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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스팁] 스티브 엠프렉로맨스 썰

복숭아세포군 2014. 3. 20. 19:16

토니스팁 엠프렉썰 주의. 피터가 자식. 새드엔딩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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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달달주간이므로 토니스팁행쇼! 엠프렉로맨스
 
 멸팁과 토니는 같은대학이지만 토니는 세계의 손꼽히는 천재 멸팁은 국가유공자로 간신히 장학금을 받고다니는 고학생이었어 그래서 둘은 같은대학이지만 얽히는 일이 없었지 과도 다르고 멸팁은 워낙의 화제의 부자천재2세 토니를 모를순없었지만 토니쪽에서는 멸팁을 전혀몰랐지. 그렇게 교류없이 대학생활을 하다 졸업을 하게되었는데 토니가 대학 졸업식을 맨하탄의 제일 큰 클럽을 빌려서 크게 열어버린거였음 대학측도 허락하고해서 졸업장을 받으려면 클럽에 가야했지 멸팁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졸업장은 받아야 했기에 토니가 연 클럽으로 갔어. 물론 대규모파티가 한창이었고 멸팁은 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즐기는 모습들이 싫지는 않았어 그리고 사람들 한가운데에 있는 토니 스타크를 보면서 가볍게 웃었지 저친구는 이제 나와는 딴판으로 매일같이 신문에 오르락하는 사람이 될텐데. 저 친구와 동문이라는 자랑정도는 해도 되겠지. 멸팁은 생각했어.
 
 그리고 멸팁이 스테이지를 구경하는 도중에 토니한테 큰일이났어 사실 파티가 어지러워 토니가 방심한사이에 토니를 음험하는 몇몇이 그의 잔에 미약을 넣어버린거임 토니를 질투하는 한심한 무리였지 토니가 약에취해서 아무여자나 덮덮해서 스캔들을 일으켜버리길 바란거였어. 그를 눈치챘을 때에는 이미 토니가 약이든술을 마셔버리고 난뒤였어 토니의 숨어있던 보디가드들이 나서서 그음험한 무리를 쳐부수었지만 토니는 들이부운 미약의 기운에 점점 취해갔지 여자를 안지않으면 그기운은 결코빠지지 않을거였어. 토니는 서둘러 룸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보디가드들에게 이쁘고 가볍고 돈으로 해결될만큼 머리가 빈 여자를 아무나 달고오라고 했지 보디가드가 나가고 토니는 큰현기증을 느꼈어 불법미약은 아주 독해서 약기운이 아주 심하게돌았던거야 토니는 오래 참을수가 없었어 금방 끝날것 같지도 않았지
 
 그때 멸팁이 토니가 룸으로 들어가는걸 본거야. 부축받고 들어가는것이 안색도나 쁘고 하여간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지 토니취한건가..멸팁의 오지랖이 발동되었어 멸팁은 얼음을 띄운 냉수잔을 들고 룸으로 들어갔어 토니? 자네 괜찮나?
 
 물론 토니는 괜찮지 않았고 약때매 뵈는게 없었고 눈앞에 있는것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는 경지에 이르렀지 토니는 멸팁을 보자마자 눈이 뒤집힌 채로 멸팁을 소파로 끌어당겨 그대로 덮덮을 하였어. 멸팁이 들고온 냉수잔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지. 반항해 보았지만 팔뚝 힘이 약한 멸팁은 그대로 토니에게 안기는수 밖에 없었어. 보디가드는 여자를 데리고 오다가 룸안 상황을 눈치채고 여자를 보내고 룸밖을 지키고섰어 멸팁은 짐승이 된 토니를 내내 상대해야했고 토니는 약기운이 빠질때까지 멸팁에게 정자를 쏟아댔지.
 
 토니가 일을 다끝내고 기절하듯 잠들었을때쯤에는 멸팁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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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팁이 샤워하고 나오는데 토니의 보디가드들이 새옷을 주었고 옷이 엉망이 된 멸팁은 그것을 입었지. 억지로 당한 여파로 몸전신이 아프고 그것에 강간당한 모멸감과 분노로 멸팁의 표정과 정신은 엉망진창이 되어있었어 보디가드들이 토니도 강제로 약을먹어그렇다고 설명했지만 그따위것이 멸팁에게 무슨변명이 될수있었겠어. 보디가드들은 멸팁에게 엄청난 액수의 돈을 건네었고 멸팁은 경멸찬 얼굴로 그위에 침을 뱉었지 보디가드들은 돈을 거절하는 멸팁에게 이돈을 받지않으면 우리는 평생 당신을 쫓아다니며 귀찮게하는수 밖에 없다고했어.
 
 끔찍했지. 멸팁은 그가 건넨 봉투를 받아들었고 그제야 그들은 멸팁을 놓아주었어 멸팁은 두번다시 그들과 만나고싶지 않았지 멸팁은 집에가는 길에 봉투를 반대로 들고 걸어갔어 돈이 길위로 점점이 쏟아졌어 멸팁은 단한번도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었어.
 
 그리고 두달뒤에 멸팁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강간당한 육체적데미지와 정신적데미지를 간신히 극복한 찰나에 토니의 씨가 수정된걸 안거지 멸팁은 절망에빠졌어..그러나 멸팁은 올곧은 사람이야 한번 생긴 생명을 없애는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 자기의 기분이나 아이의 아버지의 존재가 어떻든 그런것은 아기본 인과는 아무 상관없는 문제였지 멸팁은 도시를 떠나 고향 브루클린으로 돌아갔어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서. 근데 돈 이없었지 가족도 없고 가난하기도하고. 처음으로 토니가 준 돈봉투가 아쉬워졌어. 그런 생각을 한 자기한테 절망했지만 아이한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그런생각을 한거라는게 자랑스러웠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 행복했지. 십개월후 멸팁은 아이를 낳았어 아버지를 닮은 숱많은 갈색고수머리의 아이. 눈동자 색도 그와 똑같았어. 조금 슬펐지.
 
 아이의 이름을 피터로 짓고, 생활고를 벗어나기위해 노력하는데, 멸팁은 그때 슈퍼솔저프로젝트를 군인친구 버키를 통해 알게돼 죽을수도있는 혈청의 실험체로써 도중에 죽는다면 딸린 가족을 평생 군에서 남부럽지않게 보살펴준다는 계획이었지. 멸팁은 망설이지않고 거기에 지원했고 버키는 그런 프로젝트를 알린것을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있었어. 버키에게 피터를 맡기고 멸팁은 혈청을 맞았어. 죽음같은 고통, 지옥같은 파괴의 느낌. 전신이 처음부터 다시 재구성돼는 느낌을 이를 악물고 버티며, 멸팁은 피터를 떠올렸어.피터 얼굴 너머에서 일렁이는 토니도.
 
 멸팁은 죽지않고 살아남아 혈청실험이 성공한 유일한 실험체가 되었어 스티브는 그전의 스티브라고는 알수도 없을만큼 훤칠하고 건장하고 강한 남자가 되었지 약간의 훈련을 통해 당장 전쟁에 투입되어도 지지않을만큼 뛰어난 슈퍼솔저로. 프로젝트는 대부분 실패로 끝나버리고 말았지만 유일한 성공실험체 스티브 로저스는 그대로 슈퍼솔저로써 군대에서 활약하게 돼. 그리고 미국에서 이름을 붙여주길 캡틴아메리카라고. 캡틴은 마스크를 씀으로써 자신의 원래이름을 감추고, 아이를 지키기위해 버키에게 부탁하여 피터는 입양을 한거라고 호적을 정리하였어.

 

 그리고 토니. 졸업식날의 그때로 돌아가서. 토니는 깨어보니 머리가 깨질거처럼 아파와서 굉장히 화가났어 그멍청한 새끼들을 전부 족치지않으면 화가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지. 징징 울리는 머리를 이끌고 샤워실로 바로 직행했어. 쏟아지는 샤워기물에 전신을 적시면서
토니는 아무것도 기억나지않은 지난밤을 떠올리려고 노력해보았어 누군가를 안은것 같은데, 그것도 꽤 난폭하게. 그런데 거의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않았어 단편단편적인 이미지만 남아있고. 그는 분명히 남자였고, 몸이 상당히 왜소했고, 그리고...  토니는 자기가 갈비뼈가 드러난 그 배위를 마구 긁으며 상처를 낸것을 기억하고 있었어 쯧,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토니는 혀를찼지. 파란눈, 연한금발. 두려움에 잠긴눈은 짐승을 보고있는 듯 하였어. 빌어먹을. 토니는 거칠게 샤워실을 나왔어. 보디가드들에게 뒷처리를 물었지 그의 프로필에 대해도 말하라고 하고. 보디가드들은 그는 두둑한 돈을 가지고 떠났다 더이상 만날일은 없을것이다 그래서 신변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어 토니는 그래 그거다행이네. 그렇게말했어. 그 뒤 약을 먹인 녀석들을 사회에서 매장시켜버렸고.
 
 그 뒤, 토니 스타크의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지기시작했어. 당한 일이 충격이었기 때문이었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으려고 술은 일체 마시지 않았어. 그러나 여자놀이는 여전했지. 남자도 안아댔어. 선대보다 더 규모를 키운 스타크기업이 세계랭킹 1위가 되자 토니 스타크라는 이름은 더욱 커졌고 매일같이 언론에 노출이되었고, 그의 생활은 점점 화려해져갔지. 그래도 여전히 술에는 절대 입을 대지 않았어. 그리고 또하나, 그는 결코 금발을 한 사람은 안지않았지.
 
 공개석상에서 자기자신이 아이언맨이라고 밝힌 그시점부터, 토니 스타크는 더욱 모두의 화제를 모으는 존재가 되었어

 

그리고 현재 각기 다른 접근방법으로, 쉴드에 명부가 올라간 두히어로. 둘의 접점이 쉴드라는 이름으로 생겨난 바로 이 시점에서, 둘은 재회를 하게돼. 스티브 입장에서의 일방적인 재회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토니는 그날밤의 일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않으니까 말이야.
 
 
 
 
 
<3>
 
 계속. TV를 보고있던 캡틴은 충격을 받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뉴스화면은 자기가 아이언맨이라고 말하고 있는 토니 스타크를 줌으로 비추고 있었어. 스티브는 현기증을 느끼며 허탈하게 소파에 주저앉아 버렸지. 설마 그가 아이언맨이었다니. 그와는 두번 다시 얽히고 싶지 않은 스티브였어. 십수년이 흐른 지금에도 당연히 그때의 일은 심장아래에 멍울져서 그대로 돌덩이로 굳은채 맺혀있었지. 스티브는 쉴드에서 무기사업을 벌이는 스타크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평정을 가장하곤 했지만 사실은 집으로 돌아와 피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만큼 혼란을 느끼곤 했었어. 캡틴은 눈에 띄지않게 조심스럽게 어떻게든 캡틴 아메리카로써 토니 스타크와 엮이지 않을 수 있게 슬쩍 발을 빼고는 했었어 능숙하게 행동했기에 그가 사실은 토니를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은 용케 알려지지 않고 있었지. 그런데 알고보니 그 토니 스타크가 사실은 아이언맨이었다니. 아이언맨과는 이미 몇번이고 몇번이고 함께였는데.
 
 스티브는 캡틴 아메리카의 마스크를 쓴 채로 아이언맨을 만났었던 때를 떠올렸어. 아이언맨 또한 한 번도 가면을 벗은 적이 없었고 캡틴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둘은 서로의 본모습을 알지 못했었지만, 몇 번 대규모의 빌런을 소탕할 때 힘을 합쳤었던 적이 있었지. 물론 대화도 많이 나눴어, 히어로의 모습인 채였지만. 캡틴 아메리카는 쉴드에 소속된 히어로이고 아이언맨은 쉴드와는 비교적 관계가 소원하였지만 쉴드가 하는 빌런소탕작전에 힘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면 비교적 순순히 나타나 그 말을 들어주곤 했었어. 캡틴은 아이언맨이 100%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은점을 찾지도 못했지. 아이언맨과는 제법 말이 통했던 거야. 그리고 내심 아이언맨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 혹은 그렇게 되면 좋겠구나, 뭐 그런식으로까지 생각 했었어. 그리고 쉴드가 캡틴 아메리카에게 '프로젝트 어벤저스'에 관해 이야기하고 어벤저스팀을 만들 생각인데 캡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아이언맨 또한 스카웃하려고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을때 스티브는 솔직히 그 계획이 마음에 들었었던거야. 아이언맨은 사실 나쁘지 않은 친구였기 때문에.

 그런데, 그가 사실은 토니 스타크였다니.

 이건 받아들이지 못하겠어. 혼란스러워하며 스티브는 눈을 감았지. 머릿속에서 아이언맨과 토니 스타크가 이콜이 되지 않고 빙글빙글 돌았어. 스티브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지난달에 만났던 아이언맨의 모습을 떠올렸지. 하, 토니가 그렇게 작았던가. 얼굴이 스티브의 어깨정도까지밖에 안왔고, 아머에 둘러쌓여 있지만 체격을 떠올렸을 때 어깨둘레도 아머를 벗고난 후의 악력도 지금의 스티브 로저스에겐 비교도 안될 것인데. 스티브는 자신이 멸팁일 때 토니가 양손목을 한손으로 꽈악 움켜쥐어 옴싹달싹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걸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어. 그때 느꼈던 모멸감도.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어. 배위에는 토니 스타크가 죽죽 그어놓은 손톱자국이 여전히 남아있었어. 놀랍게도, 그 상처가 사라지지를 않았던 거야.

 안돼. 토니 스타크와는 가까워 질 수 없어. 결코 그럴 수 없어. 피터를 위해서. ...그리고 역시, 나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이언맨이 토니인 걸 안이상 스티브는 아이언맨 또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어. 그래, 역시 무리야. 스티브는 그렇게 생각했어.

 

 

 

 

<4>

 

 피터 로저스는 사실은 자신의 친모가 스티브 로저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또한 그가 캡틴 아메리카라는 것도 물론. 스티브는 피터가 어려운 말도 이해 가능한 나이가 되자마자 이미 그에게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았던 거야. 단 한가지 친부가 누구이다 라는 이야기만 빼고. 그래서 피터는 스티브가 멸팁일때의 사진을 보면서 그때 그가 당한 일, 그가 피터와의 생활을 위해 죽음과 비슷한 경험을 선택한 일, 스티브가 애를 낳았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 경우의 피터의 생활의 위험과 이름은 모르지만 친부의 혹시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간섭등을 회피하기 위하여 일부러 양자로 들인 거라고 친권을 조작하였다는 것을 전부 다 알고 있었지. 스티브는 담담한 목소리로 천천히 그 긴 이야기들을 하였고 피터도 자신의 아버지, 아니 어머니의 담담한 태도에 전혀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표정변화가 없는 스티브의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떨어질때에는 오히려 그의 어깨를 꼬옥 껴안아줄수도 있었지. 둘은 서로를 가득 껴안으며 보듬었어. 마치 세상에 둘이 떨어져나온 사람들처럼.

 스티브는 피터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 그렇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어. 그리고 나는 솔직히 그에게 느끼는 감정이 경멸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네가 친부에게 느끼는 감정이 그러기는 결코 바라지 않는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했어. 손을 꼬옥 붙잡고 이야기하는데 진심이 느껴졌어. 내 마음이 너의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잣대가 되지 않길 바라. 넌 나의 자식이지 나의 클론인 게 아니니까. 스티브는 참 올곧았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피터는 본 적이 없었어. 이런 사람이 자신의 엄마인 것이 누구보다도 자신을 행운아로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피터는 생각했어. 피터는 스티브의 뺨에 키스했어. 잘 알았어, 엄마. 엄마 말 다 알아들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나 잘할게. 진짜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될게. 엄마한테 착한 자식이라고 이쁨받을 수 있게. 스티브는 웃으면서 피터의 머리를 쓸어넘겼어. 넌 이미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들이야. 피터는 다시 스티브의 목을 껴안았어. 피터는 오늘이 지나면 그를 두번다시 엄마라고 부를 수 없을 거란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아빠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어. 그래서 피터는 그날이후로 스티브를 '캡틴'이라고 불렀어. 장난으로라도 엄마라고, 농담으로라도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지. 스티브는 캡틴이란 호칭에 만족해야 했어.

 그리고 피터는 정확하게 판단했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야말로 아주 정확하게 판단해서, 아버지란 존재를 미워하기로. 스티브의 감정에 휩쓸린 것도 결코 아니었고, 정말로 정확하게 자기자신이 판단하여 아버지를 싫어하기로 한거야. 십대도 거의 중반에 다달할때까지도, 여전히 피터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스티브 로저스, 어머니였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은 만날 수 없었고 그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생기지도 않았어. 자기에게 제일 소중한 사람을 제일 함부로 대한 사람인데,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어. 그래서 피터는 아버지라 호칭조차 질색할 정도로, 아버지를 싫어하는 마음을 한구석에 품게된거야. 평생에 걸쳐 그에대해 몰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런 피터 로저스는, 사실 십대클래스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천재였어. 어릴때부터 캡틴을 따라 쉴드요원과 놀면서 자연스럽게 트레이닝이 몸에 배였고, 거미에게 물려 스파이더인간이 된후로는 쉴드에서 관리하는 영히어로가 되었지. 그들은 말하자면 예비 어벤저스군이었는데 좀 더 트레이닝을 하고 나이가 들면 (십대가 일하는 건 불법이잖아ㅎ) 정식 히어로의 칭호를 받을 자들이었어. 그들중에서 스파이더맨 피터는 당연히 실력이 월등하였고 그는 캡틴 아메리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빌런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되기도 할정도였지. 물론 천재라는 의미는 지능을 의미하기도 했어. 그는 이과계천재였지. 사실은 스물이 되기도전에 대학입학시험을 패스할정도로 실력이 있었어. 하지만 스티브가 굳이 그렇게 빠르게 살필요가 없다고 말리면서-고등학교 3년을 다닌 추억도 없으면 삶이 슬프지않겠냐고 하였지. 캡은 참 감성적이야. 피터는 그렇게 말했어-아직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거였어. 밤에는 스파이더맨의 가면을 쓴 채 건물사이사이를 날아다니고 낮에는 평범하고 단지 머리가 좋을뿐인 고등학생인 척을 하고 있는 거였지.

 그런 피터는 어느날,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견학으로 스타크 기업에 가게 되었어. 캡틴은 바쁜지 며칠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워낙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였어서 피터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견학을 간다는 쪽지만 하나 남겨둔 상태였어. 캡틴에게 스타크기업을 둘러보러간다고 말을 하지 못한 상태였던 거야. 그리고 피터는 학생들과 인솔교사와 함께 우루루루 스타크 기업으로 몰러가게 된거지. 스타크기업은 아주 놀라운 최첨단 기술로 둘러싸여 있었고, 피터는 그것들이 아주 재미있고 즐거웠어. 어쨌거나 그도 이과계통 천재로 공돌이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고 토니 스타크가 이루어낸 업적들은 그런 그가 보기에도 정말로 어메이징하였던 거야.

 그리고, 피터 로저스는 로비에서
 직접 나온 토니 스타크를 처음 보게 되었어.
 그의 실물을. 

 

 

 피터주변이 장난아니게 웅성웅성거렸어 당연하지, 그들은 소문의 아이언맨-토니 스타크-의 실물을 보고있는거니까! 피터도 또한 토니 스타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어 가슴까지 뛰었지,하지만 그건 막연한 동경에서 오는 두근거림이었어 그리고 자기도 사실은 스파이더맨인데, 토니는 모르겠지 힛 ㅍVㅍ 하는 십대특유의 감각이 뒤섞여 있었지. 그리고 피터와 토니가 눈이 마주쳤어. 토니는 웃으면서 피터에게 손을 흔들었지.

 사실 토니는 피터를 알고 있었어. 그가 스티브 로저스의 양자-이자 스파이더맨-라는것을.

 토니 스타크는 기분이 좋지 못한 상태였어. 자기가 아이언맨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난 후 -그와 동시에 무기산업을 접었지. 스타크기업은 주식이 크게 휘청였지만 사실은 아이언맨이라는 메리트가 세계에 통했는지 그뒤 주식은 최고점을 찍었어- 주변이 소란해진 것도 마음에 들지않았지만, 가장 토니의 심기를 불편케 만든 것은 캡틴 아메리카의 언행이었어. 아이언맨의 정체를 밝히고 난 후 쉴드는 당연히 토니 스타크에게 접근했어, 토니로써는 자주 협조하던 쉴드의 접근이 싫지 않았지. 아이언맨은 오히려 쉴드를 이용해서 자신의 기술을 몰래 훔쳐가 빼낸 다른 기업의 정보를 받아 그들을 정리할 내심의 계획도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프로젝트 어벤저스'를 처음 들었을 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거야. 딱 자기가 바라는 방향이 바로 그것이기도 하였고.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맨=정의'라는 수식어를 내심 사랑했어. 자기가 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리고 토니는, 사실은 캡틴 아메리카라는 영웅에게 자신의 진정한 영웅상을 보고 있었어, 나쁜사람인 자기자신이 가슴에 조용히 품고 있던 완벽한 정의의 존재. 그 누구보다 =정의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그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를 좋아했어. 존경했고, 사랑했어. 토니는 캡틴과 친해지고 싶었어. 작전 도중 가볍게 나누는 담소도 좋았고, 그와 의견충돌로 인해 가볍게 싸울때에도 사실은 캡틴과 더 친해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 그리고 사실은 캡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심 생각했었어. 그만큼 거리가 가까워지는 천천한 느낌과 부드러운 거리감이 아주 좋았던 거야.

 그렇게 사이좋은 두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며칠전 토니는 닉 퓨리에게서 캡틴 아메리카는 '프로젝트 어벤저스'를 찬성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야. 닉 퓨리는 캡틴이 왜 어벤저스에 가입하는 것을 꺼려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슬쩍 자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고 말을 흘렸어. 토니는 자신이 캡틴에게 거절당한 것 같아 기분이 확 상하고 말았어. 아주 자존심이 상했지. 그런데 자존심이 상한 것은 일차적인 문제고, 사실은 캡틴에게 거절당한 상처가 깊은 슬픔을 남겼어. 토니는 풀이 죽었지. 그런 토니에게 닉 퓨리는 캡틴이 가장 숨기고 싶었던 절실한 것을 토니 스타크의 귀에 흘리고 말아. 바로 피터 로저스의 존재였어.

 캡틴 아메리카에게는 양자가 있고, 그는 유일한 가족이라 끔찍히 아끼는데, 그게 바로 피터 로저스이고, 피터 로저스는 스파이더맨이다라는 걸 토니에게 말해버리고 만거야.

 토니는 그길로 피터가 다니는 학교를 수소문해 그 학교의 견학일정을 조정하여 자기 기업에 견학오게끔 만들었고, 피터 로저스가 견학에 참가하겠다고 공문에 동그라미를 친 것을 보았을 때 아주 기뻐하였어. 피터 로저스는 토니 스타크와 성향이 닮아 있었어. 둘다 닮은꼴 공돌이였지. 토니는 피터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겠다고 생각했어, 그와 아주 많이 친해져서. 그러면 캡틴 아메리카도 자기 아들과 친해진 사람을 내칠 수는 없겠지. 가능하다면 스파이더맨 부터 어벤저스에 끌어들여 그뒤 캡틴도 같이 어벤저스에 가입하게끔 만들어야지. 토니는 상황을 바꿀 계획이 서자 다시 기분이 좋아졌어.

 그리고 생각했지.

 캡틴과 나란히 서고 싶다고. 가능하면 항상. 아이언맨으로써든, 토니 스타크로써든.

(캡틴 아메리카가 어벤저스에 소속돼는편이 닉 퓨리한테도 이득이니까 일부러 이용하라고 닉이 토니에게 피터에 관한이야기를 흘린거임 캡틴마음은 당연히모르고)

 

 

 

 

<5>

 

 피터는 첫눈에 토니 스타크에게 호감을 가졌어. 게다가 그가 견학단을 직접 인솔하며 보여주는 화려한 언변과 뛰어난 두뇌지식에 완전히 매료되었지. 피터는 토니의 말에 귀기울이면서도 이해가 가지않는 것에 대해 묻고 그에 더해 토니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세계관을 더욱 넓히기까지 하였어. 토니는 그런 피터의 똘똘함이 마음에 들었어. 이야기하면 할수록 피터의 영특함에 마음이 쏠렸지. 토니는 솔직히 영어벤저들에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스파이더맨에게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사실 피터에게 접근하고 있었던 건 오로지 캡틴 아메리카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였기때문에 피터자체에는 별 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자기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지. 피터 로저스. 아주 매력있는 아이로구나. 원래 십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신선한 기분이야. 토니는 피터와 대화하는 것이 아주 즐거웠어.

 그리고 견학이 끝날때 개인적으로 더 이야기가 하고싶다고 하며 스타크타워 상층부로 함께 가자고 권유했지. 피터가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 견학단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토니의 안내를 받으며 피터는 그와 함께 스타크타워의 가장 꼭대기-토니 스타크의 퍼스널 랩-에 도착했어. 피터는 토니의 놀이방에 가득 펼쳐져 있는 수많은 미래의 도구들에 넋을 놓았어. 세상에. 피터는 끝없이 질문이 나왔고 토니는 피터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것이 아주 즐거웠어. 둘은 서로에게 질리지도 않았지. 둘은 그렇게 몇시간이고 계속 함께 이야기를 나눴어. 시간은 금방 흘렀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피터는 창밖으로 석양이 저물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어. 헉 안 돼! 피터는 아쉽지만 이만 돌아가봐야할 것 같다고 토니에게 말하며 책가방을 집어들었어. 미리 말도 하지 않고 예정에도 없는 늦은 귀가는 가족회의감이라고 말했어. 토니는 피식하고 웃었어. 그 캡틴과 가족회의라니. 왠지 좋은 울림인데. 토니는 피터의 어깨를 두드렸어. 그리고 가지말라고 붙잡았지.

 한창 재밌는데 중간에 끊을 수는 없잖아, 피터. 난 아직 해줄말이 한 말 보다 훨씬 많이 남았다구. 그리고 너라면 어차피 건물사이를 날아가 금방 집에 도착할 수 있잖아. 그래, 내가 엄청나게 맛있는 레스토랑을 알거든 오늘 거기서 같이 저녁 먹는 거 어때?

 뭐라구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토니?

 아, 이런. 나도모르게 말해버렸네. 뭐 오래 속일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 차라리 잘된건지도. 피터. 사실 닉 퓨리국장에게 말을 들어서, 난 자네가 스파이더맨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 캡틴 아메리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고있고.

 맙소사.

 기왕 말을 내뱉은 거 괜한 오해사지않게 아예 다 말해버리겠는데, 사실은 피터 너에게 처음 접근한 것도 캡틴과의 연결고리가 필요해서야. 지금 캡틴과 나사이에 약간의 의견충돌이 나있는 상태인데, 나로써는 그 부분을 빨리 정리하고 싶었거든. 약간의 치사한 방법을 써서라도 말이야.

 지금 토니씨가 말씀하는 그 치사한 방법이라는게, 캡틴의 아들인 나와 친해지는 거였단 말이죠?

 솔직히 말하면 그래. 자네가 날 자네 주말파자마파티에라도 초대해주면 좋겠다 싶었지. 내가 너를 우리집 칵테일파티로 초대해도 좋고.

 하아.

 뭐, 시작은 그랬는데. 지금도 이 마음 그대로인 것은 아니야. 내가 이렇게 너에게 다 말하는 것을 이미 이 치사한 방법을 반성하고 완전히 소거시켜버렸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여주길 바래. 피터. 캡틴과 상관없이, 자넨 자네대로 아주 유쾌하고 귀여운 아이야.

 ......

 정말로. 하루동안 이야기한 걸로 뭘 그렇게 애틋하게 생각할수 있겠냐 싶겠지만, 정말 진심이거든? 너와 친구가 되고싶어.

 ......
 
 약간 미운 감정이 일어나긴 했었는데, 그것도 그저 순간이었다. 눈썹을 여덟팔자로 하고 약간 필사적으로 말하는 토니의 얼굴을 보니 가볍게 일어나는 반항의 기분도 스르르 녹아버리고, 피터는 그저 풋소리를 내며 가볍게 웃고 말았어.

 아 안 되겠다. 역시 어른은 못믿겠어. 그렇게 다 말해주는 것도 일부러이거나 해서 사실은 플랜 B를 이미 시작했다거나 뭐 그런 거 아니에요? 특급 히어로주제에 마음이 시커매가지고 정말 영 별로예요, 아이언맨!

 그리고 깔깔대는 피터의 얼굴을 보니 토니는 희미한 안심감이 들었어. 어린애의 웃는 얼굴은 좋구나. 토니도 피터와 마주보며 크게 웃었지. 아, 사실은 그래 맞아. 역시 똑똑한데, 피터. 어른의 말은 절대 뒤가 있으니 100% 믿으면 안 되는 거야. 아 상처받았어요. 엄청 상처받았어요. 그래? 그럼 스테이크로 치료해볼까? 그거 굿 아이디어네요. 스테이크로 치료하면 후유증도 남지않을거예요. 좋군. 차로가지. 내가 운전할테니.

 그리고 그날, 날이 완전히 저물어도 토니와 피터는 한참을 함께 있었어. 즐거운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갔지.

 

 

 

 

 

 밤에 집에 돌아와 스티브는 테이블 위의 피터가 남겨놓은 스타크타워로 견학을 간다는 쪽지를 보고 꼭 바닥이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 스티브는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그대로 의자에 앉았지. 밤늦도록 피터는 돌아오지 않았고 스티브는 그동안 온갖 경우의 수를 떠올렸어. 물론 토니가 피터가 사실은 누구의 아들인지 알게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 것이었어, 거의 없는 것과 같았지.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스티브 로저스 자기 자신과 친구 버키 반즈밖에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버키 반즈는 죽어서 이세상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자기자신뿐이지. 토니와 피터는 닮은 부분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한눈에 피가 섞였음을 알만큼 닮은 것도 아니었어. 사람과 사람사이의 흔한 공통점이 몇군데 있을뿐이니까. 그래, 그러니까, 두사람이 만나도 사실을 들킬일은 없는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하지만 역시 두사람이 만나는 일은 없길 바랐는데. 스티브는 지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어.

 피터는 아주, 아주 늦게 귀가했어.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창문을 통해 들어왔지. 불이 켜있지않아서 피터는 캡틴이 아직 오지않았다고 생각하고 내심 한숨을 내쉬었는데, 불을 켜자 부엌의 식탁테이블에 앉아 자기가 남기고 간 쪽지를 바라보고 있는 캡틴은 발견하고 심장이 떨어져내리는 것처럼 놀래었어. 캐, 캡틴!! 기겁하여 내지른 피터의 목소리끝이 상당히 갈라졌어. 스티브는 웃으며 피터에게 손을 흔들었어. 어서와라. 늦었구나. 피터는 당황하며 스파이더맨의 마스크를 벗었어. 아니, 진짜 이렇게 늦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기다렸어요? 걱정했어요? 전화라도 한 통 할 걸 그랬어, 아님 문자라도. 아니 근데 캡, 왜 불도 안켜고 있었어요? 아 이거참. 스티브는 당황하며 안절부절하는 피터의 얼굴이 재미있어서 쿡쿡하고 웃었어. 괜찮아, 화안났어. 그러니까 손씻고 여기 잠깐만 앉아봐 피터. 화나지 않았다는 말에 눈에 띠게 안심하며 피터는 대충 손을 씻고 가방을 소파위에 던졌어. 그리고 스티브가 앉아있는 의자의 맞은편 의자에 가만히 앉았어.

 오늘 토니 스타크를 만났나?

피터는 스티브의 질문에 흥분하여 마구 소리를 높이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했어. 스타크타워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이 보여준 퍼스널 랩에 얼마나 재미있는 게 많이있었는지. 토니씨랑 얼마나 많은 대화를 했으며 또 얼마나 대화가 잘 통했는지. "캡은 스마트폰 원리작용에 대해서 설명하려들면 잠들어버리잖아요." 스티브는 웃는 얼굴 그대로 피터의 말을 듣고 있었어. 피터의 눈이 초롱초롱하였고, 뺨에는 불그스름한 홍조가 띄워져 있었어. 스티브는 마음속으로 계속 생각했어. 잘 웃고 있어야한다고. 웃는 얼굴을 잘 만들어둬야한다고. 심장이 긴장에 요란하게 뛰고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들켜선 안 된다고.

 ...그렇게 좋았어? 그와 이야기하는 것이.

 응! 또 만날거예요. 정말로 많은 걸 배웠다니까요, 히어로로써도, 히어로가 아닌 부분에도.

 벌써 다시 만날 약속을 잡았어?

그래요. 토니씨가 내일도 같이 저녁먹자고 시간비워두라고 해서요. 요새는 빌런들이 그다지 날뛰지도 않고 해서 둘이 만나는 게 별로 어렵지 않잖아요. 음. 오늘 연락도 없이 늦게 온 건 사과할게요, 캡. 그리고 스타크타워에 간다는 말도 먼저 못한거 그것도 사과할게요.

 ...그런 것은 괜찮아. 신경쓰지 않아도 돼.

 응.

 그리고 피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티브의 목을 끌어안았다. 재회의 포옹. 그리고 오늘도 무사히 돌아와서 고맙다는 말대신의 뺨의 키스. 스티브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토니씨 솔직한 게 참 좋았어요. 사실은 캡틴이랑 이야기가 하고싶어서 일부러 나에게 접근했다고 대놓고 말하지 뭐해요. 뭐, 대놓고 말해주어서 오히려 기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토니가 너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사이에 의견충돌이 났다면서요?

 ...그가 네가 스파이더맨이라는 걸 알고있었군?

 네. 아마 닉 국장님이 알려주었던지싶은데.

 ...그래. 그렇구나.

 그리고 스티브는 입을 다물었어. 대체 아이언맨에게 뭐라고 했기에 아이언맨이 나를 통한다는 치사한 방법을 이용해서 캡틴과의 사이를 부드럽게 만들고 싶어하는거래요? 피터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지. 단지 스티브는 토니 스타크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어. 그 남자의 웃음끼 있는 얼굴을.
 

 

 

 

 

 

<6>

 

 스티브는 자기가 피터에게 했던말을 자기자신에게 그대로 돌려주었어 본인의 감정에 피터의 생각이 좌우돼지 않아야 된다는 그 말. 자기가 토니와 얽히고 싶어 하지 않다고 해서 피터에게 그를 만나지 말라고 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 사람은 결코 돼고 싶지 않았어,스티브는. 그래서 토니와 피터가 자주 만나는것을 묵인하였지 하지만 그뒤 피터가 토니에 관해서 무슨얘기를 하려고 하면 그다지 들어주지 않았고 피터가 셋이서 같이 밥한끼 하자고 말하는것을 언제나 거절하였어. 

 ..캡, 어벤저스프로젝트때문에 아이언맨과 사이가 틀어진거예요? 그랑 만나기싫어질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어요?
 
 캡틴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사람이고, 토니는 최근에 만난 가장 맘에 드는 어른이었어 피터는 두사람이 사이가 나빠보이는게 싫었지 더군다나 스티브쪽에서 일방적으로 거절하는 것 같은느낌이 피터를 더욱 불편하게 했어. 토니와 만날때마다 캡틴이 화제에 올랐고 토니는 캡을 정말로 좋아한다고 피터에게 이야기하기까지 하였거든, 왜 너에게는 이런저런 말을 다하게될까 하면서 말야. 저녁 같이 하자고 말할때마다 거절당했다고 하면 토니는 감추지 못할정도로 흘러넘치는 실망을 담아 한숨을 내쉬곤했어..그모습을 정말이지 보기 싫었던거야 피터는. 스티브는 피터의 슬퍼보이는 얼굴에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망설였지만 곧 한숨을 쉬고 아들의 머리를 손으로 마구헤집었어. 네가 신경쓸일이 아니다. 아이언맨도 널 신경쓰이게할 생각은 아닐거야. 당신답지않게 토니한테는 상냥하지 않은거 같아 그러잖아요. 스티브는 웃었어. 난 원래가 별로 상냥하지 못한 남자이다만.

 그리고 피터말대로 어쩌면 더욱 그에게는 상냥치 못한건지도. 스티브는 아이언맨과의 친분의 감정을 그대로 갖고있는 만큼 그안의사람이 토니스타크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어 아이언맨은 좋은 남자였어, 정말로 좋은남자였어. 그러나 그는 토니스타크인거야... 캡틴은 토니스타크를 용서할수는 없었어 그와는 좋은사이는커녕 알고지내고 싶지도 않았지, 아이언맨은 좋은남자였지만ㅡ 토니와의 연을 끊어야한다면, 아이언맨과의 연이 끊겨도 상관없었어.

 스티브의 마음속에는 아직 멸팁이 남아있었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존재가 공기와 같고 두뼘이상 작고 여자만큼 왜소한 체격의 멸팁이. 이런몸이니 어쩔수 없다고 체념한 기분속에 숨겨두었던 동경과 질투와 부러움 같은것들이. 그리고 스티브는 그어느때보다 자기안의 멸팁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어. 그야말로 캡틴아메리카가 어딘가로 날아가버릴 것처럼 강하게. 이상태에서 토니스타크를 만나면 캡틴아메리카는 완전히 무너지고말겠지. 그것도 피터앞에서.  캡틴은 그것이 가장 두려웠어.

 멸팁이 영원히 사라지기를 사실은 그누구보다 바라건만.
 강간당한 그날의 기억과 함께.
 그날의 냄새도 그날의 고통도 그날의 무게와 차가움도
 그날의 토니스타크, 그 일그러진 얼굴도.

 하지만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어. 어떻게해야 잊을수있는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그날의 기억을 지울수있는지 모르겠다고. 스티브는 그렇게 쳇바퀴를 돌고있었지,. 



 그리고 일이터졌어 쉴드의 항공모함에서 드디어 셋이 한자리에 모인거지. 피터가 캡틴을 꾀어낸거였어 쉴드를 스카웃해서. 자기가 둘이만날 자리를 만들건데 그러려면 도와줘야한다고 닉퓨리에게 말했지. 둘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어벤저스프로젝트에 진도가 있어야해서 닉퓨리는 피터의 말을 흔쾌히 받아들였어. 피터는 캡틴에게 항공모함에서 시뮬레이션 트레이닝중인데 도와달라고 애교를 떨었지 백그라운드의 닉퓨리와 모함의 모습에 캡틴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않고 항공모함에 올라탄거야.

 그리고 캡틴과 피터, 닉퓨리가 있는 트레이닝실에
 토니가 나타났지.
 아이언맨수트차림으로 문을열고 들어온거야.

 순간 캡틴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어 머리속에서 무언가가 터져서 새하얗게 변했지. 하지만 자기가 지금 느끼는 혼란을 그곳에 있는 그누구에게도 들킬수는 없었어. 스티브는 입술을 꽉 깨물며 혼란스러워하는 눈을 간신히 거두고 평정을 가장하며 피터를 흘겨보았어. 피터는 코앞에 두손을대고 스티브에게 싹싹비는 시늉을 하고 있었어 속여서 미안해요. 캡. 하지만 아이언맨의 말도 들어봐줘요. 거절은 그뒤에 해도 늦지 않잖아요. 스티브는 한숨을 내쉬었어.

 아주약간의 거리를 남겨놓고, 아이언맨이 먼저 아이언맨 헤드를 벗었어. 머리가 아주 조금 헝클어졌을뿐인 토니스타크가 약간 불안해 보이는 갈색눈동자를 깜빡이며 웃고있었어. 결국 그의 아들을 이용해서 그를 끌어내는것을 성공하기는 했는데, 설마 이일때문에 완전히 나를 미워하게 돼는것은 아니겠지..토니는 머리를 긁적였어.

 여.캡.

 ......

 얼굴보기 참 힘드네. 그동안 잘지냈어?

 물론 난 너의 얼굴을 본적이 없지만. 너의 얼굴을 모르는건 이중에서 오직 나뿐이지. 토니는 아이언맨수트를 파츠별로 전부 벗어버리고 토니스타크로 돌아왔어.

 피터가 날위해서 거짓말을 해줬어. 그를 혼내지 말아줘. 내탓이니까.

 하지만 그가 강요한건 하나도 없어요 캡. 백프로 내마음이 가는대로 한거니까. 나 혼내도돼요.

 고맙다 피터. 지금부터는 둘이서 이야기할게 그렇게해주겠지 응?

 ..그럴게요.

 물론 닉 퓨리, 당신도.

 닉은 어깨를 으쓱하며 룸을 나섰고 피터도 천천히 뒤를따랐어. 

 룸안에는 둘만 남았지.
 여전히 미묘하게 거리를 두고있는 캡틴에게 섣불리 다가가지도 못하고있는 채로, 토니는 그를 바라보았어.

 캡.솔직히 나는 나자신에게 실망이야. ..나는 자네가 나를 그래도 동료라고 생각해주고있다 싶었거든.

 ....

 그게아니라는걸 알고나서 겨우 이정도밖에 못되는 나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말야.

  ......

 ...자네에게 동료라고 인정받고 싶었던거같아. 난. 그리고 그마음은 물론 지금도 변함이없고.

 네가 끝까지 프로젝트어벤저스를 찬성하지않는다면 결국 나는 너를 뺀 어벤저스를 창설하자고 닉퓨리에게 말하게될거야. 싫은걸 억지로시키지는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너에게 인정받을수 있을 만한 노력을 안하겠다는 그런 뜻도 결코아니야. 알겠어, 캡? 나는 계속 노력할 생각이야. 자네가 나에게 자네 본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고 생각할때까지.

 그정도는 괜찮겠지,응?

 ......

 캡틴?

 스티브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씹었어.
 피할수있는 길이 없다는것을 인정하는것이, 가장 힘들었어.
 길게 한숨을 내쉬는것과 동시에,
 스티브 로저스는 토니스타크의 앞에서 캡틴아메리카의 가면을 벗었어.
 스티브의 금발이 출렁였어.

 제발, 저 천재의 머릿속에 나란남자가 전혀 남아있지 않기를.

 스티브는 하늘에 빌어야만 했어.
 

 

 

 물론 토니는 스티브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어 애초에 '스티브 로저스'라는 대학동문이 있는 것도 기억에 없고(그에게 대학동문이란 토니주변의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는 귀찮은 파리떼들일 뿐이었기때문에 대학에는 아무신경을 안쓴다) 더더군다나 그날 클럽에 있었던 일은 약에 종일 몽롱했던 토니 스타크에게 여전히 희뿌연 안개가 둘러싸인 것 같은 기억으로밖에는 안남아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스티브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리가 없었지. 게다가 스티브는 지금 슈퍼솔저 혈청으로 인해 대학에 다니던 멸팁때와는 딴판이었기 때문에 더욱 기억할만한 건덕지가 없었어 물론 얼굴이나 인상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라는 건 볼에 살이 있고 없고 눈동자가 크고작고에 따라서 크게 바뀌곤 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둘은 동갑이라는 설정인데, 마흔에 가까워진 나이라고 생각해봤을때 상대적으로 스티브 로저스는 훨씬 젊은 얼굴, 거의 이십대의 얼굴 그대로였어. 슈퍼솔저혈청이 그의 신진대사에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는 타인과 다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었지. 겉만보면 거의 늙지않는 채로. 토니는 스티브가 갑작스럽게 보인 맨얼굴에 깜짝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어. 첫마디는

 "젊다!"

 였지.

 "그리고 금발!"

 이었고. 금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토니 스타크였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었지만, 토니는 부드러운 인상의 단호한 입매를 가진 젊은 미남에게 한눈에 반했어. 캡틴 아메리카의 맨얼굴에 대한 상상은 여러번했었지만, 저 얼굴만큼 완벽한 캡틴 아메리카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지. 캡틴은 무뚝뚝한 입매를 꽈악 다물며 무표정한 채였어, 토니로써는 알 수 없었겠지만, 지금 스티브는 사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긴장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컨트롤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였어. 스티브는 캡의 맨얼굴을 감상하는 것처럼 보이는 토니를 조심스럽게 살폈어, 자기가 누구인지 눈치채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지. 하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어. 그래, 대학때의 자신을 생각하면, 토니 스타크와 함께 사진에 찍혔던 적조차 없는 것을. 스티브는 간신히 숨을 내쉬며 눈을 깜빡였어.

 "스티브 로저스. 내이름일세. ...별로 자네에게 내이름을 알려주기 싫었거나 본모습으로 이야기하기 싫었거나 그랬던 건 아니야."

 사실은 그랬었지만. 그 이유를 너는 모르니까. 일방적으로 미움받는 사람의 기분을 이해해주어야하겠지. 스티브는 자신이 캡틴 아메리카라는 사실을 열심히 떠올리고 있었어, 그 슈퍼히어로의 앞에서, 결코 나쁜사람이 되고싶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정도의 거짓말은 용서해줘. 그의 앞에 서 있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할테니까. 도망치지 않을테니까.

 도망치지 않고, 피터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을테니까. 최선을 다해서.

 "알려줘서 고마워."

 스티브는 감격하는 토니의 목소리에 살짝 웃음을 띨수도 있었어 그는 고개를 저었지. "그동안 도망만 다녀서 미안했네. 프로젝트 어벤저스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무작정 반대를 했던 감이 있어. 솔직히."

 "대규모의 빌런전쟁에서는 우리들도 대규모 연합작전을 짜는 게 이치에 맞겠지. 우리가 미리 커넥션라인을 확보하면 작전들을 더욱 수월하게 해낼 수도 있을테고. 자네가 나에게 프로젝트 어벤저스에 대해 다시 설명해줄 수 있겠나?"

 "당연하지. 그걸 위해 여기 왔는걸. 나 오늘 시간 많아. 특히 그상대가 자네라면,"

 "......"

 "항상 많을테니까."

 "오버하긴."스티브는 픽하고 웃었어. 자기를 보고 웃어주는 캡틴의 얼굴이 좋아서, 토니는 캡틴의 어깨를 내리쳤지. 그순간 스티브의 어깨가 흠칫하고 떠는 것을 토니는 보았어, 캡틴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조금, 아주 조금 토니에게서 떨어졌지. 토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어, 스티브의 평범하고 미지근한 체온이 손바닥에 남아있다가 금방 사라졌지. 토니는 자기보다 앞서가는 스티브의 등을 바라보았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역시 날 별로 좋아하지 않는거다. 그는. 토니는 씁쓸하게 입을 다물었어. 날 피하고 있어. 닿는 것도 싫을만큼. 역시 전혀 기분좋은 일이 아니었어. 그가 자기를 피하는 것은.




 

<7>

 

 쉴드지휘하에 프로젝트 어벤저스는 발발하였고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가 양날개로 있어 프로젝트 어벤저스는 세계적으로 큰이슈가 되었어. 서민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지. 아이언맨은 캡틴 아메리카를 리더로 내세웠고, 캡틴은 아이언맨이 리더를 해야한다고 거절했지만 수많은 히어로들의 통솔은 리더쉽과 성품을 인정받은 캡틴이 해야한다는 많은 발언에 결국 캡틴이 리더를 하게 되었어. 물론 아이언맨과 모든 것을 의논하며 결정하였기 때문에 둘 중 누가 리더의 직책을 짊어진다한들 별차이는 없었을거야. (적어도 캡틴은 그렇게 생각하였지.) 스파이더맨은 영어벤저스로 남아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에 어벤저스의 가입이 가능하다고 캡은 못을 박았고, 스파이더맨은 아쉬워했지만 그 자리에 만족했지.

 그뒤 꽤 어벤저스가 세계에 자리를 잡을때까지 크고 작은 전쟁들이 많았고, 어벤저스가 대활약함으로써 어벤저스에 대한 세계의 신뢰도가 더욱 치솟았어. 수많은 빌런들을 처리하고 세계를 구하는 영웅들을 세상은 사랑하고 신뢰했지.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위치는 그어떤 나라의 대통령도 감히 넘보지 못할 정도의 지지율이었어.

 물론 그정도의 신뢰는 영웅들 사이에서도 형성되었지. 생사고락을 함께 하다보면 사이가 안좋아질 수가 없었어. 토니는 어느순간부터 자기가 만져도 피하지 않은 캡틴을 깨닫고 아주 뛸듯이 기뻐했지. 익숙해진 걸까, 편안해진걸까. 남에게 가르쳐준적은 한 번도 없지만 자기가 저도모르게 그의 어깨를 짚었을 때 그가 피하지않고 오히려 어깨를 맞잡아 줄 때는 거의 천국에 가버릴 것처럼 기분이 날뛰었어. 심장이 아플정도로 뛰었지. 스티브는 어딘가 토니를 대할때 항상 조심스럽고 신중해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점은 뭐 쉽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스티브는 더 이상 토니를 피하지 않게 되었던거야. 심지어는 먼저 손을 뻗어 토니의 손을 붙잡기도 했었지. 스티브는 거의 아무 냄새도 나지않는 무취의 육체를 하고 있었고, 손바닥은 거칠고 퍽퍽했지만 깨끗하고 부드러웠어. 스티브 로저스라는 남자는 자신을 위한 치장은 거의 하지 않았고, 심지어 스킨향조차 풍기지 않았지만, 토니는 그에게서 간간히 샴푸향을 맡을 수 있었지. 언제나 똑같은, 아주 은은하고 연한 초원의 냄새가 나는 샴푸향. 고정시킨 금발의 머리칼 사이사이로 아주 가끔씩 흘러나오는.

 금발 트라우마? 그것이 어쨌다고. 엿이나 먹으라고 해.

 세상에.
 그가 금발이거나 말거나, 토니는 정말이지 아무 상관도 없었어.

 토니 스타크는 스티브 로저스를 사랑하기 시작했어.

 그를 향한 마음이, 사랑이 되기 시작한거야.


 



<8>

 

 토니와 피터도 여전히 사이가 좋았어 옆에서보면 둘이가 꼭 부자처럼 보일정도였지 서로 좋아서 죽고못살정도로 친했거든. 실제로 둘이 같이 레스토랑에 가거나 가게에 가거나 하면 "부자지간이십니까?" "아드님이 아주 잘생겼군요" "토니스타크! 언제 이렇게 큰 아들이 생긴겁니까?!"같은 소리를 들었어 토니는 이상하게도 그 말이 기분이 나쁘지 않더군, 멀쩡한 총각을 급작스런 애아빠로 만드는 그 발언에도 묘하게 유쾌하게 "사실은 어제부터 생겼어" "오, 우리 둘이 그렇게 잘어울려요?<"같은 소리로 부정하는 발언도 없이 즐기기만 했거든. 오히려 피터가 걱정할 정도였어, 토니 스타크는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니까.

 "대책없이 그런 말해도 되는거예요? 당신 명성에 금이 갈수도 있어요. 왠지 리얼하게 실제로 일어날수도 있는 일이라서 더욱요."

 "헐. 피터 너 지금 나보고 젊을때 놀아난 것에 대한 댓가가 너같은 아들로 나타난다는 뭐 그런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 같은 타입이라고 말하고 있는거야?"

 "아니에요 그럼?"

 "맞지 그럼."

 그러고 마주보며 웃으며 토니는 "나의 명성에 관한 일에 대해선 신경쓰지마, 어린애가 별 걸 다 신경쓴다. 너희쪽에도 물론 폐끼치는 일 없게 할테니까 걱정말고. 너와 캡시클의 히어로쪽이 아닌 일상의 쪽에 내가 잘못하는 일이 생기면, 난 그날 폐업할거야. 진심이야."라고 말했어. 피터는 진지하게 이야기해주는 토니가 좋았지.

 "어느쪽을 폐업할거예요? 토니?"

 "글쎄, 어느쪽이든. 어느쪽이든 다 나니까."

 "아 그거, 캡틴이 항상하는 말이에요. 캡틴 아메리카도 스티브 로저스도 다 자기자신이라는."

 "너도 그렇잖아. ...하지만 캡같은 경우는, 캡틴쪽으로 약간 기준이 쏠려있는 경향이 있지."

 "그건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캡틴이라는 사람이, 지금의 존재로 존재할 수 있는거겠죠. 그런 사람은 다신 없어요. 둘이 있을수도 없고."

 "...캡을 사랑하는구나."

 "세상에 그누구보다도요."

 그건 나도. 한마터면 그렇게 말할뻔했지. 토니는 간신히 웃음으로 얼버무렸어.

 "그런데 피터, 넌 캡틴을 한 번도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구나. 캡이 섭섭해하지 않아?"

 "......"

 피터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어,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고민이 되었지. 캡이 섭섭해할리가 없잖아,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것에 섭섭해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캡틴을 엄마라고 부를 수는 없었어, 수년전의 그이후로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었지. 그때는 스티브가 피터를 지키기 위해서 한 약속이었겠지만, 지금은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를 지키기 위한 피터의 결심이기도 한거였어. 아이를 낳았다는 스캔들에 캡틴을 휘말리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피터는 토니의 얼굴을 바라보았어.

 부자지간이라고 오해받는 둘.
 우리 둘이가 혹시 좀 닮은걸까?
 같은 갈색 머리에 갈색눈이긴 하지만.

 타인과도 이런 오해를 받는데, 진짜 '아빠'와는 대체 얼마나 닮아있을까?
 그와 나란히 있으면 타인에게, 둘이 당연히 '부자지간'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

 정말 싫지만. 아빠따위.

 "내가 평생 캡틴을 아빠라고 부르는 일따위는 없어요. 토니."

 토니는 인상을 찌푸렸어. "그건 뭐야. 캡틴이 아빠인 게 싫은거야?"

 피터는 고개를 저었어.

 "그게 아니에요. 내가 싫은건 진짜 아빠."

 "......"

 "진짜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싫기 때문에, 끔찍하게 싫기때문에, 나는 '대디'라는 단어를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고 있기때문에, 그 망할 단어로 캡틴을 부르는 일은 절대 없을거라는 거예요."

 "...친아빠에 대해 알고있는 게 있니?"

 "아니, 없어요. 하나도. 심지어 알려달라고 하고싶지도 않고, 조금도 알고싶지 않아요."

 "그렇다면.." "아니, 괜찮아요. 토니. 이 마음이 변하는 일은 없어요."

 사실은 알고 있는 게 딱 하나 있다.
 나의 어머니에게, 가장 끔찍한 일을 저질러버렸다는 것.

 그건 바로 나를 낳게 한거야.
 나를 존재하게 한 거라구.

 그러니까 사실, 피터 로저스는, 자기자신을 가장 싫어했다. 자기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아빠의 끔찍함의 증거물이다.

 "만약 나의 아빠가 내 눈앞에 있다면, 난 아마 그를 죽일수도 있을거예요."

 "......"

 토니는 입을 다물었어.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구역이란 생각이 들었지. "물론 그런짓을 저지르면 캡틴이 울테니까 하지는 않겠지만요." 토니의 굳은 얼굴에 앗차싶어 피터는 서둘러 그렇게 둘러대었지만, 이미 때는 늦어 피터의 오늘이야기는 여전히 토니의 가슴에 커다란 돌을 던진 채로 남게되었어.

 

 


 토니가 그렇게 피터와 헤어진후 살짝 들었던 피터의 본심이 아무래도 마음에 자꾸 걸려서 스티브를 찾아가. 스티브는 빌런들 동향중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몇일째 집에 들어가지 않고 스타크타워의 상층부에 토니가 새로 꾸려놓은 어벤저스전용본부(?)에 계속 머물러 있었어. 그동안 어벤저들이 대체 뭣땜에 그러는거냐고 스티브에게 물었지만 스티브는 아직 모든 것이 정확하지 않아 정확하게 무엇인가가 포착되면 그때 알려주겠다고 입을 다물고 있었지 그럴때의 스티브는 그냥 혼자 내버려두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토니는 별다른 간섭을 하지않고 있었어... 토니는 스타크타워로 가서 자비스에게 스티브가 여전히 본부에 머물러 있느냐고 물었지 자비스는 그동안 스티브가 계속 컴퓨터앞에 있었으며 무언가의 동향을 좇고 있다고 말했어 더 정확하게 알고싶다면 제대로 네트워크조사를 한 후 대답하겠다고 했지. 토니는 그쪽도 제법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 당장은 피터에 대해 더 이야기가 하고싶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더는 묻지않았어 대신 자비스에게 내가 왔다는 걸 스티브에게 알리고 이야기하고싶은 게 있다고 전하라고 했지. 토니는 바룸에서 기다렸어 스티브가 오기를. 스티브는 토니가 2잔째의 술을 직접 타서 마실때쯔음 나타났지 토니는 여어, 하면서 들고있던 잔 그대로 손을 흔들었어 얼음이 부딪혀 차랑하는 소리가 났고 어둠속에서 스티브는 컴퓨터에 시달려 조금 지친 눈을 한 채로 힘없이 웃어보였지 토니는 저도모르게 뭔일때문에 그러는거야? 라고 물었고 스티브는 웃으며 머리를 저었어 아직 말 할 단계가 아니라서. 그렇지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지.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어.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저기 말이야. 스티브. 지금부터 내가 주제넘은 질문을 할건데, 부탁이니까 맘에 들지않아도 날 때려주지 말아주겠어?"

 "그게 뭔가. 나한테 맞을만한 짓이라는 걸 이미 스스로 알고있으면서도 굳이 그 질문을 하겠다는 건가?"

 "맞아. 그리고 난 내일 주간지와의 사진촬영 포함 인터뷰가 예정되어있어. 얼굴 어딘가가 다쳐있는 것도 안 되고 신체 일부분에 붕대가 감겨있는 것도 ng라고."

 "맞을짓을 안하면 될 거 아닌가."

 "그게 안되겠어서. 도저히. 이러다 잠까지 못잘 것 같고, "

 "수면부족도 ng라고 말할생각이겠지? 알았네. 화가나도 참을테니 어디 말해보게. 제발 내가 참을 수 있는 레벨의 이야기이길 바라지."

 토니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 스티브가 주먹을 쓰지않을 수 있는 레벨인지 어떤지 짐작도 가지 않았지. 앞으로 토니는 스티브에게 스티브가 피터에게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달라고 떼를 쓸건데, 그게 얼마나 뻔뻔한 일이야. 특히 스티브는 쉽게 남에게 자기 맘속 이야기를 하는 타입도 아니고. 그래도 토니는 자기가 무슨 힘이 되줄 수도 있다 싶은 생각이 자꾸 들어서 자기마음이 달려나가는 걸 멈출수가 없었어 피터의 마음의 어느한구석에 있는 어둠이 너무나 걱정이 되었고. 토니는 깊은 숨을 몰아쉬고 입을 열었어.

 "저기. 피터얘긴데."

 "아, 그래. 자네 피터 집에 잘 데려다줬나?"

 "잘 데려다줬지 그럼. 근데 별 걱정을 다하네. 스파이더맨은 오히려 밤에 다녀서 양아치들을 잡아 감옥에 처넣어줘야하는 존재라고."

 "그건 그거고 밤길 걱정하는 부모마음은 또 별거라서 말일세."

 "그래. 그건 확실히 그렇지. 그 피터 말인데."

 "......"

 스티브는 기다렸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싶었지. 토니가 저렇게 말을 어렵게 꺼내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어.

 "피터의 진짜 아빠에 대해서 당신 아는 것 좀 없어?"

 "......"

 그리고
 스티브는
 심장이 멎어버렸어.

 -라고 순간, 생각할 정도로 엄청나게 강한 충격을 느꼈지. 머릿속이 하얗게 폭발해버렸어.

 뭐라구. 지금 뭐라고 했어?

 "피터랑 어쩌다보니 아버지에 대한 화제가 나왔는데. 진짜 아버지란 존재가 그 아이를 강하게 얽어매고 있더군. 그것은 확실히 애정의 형태가 아니었어. 내가 생각하기에 그만한 나이의 아이에게 나쁜감정으로 집착하는 게 있다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지 않아."

 "뭐, 이건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건데. ...하여간 아버지란 존재는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있는대로 성가시기만 하지. 피터는 너라는 훌륭한 아버지가 있으니 그러 마이너스한 감정이 있을거라고는 정말로 생각도 안했었는데. 친부에 대해 갖고있는 감정이 전혀 안좋더군."

 "심지어 친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으면서도 그정도의 살의를 갖고있다니 말야. 솔직히 걱정이 되는거야. 그래서 친부에 대해 좀 듣고 난 후에 피터의 앞으로의 감정에 대해 자네와 이야기해보는 편이 좋을까 싶어서, 내가 주제넘게 좀 이런 말을 하게 된건데..."

 "...캡시클? 내 말 듣고있어?"

 "캡? 스티브?"

 스티브는 거의 토니의 말을 듣고있지 않았어 그래도 대강 요점은 파악할 수 있었지, 그러니까 지금 토니 스타크가 피터 로저스의 친부에 대해 스티브 로저스에게 아는대로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는거였어. 네가. 지금 네가 피터의 친부에 대해 묻는거야? 스티브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어. 어이없는 웃음이. 그 웃음을 참는 데에 전신에 힘을 줄 정도로 노력을 해야 할 정도였어. "..역시 때리고 싶은거야?" 토니의 얼굴이 희뿌옇게 번져 잘 보이지 않았어. 그래. 역시 때리고 싶다. 스티브는 토니에게 들키지않게 의자의 뒤에서 주먹을 꽈악 쥐었어. 자신의 생살을 파고들정도로 꽈악 쥐고 나니 손바닥에 아픔이 느껴졌지 살속으로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나고 있었어. 스티브는 그 희미한 아픔에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 피가 아예 바닥으로 뚝뚝 떨어질때까지 손바닥을 파고나서야 간신히 입을 열 정도가 되었지.

 "...자네가 그렇게 오지랖을 부릴줄은 몰랐는데."

 "아. 나도 내가 오지랖이 있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어. ...피터가 참 좋은 아이라서..."

 "......"

 "이런 맘 나도 처음이라서 좀 간질간질해. 이게 부성애라는건가? 나 참. 이런게 내안에도 있었다니."

 "......"

 그만. 그만해.
 그 이상 말하지 말아줘.

 무너져버릴 것 같아.
 없어져버릴 것 같아.

 그동안의 세월도 송두리째 사라지고
 그동안의 캡틴도 송두리째 사라지고
 그동안 내가 안아왔던 것, 내가 닦아왔던 것
 전부 다 없었던 것처럼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처럼 사라지고

 그날의 왜소한 멸팁만이
 남아버릴 것 같단 말이야.

 "정말로 자네답지않은 쓸데없는 참견이었어. 그 질문은 못들은걸로 하겠네."

 "스,스티브"

 "그리고 두번다시 나에게 그와 같은 질문은 하지 말아줘. 다음엔 주먹을 참지않겠네. 부탁하지."

 그리고 스티브가 서둘러 일어나 룸에서 걸어나갔지. 스티브의 뒷모습을 쫓으며 토니는 잠시 눈썹끝을 내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어. 스티브는 그 어느때보다 차가운 목소리를, 무뚝뚝한 표정의, 굳은 입매를, 토니는 아마 스티브의 그런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지구에서 자기가 유일할거라고 생각하기까지 하였고 그정도로 차가운 스티브의 등을 보는 것은 토니로써도 처음있는 일이기도 하였어. "젠장." 토니는 슬픈 얼굴로 얼굴을 감싸쥐며 한숨을 내쉬었지. 스티브 로저스의 삶에 섞여드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이렇게 애달픈 일이었다니. 이렇게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이 세상에 있었다니. 이제 앞으로 대체 어떡해야 한단 말이야. 마음은 여전히 달려나가고 있는데.

 그러니까 나보고 지금, 앞으로도 수없는 방금같은 거절을 당해, 홀로 뒤에 남아,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 것같은 상처를 매번 곱씹어야 한다는 그 말인가. 캡틴. 어째서 너는 이렇게 나에게 너무나 잔인한거야. 나에게만. 오직, 나에게만.


 

 

 

-2-

 

 

<1>

 

 그동안 스티브가 혼자 뒤를 쫓고 있었던 빌런은 다름아닌 윈터솔저였어 그 전설같은 이름은 존재의 유무조차 흐릿해질정도로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있었지 윈터솔저를 알고있는 사람을 찾는 것조차 큰일이 아닐 수 없었어. 하지만 스티브는 그에 대해 악착같이 알아내었고 그가 현재의 시대에 해낸 암살의 종류를 열다섯건으로 좁히는 데에 성공했어 그 중 맨하탄에서만 다섯건이 일어났지. 애초에 스티브가 윈터솔저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맨하탄에서 일어난 다섯건의 암살때문이었어 아무 공통점이 없던 다섯건의 암살의 연결점을 스티브 로저스가 최초로 발견해내고 그것을 곧 세계의 암살건과 비교하여 총 열다섯건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윈터솔저의 이름을 캐치해내고 만거지. 그리고 스티브는 바로 오늘 수많은 자료의 산에서 열다섯건 전체를 통괄하는 단 한사람의 얼굴을 끄집어내고야 만거야, 모든 암살의 장소에 단 한순간, 얼굴을 비추었던 그 남자는

 버키 반즈였지.
 잘못본 게 아니었어.

 그 얼굴을 발견해냈을때의 스티브 로저스가 느꼈던 그 절망을 말로 표현해낼수 있다면. 그가 느낀 감정의 이름을 단 한마디로 정의해낼 수 있다면. 그러면 지금 모든 암살의 현장에서 캡처받은 버키 반즈의 얼굴을 띄운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스티브의 표정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었을거야. 그러나 그러한 사람의 감정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말을 나는 모르고 그래서 스티브의 절망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지. 단지 스티브는 버키의 얼굴에 자신의 손바닥을 가만히 갖다댄채로 고개를 숙였어. 한동안 그러고 있었지. 아주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어. 이 말만을 할 수 있을뿐.



 어벤저스 회의에 나타난 스티브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어 그가 유니폼을 차려입고 나타나는 것은 그다지 어색한 일이 아니지만 오늘따라 스티브의 기운이 이상해보였지, 토니는 스티브를 사랑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의 기분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어, 항상 보고 있으니까. 토니는 그게 어쩌면 자기때문인 걸까 내심 생각하며 우울해했어 며칠전 자기가 피터의 가족관계에 대해 괜히 끼어든 것에 대해 스티브에게 질책을 받은 뒤로 그와 대화한 적이 없었기때문에, 스티브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았구나 싶었던 거야. 하지만 어벤저스를 소집한 스티브는 토니에게 그것에 관한 별다른 언질을 하지는 않았어. 토니가 어색하게 양쪽 손가락을 맞부닥치기를 반복하며 간신히 "어... 캡. 혹시 아직 화났어?"라고 내뱉었을때에도 별다른 말 없이 그저 고개를 조금 저었을뿐. 어벤저스가 전부 모였을 때 스티브는 그동안 모아둔 자료를 그들에게 건넸어. 모아둔 자료의 압축본이지. 다들 '파일 윈터솔저'의 제목을 보았을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전설같은 그 이름이야 알고는 있었지만 그건 마치 꿈속의 용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페이지를 넘길수록 다들 조금씩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했어. 여기저기서 놀라워하는 소리와 당황하는 태도가 느껴졌지. 그리고 스티브가 윈터솔저가 마지막 암살한 장소에서 캐치해낸 비교적 고화질의 얼굴사진과-스티브 로저스와 함께 찍은 사진을 스크랩해놓은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모두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하였어. 스티브만이 묵묵하게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지. 지금 모두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폭풍을 스티브는 이미 어젯밤 전부 정리해놓은 후였으니까 말이야.

 토니가 서류를 테이블위로 내려놓았어. 감정이 격해져서 서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서 흩어졌지.

 "이, 이게 무슨! 캡틴 아메리카, 이게 대체 뭐야?!"

 "...암살자 윈터솔저에 관한 자료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토니는 감정이 앞서 말을 잊지 못하고 더듬었어 테이블위에 자기가 쏟아붙인 자료들에 다시 눈이 닿았지 버키와 스티브(멸팁아님)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기를 향해 환하게 웃고있는 모습, 즐거워보이는 젊은이들의 행복을 그대로 찍어놓은 사진. 버키 반즈가 윈터솔저라고? 버키 반즈는 그거잖아. 너의 친구잖아! 토니는 말을 잇지못하고 아랫입술을 떨었어, 스티브는 토니의 창백해진 안색을 보면서, 마스크로 포커페이스를 가장하는 건 못된일이로구나, 생각했어. 스티브는 큰각오로 마스크를 벗었지, 어벤저스는 마스크를 벗은 스티브의 얼굴을 보면서 모두들 숨도 내쉬지 못했어. 더욱 창백한 얼굴, 슬픈 눈동자의. 거칠해진 스티브의 얼굴을 보면서 다들 입을 다물었지.

 "그래. 그는 버키 반즈라네. 윈터솔저의 정체는 바로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의 서포트히어로였으며, ...스티브 로저스와 가장 친하게 지내주었던 버키 반즈였어."

 "그런... 그런일이..."

 이걸 그동안 너 혼자서. 이런 일을 밝혀내는 것을 아무에게도 도움받지않고. 토니는 해결되지 않는 분노를 품었어. 캡틴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속앓이를 했을 그동안의 시간들을 향해서. 캡은 더 이상 말을 잇지않았지. 스타크타워의 어벤저스 테이블 위에는 풀리지 않는 혼란이 가득 차올랐어.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않는 채.
 

 

<2>

 그러니까 멸팁이 토니에게 강간당하고 임신해서 애를 낳기 위한 십개월동안 고향의 소꿉친구였던 버키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고, 애를 낳고 나서도 버키가 많은걸 도왔었는데 그동안 버키는 계속 군인인거지. 그러다 버키를 통해 슈퍼솔저프로젝트를 알아서 혈청을 받는동안 멸팁은 버키에게 피터를 맡겼었는데 그뒤 캡틴의 훈련까지 받아야했기때문에 피터는 한 2-3년정도? 버키랑 같이 살았었어, 그게 피터가 한 3,4살? 피터는 천재였기 때문에 그때의 버키삼촌을 물론 기억할 것이고. 그뒤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와 그의 친구 버키반즈는 세상이 알아주는 히어로로 활약하다가, 무슨빌런과 싸우다가 버키가 전사하고, 세계가 애도하고. 그뒤 시간이 흐른거지 지금 피터가 열여덟정도니까 십수년? 정도 흐른거야. 그 십수년사이에 '아이언맨의 탄생-아이언맨의 정체가 밝혀짐'이 일어난거고 어벤저스 결성-대활약으로 이어지지. 대충 이런식으로 일이 진행돼었음... 그래서 버키 반즈에 대해서 다들 아는거지. 윈터솔저의 정체가 그라는 것도 충격이고. 그러니까 빌런과 싸우다 전사한 줄 알고 있었던 버키는 사실 빌런에게 개조당해 암살자 윈터솔저로써 십수년을 지내오고 있었던 것이었어. 옛얼굴 거의 변함없이 그대로.



 대충 그런 과정에서. 스티브는 윈터솔저의 소재를 찾아내기위해 어벤저스의 힘을 빌려주기를 부탁했어 블랙 위도우를 통해서 쉴드의 힘도 써주길 원했지 어벤저스 중 누구도 스티브에게 힘을 빌려주길 꺼려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들은 단지 단 하나의 질문을 하는 것을 멈출수는 없었어, "캡. 윈터솔저를 찾은뒤에는 어떻게 하실거죠?" 그리고 캡틴은 대답하지 않았지.

 브루클린의 자기집으로 돌아가려하는 스티브의 팔을 잡으면서 토니는 진지하게 "얘기 좀 해."라고 말했어. 캡은 고개를 저었지. "아들이 기다려서.""기다리라고 해. 어린애도 아니고 혼자 집보기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녀석이잖아."

 "토니."

 "안 돼. 이대로 그냥 가버리지 마. 얘기 좀 해, 제발."

 "......"
 

 "캡. 스티브. 제발."

 사실 스티브는, 지금은 아무와도 이야기가 하고싶지 않았어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싶었지. 그리고 자고싶었어. 현실도피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해도 좋아, 그러나 그 다섯시간 채 안 되는 수면시간에서조차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가면 좋단 말이야. 스티브는 지금의 현실을 자신의 어깨로 지탱하기 위해 정말 온힘을 다하고 있었어. 토니 앞에 간신히 서 있었지. 버키가 살아있는 것이 행복했어. 그가 죽은 날의 절망감은 지금도 가끔 캄캄하게 만들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최악의 형태로 살아있었어. 그리고 그가 그 어두움 속에서 절망에 휩싸여 살아있는 것도 모르는 채 스티브 로저스는 매일, 매일을 죄책감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어. 그것만으로도 뼈마디가 아파오는 고통인데, 스티브는 그 위에 피터의 생각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어. 피터가 사실은 스티브가 낳은 아들이라는 걸, 알고있는 나외의 유일한 존재인 그가, 살아있는 거야. 그는 그 사실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을까? 피터를 기억하고 있는걸까? 그때의 기억을 갖고 있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걸까?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서, 스티브와 이성적으로 대화해줄 수 있는 상태기는 할까? 아니면 그 사실을 가지고 최악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일까?

 스티브는 이런저런 생각을 다시 되새길때마다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었어 한걸음 한걸음도 지나치게 버거웠지, 지금 당장 윈터솔저에 의해 자신의 정체(캡틴 아메리카가 스티브 로저스라는것)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았을 때 윈터솔저는 스티브를 기억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커, 하지만 그게 정말 기억하지 않고 있는걸까? 단지 가장 좋은 타이밍에 적절하게 이용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티브는 캡틴 아메리카를 그만둘 수 없어. 그것 이상으로 피터 로저스를 잃을수도 없었지. 그리고 그의 친부-토니 스타크는 자기 옆에 있었어. 가장 가까운- 정말이지 가장 가까운 옆에. 그 사실을 영원히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어. 버키는 토니에 대해 모르지만-어떤 계기로 이야기가 이어질지는 스티브도 알 수 없었어. 숨쉴때마다 심장이 죄어오는 이 기분으로, 토니의 옆에 어떻게 더 있을 수 있겠어.

 "토니. 놔주게. 나 좀 내버려둬."

 토니도 절박했어. 이대로 스티브를 보낼 수는 없었어. 이대로 보내면 영영 외부인 취급을 당할 것 같았어. 영원히 벽밖에 서 있는 것은 도저히 토니 스타크의 취향일 수 없었어.

 "스티브! 이봐, 스티브. 난 널 탓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솔직히 왜 이런 일을 힘들게 혼자서 끙끙대며 해냈느냐고 널 막 욕하고 싶긴한데, 나 그런 얘기 하려는 거 아니라고."

 "이미 했잖나! 그래서 자네에게 사과라도 하란 말인가? 혼자 멋대로 일벌렸다고? 토니 스타크, 난 지금 내 소중한 사람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기뻐해야할지 그가 암살자란 사실에 절망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상태네, 이 사실을 알게된지 32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고! 그런 날 좀 내버려둘 수는 없는건가?!"

 둘은 서로에게 감정이 고양된 상태라 말이 점점 사나워졌지. 스티브가 큰소리를 내는 것을 전투외에서 보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어. 스티브가 큰소릴 낼수록 그를 붙잡고 있는 토니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지.

 "이런 빌어먹을. 제기랄. 그러니까 그런 정신상태의 널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다는 그런 얘기를 하고 있잖아 지금!"

 "하, 자네가? 자네가 지금 내 걱정을 한다고? 토니 스타크가?"

 스티브의 그 말에 토니는 더 이상 화를 참을 수가 없었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지. 더 이상 스티브의 말도 들어주지 않았어.

 "그래! 왜, 안 돼?! 이런 젠장, 내가 스티브 로저스 걱정하는 게 뭐가 그렇게 이상한건데?!"

 "내가 널 걱정하는 게 뭐가, 왜? 이 나쁜자식아!! 내가 비록 너에게 투명인간정도쯤 되는지는 몰라도, 내세계에서의 너의 지분에 대해 설명하면 넌 아마 깜짝놀랄걸? 너에대한 생각을 이렇게 많이 하는 줄 알게되면 두 번 다시 나에게 그런 심한 소리를 못할거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캡시클. 무슨 말을 하게 만드는거야. 그냥 닥치고 쉬었다 가면 안 되는거야? "

 "제발 부탁이니까, 그 후들거리는 다리로 바이크를 끌고 브루클린으로 돌아가려 하지마. 제발 부탁이니까, 혼자 어두운 밤길을 달리며 풀리지 않은 고민속에 몸을 맡기지 말아달라고. 제발 부탁이니까, ...여기서 좀 쉬었다가 가."

 "나에게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

 그리고 토니는 스티브의 어깨를 양쪽으로 움켜쥐었어. 그리고 그의 가슴에 이마를 묻었지. 스티브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어. 그 심장소리에 귓가가 따라 두근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토니는 더욱 어깨를 움츠리면서, 스티브를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어. 스티브. 스티브. 제발.

 "...널 좋아한다 말이다..."

 "......"

 "......"

 "......"

 "......"

 길고긴 어둠같은 침묵이 내렸지. 하늘에서부터.
 

 

 

 

<3>

 

 무거운 침묵속에서 스티브는 거의 아무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지. 잠깐 닿은 토니 스타크의 체온이 꼭 책의 지면위를 훑는 것처럼 무감각하게 느껴졌어. 그러다가 곧 목구멍위까지 가득 차올라 전신에 차고 흘러넘치는 시커먼 것들이 손끝까지 뻣뻣하게 쏟아넘치는 것을 깨달았어. 한 발 움직이면 발아래로 끈적하고 시커먼 것들이 발자국을 남길 것 같은 그 시커먼 감정의 이름은, '멸팁'이었어. 아아,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군... 스티브는 무감정하게 눈동자만을 한 번 깜빡였어. 결국은 멸팁이 흘러넘치고 말았어, '캡틴 아메리카'는 사라지고. 시커멓게 칠해진 감정너머로 토니 스타크만이 세계에서 선명해졌어. 스티브는 이제 알고 있었어. 멸팁만이 남은 자신의 세계에서, 자기가 토니에게 무슨 짓을 하게 될 것인지. 스티브는 이제 멸팁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거야, 세상에는 이제 멸팁밖에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알아, 안다, 이제 멸팁은

 토니 스타크를 산산조각 내버릴거다.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고 말겠지.
 송두리째로 부셔버리고 말거야.

 그가 원하는 대로 그가 바라는 대로, 로저스 스티브를 아무렇게나 내어주고, 그의 마음이 더 간절해지고 더 고파질때 그를 산산조각 내버리고 말거다. 웃으면서 복수를 하겠지. 당한만큼 갚아주려고 할거야. '되갚아준다'는 것이 어떤 절망속에 있는 단어인지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로, 자기 자신이 '정의'라는 이름의 대변인으로 존재했다는 것조차 지워버리고. 토니를 머리꼭대기에서부터 자근자근 밟아 완전히 산산조각내고 난 후에도 아쉬워서 그 귀에다 대고 너때문에 완전히 망가져버린 한 남자의 삶에 대해서만 반복하고 또 반복해댈거야. 복수를, 저주를, 십수년동안의 절망을 토니의 귀에 대고 속삭이겠지. 그가 절망하게끔. 그가 저주받겠끔. 그가 멸팁의 복수를 이해하게끔. 그의 앞으로의 삶에 빛따위는 조금도 없겠금. 그가 죽음을 바라게끔. 그렇게 할거다.

 스티브는 눈을 깜빡였어. 호흡을 하고있는지 하지않는지, 잘 알 수가 없었어. 시커먼 것들은 꿀렁대면서 전신에 파도쳤고, 툭하고 치면 그대로 토니를 향한 저주의 말이 쏟아질 것만 같았어. 토니는 움직이지 않았어. 표정이 굳어 변하지 않았어. 이윽고 침묵을 가르며 토니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을때, 스티브는 움찔, 하며 어깨를 튕겼어. 멸팁의 준비자세. 멸팁의 준비운동. 멸팁은 스티브 로저스의 가슴안에서 조용히 호흡하며, 무슨말을 던져야할까, 어느타이밍에 토니의 웅덩이에 집어던져야 그 무거운 돌이 바위가 되어 그를 산산조각을 낼까, 생각하고 있었어.

 "...제기랄."

 "......"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한 거야... 정말로 이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

 "젠장... 아, 젠장, 젠장. 아 제기랄..."

 연신 욕을 지껄이면서, 토니는 귓뿌리까지 새빨개진 채로 말을 더듬었어. 문장 하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카펫을 마구 짓잇기며 왔다갔다 하고 있었지. 스티브는 토니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어. 토니는 스티브의 시선을 느끼면서 더욱 얼굴을 붉히다가, 곧 "...젠장. 잠깐 기다려봐."그러고는 자기방으로 들어갔어. 그리고는 정말 잠깐, 아주 잠깐 스티브를 기다리게 하고는 금방 다시 방에서 나왔어. 그리고 토니는 자기침실에 두었던 포스터를 그대로 스티브에게 건넸지. 스티브는 토니의 더욱 새빨개진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가 건네주는 포스터를 내려보았어. 스티브는 그 포스터를 기억하고 있었어. '캡틴 아메리카'가 탄생하고, 가장 최초로 찍었던 그 영웅의 포스터. 가장자리가 조금 닳았을뿐 초창기 포스터를 그대로 빛바래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있었어. 의아한 눈을 들어 스티브가 다시 토니를 바라보자, 토니는 더욱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눈을 질끈 감았지. 스티브의 얼굴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 에잇, 제기랄 젠장. 될대로 되라. 하지만 역시 얼굴을 보는 건 무리야. 질끈 감은 눈위로 자신의 손바닥까지 덮고난뒤에야, 토니는 간신히 "자비스! 그 프로젝터 켜봐."라고 외칠 수 있었어.

 자비스는, 토니 스타크의 '그' 프로젝터를 켰지.
 
 스티브는 한쪽벽 화면을 가득 채우는 프로젝터의 영상을 바라보았어. 어느새 어두워진 방의 한쪽 벽의 커다란 화면이 스티브의 얼굴위로 파랗게 빛났지. 스티브는 본래의 크기보다 두배 세배가 넘는 크기로 종횡무진 화면안을 질주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얼굴을 바라보았어. 캡틴은 물론, 얼굴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을만큼 가만히 있어주지는 않았지. 적을 향해 가장 먼저 달려가고, 적이 쓰러지기 무섭게 다음의 적에게 발차기를 날리는, 캡틴 아메리카의 거칠게 솟은 날개죽지와 꿈틀대는 근육의 움직임, 어깨의 움직임, 그리고 방패와 그 방패위를 훑으며 반사해 뻗어나가는 태양의 빛----------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의 다소 훼손된 마스크의 헤진 뺨부분위로 피가 흘렀고, 캡틴은 적들의 사이에서 가만히 그 뺨을 손가락 끝으로 훔쳤어. 새빨간 피는 아무것도 아니었지. 그가 적을 해치워버림으로써 지켜지는 정의에 비하면.

 토니는 자신이 나오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스티브의 옆모습을 흘끗흘끗 바라보면서 여전히 붉은 얼굴을 매만지며 간신히 입을 열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실은 다른 것도 제법 많아." "......" 정말이지 힘든 고백이 아닐 수 없었어. 본인을 앞에두고, 본인의 영상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는거야, 보통 있는지도 몰랐던 용기를 다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구. 토니는 다시 재채기를 했다. 아아, 이대로 쥐구멍으로 빠져버릴 수 있다면 좋겠는데.

 "당신의... 캡틴 아메리카의 정의라는 이름아래에서 흩날리는 깃발같은 청명함을 보고 반했어. 당신에게 반한순간, 당신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는 게 됐지."

 "......"

 "캡. 당신이라는 깃발이 정의를 짊어진 채 당당하게 걸어나가는 것이 가장 기뻐. 가장 벅차. 당신이 그 이름에 짜부러지지 않고 오히려 그 이름과 함께 걸어나가는 모습에... 난 항상 감동하고, 존경하고 있어. ...늘 새롭게 반하고 있고."

 "......"

 "그런데... 그런데, 캡틴."

 "......"

 "캡틴. 스티브. 난 얼마전에야, 얼마전에야, 알게된거야. 당신이라는 사람이 정말 아름다운 이유를."

 "그것은 당신이 캡틴 아메리카여서가 아니었어. 당신이 정의로 존재하는 히어로때문같은 게 결코 아니라, 그런게 아니라..."

 "...당신의 가슴에 별이 있든, 없든, 당신이라는 사람은 늘 똑같아서였어."

 "당신이 누구이든 무엇이든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언제나 변함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당신은 그 무엇보다 가장, 아름다운 거였어."

 "가장.. ...눈부셔. 그런 당신을, 난 누구보다 사랑하게 됐어..."

 그리고
 캡틴은
 어둠속에서, 자신의 화면앞에 선 채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없이
 반짝이는
 토니 스타크의 말들을
 들으면서 

 천천히 눈물을 흘렸지.

 토니 스타크의 말들은 보석처럼 빛나며 그대로 스티브의 전신으로 녹아들었고, 스티브는 손끝에서부터 천천히 검게 뭉쳐져 있던 감정들이 녹아가는 것을 느꼈어.

 그래. 멸팁은 그랬지.
 스티브 로저스는 언제나 그랬어.
 자신이 마르고 작고 볼품없는 모습이었든, 키가 크고 덩치가 당당한 모습이었든, 그런 것은 상관없이, 언제나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삶을 살았어.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어.

 스티브 로저스란 사람은 말야.

 그걸 잊을뻔했다. 시커먼 감정에 휩싸여서 그걸 잊을뻔했어. 당신이 기억하게 해줬어. 다시금 나란 사람을 깨어나게 해줬어. 스티브의 눈물에 당황한 토니가 "왜, 왜그래?! 스티브!?"하고 외칠때 스티브는 킥하고 웃었어.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흘러 멈추지 않았어. 눈물이 반짝반짝 반사되어서 토니의 얼굴도 동시에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어, 그래, 맞아, 스타크. 난 정말로 잊고 있었어. 당신은 대학때부터 그렇게 빛나고 있었지. 모두의 한가운데에서,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야. 당신덕분에 스티브 로저스를 잃지 않을 수 있었어. 그리고... 아름답게 빛나던 당신을 다시 기억해낼 수 있어서 정말로... 정말로 얼마나 다행인지.

 아아, 토니.
 절망이었던 이 내마음이 빛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자네는 모를거야.
 정말로, 모르겠지.

 

 당신은 나를 구해주었어. 

(당신때문에 나를 한 번 잃었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질만큼.) 

 

 



<4>

 

 "고맙네." 스티브는 여전히 얼굴이 붉어져 있는 토니를 향해 웃으며 그렇게 말했어. 그리고는 자켓을 입었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돌아가려고? 스티브는 토니의 불퉁한 목소리에 더욱 크게 웃었어. 이렇게까지 크게, 진심으로 웃는 것이 대체 얼마만일까. "정말 고마운 말 잘 들었네. 하지만 그 말과 나의 태도는 별개잖은가. 설마 자네 마음을 무기로 날 휘두를 생각은 아니겠지?""그런 건 아니지만..." 물론 마음을 보여주자마자 자기한테 넘어올거라곤 생각안했지만, 그래도 뭔가 액션은 있어야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덤덤하게 넘어가도 되는거야.

 "그래서 고맙다고 했잖나."

 "그런 거 말고 뭔가 다른 거 더 있잖아. 왜."

 "뭐?"

 "그러니까~~ ~~에이, 씨! 망할 노친네, 낭만적인 구석이라곤 요만큼도 없어요 진짜! 국끓여먹을래도 없어!!"

 "뭐라는겐가. 참나. 외관으로 보면 자네가 나보다 더 늙었고만."

 제길. 겉으로는 그렇게 사납게 외치면서도, 토니의 마음은 기쁨에 부풀었어, 자신의 속마음을 전부 드러냈음에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살갑게 웃어주기까지 하는 스티브가 너무 고마웠지. 그동안의 모든 불안들이 눈씻듯 사라지고 전신에 안심감이 퍼졌어. 토니는 스티브 몰래 코를 훌쩍대며 "아 기어코 갈거면 좀 기다려, 내가 바래다줄테니까!"하고 방안으로 달려갔어. "무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가네~" 스티브가 방안을 향해 외쳤고 "아 좀 기다리라면 기다려! 사람말 무지하게 않듣는 캡시클아! 코트랑 차키랑만 가지고 금방나갈테니까!"하는 토니의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대답으로 흘러나왔지. 스티브는 쿡쿡하고 웃었어.



 브루클린의 아파트. 피터가 아파트아래에서 창문을 올려다 봤는데 불이 없고 어둡기에 캡틴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어 요새 어벤저스들이 스타크타워에 어셈블하여 회의를 계속하는데 영어벤저스들에겐 쉬쉬하고 비밀로 하고 있어서 피터는 약간 불안한 기분이 들고있는 참이었어, 대체 무슨 큰일이 났기에 저들이 우리에게 자꾸 숨기는걸까 싶어서. 아파트의 불꺼진 창문을 올려다보며 그냥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스타크타워로 갈까도 싶었어 캡틴을 만나서 탁까놓고 대체 뭘 숨기느냐고 물어볼까 싶어서... 그때 피터의 스파이더센스가 작동했어, 분명히 불이 꺼진 텅빈 아파트일것인데, 피터는 인기척을 느꼈던 거야. 누군가가 자신들의 아파트 안에... 침입했다. 피터는 전신이 퍼진 소름이 가라앉기도 전에 재빨리 가방에서 스파이더맨 마스크를 꺼내어 뒤집어썼어. 높게 점프하여 코스츔을 갈아입고 자신의 가방과 옷을 아파트 옥상에 집어던질때까지 3초도 채 걸리지 않았지. 스파이더맨은 그대로 옥상난간에 한 번 착지했다가 그 착지의 힘으로 도약하여 자신의 아파트의 창문을 향해 몸을 뻗었어. 그리고 소리없이 창문위에 착지했지.

 창문은 잠겨있지 않았어. 스파이더맨은 창문으로 누군가가 침입하며 울리는 센서-브루클린의 아파트 온갖곳에 다 숨겨져있는 경보장치-가 부서져있는 것을 보고 더욱 신체의 경게경보를 가중시켰어. 적이다. 틀림없이 적이 침입한거야. 스파이더맨은 소리도 없이 바닥에 내려앉았지. 어둠속에 두근거리는 심장의 소리를 들었어. 타인의 심장소리를. 스파이더맨은 한 번 더 날아올라 귀를 찌르는 심장소리를 향해 거미줄을 날렸지. 고요했던 어둠이 곧 일렁이면서 그안의 녹아있던 무언가가 움직여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을 피해 옆으로 굴렀고 스파이더맨은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연속으로 거미줄을 날렸어.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은 책상에, 의자에, 스티브가 아끼는 장정책에, 피터가 집에서 걸치는 외투에 달라붙었지. 칫, 혀를 차며 "누구냐?!"외치면서 스파이더맨은 다시 한 번 거미줄을 쏘았어. 거미줄은 침입자의 왼손에 달라붙었어, 스파이더맨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거미줄위에 또 거미줄을 쏘아붓인 후 남자를 벽에까지 잡아끌었지. 그리고 남자의 왼쪽 손을 거미줄로 벽에 붙여버리는 것에 성공했어.

 "감히 누가 이 아파트에 침입한단 말야?! 누구야 너?!"

 애초에 이 아파트의 위치를 들킨 것 자체가 이상하지, 둘의 은신처를 아는 사람은 쉴드외에는 없었을텐데. 침입자에게 물어볼 것이 굉장히 많았어. 그리고 스파이더맨은 드디어 어둠밖으로 나온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어. 고개숙인 남자의 커튼같은 검은색 앞머리를 옆으로 치우면서.

 그 얼굴을
 어둠속에 비죽이 튀어나온
 그 얼굴을
 본순간

 피터는 순식간에 과거로 몸을 빼앗겼어.

 "...거짓말. 이런, 이런일이..."

 얼굴을 드러낸 침입자의 이름을 피터는 알고 있었어.
 사로잡은 침입자의 이름은 바로, 버키 반즈였어.
 피터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던 그 이름의, 주인이었지.

 

 

 세월의 흐름이 무상하게 버키의 얼굴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피터의 기억속의 그모습 그대로였어. 머리칼이 좀 긴 것외엔 정말로 기억속에 잠겨있는 그 모습 그대로. 지금 피터는 버키가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건지 왜 지금 여기에 있는건지 그런 건 아무래도 다 상관없어지고 오로지 버키의 상태만이 가장 걱정이 되었어 죽은 줄 알았던 소중한 사람이 살아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데, 어떻게 살아있느냐는 질문따위 얼마나 쓸모없는 것이란말야. "...버키 삼촌?" 피터의 목소리가 떨렸지. 피터는 저도모르게 손을 뻗어 버키의 뺨위에 손을 올렸어. 꼭 송장같은 혈색의 나무겉껍질같이 푸석푸석한 피부감이 손바닥에 닿았어 피터는 버키의 거의 초점없는 새까만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보았지 "삼촌? 버키 삼촌!" 그리고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어 버키의 상태는 아주 이상했지. 여기에 있지만 꼭 여기에 없는 것처럼 보였어, "나... 너... 누구? 버키..." 띄엄띄엄 흐르는 말도 의미를 알 수 없었지. 피터는 버키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어, 세뇌, 약물중독일까? 제기랄. 왜 버키삼촌을. 피터는 묶어놓은 버키의 팔을 풀었어. 그리고 스파이더맨의 마스크를 벗어던졌어.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면서 피터는 버키를 다시 한 번 흔들어 자기를 보게했어.

 "버키 삼촌! 나예요, 피터. 삼촌의 귀여운 말썽쟁이. 제발. 삼촌. 나 기억안나요?"

 "......"

 "버키삼촌..."

 버키는 천천히 손을 들어 피터의 뺨위에 손을 올렸어.

 "피터..."

 "네. 삼촌. 세상에. 어떻게 살아있었던 거예요? 어째서 살아있었는데 그동안 말도 안해줬던거예요? 상태는 또 왜이렇게 심각해요 꼭 죽었다 살아난 사람처럼. 아니 죽었다 살아난거 맞지만 어쨌거나,"

 "피터.. 로저스... ..로저스...스티브..."

 "네. 맞아요. 기억하고있는거예요?"

 버키가 희미하게 웃었어.
 꼭 웃는 것처럼 보였지.




 "그사람에게서 떨어져, 피터 로저스!!!" 그리고 아이언맨이 비명처럼 내지르는 소리에 놀라 피터는 뒤를 돌아봤고 피터가 뒤돌아보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은 캡틴 아메리카는 커다란 손을 뻗어 피터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뒤로 빼내었지 피터는 순식간에 버키에게서 떨어져나와 뒤로 내동댕이 쳐졌어, 뒤에 기다리고 있던 아이언맨이 수트를 입은 모습으로 피터의 몸을 가슴으로 받아냈지, "아이언맨?" 아이언맨은 말없이 피터의 양쪽 어깨를 꽈악 움켜쥐고 자신의 뒤로 물러나게 했어 그를 보호하기 위해. 캡틴은 고개를 숙인 채 약간 휘청이며 무릎을 꺾고 벽에 기대있는 버키 반즈를 바라보고 있었지. "...버키." 그 목소리, 낮은 목소리. 이미 알고있는 사실이었으나, 그래도 현실을 눈앞에 두고보니 역시나 믿을 수가 없어 혼란해하는 그 목소리. 아이언맨은 둘에게서 눈을 떼지않고 양쪽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어, 특히 윈터솔저를. 그가 약간이라도 허투르게 움직이면 그대로 빔을 쏠 준비조차 하고 있었지.

 "버키. 내말들리나?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나?" 캡틴,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지마. 그녀석은 악명높은 그 윈터솔저란 말이야. "버키. 버키 반즈. 내가 누군지 알겠나? ...자네가 누구인지는 알고있는건가?" 그러나 그말을 차마 내뱉지는 못했지, 윈터솔저가 버키 반즈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그런 말로 스티브의 가슴을 후벼팔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이언맨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스티브가 말을 하고 있는 도중에 빔을 가동시켰지. "아이언맨?! 지금 뭐하는 거에요, 그에게 빔을 쏠 생각하지 말아요! 그는 버키삼촌이라구요!" 아이언맨은 그리고 마스크를 벗은 피터를 바라보았지, 젠장, 스티브 로저스 이전에 스파이더맨의 정체가 노출될줄이야. 그것도 스스로. 버키반즈와 피터로저스 사이에도 이런 끈끈함이 있는 줄을 눈치채지 못했던 내가 바보다. 아이언맨은 어쨌거나 피터의 어깨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어 피터는 금방이라도 버키에게 뛰쳐갈 것 같았고, 그건 안될말이었으니까.

 "버키 반즈!"

 스티브가 울부짖는 목소리로 버키의 이름을 불렀어. 버키는 반응이 없었지.
 그리고 낮은 침묵 너머로, 느릿하게 움직이던 새카만 눈동자가
 캡틴 아메리카의 얼굴에 박혔어.

 "...캡틴 아메리카."

 "......"

 스티브는 숨을 멈추었지. 그 눈을 알고있다. 저런 눈을 한 자들이 언제나 캡틴 아메리카의 적이었으니까.
 버키 반즈는 살인자의 눈을 하고 있었어.

 "...다음엔 널..."

 "...버키...:

 그리고 버키는 언제 흐느적거렸나는 듯이 재빨리 캡틴의 어깨를 치고 박차고 나갔어 피터가 미처 버키의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온몸으로 창문을 산산조각 내며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지 와장창창! 창문이 깨어지면서 파편이 튀어올랐어 캡틴은 방패로 조각을 막았고 아이언맨은 자신의 몸으로 피터를 막아주었지 피터는 발버둥쳐 아이언맨에게서 떨어져나간 후 박살난 창문으로 달려갔어, 어둠속에서 길위에 착지하여 빠르게 달려나가는 버키 반즈를 아주 잠깐동안 본 것 같았지. 하지만 그는 정말 빠르게 사라졌어. 피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창문아래를 하염없이 바라보았지. 피터의 뒤에서 고개를 숙인 채, 스티브는 숨을 고르고 있었어. 토니는 스티브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았어, 보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못했지.

 "...그에게 네가 누구인지 말했어?"

 "...당연히 말하죠. 오랜만이라서... 날 못알아봤나봐요. 난 어릴때랑 하나도 안변한줄 알았더니."

 스티브는 후, 하고 웃었어.

 "하나도 안변했어. 피터. 넌 그대로가 맞아. 버키가 그대로가 아닐뿐이지."

 "......"

 "너에게 미리 말해둘걸 그랬구나. 내가 정말 어리석었다. 피터. 버키 반즈는 지금 우리가 알고있던 그시절의 버키 반즈가 아니야. 그의 코드네임은 윈터솔저. 금세기에 존재하는 모든 암살자의 꼭대기에 있는 사악한 존재다."

 그리고 스티브는 최악에서도 가장 최악의 그 고백을 두번째로, 해야했어.
 이제 내친구 버키 반즈는 없다는 그 최악의 말을.
 

 

 

 

 

<5>

 

 아주 긴 샤워를 끝마치고 피터가 머리에 수건을 걸친채로 비적비적 샤워실에서 걸어나왔어 피터의 두 눈이 아주 퉁퉁 부어있었지 그리고 불퉁한 입술 상기된 두뺨, 머리가 정리가 되지않아 한층 더 어려보이기까지 한. 토니는 저도모르게 풋하고 웃으면서 피터의 아직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마구 닦아주었어. "다 울었냐 꼬마야?" "에이씨. 하지마요. 아직 한참 더 울 수 있단 말이에요."그러면서도 머리를 닦아주는 토니의 손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얌전하게 머리를 내맡기며, 피터는 또 코를 훌쩍였고 토니는 그런 피터에게 안쓰러움을 느꼈지. 그둘을 의자에 앉아 바라보면서 스티브는 무표정한 얼굴에 아주 가볍게, 미소를 지었어. 미소라니, 저 둘의 저런 장면을 이렇게 평온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올거라고는 정말로 단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스티브는 두근거리는 자신의 가슴을 꾸욱 누르며 많이 닮아있는 두사람의 장면을 눈 안쪽에 새기고, 또 새겼지. 정말 고마워. 누구에게 하는 감사의 인사인지는 스티브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 되풀이하여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심정이었어. 둘을 바라보며 평온하게, 이렇게 평온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스티브는 그 무엇보다도 가장 행복했어.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행복하니까.
 이렇게도 마음 편안히 행복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버키.
 자네는 내몫이겠지.
 내가 짊어져야할.

 피터는 수건을 내려놓고 스티브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어. 토니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그 두사람을 보고 있었고. 피터가 퉁퉁 부은 눈으로 스티브를 바라보았지. 스티브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어.

 "버키삼촌은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이용당하고 있는거예요."

 "그래.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약물중독을 만들어놓고, 과학기계로 전신개조를 당했을거라고요. 그 팔 보셨죠? 게다가 정신상태도. 분명 기억조작을 당한 채 세뇌를 받았을거예요. 살인머신으로 만들어버린거라구요 나쁜놈들이."

 "그래. 맞아."

 "...그래도 캡, 캡틴. 캡. 전혀 우리가 모르는 버키 반즈인게 아니에요."

 "......"

 "나 봤어요. 한순간이었지만 그가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오는 걸 봤다구요. 버키삼촌이 내 이름을 불렀어요. 날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
 
 "캡. 그를 살려주세요. 그를 도와줘요."

 "...내가 하려던 게 바로 그거다."

 스티브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리고 아직 젖어있는 피터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귀뒤로 그의 머리를 쓸어넘겼지. 스티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널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거야. 스티브는 피터의 뺨을 한 번 쓸어넘기고는 그 뺨위에 키스했어. 아주 부드럽게, 아주 가볍게.

 "토니. 피터를 지켜주게. 스타크타워에 데리고 가서 한동안 같이 지내줘."

 "물론 그렇게 할거야. 하지만 캡시클, 말을 잘못했어. 피터와 둘이서는 안 가."

 "토니."

 "갈때는 셋이 함께야. 너도 같이 같이 스타크타워에서 지내겠다고 말해, 스티브 로저스.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어벤저스 전체를 끌고와서 이 브루클린의 좁은 아파트에 새본부를 차리고야 말테니."

 "토니..."

 "이봐, 스티브. 시치미 떼지말자구. 자네가 본 걸 내가 못봤을리가 없잖아. 게다가 나 역시 들었다구? 그가 말하는 걸. 그의 다음 타겟은 바로 너야."

 "......"

 "스티브 로저스.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저의 새 암살타겟이 바로 너라구."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 내가 널 여기에 두고 피터와 둘이서 가버릴 것 같아?" 토니는 노골적으로 스티브를 질책했어. 스티브가 피터만을 보호하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너무 뻔했지, 자기만 여기남아 윈터솔저를 끌어들이겠다는 그런뜻 아니겠냐구. 스티브는 토니를 바라보며 모호하게 웃었고, 토니는 그 웃음이 정말로 마음에 안들었어. 피터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지. 이런 제기랄. 저도모르게 욕을 내뱉었어. 그러니까 윈터솔저는 암살자고, 그 암살자가 다음타겟으로 캡틴 아메리카를 지명했는데, 그 윈터솔저는 그러니까 버키 반즈이고, 그렇기 때문에 캡틴아메리카-스티브는 그를 구하려고 노력을 해야하는데, 버키는 그를 구하려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는 그런 거잖아. 피터는 쾅하고 책상을 내리쳤어. "취소! 방금 내가 캡한테 한 말 다 취소해요! 없었던 걸로 해줘요 캡."

 "토니. 미안한데 캡틴 데리고 가줘요. 칭칭 묶어서라도 그를 스타크타워밖으로 못나오게 감시해줘요. 내가 여기 있을게요. 이 아파트에서 삼촌을 기다리겠어요. 내가 그를 구할테니까 무슨수를 써서라도,"

 "피터. 무모한 소리 하지 마라."

 "무리한 소리 하나도 아니에요! 나도 할 수 있어요. 캡,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능가한다구요, 나의 능력은,"

 "두사람 다 당장 잔말말아, 잔말말고 전부 다 따라나오란 말이야. 반항하면 나야말로 어벤저스를 이리로 총출동시키겠어."

 "그건 안 돼! 버키 반즈가 낌새를 알아채고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네. 그럼 그를 영영 잃을수도 있어. 토니, 가만있게. 지금부터 내가 스파이더맨을 설득하겠네."

 "하지만 캡-" 그러나 스티브는 토니의 입을 막았지. 토니는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물었어.

 "피터. 넌 강하지 않다."

 "...!! 스티브!" 피터가 거의 울상이 되었어. 스티브는 냉정했지.

 "넌 약하다. 그걸 인정해야만 한다."

 "아니, 결코 그렇지 않아요, 난 절대로,"

 "나보다 강하지 않으면 윈터솔저는 이길 수 없어."

 "우...."

 "스파이더맨.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강해질 수 없어."

 "젠장!!"

 피터는 다시 한 번 책상을 내리치고 집밖으로 뛰쳐나갔어, 토니는 당황했지만 스티브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생활의 한토막인 것처럼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올렸지. "..준열하신 아버지로군?" 토니의 말에 스티브는 피식하고 웃었어. "멀리 안갈거야, 마음약한 아이니까. 내가 하는 말도 무슨 말인지 다 이해하고 있을거고. 자네도 따라가게, 토니. 저 아이를 부탁해." 토니는 고개를 저었어. "그를 설득했는지는 몰라도 날 설득시키긴 어려울거야. 캡. 자네도 같이 가지않으면 난 안갈거니까. 허튼생각 꿈에도 하지말라구." "내가 무슨 허튼생각을 한다는건가?" "몰라! 그 속을 누가 알아?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지 윈터솔저에게 뭘 어떻게 할려고 그러는건지! 하여간 난 셋 다 같이가 아니면 안가, 그뿐이야!"

 스티브는 웃었어. 웃으면서 토니의 어깨를 내리쳤지.

 "이보게. 토니. 나는 캡틴 아메리카야.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의 깃발이 어떤 바람을 타고 펄럭여야만하는지를 나는 잘 알고있어. 다름아닌 정의. 오로지 그 별 하나뿐이지."

 "내가 그것을 기억하는 한, 나는 여전히 캡틴 아메리카라네. 그리고 그 이름 아래 패배란 것은 존재하지 않아."

 "...자네가 나에게 해준 말또한, 퇴색되지 않는한은, 영원히 날 지탱해줄 것이고,"

 "그래서 자네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때문에라도, 난 결코 캡틴 아메리카가 할 행동 외의 것은 하지 않을거라네."

 "그러니 날 믿고 가주게, 토니. 그 아이를 지켜주게. 토니."

 스티브의 빛나는 말 앞에서 토니는 더 버틸 수가 없었어. "...넌 나쁜놈이야. 캡." 그 말만을 겨우 했지. "아, 나도 알고있네. 토니." 스티브는 웃었어. 그 아름다운 얼굴을, 무슨 방법이 있을까, 영원히 기억하는 것 외에.

 

 

 

<6>

 

  버키는 모두의 추측대로 세뇌당한 채 빌런에게 이용당하며 암살자로써 사람을 죽이고 있었지만, 가끔 세뇌당하기 전의 버키 반즈가 튀어나오곤 했어. 엄청나게 조사하여-캡틴 아메리카의 정체가 스티브 로저스라는 것을 알게된 빌런이 윈터솔저에게 명령하여 이번에는 그를 암살하게 시켰고, 버키는 빌런이 시키는대로 브루클린의 아파트를 찾아갔지. 그리고 그 아파트에서 버키는 스티브와 피터가 함께 웃고있는 사진을 본순간 갑작스럽게 과거가 떠올랐고 엄청난 어지러움과 함게 혼란을 느끼게 되었어, 말하자면 버키의 머릿속에서 윈터솔저와 버키반즈가 싸워대고 있는거였지. 버키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 친숙한 얼굴들을 떠올리고 있었고 윈터솔저는 그들은 단지 다음타겟일뿐이라고 되풀이해 생각했고 그 상반되는 상념들이 머릿속에서 부딪혀 버키반즈의 육체를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어.

 빌런은 아파트에 갔다가 돌아온 뒤부터 자꾸 정신이 왔다갔다하는 버키 반즈의 몸을 다시 기계에 넣고 재교육을 시키기 시작했어, 다른생각을 일체 못하게끔 완전한 윈터솔저로 다시 세뇌를 시킨거였지. 끔찍한 전자파속에서 비명을 내지르며 버키 반즈는 굵은 눈물줄기를 흘렸어. 머릿속이 넘어가는 페이지처럼 한장씩 한장씩 추억을 넘겼지. 임신한 멸팁이 막 병실에서 나오는 모습, 태어난 직후가 꼭 원숭이를 닮았던 피터, 피터의 너무나 작디작았던 손, "이자식은 왜 널 하나도 안닮은거야?"태어난 피터를 품에 안은 채 그렇게 말했던 버키와, 그런 버키를 향해 활짝 웃던 스티브. 스티브가 슈퍼솔저가 되기전에 피터와 함께 살았던 그 보석같던 나날들. 몰라보게 달라진 슈퍼솔저, 스티브와 피터와 셋이서 함께 갔던 피크닉때의, 투명한 구름조각들.

 스티브.
 피터.

 스티브.
 널 죽이고 싶지 않은데.
 날 용서해줘. 용서해줘.
 용서해.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났지.

 그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고, 버키 반즈는 다시금 더욱 완벽한, 윈터솔저로서 다시 눈을 떴어. 다시 눈을 떴을때는 이미 뺨을 가로지르는 눈물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난 후였지. 윈터솔저는 무감정하게 눈물을 닦았어. 다시 눈을 뜬 그는 기억을 잃은 윈터솔저가 아니었어, 모든 것을 기억그대로 가지고 있는, 그러나 감정을 잃어버린 생물이었지. 그는 스티브 로저스도, 캡틴 아메리카도, 피터 로저스도 기억하고 있었어. -그리고 피터 로저스가 스파이더맨이라는 것도 이제는 알고 있었지. 그는 스티브가 어떻게해서 피터를 낳았는지도,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 기억이 윈터솔저에게 어떠한 감흥을 주었느냐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어. 윈터솔저는 단지 기억이 있을뿐인 감정이 없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그에게 남은 그 기억은 그저, 윈터솔저의 다음 암살의 타겟으로 정해진 '캡틴 아메리카'를 말살시키기에 이용하기 좋은 도구일뿐. 윈터솔저는 캡틴 아메리카를 향해 달려갔어. 그를 죽일 가장 적절한 방법을 사용할 예정이었지. 그건 윈터솔저가 갖고있는 파워도 능력도, 기술도 아니었어. 그것은 바로 피터 로저스였어.
 

 

 

<7>

 피터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어 몇번이고 스타크타워를 벗어나려고 했고 그럴때마다 자비스에게 저지당했지 피터는 굉장히 화가 나 발을 동동 구르면서 몇번이고 몇번이고 자비스의 모니터얼글을 향해 거미줄을 쏘아댔어 토니가 참다참다 그의 머리에 꿀밤을 내리칠때까지 그 짓을 반복했지. "대체 몇일째야 이녀석아!! 이제 어지간히 참을줄도 알아야지!" 4일, 5일, 스타크타워에 벗어나지도 못하고 갇힌 채 시간만 자꾸 흐르니 어지간히도 미칠 것 같은 노릇이었고, 솔직히 토니도 피터의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노릇이었어, 피터를 지키는 방법으로 이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을 찾을수도 없었고. 브루클린의 아파트에는 여전히 스티브 로저스가 살고 있었고 쉴드의 감시같은 것도 일체 없었지 스티브가 감시체제를 내리지 못하게 막은 거야, 그가 눈치채면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버린다면서. 스티브는 평소처럼 아침에 나와 그의 시민신분-'스티브 로저스'는 안팔리는 일러스트레이터였어-에 맞춰 공원이나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고 저녁에 귀가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듯 했어. 그리고는 일정한 시간때마다 스타크타워쪽으로 전화를 했지. 그 스티브의 전화가 유일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연결점이었지. 피터는 그 스티브의 전화를 매번 간절하게 기다렸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토니도 마찬가지였고.

 "토니. 날세. 오늘도 별 일 없었네."

 "늦었어! 캡시클!"

 "아... 3초, 3초늦었네. 자네도 참."

 "사람 말릴 일 있나! 진짜 못살겠군. 왜 gps추적도 하지 말래!"

 "윈터솔저, 버키반즈의 뛰어남은 내가 가장 잘알아. 잔말말고 내가 시키는대로 하게. 피터는?"

 "제길. 오늘도 일곱번의 탈주끝에 자비스의 2번 3번 모니터를 박살내고, 내가 아끼는 조형물이랑 가구랑 크리스털잔이랑 다 깨먹었어."

 "그래? 잘지내고 있는 것 같군. 그빚은 전부 다 피터 로저스 이름으로 올려줘. 난 죄 없으니까. 자기 빚은 자기가 짊어져야지."

 "아 안뜯어먹어! 너희같이 가난한 애들 벗겨먹어서 무슨 광명을 찾으려고! 피터! 와서 전화받아!"

 

 "틱틱대긴." 스티브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게 토니의 기분을 더욱 망쳤지. 이런 심각한 상황에 왜 웃고 난리야 이 망할 늙은이가.

 그리고 피터가 달려와서 전화를 받았는데, 언제나처럼의 대화가 이어지기에 평소도 피터가 캡틴 바보! 같은 소리를 하며 쾅하고 전화를 끊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길더군, 그리고 피터가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티브의 말을 계속 듣고 있는 거였어. 토니는 고개를 돌려 피터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몇분이고 계속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 응응, 하는 피터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면서 이윽고 조용히 눈물을 한방울씩 떨구는데, 토니는 말을 잃고 자신의 턱을 쓸어내렸어. 제길. 또 무슨소리로 애를 울리고 있는거야. 유언같은 거면 진짜 죽여버릴거야. 망할 캡시클. 토니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어. 그를 좋아하게 되고 나서부터는 되는 일이 진짜 하나도 없었어. 나쁜 캡시클. 망할 캡시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뻔한 함정의 길로 뛰어들면서도 뒤에 남은사람을 향해 웃음짓는.

 우린 그런 거 바라지 않아. 목숨바쳐 지켜주길 바라지 않아.
 뒤에 남겨놓고 혼자서 걸어가는
 그런 건 절대 바라지 않는단 말야.

 옆에 웃어주고 있는 편이
 훨씬 나은데.

 왜 그걸 몰라. 너는.

 토니는 손을 뻗어 피터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갑작스런 토니의 따뜻함에 결국 피터가 오열했지. 수화기 너머의 엄마의 목소리가 조곤조곤히 이어지는데, 피터는 그저 스티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응, 응을 되풀이하는 수 밖에 없었어. 스티브는 자신이 하는 긴 말을 전부 응응하며 들어주는 피터를 향해 "착한 아이다."라고 칭찬해주었어. 착한아이야. 네가 내 아들인 것이 정말 너무 좋았어. 스티브는 웃었어.

 "엄마라고 불러줘. 피터. 정말 오랫동안 듣질 못했어."

 피터가 눈물을 닦았어. "안...돼, 옆에 토니있어."

 "그 말 토니가 들으면 상처가 될거야. 이제와 그사람이, ...그런걸로 우리에게 상처를 줄 리가 없잖아."

 피터는 토니가 더욱 자신을 꼬옥 껴안아주는 것을 느끼며, 스티브의 목소리가 들리는 전화기를 꼬옥 붙잡았어. 눈물이 더욱 떨어졌지.

 "흑... 엄, 엄마...."

 토니는 눈을 깜빡였어.
 피터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지금 뭐라고 했어?
 피터는 다시 한 번 내뱉었지. "엄마...." 그렇게.

 

  

 

 

 

<8>

 

 피터에게 엄마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 십수년 만이어서.. 스티브도 순간 가슴이 뿌듯해져 눈물이 흐를뻔했어. 곧 전화를 끊고, 스티브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어. 이제 어떻게 되어가든, 스티브는 흐르는대로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일거라고 생각했어. 피터가 토니에게 무엇을 어떻게 설명하든, 토니가 사정을 어디까지 알게되든... 스티브는 그 모든 것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리라고, 마치 윗물이 아랫물로 흐르듯이 말이야. 단지 모든 것을 알게된 토니가 너무나 괴로워하게 될거라, 그점은 안타까웠기 때문에 가능하면 아무것도 모르길 바랬었지만.. .그래도, 피터한테는 정말 꼭 한 번 다시 듣고싶었거든. 엄마라고. 그건 양보할 수가 없었어. 토니에게는 정말로 미안하지만.

 전화를 끊자, 어둠속에서 일렁이며 윈터솔저가 걸어나왔어. 사실은 아까부터 눈치채고 있었어, 그가 거기에 서 있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꼭 피터에게 엄마소리가 듣고싶었던 거고. 스티브는 가만히 선 채로 다가오는 윈터솔저를 바라보았고, 윈터솔저는 지난번 만났을때보다 훨씬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지. 완전히 세뇌를 당했구나. 스티브는 쓸쓸하게 웃었어.

 "...네가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

 "진작에 알았더라면. 좀 더 빨리,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이제와 아무소용없는 이런 말외에, 도저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어..."

 "......"

 "윈터솔저. 나를 기억하나?"

 푸른 눈동자, 금색의 머리칼. 윈터솔저는 표정없이 고개를 끄덕였지.

 "스티브 로저스. 너를 죽이면 캡틴 아메리카도 죽지. 캡틴 아메리카가 죽으면 나의 임무도 완수된다."

 "그래. 그렇지."

 "그리고 난 캡틴 아메리카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있다. 결코 쉽게 죽이지 못하리란 것도."

 "그래서 무슨 방법을 취할건가?"

 "하지만 스티브 로저스의 약점을, 나는 알고있다."

 "...너가 알고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윈터솔저. 나는 그 모든 것을 버키에게는 알려주었었지."

 "왜냐하면 버키는 나의 둘도없는 친구이니까."

 "그건 결코 네가 아니야."

 "버키 반즈가 바로 나다."

 "아니. 넌 버키 반즈가 아니야."

 "결코 그 청렴했던 사내가 될 수는 없어. 너따위는."

 그리고 스티브는 윈터솔저의 얼굴을 바라보았지. 그래, 자기 눈앞의 윈터솔저는 버키 반즈일 수 없는 존재였어. 그는 절대 버키 반즈가 아니었지. ...그러나, 그럼에도, 역시 그가 바로 그이기 때문에. 윈터솔저가 바로 버키 반즈였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스티브 로저스는 결코, 그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를 놓을 수가 없었다. 그를 구해내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지?
 토니.
 그게 바로 캡틴 아메리카지?

 단 한사람의 마지막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내 결국은 구해내고야 마는
 그런 게 바로 우리들의 캡틴 아메리카이지?

 "선택해라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인지, 피터 로저스인지."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하려는거야.
 너의 캡틴 아메리카를 위해. 너를 실망시키게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9>

 

 "엄...마라고?" 처음 엄마소리를 들을때는 역시 토니도 적잖이 혼란스러워했지만 곧 피터의 걱정과는 다르게 "엄마거나 아빠거나 뭐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지. 어쨌든 가족인거잖아."라면서 쿨하게 로저스네 가계문제를 받아들였어. 토니는 솔직히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다 싶었어, 어차피 스티브와 피터는 피가 통하든 통하지 않든 그런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토니도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엄마라는 것을 숨긴 것에 대해서도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고 말야, 어쨌든 스티브는 캡틴 아메리카이고 피터가 스파이더맨인데, 그 어마어마한 스캔들을 어떻게 감당하겠어 그냥 비밀로 하는 편이 훨낫지. 토니는 둘이가 모자관계고 어떻고 하는 것보다 그 사실을 윈터솔저, 버키 반즈가 알고있다는 쪽에 훨씬 더 신경이 갔어. 그 사람이 진실을 알고 있다면 대체 지금 위험도가 얼마나 높은거냔 말이야, 하면서.

 피터는 전혀 변하지 않은 태도의 토니가 고마웠어. 피터는 자신이 가지고 온 짐에서 아주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냈어. "내 보물이에요. 특별히 토니에게만 보여줄게요." 토니는 그 사진을 받아들였어.

 사진에는 담요에 둘둘 말아놓은 이제 막 태어난 듯한 아주 작은 피터가 찍혀있었어. 그리고 그 작은 피터를 조심히 품에 안고있는 안색이 나빠보이는 마른 멸팁과, 그 멸팁의 어깨를 끌어안고 있는 버키. 이렇게 셋이 찍혀있는 사진이었지.

 그래. 피터를 안고있는 것은 바로 멸팁이었어.

 토니는 드디어, 드디어, 멸팁과 재회하고 말았던 거야.


 토니는 처음에는 멸팁을 알아보지 못했어. "...? 이게 누구야? 왜 이사람이 널 안고있어?"

 토니의 반응에 피식하고 웃으며 "우리 엄마예요. 캡틴. 사실은 이사진도 진짜, 진짜 비밀인건데." 캡틴은 왠지 토니에겐 괜찮다고 하는 거 같으니까, 라고 하면서 피터는 말을 이었어. 토니는 슈퍼솔저 혈청 프로젝트에 관해서도 듣게되었지.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 이전의 멸팁의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나서야, 지금의 스티브 로저스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확실히 얼굴에 닮은점이 있었거든, 상당히 다르지만 근원은 같은 얼굴인 것을 알게되었지. 원래 캡틴이 이랬단말이야? 정말 못믿겠군... 그렇게 생각했어.

 그러다가 어느순간... 정말로 어느순간, 토니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지.
 꼭 이사람을 알고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어.

 아니, 아니아니
 '스티브 로저스'로써 알고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이전에 이미
 꼭 멸팁을 이미
 알고있다는 바로 그런 느낌.

 그래, 알고있어. 나는 이 남자를 알고 있어.
 토니는 저도모르게 손가락을 떨었어.

 "...피터. 미안한데, 나 이거 좀 잠깐 빌려주지 않겠니. 확인할게 있어..."

 "? 뭐 상관은 없지만, 꼭 돌려주기예요. 내 보물이라고 분명히 말했어요."

 "그래, 알았어. 알았어..."

 "?"

 배아래가 싸해지고, 마치 한참전에 얻어맞은 부위가 이제와 욱씬거리며 아파오는 것 같은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정확하게 풀리지 않는 기분을 느끼며, 토니는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지. 멸팁의 얼굴에서.

 

 

 

 

-3-

 

<1>

 

 토니는 멸팁의 사진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어 피터에게 사진을 받은 이후로 계속 자기 랩실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고 사진만을 쳐다보고 있었지. 이 멸팁의 얼굴이 왜 계속 토니의 심장을 쿡쿡 찔러대는건지 토니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리고 토니는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지, 토니는 지금 왠지모를 죄책감을 계속 느끼고 있었어. 멸팁의 얼굴에. 자기가 알고있는 스티브 로저스와는 도저히 =로 이어지지가 않는, 이 흐릿한 인상의 허연 청년에게. 토니는 사진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저도모르게 "스티브 로저스, 스티브 로저스..."를 중얼대었어, 내가 대체 이 얼굴을 언제본거지? 이 얼굴의, 스티브 로저스를, 금발의... 금발.

 금발?

 "....스티브 로저스..."

 그때 랩실의 문이 열리고 토니의 보디가드 둘이 뛰어들었왔어 "토니! 큰일났어요, 지금 브루클린의 아파트에서 폭탄이 터졌다는 정보가!"토니는 사진을 든 채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있었어, "뭐?" 브루클린의 아파트가 폭발해? 그 망할 캡틴이. 또 혼자서 멋대로 일을 벌인거구나. 토니는 마치 자신을 객관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그래, 갈게."라고 내뱉었어, 자기 입이 움직여 그렇게 내뱉어지는 건데도 꼭 타인이 명령하여 말을 내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 앞으로 걸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였어, 손, 발을 움직이는 것도, 완전히 허공에서 자기자신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지. 토니는 눈을 깜빡였어. 그리고 보디가드들을, 자기가 이십대였을때부터 쭉 따라붙어있는-이제는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에겐 직함에는 아무의미가 없고, 단지 가족이라는 형태가 되어버린-그들의 얼굴을 번갈아보았어. 그리고 그때 불쑥, 토니는 두 사람에게 질문을 해. 그건 변덕이었을까? 아무의미없이 그냥 불쑥 내뱉어버린 것일까? 글쎄, 토니도 알 수 없었어. 그때의 기분을 굳이 설명하라고 한다면, 그냥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을뿐, 이란 말 뿐.

 토니는 가는 길을 멈추고 쥐고 있던 사진을 보디가드들을 향해 뻗었어.

 "혹시 두사람, 이 얼굴 본 적 있어?"

 왜 그랬던걸까?
 그건 변덕이었을까?

 아무의미없이 그냥 불쑥 내뱉어버린 것이라면,
 결국 아무의미도 없는 것
 그냥 모르는 척 넘겨버리고 넘어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보디가드들은 토니의 손에 들려있는 사진 속 얼굴을 쳐다보았고, 둘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어. 그들은 망설일 시간이 없었어, 브루클린의 상황이 심각해서 피터가 거의 폭주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걸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이언맨뿐이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시간을 끌만한 여유가 없었단 말이야. 그래서 둘은 왜 토니가 이제와서, 이십년도 거의 다되어가는 옛날이야기를 끄집어내려하는건지 감정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심플하고 깔끔하게 이 이야기를 정리해버리기로 한거였어. 토니에게 답을 빨리 주기로 함으로써.

 "토니. 지금 기억이 난거예요? 근데 왜 하필이면 지금. 이남자 그때 그 남자잖아요. 대학졸업식날의 그."

 "토니가 약을 먹어서 어쩔 수 없이 덮쳤던- 그때 그."

 "......"

 토니는
 눈을
 깜빡였어.

 기계처럼.

 순간 아무것도 느끼지를 못했는데, 백지장이 되어버렸다기보다는
 오히려 시커먼 웅덩이에
 풍덩
 빠진듯한 기분이었지.

 아주 천천히, 아주아주 천천히 오감이 돌아오는 서서히, 토니는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는 거미다리와같은 감촉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머리를 거대하게 내려치는 커다란 해머같은 것이
 머릿속에 콰앙! 하고 부딪혀 오는 것을 느꼈어.
 엄청나게, 콰앙.
 

 

 

<2>

 

 토니는 자리에서 우뚝 선 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어. 토니? 선두에 나간 보디가드들이 갑자기 멈춰선 토니를 뒤돌아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지. 토니는 대답하지 않았어, 사실은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지. 모든 신체의 기능이 다 닳은 것처럼 한꺼번에 멈춰버렸어. 토니는 상대방의 말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고, 자신이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사실도 꼭 잊어버린 것만 같았지. 토니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어, 흐릿하게 번지는 손바닥의 주름과 주름사이에서 과거가, 과거가 서서히 피어올랐어. 아 왜 눈, 두 눈만은 이렇게 선명할까. 아니, 눈에 비치는 상이 선명한 것이 아니었어 그것은, 꼭 손바닥에서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던 과거는 사실은 토니의 생각속에서 서서히 선명해지고 있는 거였으니까, 시력과는 상관없었지. 그래, 지금 토니는 아주깊은 과거, 거의 잊었다고 스스로 생각했을정도로 아주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과거가 한꺼번에 떠오르고 있는 상태였어. 그 과거가 토니의 머릿속을 전부 다 장악하였지.

 그날의, 어지러웠던 음악. 귓속까지 쾅쾅 울리게 만들었던 국적불명의 음악.
 클럽에 꽉 들어찬 사람들의 피부냄새와 탁한 공기의 냄새.
 혀끝과 코끝에 닿았던 술맛.

 토니는 그리고 어둡고 좁은 방, 차가운 소파위에서 자기가 강제로 안았던 남자의 왜소한 체구를 떠올렸어.
 남자의 여린 피부에 손톱을 세웠던 손톱끝의 뜨거운 체온도 떠올렸지.
 토니가 강제로 안은 어깨가 여자보다도 더 좁았던 것, 갈비뼈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가죽밖에 없는 여린 몸을 억지로 집어들어 다리를 벌리게 했던 것,
 그 모든 것이 생각났어.

 "아... 나...."

 토니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부들부들 떨었어. 팔, 다리 할 것없이 전부 다 한꺼번에 바들바들 떨렸지. 금방이라도 몸이 고꾸라질 것처럼 허리가 숙여졌어. 토니는 마비된 것처럼 저려오는 혀를 간신히 굴려 중얼였지. "나... 내가.... " 내가. 내가 그랬어. 내가 그 작은 몸을 비틀어서 강제로 쑤시고 되는대로 흔들었었어. 반항하기에 손목을 꺾고 사납게 등을 깨물며 목을 짓눌렀어. "내가... 내가 그를..." 그가 비명을 지르다, 목이 쉬어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을무렵에는 흐릿한 눈동자를 한 채, 내 목에다 두 손을 두르고 나에게 억지로 매달렸지, 그야말로 간신히 없는 힘을 간신히 쥐어짜서는. 눈물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눈동자를 핥으면서 나는 그의 뼈가닿는 부위의 여러군데를 손으로 더듬어가고있었어. 혼자의 성욕에 취해.

 "내가..."

 왜!
 왜?
 왜.

 그리고 토니는 울었지.
 기나긴 눈물이 토니의 뺨을 한가운데로 가로지를 때까지
 눈물은 끊기지 않고 주르륵 흘러내렸어.



 내가.
 내가 그를.

 "으흑..."

 토니는 타워의 대리석 바닥에 주저앉아 그대로 머리를 내리박았어 그리고 두손으로 머리를 잡아당기며 오열했지. 내가. 그를. 토니는 이제 알았어. 토니는 이제 모든 것을 깨달았어. 자기가 그에게 한 짓을 모든 것을 기억해냈어. 토니는 꺽꺽대면서 대리석바닥을 쾅쾅내리쳤어. 그가 날 미워하던 이유도 잘 알았어. 그가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던 거야. 날 미워하던 것이 당연했어. 나에게만. 나만. 나를 미워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으허허엉... 으허엉.."

 그에게만은 미움받고 싶지 않았는데.
 난 정말로, 그에게만은 미움받고 싶지 않았어.

 그는 날 용서해주지 않을 거야.
 영원히 날 용서해주지 않을 거야.
 용서를 빌수도, 바랄수도 없겠지.

 그의 옆에 있는 것조차도 사실은 무리였던 거야.
 그것조차 바래서는 안됐던 거야.
 난 그렇게
 그에게
 고통만 주는 존재였던 거야.

 토니는 오른손이 피에 물들어갈때까지 대리석 바닥을 내리쳤어 보디가드들이 당황해서 토니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켰어 "토니! 토니스타크, 대체 지금 뭐하는겁니까? 갑자기 왜이래요 줄끊어진 인형마냥!!" 토니는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그저 엉엉 울었고 눈을 감은 채로 마구 두 손을 휘저었어 토니는, 토니는 정말이지 감당을 하고싶지 않았어. 이 사실을 감당할 수가 없었어. 이런 고통을 마주할 준비따윈 되어있지 않아, 이런 일은 영원히 오지않아도 되는거잖아. 이젠 그의 옆에 있을 수가 없어. 있을 방법이 없어. 그러나 설사 옆에 있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고통이 되는 사람이었던 거야, 나라는 사람은. 토니는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었어. 누군가가 차라리 단숨에 숨통을 끊어주길 바랬어. 토니는 마구 손을 휘저으며 보디가드들의 어깨를 내리치고 밀쳤어. 토니에게 밀려가면서 보디가드가 이를 뿌득 갈았어. 그는 토니의 어깨를 움켜쥐고 더욱 강하게 소리쳤어.

 "토니 스타크!!! 이럴 시간 없다고요!!! 캡틴 아메리카가 잡혀갔단말입니다!!!!"

 "....!!!!!!!"

 그리고
 토니는
 눈을 번쩍
 떴지.

 아주 짧은 침묵이 빛이 반짝이는 것처럼 스쳐지나갔어.

 "...브루클린이 어떻게 됐다고?"

 다시 입을 연 토니의 목소리는 잠겨있었지만 눈물기는 하나도 없었어. 얼굴은 여전히 눈물범벅이었지만. 보디가드가 이를 갈았지. "폭탄이 터졌다고 했습니다. 어서 가서 확인해주세요, 아이언맨."

 "...캡틴. 캡틴은 구해야 해."

 "네. 구해주세요. 아이언맨."

 "......"

 캡틴.
 스티브.

 토니는 스티브 로저스를 생각했어. 토니가 아는 스티브를.

 왜?
 날 미워하는 너인데, 왜?
 스티브.

 왜 그때 웃어주었어? 

 왜 그때 어깨를 두드려주었어?
 왜 그때 함께 걸어주었어?

 스티브.
 어떻게?

 어떻게 나에게도 그렇게 웃어주었어.
 그런 얼굴로.


 토니는 아랫입술을 잘근씹으며 얼굴을 닦았어 손에 피와 눈물과 땀같은 것들이 범벅이 되었지. 토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벤저스 회의실로 향했어. 달려가는 와중에도 계속 스티브가 떠올랐어. 스티브, 날 미워하고 있을 너일텐데, 어떻게 그렇게 웃어줄 수 있었던거야. 토니는 스티브가 웃는 얼굴외엔 기억이 나는 것이 없었어, 단 한번의 슬펐던 얼굴도, 미워하는 얼굴도 본 적이 없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거지. 스티브. 제발, 나에게 가르쳐줘. 어떻게 웃어줄 수 있었는지, 나에게 말해줘.

 한번만 더
 웃어줘.
 나를 향해서.

 제발.

 

 

<3>

 

 피터의 광적인 난리를 어벤저스들이 간신히 말리고 있는 찰나에 수트를 입은 아이언맨이 도착했어 "아이언맨!!!"피터가 목이 찢어져라 울부짖었지. 토니는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듯했어 수트안쪽에서 토니는 꼭 멀미라도 하는 것처럼 가슴이 울렁대는 것을 느꼈지 비지땀이 주르륵 흘러 수트안이 흥건할 정도였어. 해머를 꽈악 닫은 채 아이언맨은 해머안쪽에서 입술을 꽈악 깨물었지 입안에서 피가 고일정도로. 피터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족족 가슴이 쾅쾅쾅쾅 안쪽에서 망치질을 해댔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어, 이 모든 것은 전부 나중일이야, 캡틴을 구하는 것이 먼저라구. 제발 심장아, 그렇게 뛰지마라. 망할! 제발 부탁이니까 진정좀 하란 말이다 망할 몸아, 나중에 전부 한꺼번에 받아줄테니까 오, 제발 지금만은. 토니는 눈을 꽈악 감았다가, 다시 떴어. 바로 눈앞까지 피터가 다가와 있었어, 캡틴에 대한 걱정으로 창백해지고 눈물이 넘친 얼굴을 하고서.

 이 아이는.
 내 아이였어.
 내 아들이었던 거다.

 "괜찮아. 내가 구할거다."

 괜찮아.
 울지마.
 피터.
 내가 구할거야.
 그 사람은 내가 구할거야.
 무슨일이 있어도.
 응? 그러니까...

 "토니이..."

 토니는 간신히 팔을 들어 피터의 어깨에 살포시 올렸다 내릴 수 있었어. 사실은 저도모르게 끌어안아버릴뻔했지만. 토니는 그렇게 두어차례 더 피터의 어깨를 두드렸지.

 "자비스! 상황보고해, 아파트쪽 영상을 띄운다 지금 바로!"그리고 자비스는 모두가 모여있는 어벤저스의 원형테이블 위에 커다란 화면으로 브루클린 영상을 띄웠어 폭발이 일어나기 전 영상서부터 폭발이 난 순간, 폭발이 나고 난 후의 영상까지 빠르게 순차적으로 흘러나왔지. 폭발은 아파트 전체를 집어삼켜 아파트의 지붕부분이 통째로 날아갈정도의 큰 참사였지만 브루클린의 아파트는 쉴드소속의 것으로 사는 사람은 스티브와 피터외에는 없었으니 인명피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단지 그안에는 스티브 로저스, 캡틴 아메리카가 있었지. 그러나 저정도 폭발로 캡틴이 죽었을 리가 없었어, 토니는 자비스에게 빠르게 폭탄의 연기나 영상의 노이즈를 전부 지워버리고 아파트의 창문부분만 확대해 다시 되감기하라고 말했고 자비스는 토니의 말을 빠르게 실천했어. 그리고 어벤저스들은 모두 창문너머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솔저가 대치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어.

 "이런 젠장, 역시 혼자서 상대했군!"

 "제대로 싸우는 것 같지도 않아. 상대가 버키반즈라서? 그런 마음으론 결코 이기지 못하는데, 캡틴..!!"

 어벤저스중 누군가가 그렇게 내뱉었어. 토니는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았어. 스티브가 희미하게 비춰졌어, 어둠너머에서. 아, 그 일렁이는데,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토니는 다시 손가락 끝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어. 스티브. 스티브. 스티브. 감정이 먼저 뛰쳐나가 이성을 마비시켜버릴 것 같았어. 안 돼. 지금은. 지금은 이성이 전신을 지배해야 할 때야, 사고력을 최고로 날카롭게 벼려서 일을 해결해야 할 때라구. 캡틴을 무사히 돌려받아야해.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해야 할때라구. 토니는 간신히 버티고 섰어. 둘이 대치하고 있는 장면이 빠르게 지나갔지.

 그리고 토니는 순순히 방패를 버리는 스티브 로저스를 목격했어 그리고는 윈터솔저에게 두 팔을 뻗었지, 윈터솔저는 그런 스티브의 팔에 강철족쇄를 달고는 그대로 스티브의 복부에 주먹으로 가격했어, 스티브는 앞으로 고꾸라져 기절하였고, 윈터솔저는 스티브를 등에 업었지 그리고는 폭탄을 터뜨림과 동시에 아파트에서 뛰쳐나왔어. 그리고 영상은 끊겨서, 윈터솔저가 어디로 향했는가에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

피 터가 소리쳤어.

 "내가! 내가 버키삼촌을 지켜달라고 말을해서, 싸우지도 않고! 캡틴이 저렇게 질리가 없는데!!"

 패닉상태로 울부짖는 피터의 어깨를 다시 한 번 꽉 움켜쥐고 토니가 머리를 저었어.

 "아니다, 피터. 저건 그런 게 아니야. 일부러야. 캡틴은 일부러 윈터솔저에게 항복했어..."

 "뭐, 뭐라구요?"

 "저건 윈터솔저를 조종하고 있는 빌런의 본부를 알기위해서 일부러 한 행동에 지나지 않아."

 "설사 그렇다해도 저건 너무 무모해요! 혼자서 어떻게 맞설작정이야? 거기다 방패도 없이!"

 "윈터솔저가 방패를 가지고 가지 않았어. 브루클린의 아파트에 그대로 팽개쳐 있을거야. 지금당장 브루클린으로 날아가서 방패를 가져와야겠어. 방패는 캡틴 아메리카와 한몸이나 다름없어. 내가 캡틴의 방패를 손보면서 캡틴과 공명하게 만들어뒀거든. 방패를 사용하면 캡틴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

 그리고 토니는 더 기다리지 않고 날아갔어. "아이언맨!!" 피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 그러나 아이언맨은 뒤돌아보는 일도 하지 못했어, 그럴 시간이 없었지. 그래서 그냥 허공을 날으면서, 밤하늘을 둘로 가르면서, 귓가에 계속 멍울지는 피터의 목소리를 곱씹었어. 괜찮아. 피터. 내가 구할거야. 내가 그를 구해낼거야. 내가, 내가 스티브를 구하고 나면

 아아
 구하고 나면

 구하고 나서도
 난 너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내가 너의 아버지라는, 그런 말은 결코 하지 않고
 그렇게 계속
 너의 옆에 있을거야. 지금까지 처럼, 앞으로도.

 그렇지? 스티브. 그걸 바라는거지? 그것이 벌이지?

 내가 그렇게, 나스스로를 '아버지'라고 밝히지도 못한 채 영원히
' 친아버지'를 저주하고 미워하는 피터 로저스의 옆에서
 단지 좋은 아저씨로 남아 함께 지내는 것이

 

 그 끔찍한 고통속에서

 그렇게 내가 나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지는 형벌인거겠지?

 그렇지?

 토니는 수트안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어.

 "...괜찮아 그정도는, 그정도는 달게받을게. 그고통을 평생 감수하면서 살테니까, 영원히 되풀이하고 살테니까, 제발, 너희들 옆에...." 

 

 



<4>

 

 스티브는 꿈을 꾸고 있었어. 꿈속에 스티브는 멸팁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 스티브는 자신의 손으로 자기가 입고있는 체크무늬의 난방을 쓸어내렸어. 스티브는 스무살때는 언젠자 체크무늬의 난방을 입고 있었지. 아, 그리운걸. 스티브는 웃으면서 체크난방의 소매를 쭉쭉 잡아당겼어. 소매는 손등의 절반을 덥고도 남아 펄럭였어, 그땐 언제나 체격에 맞는옷이 없어서 옷이 후줄근할 정도로 넉넉했었지. 소매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는 이 감각을 잊고 있었어. 스티브는 웃으면서 고개를 들었어. 스티브는 자기가 꿈속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어. 체크무늬의 난방을 입은 자신을 깨달은 순간부터 이미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 주변의 익숙한 풍경은 온통 그리운 향기를 풍기고 있었어. 여긴 대학의 교정이다. 봄이되면 아주 큰 잎이 열리는 커다란 나무의 그림자속으로 파묻히곤 했었는데. 스티브는 언제나 앉아있었던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아래의 벤치에 앉았어. 벤치는 차갑고 부드러웠어.

 아주 멀리서, 토니 스타크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시끌벅적하게 교정을 가로질렀지.

 스티브는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었어.
 그래. 이 정도의 거리에서. 보고 있었지. 자네가 눈에 띌때마다.
 그정도의 거리에서.

 그리고 벤치에 앉아있는 스티브 로저스는 어느새 멸팁이 아닌 '스티브 로저스'가 되어 있었어. 후줄근한 체크난방을 입은 모습이 아닌, 커다란 체격의 자켓을 입고 있는 스티브 로저스로.

 "스티브 로저스."

 토니 스타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너의 목소리가 이렇게 그리울 수도 있었던가.

 "스티브."

 스티브는 웃었어. 그의 목소리를 향해.

 -캡, 캡틴. ...틴, ─캡틴!!!!!

 그리고, 비명처럼 내지르는 토니의 목소리에, 스티브 로저스의 꿈은 갈래갈래로 찢겨나가고
 스티브는 팍, 하고 눈앞에 풍선이 터진 것처럼 한순간에 눈을 떴지.

 캡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상황을 돌아볼 수 있었어, 한쪽벽의 요란한 기계에 고정되어 칭칭 묶인 채로 사로잡혀있는 자신의 모습을. 스티브는 깨어나자마자 머리안쪽에서 느껴지는 둔감한 고통과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고통을 한꺼번에 느꼈어, 복부의 한방은 윈터솔저에게 맞은 것이고, 머릿속을 둔감하게 만드는 이 익숙한 고통은 불법약물의 기운일까. 스티브는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렸어, 혀끝에 닿는 자신의 피맛으로 정신을 되돌아오게 하려고. 슈퍼솔저에게는 어떠한 종류의 약물도 소용이 없었지만, 그래도 미미한 데미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 스티브는 손발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조용하게 중얼거렸어. "...토니."

 -캡틴 아메리카! 캡틴, 망할 캡시클아! 대답해!!! 응답하라고!!!

 고래고래 비명지르는 토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는 것처럼 쾅쾅거렸어, 스티브는 머리를 마구 휘젖으며 신음을 흘렸지. "으으.. 그만 소리지르게. 머리가 울려..." 그제야 스티브의 말을 들었는지 토니가 -스티브?! 스티브 내말들려? 지금 나하고 대화하고 있는 게 맞아?!! 라고 소리질렀어. 아아, 맞아. 자네말소리가 들려. 꿈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어. 그러니까 그렇게 소리지르지 말아줘... 제발. 지금 당장 제대로 정신을 차릴테니까. 스티브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깨물었어. 더 이상 꿈속의 부드러움 속에 잠겨있을 순 없지. 스티브도 잘 알고 있었어.

 -아, 이 나쁜놈의, 이 망할놈의!!

 "욕이라면 나중에 해주게. 토니. 지금 그럴 여유가 없어서. 이게 뭔가, 어떻게 우리 둘이 대화가 가능한건가."

 희미하게 훌쩍이는 소리가 섞여 들어왔어. 어이, 토니 스타크. 설마 지금 울고 있어?

 -자네 유니폼에다가 통신기능 심어놨어... 초소형에다가 엄청 얇게 만든 거라 아마 빌런들도 못읽어냈을거야...

 스티브는 한숨을 내쉬었어. "자네. 주인 허락도 없이 대체 무슨 짓을 한건가. 그렇다면 설마 지금 자네 혹시 내 위치도 이미 파악하고 난 뒨건가?"

 -네가 던져놓고 간 너의 방패, 그 방패와 자네 유니폼이 공명하게 해뒀거든. 거리가 꽤 떨어졌지만 이정도 코드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어...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다구, 최고속도따윈 이미 훌쩍넘긴 정도로 비행중이니까 이십분뒤엔 거기에 도착할 수 있어.

 "꽤나 빠르군, 지구 반대편이었는데도. 이거야 원 화가 나는데. 하긴 자네가 그런식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장치를 해뒀을거라고 생각했기때문에, 믿고 뒤를 맡긴거지만."

 -......

 "어쨌든 잘됐군."

 스티브는 한쪽팔에 힘을 실어 한번에 자신의 몸을 묶고있는 기계의 촉수같은 것들을 잡아떼내어 버렸어, 그리고 포박에서 해방되었지. 전자파가 흘러넘쳐 유니폼의 여기저기가 손상되었지만 스티브에게는 별 피해가 없었지. 스티브는 손목을 휘휘 돌리고 팔을 여기저기로 움직이면서 몸의 상태를 체크했어, 아무 이상도 없었지. 오케이. 스티브는 약간 벗겨지려고 하는 마스크를 턱아래로 깊숙이 내리고 손목에 고정된 단추를 눌렀어, 왼쪽손목에 스티브가 평소에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크기의 방패가 빛을 내며 나타났어, 그것은 토니가 만들어준 홀로그램 쉴드였지-기능은 실제의 방패에는 못미칠지라도 토니가 부을 수 있는 과학의 정수가 담겨있는 지금 스티브에게는 아주 필요한 것이었어. 신체검사도 하지않고 기절한 상태의 자기자신을 그대로 묶어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스티브는 아이언맨이 혹은 다른 어벤저스들이 이곳에 올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거나 그런 일은 할 수가 없었어. 스티브는 그들이 오기전에 빌런을 부숴버릴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물론, 윈터솔저도 구해내고. 스티브는 자신을 묶어둔 기계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넓은 공간을 눈으로 훑었어. 발아래에는 아무 함정도 없었어. 스티브는 발소리도 내지않고 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

 -스티브...

 귓가를, 울리는 토니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스티브의 가슴을 울렸어.

 스티브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았지.
 그리고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어.
 
 -스티브, 스티브...

 토니의 목소리가 몸속으로 스며들어왔어. 

 아아.
 이 목소리는.
 이 슬픔은.

 그래. 너는 전부 알아버리고 말았구나.
 가능하면 모르길 바랬었다. 이런 내 마음을 넌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정말이야. 가능하면 아무도 모르길 바랐어. 물론 너도.
 슬퍼하지 않길 바랐거든. 정말로.

 스티브는 연하게 웃으며, 다시 눈을 떴어.

 "...그래, 토니. 넌 이제 전부를 알아버렸군?"

 -......

 "그래. 안됐네. 토니."

 -...스티브, ...스티브 제발... 제발, 부탁이야. 제발 부탁이니까... 내가 거기에 갈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될까. 금방 도착할테니까, 널 많이 기다리게 하지 않을거야 결코 그러지 않을테니까... 제발 나를 좀 기다려줘.

 "안 돼. 그건 무리라네. 나는 윈터솔저를 구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일은 한시가 촉박한 일이야."

 -스티브 로저스! 제발!

 "나에게 애원하지 말게. 아이언맨. 자네의 애원을 내가 받아들일 순 없는거잖나."

 "내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그렇게까지 뻔뻔할 순 없을거야. 토니스타크."

 -너를 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뻔뻔해지겠어.

 "하하. 재미있군. ...토니. 자네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날 구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야."
 
 한동안의 침묵.

 토니의 목소리가 절망에 무게에 짓눌려있었지.

 -나도 알아.

 -나도... 알아, 캡. 스티브. 너는...

 -...너는,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를, 결코 용서하지 못했던 거지?

 "...토니?"

 -나를 용서할 수 없어서... 나를 결코 용서할 수 없어서. 날 미워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어서. 그래서 도리어 괴로워했던거지? 내가 너무 미웠던거지?

 -날 미워하는 너의 감정조차 싫어질만큼?

 스티브는 연하게 웃었어. 웃음소리는 아주 작아 토니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았지.

 "그래. 그랬던 적도 있었지."

 -스티브! 난 결코, 결코 도망치지 않을테니. 내가 받아야 할 벌에서 결코 도망치지 않을테니까!! 그곳이 지옥이라해도 기꺼이 내 발로 걸어들어갈테니까! 스티브, 날 용서해주지 않아도 좋아, 평생 피터에게 아무말하지 못해도 좋아, 나는 그 전부를 견디어주겠어! 제대로 견뎌낼테니까! ...그러니까 스티브, 스티브 제발, 제발

 제발
 죽지
 말아줘.

 제발
 혼자서
 무모하게.

 혼자서
 그곳에

 -사랑해... 사랑한단 말이다. 사랑하고 있어 제발 스티브....

 사랑해서 미안해.
 살아있어서 미안해.
 내가 나라서 미안하다는
 이보다 더한 절망이 없을법한 세계에서 이미 괴로워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스티브.

 "......"




 스티브는 갇혀있었던 곳의 문을 주먹으로 박살내었고, 잡음이 요란하게 커지고 천장이 무너지는 것같은 소리와 매캐한 연기너머로, 또 다른 커다란 홀이 있음을 알게돼었어. 그리고 그 홀을 가득 메우고 있는 빌런의 부하들과, 그 부하들 사이에 서 있던 빌런과, 그 빌런의 뒤에서 방금까지 스티브가 묶여있던 것과 똑같은 기계에 묶인 채 고통을 당하고 있는 윈터솔저-버키 반즈가 있었지. 스티브는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바라보았어. 버키. 기다려. 곧 구해줄게. 캡틴 아메리카가. 스티브는 주먹을 꽈악 쥐었어. 전투의 앞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언제나 그어느때보다 가장 선명한 시야를 느꼈지. 눈앞이 아주 깨끗해져서 그 어느때보다 시력이 분명해지고- 자신의 적만을 정확하게 투영하는, 그 감각. 스티브는 전신의 근육을 팽팽하게 조이고 신경을 날카롭게 다듬었어. 발목이 금방이라도 튀어오를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었고.



 "토니 스타크."


 토니, 너는
 그러니까
 내가 너를, 영원히 용서하지 못할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군.
 그렇지? 

 내 평생에 걸쳐서 너를 미워할거라고, 영원에 영원이 겹치는 시간이 흘러도 나는 너를 용서해주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거야.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남자로구나.


    
 "그래. 토니 스타크. 네말대로라면, 나는 너를 평생 용서하지 않고, 너에게 끝없는 죄책감을 요구하는 남자가 되어야하는거로군."

 "거기다가 벌까지 주어야해. 무슨 벌이라고 했지? 그렇군. 피터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평생 이야기하지 않은 채 그의 옆에 있어야한다는, 그런 벌이었던가?"

 "좋아.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네에게 벌을 주겠네. 토니. 스스로의 그 말대로 하게. 평생 피터의 옆에 있어주게. 그 아이를 지켜줘. 하지만 절대 아무말도 하지 말고. 혈연에 대해서 그 무엇도 이야기하지 말고."

 "피터에게 사랑한다고, 절대 이야기 하지 말게나."

 "......"

 "......"

 "그리고 나는 자네를 평생 용서하지 않아야겠지. 물론 자네를 평생 용서하지 않겠네."

 "그러니 자네는, 오래 살아야하네. 나보다도 훨씬. 가능하면 훨씬에 훨씬 더. 무슨일이 있어도 살아남고, 무슨병에 걸려서도 이겨남아, 세상의 그 누구보다 가장 오래 살아있어줘야하네."

 "그래야 내가 자네를 계속계속 미워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자네도 계속 고통받고."

 "...그러니까, 토니. "

 "토니."




 "...토니. 천천히 와도 괜찮아."






 그리고 스티브는 뛰어갔어. 빌런들의 한가운데로. 캡틴 아메리카는 빌런을 전부 쓰러뜨리고 버키 반즈를 구하는 그 순간을 향해 달려갔고, 그 외 다른 선택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어. 빌런을 쓰러뜨린다. 전부 쓰러뜨린다. 그리고 버키 반즈를 구해낸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지. 팽팽히 당겨진 전신의 신경이 캡틴 아메리카의 몸을 벗어날것처럼 튀어오르는 그때, 방패와 빌런의 몸이 부딪히는 바로 그때, 모든 것이 하얀 빛에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충격의 바로 그때,

 스티브는
 오로지 그 생각만을 했어.
 버키 반즈를 구하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 그 모습만을.






 피터.
 버키.
 토니.
 피터.
 ....토니.

 이게 바로 너희들의 캡틴 아메리카.
 나의 캡틴 아메리카다.

 그렇지?

 

 

 

 

 

<5>

 

 토니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였지. 토니는 지쳐버린 육체의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거의 다 무너져버린 건물을 황량하게 바라보았어. 시커먼 먼지가 자욱하고 발아래로 부서져버린 건물의 파편이 쉴새없이 밟혔지. 토니는, 토니는 건물의 파편을 미친듯이 뒤졌어. 여기저기를 미친듯이 헤매였지. 하지만 어느순간, 그 미친듯한 행동을 멈추었어. 찾고싶어. 무엇을? 찾고싶지않아. 왜? 토니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서둘러 몸을 움직이라고 명령하는 한편으로 여기서 멈추라고 명령하고 있었어. 찾고싶어. 하지만 찾고싶지 않아. 토니는 여전히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는 건물의 한가운데에 서서 멍하니 허공을, 허공의 어딘가를, 그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어. "...스티브."

 그곳에 그가 있었어.

 얼굴의 절반이 사라지고, 왼쪽팔이 뜯겨져나간 채 캡틴 아메리카는 반쯤 남은 마스크 너머로 눈을 감고 있었지. 왼쪽 옆구리에서부터 안쪽 가슴까지 크게 뜯겨나가버리고 텅빈자리에 내장과 피가 쏟아져 있었어. 토니는 바람이 휭휭 불어오는 소리를 들었지. 토니 스타크의 전신을 차갑게 통과하는 그 바람소리를. 무너져있는 단상위의 버키 반즈만이 토니가 만든 홀로그램 쉴드에 보호받은 채 여전히 살아있었지만, 토니에게는 그사람에게 닿을만한 신경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어. 토니는 마스크를 벗었어. 그리고 스티브를 내려다보았어. 스티브의 감은 눈아래의 긴 속눈썹의 그림자까지 전부. 그 평온해보이기까지 하는 다문입술을 전부. 토니는 그대로 무너지듯 스티브의 육체옆에 무릎을 꿇었어. 토니의 아머에 스티브의 비어버린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스며들었어. 토니는 스티브의 피가 만들어낸 웅덩이에 무릎을 꿇은 채로, 가만히 자신의 그림자가 스티브의 얼굴에 드리우는 것을 보고 있었지.

 "...그래서, 내가..."

 그래서, 내가.
 기다려달라고 말했는데.
 그렇게나.

 [토니. 천천히 와도 괜찮아.]

 "아니, 아니야. 스티브. 나는 그 어느때보다 가장 빨랐단 말이야."

 정말로 그 어느때보다도 가장
 빨랐었는데.

 "아아... 젠장. 다 망해버렸군..."

 자각없이 떨어지는 눈물은 그렇게
 스티브의 붉은 피웅덩이에 빠져버렸지.
 전부 다.








 토니는 멍하니 초점없는 눈으로 스티브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어. 토니는 앞으로의 자신의 앞에 이런 일이 펼쳐질거라고 생각했지. 아이언맨으로써, 어벤저스로써, 토니 스타크로써,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는 자기자신의 옆에, 때로는 캡틴 아메리카로써, 때로는 어벤저스로써, 때로는 스티브 로저스로써 그가 항상 서 있는 그런 장면들이 가득한 미래일 것이라고. 그리고 그 미래속에서 토니는 행복했어. 행복하지만 괴로웠지. 그의 옆에 있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 행복했고 때로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어. 자기의 존재가 그에게 고통을 줄뿐이라는 것이 너무나 괴로워서 당장에라도 사라지고 싶었지만, 하지만 그가 옆에 없는 삶은 토니 스타크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었던 거야. 그래서, 그렇게밖에. 그의 옆에 있는 수 밖에. 언제나 늘, 이와같은 생각을 반복하는 매일을 보내게 될거라고 생각했었어. 아침에 행복했다가 저녁에 고통받는, 언제나 그 풀리지 않는 뫼비우스같은 길을 걸어가는 매일이 될거라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이제
 그자리에

 너는 없군.
 너는 없는거로군.
 그렇지?
 그런거지?


 [토니. 천천히 와도 괜찮아.]



 "...너는 이렇게 항상 나에게는 언제나 잔인해...."



 스티브의 마지막말이 몸을 휘감는다.

 나는 이제
 너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모를
 그 삶들을
 살아가야한다.

 너없이는 의미가 없는 그 삶속에
 나만이 여전히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네가 나에게 준
 고통
 그것이 네가 나에게 준
 마지막
 이라면

 견뎌야하겠지.








 ....

 하지만
 대체
 어떻게?

 대체 어떻게 해야만?

 너를 잃고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스티브.













 뒤늦게 도착한 어벤저스를 헤치며, 피터 로저스가 달려왔고, 피터는 아이언맨의 어깨를 부딪히며 그대로 허물어져 내렸어. "안돼에에에에에에 안 돼에에에에 아아아아악 안돼에에에에에에"피터의 비명소리가 이미 허물어져내리는 건물의 나머지 파편을 뒤흔들었어 피터는 두 손으로 스티브 로저스의 남은 조각을 끌어안으며 그 가슴에 얼굴을 묻었지 "엄마아아아아아 엄마아 엄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토니는 그대로 눈을 감았어. 자신이 떠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몸이 아무 중력도 느끼지 못했지. 아니면 오히려 반대로, 몸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어. 그래서 땅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듯한 기분인 것 같기도.

 "엄마아아아아아아아아 ......................."


 물론 그따위 것이야, 어느쪽이든 아무 상관도 없었지만.


 

 

 

 

 

<에필로그>

 

 그리고 오랜시간이 흘렀어.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 쉴드는 오랜세월에 걸쳐 세뇌를 받으며 뇌손상과 약물중독이 심각한 버키 반즈를 완벽하게 회복이 되기전에 의식을 깨우지 않고 잠을 재우기로 결정했어. 그리고 서서히 회복시키기로 하였지. 피터 로저스는 버키가 자기를 구하려다 캡틴 아메리카가 죽었다하는 기억은 될 수 있으면 하지 않기를 바랬어. 그가 깨어나고 난 후의 일은 알 수 없지만 버키 반즈의 책임은 하여간에 자기가 지겠다는 말도 하였지. "왜냐하면 그는 버키 삼촌이니까." 쉴드로써는 윈터솔저를 그렇게 방치할 수는 없었지만, 하여간 그것은 전부 버키가 회복되어 깨어나고 난 후의 일이니까. 그리고 버키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고 깊은 잠을 이루고 있었지.

 토니 스타크는 은퇴하였어. 쉴드도, 아이언맨도, 스타크 인더스트리도. 스타크 인더스트리는 여러명의 ceo를 두어 분야별로 갈갈이 찢겨버리는 등의 고통을 겪었지만 나름의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어. 아이언맨의 뒤를 이을 인재는 여전히 훈련중으로, 아직 이렇다할 영어벤저스를 찾지는 못했어 스타크에너지는 백프로 토니 스타크에게 맞춰진 형태였으니까. 아직 고심할 여지가 많았지. 하지만 토니는 거의 쉴드에 협력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토니가 은퇴하고 난 후 뒤를 이을 아이언맨을 찾고있는 것은 그러니까 쉴드의 의지이고, 토니의 의지는 아니었음) 진도가 그렇게 잘나가는 편인 건 아니었어.

 토니 스타크. 토니 스타크는 암에 걸렸었지. 그병이 그에게 은퇴를 결심하게 했고. 물론 토니 스타크는 현존하는 최고의 의학으로 병을 완치하였어. 그렇지만 후유증이 남아버려서 왼쪽 다리가 거의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왠지 원래의 나이보다 십년은 더 늙어보이는 얼굴이 되어버렸지. 토니는 그런 자신의 상태를 싫어하지 않았어, 거울을 볼때마다 피식 웃으며 "영락없는 하워드 스타크네."할뿐.

 병은 아주 오랫동안 토니를 괴롭혔고 고통은 살아있는데도 꼭 죽은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해, 토니를 몇번이고 꺾어버리곤 하였었지만, 그때마다 토니는 의지를 새롭게 다잡으며 그 어느 암환자보다도 가장 삶을 향한 열의를 빛내곤 했어. 그 의지가 암을 완치시키는데에 한몫하였지. 피터는 이렇게 독한 사람은 생전 처음본다고 수술 후 눈을 뜬 토니의 병실에서 눈물흘리며 크게 웃었어. "피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에게는 의무와도 같거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지..." 토니는 그렇게 말했어.





 어느날 피터는 두개의 꽃다발을 들고 외출하였어. 그는 먼저 버키의 병실에 들렀지. 버키의 안색이 좋아진 것 같아서 피터는 기분이 아주 좋아졌어. 아직 잠들어있는 버키의 머리맡에 꽃다발 하나를 풀어 꽃병에 장식하고 버키의 이마에 짧게 키스한 후에, "버키 삼촌. 다음에 또 봐요." 병실을 나섰어. 그리고 피터는 토니 스타크의 집으로 향했지. 토니는 브루클린의 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어. 말리부의 저택도, 스타크타워도, 여전히 스타크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토니에게는 그다지 의미가 없었지. 피터는 그리운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토니!"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고 토니는 이미 피터가 올 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피터를 반갑게 맞이했지.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꽈악 껴안고 등을 두드렸어. 피터는 이제 상당히 키가 커서 거의 토니를 뛰어넘었지. 토니는 그런 피터를 보는 것이 즐거웠어. 어린아이의 성장은 항상 기분좋은 법이야. 토니는 걸을때마다 지팡이를 사용했고 피터는 그런 토니의 등을 보는 것이 때로 먹먹해질때도 있었지만 정작 토니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지. 그래서 피터도 그런 기분은 금방 떨쳐내버렸어. 둘은 적당히 요리를 만들어 맛있는 와인을 곁들이고 피터가 가지고 온 꽃으로 테이블을 장식하고서는 저녁을 함께 하였고, 그동안 내내 수다를 떨었어. 수다는 밤이 깊어지고 또 깊어지고, 점점 더 깊어질때까지 끝나지 않았지. 둘의 대화는 하면 할수록 더 할말이 늘어나는 것 같았어. 마치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그래. 넌 여전히 '친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토니가 물었어. 피터는 빙긋하고 웃었지.

 "그럼요. 변함없죠.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눈앞에 나타나면 죽여버릴거예요."

 "그렇구나.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지."

 너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어쩌면 나에게 주어지는 죽음의 올바른 형태일지도.
 

 피터. 용서해.
 네가 주는 죽음을 기대하는, 나를.





 토니는 눈을 내리깔았어. 피곤해졌는지 눈꺼풀이 떨렸지. 피터는 그만 자리를 정리해야 할때라는 것을 깨달았어. 토니가 앉아있는 소파로 다가가 그의 이마에 키스했지. 토니는 눈을 감은 채 피터가 주는 저녁인사를 받아들였어.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토니."

 "그래. 막차가 끊기기 전에 어서 가봐야지? 제인이라고 했던가? 너와의 보금자리에서 너를 기다리는 종달새는?"

 "왁!! 어떻게 알고있는 거예요 토니-!!"

 "멍청하긴. 시골에 짱박혀있다고 해서 예전의 토니 스타크가 어디가기라도 할 줄 알고. 너 말야,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예쁜 언니를 전철을 타고 다니게 할 생각이야. 가난한 사진기자도 폼나긴 하지만 여자가 바라는 폼은 그런게 아니거든. 피터. 언제 말리부 내저택에 좀 가서 거기있는 내 컬렉션 중에 원하는 거 있으면 아무거나 가져가도록 해. 스포츠카같은 걸루다가. 응? 자비스에게 말해둘테니까. 알았지?"

 "토니;;;"

 "내말대로 해 이녀석아. 알았지?"

 "...스티브몫까지 내가 챙겨주는 네녀석 생일선물같은거니까. 알았지?"

 "....토니..."

 피터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지. 그의 입에서 엄마의 이름을 듣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이었어. 토니의 표정은 그다지 변함이 없었는데, 단지 고요한 미소일뿐. 피터는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어. 그리고는 토니의 어깨를 끌어안았지. 맞아. 그랬구나. 피터는 이제야 깨달았어. 토니는 엄마를 사랑해. 우리 둘은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어. 그리고 지금도 그를 사랑한다. 우리는 여전히,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우리는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야.
 그게 가족이 아니고
 대체 무엇이
 가족이겠어.


 "...정말 고마워요. 잘받을게요. 아버지."


 "......."



 토니의
 떨리는 손이
 피터의 뺨에
 닿았어.

 피터는 웃었지.


 "언젠가 엄마와 통화를 할때.. 그때 토니도 옆에 있었는데. 그때 엄마가 한말, 토니에게는 안들렸었나봐요."

 "그때 캡틴은... 엄마는, 내가 친아버지를 죽이고 싶을정도로 미워한다고, 그렇게 토니에게 말했다는 걸 들었다고.. 그러면서, 그래. 친아버지를 미워해도 된다고. 그게 정말로 네가 결정한 마음이라면 그렇게 하면 된다고."





 -피터. 네가 정말로 마음으로 너의 아버지를 미워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래. 그건 그걸로 괜찮아. 그렇게 해도 돼.

 -하지만, 피터. 잘 봐. 세상을. 너의 주변을. 이 세상엔, 미움받는 아버지가 사실은 그다지 많지 않아. 사실 아버지란 존재는 미움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야. 아버지란 사람은, 자식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지. 그러니까 '아버지'란 너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중의 실은 가장 따뜻한 사람의 이름인거야.

 -친아버지따윈 아무래도 좋아. 혈연따위에 구속받는 가족은 진짜 가족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피터.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나중에 너의 마음에 좋은 여유가 생길때. 그때 한 번 생각해봐주지 않겠니? 네가 진짜로 바라는 '아버지'란 존재를. 너를 정말로 행복하게 해주는 아버지를.

 -너의 주변에, 너의 세상에. 너의 진짜 아버지가 되어줄 사람을 찾는거야. 피터.







 "...스티브가...."

 토니의 가느다랗게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바라보면서, 피터도
 엄마를 생각하면서 또 조금 울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웃었지. 피터는. 귀엽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피터가 떠나고, 그의 뒷모습이 비치는 아파트의 창문밖을 바라보면서
 토니는
 또 조금
 울었어.

 그렇구나.
 벌은 존재하지 않았어.
 토니가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고통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고.

 스티브.
 스티브.

 스티브.

 넌 나를
 이미 용서했던 거였어?

 나를 전부 용서해주었던거였어?

 아아.
 그래서.
 그래서 그 웃는 얼굴.
 
 바로 그 웃는얼굴.......

 "...난 정말 널 이기질 못하겠다니까."

 단 한 번도 너를 이기지 못해.
 정말이지.




 보고싶다.
 만나러 가고싶어.
 너를 보고싶어. 스티브.

 하지만 아직은 안 되겠지.
 아직은 좀 더 최선을 다해 살아야하겠지.
 그래야만, 그래야지만

 다시 너를 만나러 갈 수 있어.....................


 토니는 천천히 눈을 감았어. 눈물은 눈꺼풀 안쪽에서 차올랐지. 그리고 토니는 또 한 번 그의 이름을 불렀어. 가슴에 가득 담겨져 언제나 언제나, 흘러넘치는, 그의 이름을.



 

 

 

 

 

 

 

 - done

 

+ 중간에 들어간 고모님의 토니스팁피터 가족사진이 내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음...

마지막에 피터가 토니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고 끝내야지하는. 근데 '친아버지'로써 아버지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 혈연과는 상관없는 연으로써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하고싶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