥으로 두어번 두드렸다. "그렇게 재밌어? 그 시리즈." "재미있네.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거라 그런지 술술 읽히는군." 틈이 날때마다 늘 책을 들고있으면서. 하긴 주로 전문서적을 읽고있던 당신이었지, 그러고보니. 토니는 베개위에 코를 대고 그대로 침대위에 엎드려 눕고는 두 손을 자신의 허리옆으로 차렷자세를 하고 푹신한 침대의 스프링속으로 몸을 깊게 뉘였다. 토니의 무방비한 등위로 스티브는 아무렇게나 펼쳐진 이불을 손수 끌어당겨 토니의 어깨위까지 덮게 해주었다. "보고싶으면 1편부터 다시 빌려오지." "...뭘 빌리고 난리야. 그깟 책 내가 사주고 말지. 아니, 차라리 서점 하나를 지어주랴?" "하하. 됐네." 그렇게 말하면서 토니는 고개를 모로 돌려 스티브를 바라보았다. 스티브는 무릎을 세워 그 위에 책을 올리고 또 한페이지를 천천히 넘기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볼때의 스티브 로저스는, 언제나 아름다웠다. 희미한 어둠속에서는 언제나 갈빛 머리칼만 조용히 반짝인다.
"...캡시클."
"응?"
"머리 좀 쓰다듬어 줘."
"......"
"저번처럼 말이야."
"...자네도 참." 눈을 돌려 토니를 내려다보면서, 스티브는 가느다랗게 웃었다. 토니는 스티브가 그 뒤의 말을 잇기를 기다렸지만 스티브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단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토니는 스티브를 재촉하지 않았다. 단지 스티브의 커다란 손바닥이 자기 이마위에 무겁지 않게 내려온 순간에 맞춰, 눈을 감았을 뿐.
눈을 감아도 스티브의 상냥한 손이 머리위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토니는 자신의 머리칼 속 깊은 어딘가를 헤집으며 움직이는 스티브의 두껍고 커다란 손바닥이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자기것으로 남아있게 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또 다시 생각했다. 매일밤, 몇번을 생각해도, 답이 없는 그 공허한 간절함.
스티브. 나의 것이 되어줘.
토니는 그렇게 입술속으로 중얼거렸다.
- done
어... 이거 언젠가 첫문단만 좀 써놨던건데, 써놓은 걸 완전히 잊고 있었어요 ㅋㅋㅋㅋㅋ 첫문단이 뭐냐면 그러니까 스티브와 토니가 같이 자는 첫밤의 장면까지. 오늘 네이버블로그의 임시저장글을 뒤적이다가 써놓은걸 발견하고 뒷이야기를 기억해내서 오늘 이렇게 완성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아이구야. 임시저장해두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수시로 뒤져봐야겠어요 임시저장글이 워낙 많아서 ㅋㅋㅋㅋㅋㅋ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세포는 네이버 블로그창에다가 글을 씁니다...=_=) 첫문단 한창 쓸 때 유럽산 스릴러 소설을 읽고 있었나봐요 ㅋ 최근들어 읽은 유럽산이면 아마 노이하우스일듯요... 아직 그녀작품 안읽은 게 더 많은데 ㅋ
글에 대해서는 그다지 할 말이 없네욘.. 음.. 어리광쟁이 토니 스타크와 눈새 스티브 로저스. 좋아하는 조합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