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스팁] 아름다운 당신 15. 09. 06
이제는 인공지능, 홀로그램도 능숙하게 다루는 스티브 로저스이지만, 그래도 역시 이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옛날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번씩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서로에게 이야기하길, 모든 것이 좋지않았던 시절을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만큼 선명하게 추억해야한다고." 이런 말을 할 때. 혼자 아득한 70년전을 헤매고 있는 눈동자를 할 때의 스티브 로저스는 잘닦여진 공원의 어딘가를 천천히 걸어가는 노인을,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 속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의 주름이 진 깊은 눈을, 한 번도 형상이 변한 적 없는 어느 나무를 떠오르게 한다. 90살, 90살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은 하지만 사실 스티브는 기껏해야 서른 전후의 젊은 남자인데, 마흔을 넘긴 나보다 더 대지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은, 아니 오히려 부평초처럼 아무곳에도 걸리지 않고 혼자 흘러가고만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대체 무엇일까. 너무 모든 것을 잃은 남자란 원래 다 이런 걸까. 나는 이런 눈을 하며 내가 가보지 못한 몇십년 전의 어딘가를 아득히 더듬고있는 스티브 로저스를 참 싫어했다. 내색하지는 않아 스티브는 아마 아무것도 모르고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스티브 로저스를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로 추억이란 단어는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힘만큼 아름답지 않은 때가 있는 것 같아." 바로 이런 말. 스티브. 넌 이런 말을 할때마다 자기자신이 꼭 금방이라도 어딘가로 가 버릴 것 같다는 느낌을 상대에게 주게 된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그리고 상대가 그런 너를 따라가지 못하게 될 거라 예감하게 된다는 것을, 그 망할 예감이 얼마나 사람을 질리게 하는 지도. 나는 내가 갈 수 없는 곳을 언제나 쉽게 더듬어 거슬러올라가는 너를 증오해, 스티브. 그리고 나는 내가 갈 수 없는 곳을 언제나 쉽게 더듬어 거슬러올라가는 너를 증오하는 나를 증오하지. 스티브, 너는 왜 내 옆에 없을까. 스티브, 나는 왜 네 옆으로 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너의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 그리고 모든 것이 좋지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모두 들으면서, 꼭 너처럼 나도 너의 추억들을 기억하려 하고 있었다. 재밌게도, 너의 술에 취하지 않아도 꼭 취한 것처럼 밤속으로 녹아오는 두서없는 이야기들은, 때론 어느것이 어느 것인지 참 혼란스러웠다. 좋았던 시절이든 그렇지 않은 시절이든, 늘 나오는 사람들은 다 똑같아서. 그래서 나는 네가 정말로 그 좋지않았던 시절을 좋지않았던 시절로 생각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했었다. 너에게 묻진 않았지만. 사실 나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어느날 네가 또 밤에 취해, 두서없이 무슨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너의 기억이 갑자기 불분명해져서 어느 추억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을 때, 그 이야기를 이미 들어 전부 기억하고 있는 내가 너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도리어 내가 너의 옛날 이야기를. 그리고 나는 괜한 말을 한마디 더 보태게 될 것이었다. "너의 그러한 좋은 추억이지. 나의 스티브." 바로 이것이 너의 그러한 좋은 추억의 이야기이지, 나의 스티브. 하고. 꼭 그것이 나의 바람이 되어 너의 이야기를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듣고 있었다. 하지만 스티브는 참 똑똑해서 한 번도 자기가 하려는 말을 잊거나 하는 법이 없었다. 물론 나에게 이미 했던 말들을 다시 하는 일도 없었고.
스티브. 너의 추억들은 전부 별빛처럼 반짝이거나, 어둠처럼 흘러내리거나 하는구나.
그리고 너는 절대로 나에게조차 이야기하지 않는것들이 있겠지. 너의 가슴 속에만 간직하는 그것은 보석이거나 돌멩이이거나 할 것이고, 어쩌면 그 어느 것도 아니거나 할 것이다.
나도 그런 것이 있다. 그 모든 지우고 싶었던 밤의 어리석음을 그래도 너는 추억이라고 부른다면, 나 또한 그것들을 추억으로 간직할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전부 지우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너에게 조차도 이야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스티브 로저스. 나 토니 스타크는, 너라고 하는 모든 것이 전부 없어지길 바랐던 적이 있었다. 왜 밤속에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지워져버리는 것처럼 네가 지워지지 않을까하고. 눈을 감고 스티브 로저스가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어둠속의 어리석었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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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타크는 막 인공지능을 만들었을 때, 그에게 자비스란 이름을 줌과 동시에 성능에 대한 테스트로써 제일 먼저 하워드 스타크의 자금운용을 시대별로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비스는 초에 숫자를 부여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시간대의 속도로 토니가 원하는 일을 해냈다. 토니는 감탄했다. 감탄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의 자산이 흘러가는 숫자의 길을 밝은 모니터를 통해 보고 있었다. 토니는 자신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의 성공에 감탄했고, 또한 동시에 자신의 뛰어난 두뇌에 감탄했고, 또한 동시에 자신의 아버니의 지나치게 번듯하고 체계적인 자금운용에 감탄했다. 60~70년대의 세계가 혼란하던 시절에 이만한 돈을 보유한 것을 또한 그만한 돈을 단 한구석의 빈틈도 없이 운용한 것에 대해 감탄했다. 그리고 어느순간, 대체 어느지점이었을까? 토니 스타크는 단 하나의 헛점이라고 할만한, 그 출저를 알 수 없는 하워드 스타크의 빈틈을 발견했다. 토니는 눈앞의 모니터에서 흘러가는 숫자의 길을 멈추게 하고 하워드 스타크가 만들어낸 빈틈을 주시하였다. 다시 보니 그것은 빈틈이 아니었다. 그것은 눈속임이었다. 대량의 돈이 흘러들어가는데, 그 돈이 모이는 출저를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돈이 그곳으로 흘러가는 것조차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눈속임. 횡령인가? 대체 어디에 쓰인 돈이지? 이만한 금액이. 토니는 이를 갈았다. 이미 죽어 무덤속에서조차 남아있지 않은 사람인데, 이제와 고인의 잘못을 파헤쳐 뭐 어쩌자고. 하지만 토니 스타크는 작업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불법으로 빼돌린 돈으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싶어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토니 스타크는 그 몇십년 전 아버지가 숨겨놓은 돈이 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었는지를 자비스의 힘을 빌어, 기어코 알아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쉴드?" 쉴드였다.
"쉴드라는 기구의 결성을 위한 초기자금이라고?" 자비스가 말한 것을 토니가 그대로 입안으로 중얼거린 것은, 토니가 자비스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눈앞에 펼쳐진 토니가 그동안 알고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순간 토니 스타크의 사고력을 압도했기 때문에, 토니는 무의식으로 앵무새가 된 것처럼 그저 들은 말을 반복하여 중얼거리게 된 것이다. 자비스가 흔적없이 완전무결했던 쉴드의 방어막을 뚫어 가지고 온 쉴드의 기나긴 역사는, 토니 스타크로 하여금 말을 잃게 만들었다. 비밀. 정의. 어떤 국가와도 하위상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독립적인 어둠 속 단체. 히어로들, 뮤턴트들, 밤 속의 존재들. 현재의 테크놀러지를 뛰어넘는 테크놀러지와 전설처럼 회자되었던 것들의 실제함. 토니는 입을 매만지며 내용을 읽다, 점점 표정을 잃어갔다. 토니 스타크의 마음은 아주 깊은 곳까지 가라앉아가고 있었다. 토니는 언젠가 아주 어렸을 때, 아직 반바지를 입고 다녔을 때의 하워드 스타크의 넥타이 색깔을 떠올리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화려했던 그 날의 넥타이. 아버지는 왜 그 날, 하필 그런 색의 넥타이를 매셨던걸까? 넘 옛날일이라 기억이 흐릿했다. 하지만, 그래... 그날은 아버지가 술에 취하고, 파티같지않던 파티가 끝난 후에도 아버지 홀로 서재에 남아 계속 술을 드셨더랬다. 어두운 밤. 밤의 형광등. 화장실을 가기 위해 홀로 침대를 나섰던 어린 토니 스타크. 토니는 졸린 눈을 비비며 서재에서 액자를 보고 술을 홀짝이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화려한 색의 넥타이. 화려한 색의 넥타이에 비해 비교적 차분했던 양복. "...캡." 그리고 아버지의 중얼이는 목소리에선 술냄새가 났다. 지금의 토니에게는 익숙하지만, 아직 반바지를 입고 다녔던 그때의 토니에겐 그저 코가 괴롭기만 한 지독한 냄새. "캡틴. 스티브. 올해도 당신을 찾지 못했어. 미안해. 부끄러워. ...생일 축하해." 어딘가에 당신이 있을거야. 어딘가엔 분명 당신이 있을 것인데... 중얼이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그래서 토니에게 너무나 낯설었던 것이다. "당신과 다시 만나고싶어." 그저 모든 것이.
그 차가운 아버지. 그 냉정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 토니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기억속의, 한 번도 자신을 바라보며 웃었던 적이 없었던 아버지의, 그 날의 술냄새와 함께 뒤섞여 있는, 액자를 바라보는 애정어린 눈길. 제길. "정의의 비밀단체가 뭐 어쨌다는 말이야." 토니는 사납게 모니터를 내리쳤고.
그랬다. 그래서, 사실은, 토니 스타크는 이미 쉴드라고 하는 비밀단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의 납치기간 동안 Mark1을 완성했을 때, 그 뒤 점점 개량한 수트를 입고 아이언맨으로써 전세계의 상공을 날아다닐 때, 누군가가 자신과의 접견을 시도하려고 노력할 때에, 토니는 이미 그들이 쉴드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입 다물고 있었다. 자신이 그들을 알고있다는 사실을 그저 비밀로 하고 있었다. 자비스는 너무나 뛰어나서, 쉴드에 자비스가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쉴드쪽에서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토니는 신중했다. 쉴드에 꼬리가 밟힐만큼 자주 그들을 염탐하지도 않았다. 단지 늘 민감하게, 그들의 존재를 혼자 의식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이 먼저, '아이언맨'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다가올 때, 토니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조차도 짓지 않았다. 단지 토니는, 필 콜슨이라고 하는 자가 웃으며 "쉴드입니다."라고 말하는 얼굴을 볼 때, 그저 기억속의 아버지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보여준 웃음도 아니고, 대체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액자속으로 던지던 상냥한 그의 눈동자를. 그리고 토니의 가라앉은 마음이 더욱 깊이 가라앉은 것은 바로 그때쯤. 토니는 세계를 향해 "I am Iron man."이라고 외친 후에도 쉴드에 결코 호의를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쉴드도 아이언맨에게 회의적이었다. 그 독보적인 파워와 토니 스타크의 천재조차 뛰어넘는 능력은 탐내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토니는 쉴드가 싫었다. 닉 퓨리의 입에서 쉴드의 초기멤버 중 한 명이 하워드 스타크라는 확인사살 비슷한 소리까지 들었지만, 아니 그 소리를 들으니 오히려 더 싫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날 필 콜슨은 평소보다 더 느슨해진 얼굴을 하고서 토니의 질문에 떠듬떠듬 답했다.
"그것은 쉴드내에서도 일급비밀에 속하기 때문에 제가 뭐라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말씀드리자면, 네. 하워드씨는 누구보다 캡틴 아메리카의 구조에 열정을 보이시던 분이셨죠. 그리고... 그렇군요. 캡틴 아메리카 프로젝트는 쉴드내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그 정도면 다 말한 거야. 요원. 토니는 왠지 뺨이 빨개진 채 입속으로 "캡틴 아메리카... 우리 모두가 사실은 그가 살아있을거라 믿고 있어요." 라고 중얼이는 필 콜슨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눈앞의 필 콜슨이라고 하는 남자는 언젠가 액자를 바라보단 하워드 스타크와도 또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토니는 그 얼굴만으로도 모든 것을 예감했다. 둘은 하나의 존재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캡틴 아메리카.
캡틴 아메리카.
캡틴 아메리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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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스는 24시간 풀가동중이었다. 서버에 과부하가 달릴 정도였다. 토니는 자비스를 닦달해 누구보다 빨리, 무엇보다 먼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캡틴 아메리카의 위치추적. 하워드 스타크도, 필 콜슨도, 닉 퓨리도, 세계의 그 누구도 쉴드도 해내지 못한 일을, 바로 토니 스타크가 해낸 것이었다. 집념으로. 하지만 토니는 스스로에게 의아했다. 대체 이 집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늘 냉정했던 아버지. 따뜻한 말 한 번 부드러운 포옹 한 번 없었던 그 수천의 밤. 아버지의 장례식 날, 밤,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나던 술냄새와 똑같은 술이 담긴 술잔을 기울이며, 토니가 훔쳐본 액자에는 이미 흐릿해진 흑백사진 속 군복을 입은 남자가 아버지와 나란히 선 채 조용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고. 토니는 아이언맨 수트를 입었다. 가장 최근 개량한 그 무엇보다 뛰어난 성능의, 무엇보다 추위, 빙점, 얼음에 강했다. 아이언맨은 공기를 갈라 하늘의 독수리, 구름, 구름 속 비가 되기 전의 얼음알갱이들보다 더 빨리 날았다. 남극의 어느지점에 도착한 아이언맨은 커다란 빙산의 끄트머리에서부터 빙산을 뚫고 들어갔다. 빙산은 크고 거대해 아이언맨이 빙산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도 두조각이 나거나 위에서부터 무너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아이언맨의 수트 표면에 얼음과의 마찰이 일어나 엄청난 굉음이 아이언맨의 수트안쪽을 울리고 있었고, 빙산안쪽은 차가운 기운만이 있었고 공기가 희박했다. 토니는 아이언맨 수트내부에 장착된 공기가 소멸하기 전에 그를 발견해야했다. 바다 깊은 곳 빙산의 안쪽, 캡틴 아메리카는 얼어붙은 채 누워 있었다. 빙산 한가운데에 박혀 그 모습은 사실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아이언맨은 캡틴 아메리카를 발견하였고, 그대로 우뚝 서 청년의 얼굴을 보았다. 흑백사진 속의 그 얼굴. 조용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 사진 속만큼 환하고 크게 웃고있던 하워드 스타크를 일찍이 토니 스타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을, 홍조를 피어나게 하는 캡틴 아메리카. 캡틴 아메리카는 파란색과 빨간색이 뒤섞인 옷을 입고 있었다. 감은 눈동자 위의 금색의 긴 속눈썹에는 얼음알갱이가 붙어 있었다. 뺨에 엉겨붙은 서리들은 하얗게 피어오른 꽃처럼도 보였다. 그리고 붉게, 곧은 손끝. 헤진 입가와 몸. 70년을 냉동된 채 견뎌온 캡틴 아메리카의 견고하고도 엉망인 육체. 토니 스타크는 눈을 깜빡였다.
이걸
이 아름다운 걸, 이 모두에게 눈부신 걸
이대로 통째로, 빙산째로
파괴시켜버릴까.
산산조각을 내버릴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한순간, 토니 스타크는 눈물을 떨구었다. 그런 생각을 한 자기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이런 생각을 해 버리면 이제 두번다시는 그 생각을 하지 않은 자기자신으로는 돌아갈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껴서. 이 모두에게 아름다운 것이 이 모두에게 눈부신 것이 어째서 토니 스타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을까. 토니가 흘리는 눈물속에 오열할 때마다 아이언맨 수트에 저장되어 있던 공기가 눈에 띄게 줄어갔다. 나는 왜 내 삶속에서 형성된 결핍의 죄를 너에게 묻고 있는거지. 캡틴 아메리카. 어째서 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나의 삶의 모든 미움의 결정체같은 게 되어버린 거야. 내 결핍엔 아무 죄가 없다. 그런데 왜 난 그 모든 것을 네탓으로 여기고 있을까. 그저 잠들어 있을뿐인 이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를. 캡틴 아메리카. 하지만 내가 내삶을 살아가는 한은,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내가 토니 스타크인한은,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나는 쉴드를 싫어할 것이고, 나는 아이언맨으로써 쉴드에게 협력하지도 않을거고, 네가 깨어나는 것을 보지도 않을 거야. 난 이제 어쩔 수 없으니까. 나의 이 가슴의 구멍을. 그리고 아이언맨은 빙산속으로 들어왔던 길 그대로 밖으로 나와, 아이언맨 수트내의 공기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빙산을 빠져나왔다. 캡틴 아메리카는 원래 잠들어 있던 그 자리 그대로였다. 아이언맨은 수트 온몸에 빙산의 얼음알갱이를 묻힌채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커다란 구멍만을 한 번 더 자각할뿐, 아무 의미도 없었던 이 지독한, 밤이라니. 차라리 모든 것을 잊고싶었다.
그리고 토니 스타크는 영원히 그 누구에게도 캡틴 아메리카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을 것이었다.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꼴좋네요. 아버지."
그러나 그렇게 내뱉고나서 또 한참을, 토니는 그런 말을 내뱉어버린 자기자신을 지독하게도 후회했다. 그날밤에는 도대체 그 어느 것도 토니 스타크를 구해주지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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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왜 그러나." 스티브가 걱정하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슬픈눈을 하고 있지?" 스티브가 그렇게 말하며 내 뺨위로 손바닥을 올렸을 때, 그의 그 놀라울 정도로 따뜻한 손바닥의 체온을 느꼈을 때,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스티브. 나는 이렇게도 뻔뻔해서, 너를 외면한 그 날의 나를 너에게 들킬까봐 미칠듯이 두렵고, 무섭고, 그래서 나는 필사로 그날의 어리석은 나를 이렇게도 꽁꽁 숨기고 있는데. 그래도 한번씩, 오늘처럼, 너의 움직이는 손바닥에 나보다 훨씬 높은 체온에, 꽁꽁얼어있는 그 날의 너를 떠올리면서 놀라곤 한다. 가끔 아직도 그 빙산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너에게 미칠듯이 미안해지고 이렇게나 외로워질 때면. 스티브. 이제 넌 이렇게 따뜻한데. 숨을 쉬는 육체는 세상 무엇보다도 아름다운데. 나는 어떻게 네가 나에게 평생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걸까. 어떻게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던 걸까. 너의 긴 속눈썹에 맺힌 얼음알갱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평생 본적도 없었으면서, 나는 왜 너를 그 날 그 차가운 곳에 그냥 두고 온 걸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스티브. 나는 날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너를 두고 뒤돌 수 있었던 그 날의 내가 끔찍하게 싫어.
때론 날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야. 스티브. 네가 사랑해주는 토니 스타크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나를 용서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모르겠어. 나는 그 날의 나를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걸까.
지울까. 버릴까.
하지만 당신은 그 고요한 눈으로, 모든 것이 좋지 않았던 시절을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스티브. 안아도 돼?" 스티브의 내 뺨을 감싼 손을 꼬옥 쥐고 입술로 끌어당겨 그렇게 말하자, 스티브의 조금 놀란 파란 눈동자가 고요히 흔들렸다. "...그런 걸 물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 곧 그렇게 웃고는, 내 이마에 키스하는 당신. 그 입술의 부드러움에 눈을 감으며, 나는 두 팔을 뻗어 당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당신의 무게가 느껴져. 당신의 체온도. 심장소리도. 살아있는 당신은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당신의 두 손이 내 머리를 끌어안을 때, 나는 코끝이 울려 조금 훌쩍였다. 아버지. 오늘만큼 당신과 대화하고 싶어지는 날이 또 있을까요.
내가 당신에게 해댔던 그 모든 말들을 전부 후회해요.
그것들이 전부 아무 의미없는 덩어리가 되어 사라져갔으면 좋겠어요.
다시 돌아간다면, 그 날로,
물론 영원히 그럴 수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만약, 내가 다시 그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끌어안았을텐데요. 스티브. 꽁꽁 얼어있던 그의 어깨를.
아버지. 당신이 그렇게 고대하던 바로 그 날이니까.
당신과 다시 만나고 싶어
- done
트위터 스른합작. 주제 : 추억
혼자 간직하고 있는 씁쓸한 추억에 늘 가슴아파하고 미안해하는 토니. 죄책감쩔면서도 스티브를 잃을 수는 도저히 없어서 그날의 자신을 감추면서도, 감추고 있다는 사실에 끙끙 앓고 있습니다. 아! 이 답이 없는 슬픔이여. <
토니가 사실은 쉴드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글입니다. 썬샤인 스티브가 토니를 구해주겠죠. 주로 토니 스타크의 의식의 흐름같은 걸 표현하려고 해본글인지라 좀 두서가 없고 지리멸렬합니다. 공간과 시간도 여기저기로 튀어오르죠. 딱히 설명을 주지않고 흘러가는대로 썼으니, 이해하기 다소 불편한점도 있으실거라봅니다. 걍 느낌적 느낌만 봐주세요 ㅎㅎㅎㅎ 하 글쓰는 거 어렵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