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ve you ...after  1

 

 스티브는 그 어느때보다 일에 매달렸다. 그의 스케쥴을 관리하는 쉴드의 요원이 그의 행동에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부정한 신디케이트를 소탕했고 유착이 의심되는 정치당을 해체시켰으며 혼자서 움직이는 빌런을 잡아 감옥에 쳐넣었다. 심지어 빌런조차 신경쓰지 않는 작은 마을의 작은 범죄조직을 와해시키는 데에도 일조하였다. 말단중에서도 가장 말단의 경찰은 설마 자신의 이 평범하고 무기력하게 이어질 경찰경력의 도중에 캡틴 아메리카의 실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이 올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말단 경찰은 정말로 이런 일이 태어나 처음이었기 때문에 제때에 총 하나 꺼내지 못하고 완전히 얼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캡틴 아메리카가 자기를 향해 씨익 웃어준 것만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냐면 평생 그 기억 하나에만 매달리고 살아가는 것이 결코 지루하지도 않을 정도로.

 

 그리고 스티브는 그 어느때보다 가장 캡틴 아메리카라는 존재를 남용하고 있었다. 전쟁 캠페인걸로 이용되었던 40년대보다 어쩌면 더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지칠정도로 몸을 써대었고 그러나 전혀 지치지 않고 기운이 남으면, 브루클린의 아파트로 돌아와 그곳에서 계속 몸을 움직여 더욱 땀을 빼내었다. 거의 실전에 가까운 트레이닝은 스티브의 전신을 지치게 만들어주는 데 충분한 환경이 되어주었다. 스티브가 그순간 사용하지 않은 근육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티브 전신의 모든 근육은 스티브라는 육체의 얇은 가죽을 갈라버리고 튀어나는 것을 갈망하는 것처럼 전신을 타고 꿈틀대었다. 스티브는 팽팽한 신경줄 너머로 자신의 근육속의 피가 흐르는 길마저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신경질적일정도로 예민해진 감각은 왼쪽귀와 오른쪽 귀를 지나는 공기의 소리마저 포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티브는 그렇기 때문에,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었다. 피곤한 몸이 깨무룩 잠이 들면, 그래도 여전히 깨어 있는 신경이 자꾸 스티브의 밖을 자극하여 금방 다시 깨어나곤 했던 것이다. 흘러있는 시간은 겨우 한시간남짓. 그것도 잠을 이룬 것 같지 않은 기분이라 늘 개운치 못했다.

 

 오늘도 그렇게 스티브는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쓸어올리며 허리를 굽혔다. 충혈된 눈가에 밤의 어둠이 조각난 모서리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이런적은 처음이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이 날이 되어 공격해왔다. 전신에 박힌 시간의 칼날들이 스티브의 육체의 기운을 앗아갔다. 언제나 늘, 그는 시간이 부족했는데, 항상 24시간의 쌍둥이형제정도만큼의 시간이 더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남는 시간이 너무 많아. 그 시간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 스티브는 침대모서리에까지 닿은 창문밖의 달빛을 피하고싶은 사람처럼 몸을 더욱 움츠렸다. 달은 반토막이 나있었고, 불그스름하게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시간이 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 모든 시간을 스티브는 감당할 수 없었다.

 

 시간이 남으면, 너를 생각해.

 내가 불행하게 만들어버린 너를.

 

 스티브 로저스는 그렇게 꿈을 빌고 있었다.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누가 시간을 돌려줘. 누가 토니가 자신에게 고백하지 않았던 그시간대의 나로 돌려보내줘. 그러나 스티브 로저스란 사람은,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알지 않은가. 기나긴 잠속에 갇힌 꿈을, 그것보다 더 헛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아무리 빌어도, 꿈은 단지 꿈일 뿐이라는 것을.

 

 

 

 

 

 

 

 정말이지 누가 좀 이사람을 말려줬으면 좋겠는데. 나타샤가 곱슬한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붉은 머리의 손을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헤집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캡틴의 상황을 보고받을때마다 그런 식이었다, 나타샤는. 쉴드의 경험이 조금 부족한 요원하나로는 더 이상 캡틴 아메리카의 행보를 쫓을 수가 없어서 현재 캡틴에게 붙어있는 요원은 셋으로 늘어 있었다. 그 어떤 어벤저스보다 가장 활발한 그 행보가, 살짝 자기자신을 돌보지 않는 파괴행위로까지 보이는 것은 단지 내눈안에 깃든 악마가 만들어낸 환상인건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을걸. 최근엔 유명한 빌런들의 활동도 거의 없이 잠잠한데. 이렇게까지 미국이 잠잠했던 것은 미국이란 나라가 태어나고나서 처음있는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고요한 평화이건만. 나타샤는 이 짧은 시간내에 캡틴 아메리카가 해낸 크고작은 규모의 영웅적 행위를 정리한 차트화면을 그대로 옆으로 밀어버렸다. 나타샤의 눈앞에 떠있던 데이터가 나타샤의 오른손에 의해 한쪽으로 접혀지고, 펼쳐졌던 사진들이 포개져 폴더속으로 몸을 숨겼다. 기계의 아주 희미한 소음위로 자신의 한숨을 겹치며, 나타샤는 답답한 듯 양손을 깍지를 끼고 크게 기지개를 폈다. 가슴쪽의 지퍼가 나타샤의 가슴위에서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렸다. 나타샤는 그리고 무언가 생각하듯 자신의 오른손을 잘근잘근 씹다가, 곧 망설임을 접어버리고 꺼두었던 화면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그대로 전화 연결. 물론 상대는 스타크 타워의 토니 스타크. 스타크는 금방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에게 전화를 건 상대가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나타샤는 쉴드전용기밀통로를 이용하여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으니까.

 

 왠일이야. 비밀회로를 남용하는 건 냇스타일이 아닌데.

 

 급해요. 이 회선이 아니면 최근 묘하게 쉴드를 피하는 당신에게 바로 연락이 닿을 방법이 없을 것 같더군요.

 

 ...딱히 피하거나 그랬던 건 아니야. 쉴드요원. 난 단지 최근 별일없이 조용히 잘 지내고 있었고, 그 평화에 익숙해졌을 따름이지. 쉴드는 24시간 내내 전쟁이나 그비슷한 긴장에 둘러쌓여 있는 동네잖아. 난 그게 싫다고.

 

 토니. 지금 랩인가요?

 

 그래. 랩이야. 혼자만의 좋은 시간을 잘보내고 있었어. 자네가 방해하기 전까진 말이야.

 

 그럼 한가하군요. 당신이 한가한 시간도 있다니 놀랍네요. 그 한가한 시간 조금 나눠서, 이정도는 금방 볼 수 있겠죠? 피스 오브 케이크. 부탁 좀 할게요.

 

 그리고 데이터의 전송. 쉴드전용창구는 확실히 빠르고도 빨랐다. 그리고 상대의 자비스는, 뭐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존재이니까. 나타샤는 토니의 얼굴 변화에서 토니가 자신이 보낸 데이터를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훑어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딘가 졸려보이고, 느긋해보였던 눈매가, 나타샤가 보낸 데이터의 첫장을 펼치자마자 희미한 빛을 발한다. 눈매가 또렷해지고 가느다랗게 강해지고. 나타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부탁하는 것은 나타샤 르마노프의 본의가 아니일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어쨌거나 최후의 방법이기도 하였다. 그는 동등하다. 캡틴 아메리카와 거의 동등하거나 어쩌면 약간 우의의 위치에까지 서 있는 아이언맨이니까.

 

 요 일주일간 캡틴 아메리카가 벌인 일들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해결'했다고 하는 것이 옳죠. 모든 것이 완벽해서 사실상 데이터기록도 남길필요가 없는 일처리였어요. 정말로 캡틴에게는 감탄할 일 뿐이죠.

 

 ......

 

 토니는 말이 없었다. 단지 턱을 쓸어내리며, 조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한 손을 들어 나타샤가 보낸 자료를 옆으로 접어치웠다. 나타샤는 토니의 공기가 바뀐 것을 눈치챘다. 그는 지금, 스티브의 얼굴을 보고싶지 않아해.

 

 ─아, 하지만. ...하지만 그의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그는 최근 자기자신에게 너무 가혹할 정도로 박차를 가하고 있어요. 그가 소화해내고 있는 스케쥴은 보통인간의 범주를 넘은 존재에게도 지나칠정도로 하드해요. 우리 중 아무도 그에게 자기자신을 십자가에 달아달라고 말하지 않아요. 자기희생은 영웅의 본래소임이 결코 아니라는 걸 그도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통할리가 없는 노친네지.

 

 그런 마음을 알아줄 만한 사람이 아니다. 스티브를 걱정하는 마음, 스티브를 우선시 하는 마음, 자기를 1로 세우고 그가 지켜줘야 하는 수많은 시민들을 2로 세우는 그런 마음, 그런 마음을 결코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스티브 로저스는. 평생의 대부분을 캡틴 아메리카에 쏟아부운 이 남자는. 당신이 소중하니까, ...누구보다 가장 소중해지고 말았으니까 어쩔 수 없이 느끼고 마는, 이 스스로는 도저히 컨트롤 할 수 없는 단지 자연스러운 감정을, 그는 단지 필요없다라는 말로 내치는 것이다. '나는 캡틴 아메리카이니까, 물론 앞으로도'라는 더할나위없이 완벽한 변명으로 무장한 채로. 토니는 턱을 쓸어내렸다. 토니의 쓸쓸해보이는 표정에 나타샤는 입을 다물었다. 나타샤는, 토니에게 말려달라고 하고싶었다. 스티브와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하고싶었다. 그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아요, 나쁜 적을 단시간에 더 많이 쓰러뜨리는 것이 좋은 일인데 왜 하지말라고 막느냐고, 그렇게만 반복할뿐이라서. 그래서 그에게 스스로를 돌보고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휴식시간을 가지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라고, 그렇게 당신이 말해주기를 부탁하려 했는데. 나타샤는 아주 드물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지금 그런 부탁을 하기 위해, 토니에게 연락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잘은 모르지만, 상처를 받은 것이다. 토니 스타크는.

 스티브 로저스에게.

 어쩌면, 더할나위없는 진심으로.

 

 전화를 끊고나서, 나타샤는 진지하게 스티브의 사진을 내려보았다. 화면속에 약간 평소보다 환한색으로 보이는 스티브는, 물론 캡틴 아메리카의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수척해보였다. 홀쭉해진 뺨은 몸을 혹사시킨 탓이었다. 하지만 아까의 토니 스타크의 쓸쓸한 눈동자는, 이 캡틴의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보다 훨씬 더. 나타샤는 스티브의 사진위를 손가락으로 한 번 쓰다듬으며, " 대체 무슨 일이에요...? 스티브. " 중얼거렸다. 토니. 당신도. 마음속으로도 중얼거렸다. 자신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을 같이 녹이며.

 

 

 

 

 

 

 

 

 

 정말 야위었네.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한 손으로는 데스크 위를 톡톡 내려치면서, 토니는 크게 띄운 스티브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스티브의 굳은 입매위에 거칠어진 입술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날의 상처입은 눈동자가 계속 반복되어서, 토니는 그 날 이후로 스티브의 얼굴을 계속 피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TV도, 신문도, 쉴드도, 어벤저스도, 모두. 심지어 스타크기업까지. 토니는 랩에만 계속 있었고 아무 의미없는 여러 기구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마음이 또 느긋해져서, 평소의 토니 스타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회사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이든 네트워크만 있으면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는 듯이 토니는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랩에 있었지만, 주변일을 돌보지 않거나 하지는 않았고, 대신에 매스미디어는 잘라내어 그의 얼굴만을 걸러내었다. 오로지 토니 스타크의 맞춤형인 놀이방안에서 토니는 심지어 평소보다 더 즐겁기까지 했다. 캡틴에게 상처를 주었고 캡틴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이 오롯이 사실 그대로로만 반복되어 감정은 전혀 피어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아주 고요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토니 스타크는 알았다.

 이런 게 거짓말이라는 걸.

 

 이런 거짓말을 자기자신에게 계속 반복하기 때문에, 사람은 때로 미쳐버리는 구나

 라는 걸.

 

 피곤하다. 나를 속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피곤한 일이야. 토니는 지친 눈동자로 사진 속 스티브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마구 성질내며 손에 잡히는 것을 있는대로 전부 저 얼굴을 향해 집어던질 수도 있을 거고, 미친척 모든 가구를 다 때려부술수도 있을 거고, 스낵바에 있는 모든 술을 한꺼번에 위장에 집어넣어 몸을 폭파시켜버릴 수도 있을거고, 어쩌면 이대로 무너져 펑펑 울어버릴 수도 있을 거다.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동시다발적으로 할 수도 있을테지.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지금 당장 나에게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

 

 토니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네가 가버린 이상

 스티브가 가버린 이상

 

 그가 거부한 이상

 토니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 아──── 키스가 하고싶다. "

 

 

 

 

 책상위에 그대로 얼굴을 묻어, 토니는 단지 한 손을 들어 스티브의 사진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무방비한 손바닥 위에는 단지 홀로그램의 전자파만이 미미하게 느껴졌다. 키스가 하고싶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싶었다. 스티브의 목덜미의 냄새가 토니의 몸을 한바퀴 돌며 전체를 장악하면, 그대로 스티브의 육체속으로 녹아들어가고싶은 욕망을 있는대로 발산하며 스티브를 당황시키고 싶었다. 그의 목덜미를 잘근잘근 씹거나 때로는 귓바퀴를 핥거나 하면서. 그는 무디지만, 그런 노골적인 욕망에까지 반응 안할수는 없을 거였다. 그대로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거였다. 그러면 토니는 그틈을 놓치지 않고 스티브의 상체위로 쏟아지듯 올라탈 거였다. 그의 목을 껴안고, 그가 도망갈 수 없게 두 다리로 홀드시키고, 그대로 그의 몸 전체를 조이면서

 

 또 고백할 것이었다.

 사랑한다고.  

 

 대체 사랑에 빠지게 된 것에 이유가 어디 있냐고.

 어째서란 단어가 왜 필요하냐고.

 

 " 넌 정말 바보야. 캡. "

 

 그리고 그 바보스러운 점을 내가 구제할 수는 없어. 그것까지 내가 해줄 수는 없어.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너의 전부를 사랑하지만, 내 모든 것을 전부 너에게 쏟아버릴 준비도 충분히 하고 있지만, 그 이전의 문제에까지 내가 닿아있을 수는 없는거야.

 

 그래서 이 오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이 고통이.

 죽음과 양면동전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는 이 밤의 외로움이.

 

 

 

 

 

 

 

 

 스티브 로저스가, 토니 스타크를 찾아와야지만 끝나는 싸움이었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발로 걸어 들어와야만 하는 것이었다. 토니가 그를 위해 만들어둔

 토니 속의 공간으로.

 

 오로지 스티브를 향해서만 열려 있는

 그곳으로.

 

 

 

 

 

 

 

-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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