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空

 

 “…….”

 지금이 미드가르드의 시간으로, 몇 시인가.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는가.

  토르는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은 새하얗고 드문드문 구름 같아 보이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귀엽네. 토르는 천장에 드문드문 붙어있는 그 구름모양의 스티커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르는 피식하고 웃었다. 귀엽다라는 한가로운 감상이 슬슬 고개를 드는 거 보니, 이 미친 생활에도 적응을 해버린 것일까. 토르는 힘없이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손목에서 달그락거리는 수갑을 바라보았다. 토르가 누워있기 때문에 자기 얼굴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쇠사슬은 수갑에서부터 길게길게 이어져 토르의 가슴위로 떨어졌다. 자기 바로 눈 밑이라서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두 손으로 더듬어 본 바로, 아마 이 양손의 수갑에서부터 나온 쇠사슬은 그대로 토르의 목을 죄고 있는 개목걸이의 끝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목걸이에서부터 나온 한 줄의 쇠사슬은 그대로 길게 토르의 두 다리 사이를 지나가 침대의 네 귀퉁이의 다리 중 어느 한군데에 그 끝이 묶이어 있을 것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아마도 그렇게 되어있을 것이다. 사실 정확하게 확인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토르는 이제 진위를 파악하는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토르도 처음에는, 자신이 미드가르드의 평범한 인간처럼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결박하려 드는 로키를 향해 무던히도 많은 반항을 해보였었다. 내가 인간이 되었다니. 내가 지켜줘야 할 존재가 아니라, 지킴을 받아야 할 존재가 되었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래서 토르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닥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질러대고, 팔을 있는 대로 휘두르고 다리를 연신 움직여대고 전신에 힘을 주고 그러면서. 그러나, 아무리 손발을 움직여도 그것들이 무기가 되기는커녕 단순한 허우적거림으로 끝나버렸을 때, 그리고 그 허우적댐으로 로키의 비웃음을 샀던, 그 순간에. 그러니까 그 날, 가장 처음 이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 갇혀버렸던 그 날. 거의 한숨도 자지 않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결박을 풀어내려 온갖 쓸데없는 노력을 하고 난 후로, 토르는 이제 인정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정말로 이 몸뚱이는, 그저 인간의 몸뚱이일 뿐이라는 것을.

  그렇다. 토르는, 지금, 신의 아들이 아니라, 단지 누군가의 지킴을 받아야 할 평범한 인간이 되어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야말로 이 한 뼘 정도 되는 작은 방안의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위에서 포박당한 채인,

  그 포박을 풀기는커녕 저항하는 노력도 잊어버린 힘없는 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모든 마법의 힘과 능력을 잃어버린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존재라는 것을. 자신을 묶고 있는 쇠사슬에 상처를 입어 붉게 부어오른 신체 여기저기의 생채기를 바라보면서, 토르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곧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졸리다. 밤과 낮이 모호한 항상 흐릿한 불빛으로 고정되어있는 방안에서, 토르는 난폭할 정도로 제멋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뭐 여기서 잠이 든다고 해서, 그에게 화를 낼 사람도 없거니와. 자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기도 하고. 토르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조금 정신을 사납게 만드는 꿈. 분명 다시 잠에서 깨어나면 기억하지 못하리라. 토르는 꿈을 꾸고 있는 그 순간에도, 두 번 다시 기억할 수 없는 꿈의 단면을 그저 흘려보냈다.

  다시 눈을 뜨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역시나 알 수가 없다. 단지 토르는 한쪽 머리칼이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을 뿐이었다. 눈을 뜨니 방안이 평소보다 더 어두웠다. 무언가 토르의 눈에 비치는 대부분의 곳에 있는 존재의 그림자 때문에 토르의 시야가 그렇게 된 것이리라. 토르는 그것이 로키라는 것을 아직 잠에 취한 눈이 정확한 상을 구별해내기전에 이미 깨닫고 있었다. 사람이 되고나니, 사람의 사소한 인기척에 민감해지고, 토르는 그래서 로키의 나지막한 숨소리에 민감해져 있었다. 꼭 그게 아니라도, 이 방에 들어오는 사람은 이미 결박을 당한 첫날부터 그밖에 없었기도 하거니와. 토르는 왠지 평소보다 배로 무거운 눈꺼풀을 다시 감았다가 천천히 뜨기를 두 어 번 반복하면서,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나의 동생. 로키의 진한 피부의 냄새가 에이는 듯 했다. 토르는 희미한 시선을 감추며 한 번 더 눈을 깜빡였다.

  "왔는가. 로키."

  "다녀왔어. 잘 잤어?"

  로키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토르는 약간 고개를 돌려 로키를 바라보았다. 로키의 창백할 정도로 하얗고 초연한 얼굴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로키는 긴 검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고 한쪽팔로 자신의 턱을 지탱한 채 엎드린 포즈로 토르의 옆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토르의 이불위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금색의 머리칼을 손가락에 꼬고 돌돌 말거나 매만지거나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로키는 이 자세 그대로 잠들어 있는 토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가. 사람이 자는 얼굴을 또 멋대로. "잠든 내 얼굴 보는 게 재밌느냐. 너는." 토르의 말에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로키의 입술이 가느다랗게 길어졌다. "." 로키의 대답이 귀를 간질였다. 토르는 쿡쿡하고 웃었다. 언제부터인가, 오랫동안 갇혀있었기 때문인가. 그것도 인간의 몰골을 하고. 토르는 로키가 방으로 돌아올 때마다, 그리고 자신의 침대에 올라와 옆에 나란히 누울 때마다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어딘가 딱히 꼬집어 웃긴 점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져서. 로키는 눈썹을 찌푸리며 무뚝뚝한 입술을 꽈악 깨물고 쿡쿡하고 웃는 토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토르의 금발을 손안 가득히 쥐고, 자신의 입가로 끌어당겼다. 금발은 입체적으로 빛났고, 가느다랗게 토르의 냄새가 났다.

  ", 혹시 미쳤어? 내가 너무 오래 가둬놔서."

  로키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져 있었다. 네가 이렇게 만들어놓고는 뭘 걱정하는 거냐. 토르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내뱉지는 않았다. 단지 웃음과 한숨이 섞여 토르가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토르의 입 밖으로 흘러나갔다.

  "걱정마라. 아직 미치진 않았다."

 "……."

 "하지만그렇군. 이게 '미쳐간다'는 감각이로군. 처음 알았다."

 "……."

  로키가 킥하고 웃었다.

  "미쳐버린 형을 보는 것도 재밌겠네. 기대 이상이야."

 "처음부터 내가 미치는 걸 바란 것은 아니고?"

 "아니. 아닌데."

 "그럼 날 왜 가둬놓은 거냐."

 "……."

  로키는 입술을 더욱 가느다랗게 하고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을 앞에 두고 토르도 결국 마주 웃는 수밖에는 없었다. 지금이 미드가르드의 시간으로, 몇 시인가.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는가. 아무리 물어봐도 로키는 아무것도 대답해주지를 않았다. 로키가 갑자기 나타나 토르의 머리위로 알 수 없는 액체를 끼얹었고, 순간 몸 전체에 거품 같은 연기가 일어난다 싶더니, 어느새 토르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겉모습은 원래의 토르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토르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달라졌다는 것을. 토르는 두 팔에 아무 힘도 들어가지 않았고, 전신에 기운이 축 빠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 한가운데에 있는 무언가가 녹아 형태를 바꾸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전신에 솟아나는 열 때문에 토르는 무릎까지 덜덜 떨면서 허리를 꺾었다. , 이게 무슨! 토르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던 것 같은데, 로키는 그런 토르를 바라보면서 싱글싱글 웃고 있었고. 그리고 토르는 무엇보다, 그 무엇보다 묠니르가 무거워서. 묠니르가 너무나 무거워서 도저히 들고 있을 수가 없어진 것이다. 토르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쿵, 소리를 내며 묠니르를 떨구었다. 묠니르를 놓치자 꼭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나간 것처럼 토르의 손가락이 붉어진 채 끝에서부터 징징거렸다. 바로 그때였었다, 로키의 웃음소리가 귀에 박히듯 선명해졌던 것은. 토르는 식은땀을 흘리며 로키를 바라보았고, 로키는 그 웃음 그대로 손을 뻗어 토르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이 작은 방에 억지로 끌고 와 토르의 연약한 반항에도 아랑곳없이 토르를 침대위에 억지로 묶어, 포박한 채 움직일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그 후 토르는 대체 몇 번을 자고 깨고, 자고 깨고, 자고 깸을 반복했는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의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토르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딘가로 나갔다가,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 꼭 다시 토르 옆으로 돌아온 로키는, 토르가 내뱉는 질문에는 그 어떤 질문에도 결코 대답하지 않았다. 토르는 처음에는 기운이 허락하는 한 로키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었고, 있는 힘껏 저항하였다. 로키가 자신에게 행한 모든 일에 분노를 표하면서 한편으로 그의 대꾸를 바랐다. 조각이라도 단서를 모으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이 처한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단서를. 그러나 로키는 토르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토르가 화를 내든 분노하든 로키에게 심한 말을 내뱉으며 그의 기분을 긁든, 하여간 무슨 짓을 해도, 로키는 눈썹 하나 깜빡하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는 정말이지 토르가 단서를 얻으려는 노력을 거의 포기하게 될 정도로 그 어떤 말도 하지를 않았다. 그리고 물론, 그는 토르의 화를 받아주지도 않았다.

  로키는, 단지, 토르를 안았다.

 자기가 토르에게서 원하는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는 것처럼, 토르를 안았다.

  침대위에 토르를 묶어둔 채, 로키는 인간의 몸이 된 토르를 간단히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로키는 아무것도 사양하지 않았다. 인간이 되어버린 몸이라고 조심스럽게 취급하지도 않았다. 로키는 단지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토르를 안았다. 그때의 토르의, 그 두려움. 이해불가. 혼란과 저항. 그 모든 것이 로키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로키는 토르의 두 팔을 움켜쥐고 그 손목위에 자신의 손자국을 새기면서 토르의 깊숙한 곳에 자신을 쏟아내는 것을 즐겼다. 매번 같은 것을 비슷한 농도로 반복하자 토르의 딱딱한 몸이 점점 부드러워져갔다. 로키는 황홀했다. 솔직히 황홀해했다. 황홀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토르의 안에서 절정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로키는 토르의 안에서 몸을 흔들며, 기분 좋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내뱉었고, 자신의 기분좋아하는 얼굴을, 또 토르의 몸 안에서 절정을 맞이할 때의 자신의 표정을, 토르가 피하지 못하도록 그의 턱을 잡았다. 그의 턱을 잡고 자신을 똑바로 보게 했다. . 나를 봐. . 형안에서 갈 때의 내 표정을 제대로 보라구. 똑똑히. 그리고 로키가 황홀해 할 때 마다 극대화해지는 토르의 혼란을, 자신의 아래에서 울부짖다가 울부짖는 자기 자신에게 순간순간 모멸감을 느끼며 무너지는 토르의 표정을, 향해,

  로키는 키스했다.

 그의 눈물방울에

 키스를 하였다.

  토르의 눈물은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토르의 젖은 피부에 맞닿는 그때마다, 얇은 자신의 피부너머로, 로키는 누군가가 자신의 심장을 손으로 콱 움켜쥐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건 심장이 아프다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인가. 당신의 냄새로만 가득 찬 이 순간에.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로키는 천천히 쥐고 있던 토르의 머리칼을 내려놓았다.

". 지금 미드가르드는 봄이라는 계절로 만연한데지금은 이미 다 졌지만. 이런 거 본 적 있어?"

  침대위에서 토르가 누워있는 방향대로 엎드려서 토르를 바라보고 있다가, 로키는 곧 부스스 일어났다. 토르는 두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던 손을 내리고 로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쇠사슬이 토르의 배위에서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로키가 옆을 흘기며 씨익 웃었다. 토르는 로키의 가늘어진 눈 꼬리를 바라보노라니 문득 그리운 생각이 들었다. 로키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저런 식으로. 어머니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겠다 싶을 때나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즐거움을 느낄 때면, 언제나 눈 꼬리가 저런 식으로. 토르는 로키에게 이끌리듯 연하게 웃었다. 로키는 입고 있던 코트의 주머니에서 서로 연결되어있는 벚꽃 몇 송이를 꺼내어 들었다. 주머니에 들어있어 꽃잎 몇 장은 접히거나 떨어져 있었고, 활짝 펼쳐져 있었을 꽃이 시들해져 끝이 축 처져 있었지만, 하여간에 그것은 은은한 분홍색의 그라데이션을 하고 있었다. 로키는 누워있는 토르의 헐벗은 배위로 그 꽃송이들을 떨구었다. 꽃에게서 떨어져나간 꽃잎 몇 장도 하늘하늘, 춤을 추다가 토르의 어딘가로 떨어졌다. 토르는 눈에 잔주름이 가도록 눈 주변을 구부리며 웃었다.

  "본 적 있어. 미드가르드의 아주 아름다운. 벚꽃이라는 꽃이지."

 "잘 아네. 눈송이처럼 떨어져서, 제법 성가셨어."

 "벌써 그런 계절이었던가. 아아 보고 싶구나."

 "……."

 "보고 싶어."

 "……."

  토르는 손끝으로 배를 더듬어 벚꽃의 감촉을 느꼈다. 벚꽃은 아주 부드러워 솜털 같았다.

  "벚꽃은 밤에 보면 더 아름답단다. 로키. 다음에 나가면 벚꽃나무가 좌우로 뻗어있는 장소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봐. 시야의 양끝에 매달려있는 벚꽃들은, 아스가르드의 다채로운 색채이상으로 아름다운 어둠이 녹아있거든."

 "……."

 "그게 참 아름다운데."

  토르를 내려다보는 로키의 눈동자가 새카맣게, 식어있었다.

  ". 나 형 안 풀어줘."

 "……."

  토르는 로키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마저 가라앉아, 로키는 무척이나 무표정했다. 또 그리고, 무척이나 슬퍼보였다.

  "내가 너를 절대 풀어주지 않을 거라는, 그런 각오를 하란 말이다. 토르."

 "로키."

  그럼 대체 어떻게 할 건데. 영원히 이렇게 가두어 두고, 그래 계속 날 가두어 두고, 근데 그럼 그러고 나서 대체 뭘 할 건데. 토르의 말에 로키가 킥하고 웃었다.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은데? . 로키는 토르를 내려다보며 토르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였다. 키스는 쪽 소리를 남기고 사라졌다. .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를 실망시켰고, 이제는 형까지 배신하였고, 심지어 미드가르드를 완전히 부서뜨릴 생각이었어. 내 계획은 어벤져스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욕망이 꺾여버린 것은 아니야. 그렇지 않겠어?

  ". 그런 내가 형을 왜 인간으로 만들고, 왜 형을 가두어두기까지 하는 걸까? 그것도 평생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토르라는 후계자를 빼앗아 아스가르드에 복수하려고? 아님 자신들을 지켜주는 신의 아들을 잃어 미드가르드에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서인가?"

  ". 누군가가 형을 찾으려 하고 있다면, 그건 아스가르드인일까? 아니면 미드가르드인일까?"

  "그들이 지금 과연 형을 찾아다니고는 있을까?"

  "내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내가 하는 질문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면서, 네가 하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라는 거냐. 나보고." 토르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로키는 킥하고 웃고는 토르에게 다시 키스했다. 로키의 입술이 차가웠다. 토르는 그 키스에서 로키의 쓸쓸함을 느꼈다. 토르는 눈치 채고 있었다. 로키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이 언제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그 많은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은 것에 관련한 것이 아니다. 로키는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토르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토르는 그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로키. 나는 언제나 너의 장난을 눈치 채지 못하지만, 언제나 너에게 지고 말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 하나만은 매번 잘 알지 않았니. 너의 기분. 네가 지금 행복한지 슬픈지 정도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결국 그렇게 슬픈 눈을 할 거였다면, 나를 안지 않으면 될 것을.

 어째서 이럴 수밖에 없었던 거냐.

 동생아.

  "나를 사랑해서냐."

 "뭐라는 거야 이 망할 형이."

 "……."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너무나 사랑하지만 말이다, 로키.

  그러나 이 사랑이 네가 바라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이제 나도 잘 알고 있단다.

  토르는 두 손을 들어 로키의 얼굴을 감쌌다. 로키의 작은 얼굴이 토르의 커다란 두 손에 대부분 담기어 로키의 눈만이 데굴거렸다. 토르는 희미하게 웃으며 눈을 깜빡였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절그럭거리는 쇠사슬의 소리. 종일 팔목을 압박당해 쇠사슬형태의 자국이 꼭 문신처럼 새겨져 욱신거렸다. 아프구나. 토르는 반복하여 눈을 깜빡였다. 어느 순간부터 눈물이 툭하고 떨어졌다. 파란 눈 주변으로 번져 눈물은 조금씩 조금씩 그 양을 더하며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안하다."

 "……."

 "미안하다. 로키."

  널 사랑할 수가 없구나.

널 너무나 사랑하지만

네가 원하는 사랑은, 줄 수 없어.

나에겐 없어.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나에겐 아무것도 없으니까.

  "잔인한 형."

  로키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토르는 눈물을 흘리는 얼굴을 로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토르의 숨을 참는 소리가 로키의 귓가에 들려왔다. 로키는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토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를 일시적인 인간화 시켰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약은, 사실은 곧 그 효력이 다할 것이었다. 로키는 매일같이 그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을 손까지 꼽으며 일일이 세고 있었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속도가 너무 잔인해서. 단 한순간이라도 시간을 멈추고 싶어서. 로키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토르가 눈치 챘다는 것을. 당신의 생각이 맞아. 토르. 토르가 다시 아스가르드인으로 돌아가고 나면, 난 죽을 거야. 목만 덜렁 남고 육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감은 눈을 두 번 다시 뜰 수 없게 되어버린다고. 그게 바로 내가 그 물약을 얻은 대가야. 그 물약을 얻기 위해서는 물약과 비슷한 가치의 것을 주어야만 했지. , 형도 알잖아.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나에게 남은 거라곤 달랑 이 목숨뿐이라는 걸.

  달랑, 이 목숨과

이 마음.

그저 이것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로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도저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토르를 안기위해서는, 이제 남은 다른 방법이 전혀 없다고. 그래서 로키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자신의 목숨과 기꺼이 바꿀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래서 로키는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해서 물약을 얻었고, 그 물약으로 토르를 얻었다. 물론 토르를 얻은 것은 한순간으로, 이제 곧 효력이 다하면 그는 다시 날아가 버릴 거였지만, 로키는 괜찮았다. 어차피 토르가 날아가는 순간을 자기가 알 수는 없을 테니까. 그것으로 만족했다. 로키는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부정하지 말아줘. 거절하지 말아줘."

"로키이."

"받아주지 않아도 좋으니, 내치지 말아달라고."

  로키는 토르의 헐벗은 등 뒤로 자신의 두 손을 밀어 넣고 토르를 잡아당겼다. 눈물에 흐려진 눈동자를 가리면서 토르가 훌쩍였다. 토르는 순순히 로키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로키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토르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그를 껴안을 수 있었다. 안고 싶다. 그를 안고 싶어.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남은 시간 동안 로키가 하고 싶은 일은 오로지 그것밖에는 없었다. 로키는 토르의 귓가에 대고 그래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또 할 거라고. 당신 안에 나를 넣고 마음이 풀릴 때까지 당신을 흔들어 댈 거라고. 귓불과 뺨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토르는 그저 눈물을 떨구면서 로키의 어깨에 매달렸다. 로키는 피식하고 웃었다. 이게 사랑이 아니라니. 이 사람이 이렇게 마음을 열고 있는데, 이게 사랑이 아니라니. 빌어먹을. 토르. 어떻게 내가 이렇게나 매달리게 만든 거야. 내가, 이 로키가 이렇게나 매달리는데 어째서 끝까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거야. 왜 사랑해주지 않는 거야. 어째서 이렇게 잔인한 거야. 어째서 이렇게 미운거야. 어째서 세상은 계속 형태를 유지하고, 왜 이 빌어먹을 세상이 사라지지 않는 거지. 당신을 안고 있는 이 순간, 착각이라도 좋으니 사랑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이 순간, 당신과 내가 완전히 끝장이 나 버리면 좋을 텐데.

  사랑해.

나를 사랑해줘.

역시 사랑해.

그러니 나를 사랑해달란 말이다.

  로키는 맨손으로 토르의 엉덩이 안쪽 살을 더듬었다. 토르에게는 어젯밤 자기가 내뱉어놓은 것이 그대로 엉겨 붙어 있었다. 토르가 코끝을 붉게 물들이며 창피하듯 더욱 로키의 어깨에 매달렸다. 귀여워. 이 미친 생활에도 이런 한가한 감상이 생기는구나. 로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토르의 어깨에 코를 박았다. 토르의 냄새가 난다. 달콤한 향. 빌어먹을. 이게 착각이라니. 이 모든 것이 사랑이 아니라니. 제발. 토르. 전부 거짓말이라고 말해줘. 사실은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해달라구.

  로키가 흘리는 눈물은, 곧은 한줄기.

그대로 흘러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처럼, 증발해버렸다. 순식간에.

 

 

<Fin>

 

맞다 아 이런 거도 썼었어요... 랄까 책으로 냈었어..!!

이게 언제였지..? 14년도인가 그랬지 아마...?!!!!! 으아아...

14년도면 마블 마악 입덕할까말까 한 시기인지라 캐릭터들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글부터 끄적여보자고 했던 그런ㅎㅎㅎㅎ 좋은 똥배짱입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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