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브록 럼로우는 두 손으로 캡틴 아메리카의 목을 조르는 꿈을 종종 꾸었다. 럼로우의 흑백 꿈 속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푸른색도 붉은색도 잃어버린 채 그저 까맣게 점멸하며 럼로우의 두 손 아래에서 사라졌다. 꿈은 잠에서 깨어나도 선명하게 남아 살아있는 럼로우의 손바닥에 생생한 감각을 느끼게했다. 럼로우는 이미 누군가의 목을 맨손으로 졸라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캡틴의 목을 조르는 느낌도 쉽게 상상할 수 있었고, 꿈이 현실만큼 생생한 것은 그런 이유때문일 것이었다. 이 깨어있어도 잠든 것 같은, 잠들어 있어도 깨어있는 것 같은 딜레마에 허덕이며 럼로우는 조금씩 야위어갔다. 그리고 브록 럼로우의 최대한의 고민은, 그 꿈이 달콤한 건지 그 꿈이 악몽인 건지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살이 빠진 럼로우는 몸에 맞게 제작한 쉴드제공 제복이 헐렁해지고 말았다. 옷이 맞지않은 것은 여러면에서 곤란했다. 럼로우는 한치수 작은 사이즈의 제복을 다시 제공받았고 제복을 제공받는 과정에서 스티브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고 말았다. 럼로우가 새로 지급받은 셔츠를 입고 있을 때 럼로우의 기숙사방 밖에 서서 스티브가 그의 방문을 노크한 것은 그 이유때문이었다. 럼로우는 셔츠를 다 입고 방의 문을 열었고, 문을 열자 서 있는 스티브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느다랗게 동요했다. 꿈과 현실이 혼동되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스스로의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그와 마주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뜬금없이 목을 조르고 싶어지니까 곤란하거든. 럼로우는 그러나 자신의 동요를 스티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캡. 왠일입니까 제 방까지." 럼로우는 평소처럼 스티브 로저스가 알고있는 브록 럼로우의 평소를 가장하며 쾌활하게 입을 열었다. 스티브는 늘 그렇듯 조금은 표정이 없는 잘 만들어진 사기그릇같이 아름다운 얼굴로, 긴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깐 채 럼로우는 말갛게 쳐다보고 있었다. 왠일인가. 그 투명한 눈동자에 짙은 감정이 다 어려있고. 럼로우는 스티브가 자신을 걱정하는 감정을 민감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잠깐 괜찮을까?" 둘이서 대화가 하고싶은데. 럼로우는 스티브의 감정을 눈치채고 있다는 것또한 스티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이제 내가 뭘 감추고 싶어하는 건지도 헷갈리기 시작하는군. 그냥 당신이란 존재를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건가. 그런 마음이 결국 그런 꿈을 꾸게 하는 건가. 아니다, 그건 이제와 너무나 새삼스럽다. 나는 처음부터 캡틴 아메리카를 죽이기 위해 쉴드에(하이드라에) 존재하는 존재이다. 나는 원래부터 캡틴 아메리카를 죽이고싶어한다. "...들어오시죠." 럼로우는 스티브에게 방으로 들어오라는 것처럼 문에서 한발 뒤로 물러섰다.
럼로우는 기꺼이 스티브를 위해 방에 하나밖에 없는 의자를 양보했다. 스티브는 약간 어색해하며 그래도 사양치않고 럼로우의 의자위에 앉았다. 럼로우는 스티브의 체중을 지탱하는 자신의 의자의 얇은 다리를 바라보며 팔짱을 끼었다. "자네도 앉지." "서있는 게 더 편할 것 같군요." 스티브가 럼로우의 침대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해 럼로우도 자신의 침대쪽으로 눈을 움직이기는 하였으나, 결국 럼로우는 그저 벽 한쪽에 등을 대고 서 있는 쪽을 택했다. 스티브는 더 이상 앉으라고 권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상체를 앞으로 조금 내밀며 무언가 생각에 잠기었다. 럼로우는 스티브에게 서둘러 용건을 말하라 닦달하지 않았다. 럼로우는 팔짱을 낀 채로 스티브가 생각에 잠긴 얼굴을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젊은 얼굴에 우수가 차올라 기어코 홀로 동떨어지고야 마는 스티브 로저스의 얼굴을 사실은 자기가 꽤 좋아한다는 것을, 럼로우는 새삼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하얀 얼굴을 저대로 두고싶기도 했다. 언제나 조각난 꿈은 반짝이며 아름다우니까. 그러다가도 때론 저 하얀 얼굴이 파랗게 질리면 어떻게될까 싶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있는 럼로우의 오른쪽 손가락이 까딱거렸다. 손바닥에 스멀스멀, 지난밤 스티브 로저스의 두꺼운 목을 조르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새까만 어둠속으로 점멸해가고있어서 목을 졸리는 순간의 스티브의 표정이 어땠는지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가 럼로우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어쨌는지도 알 수가 없었고, 그저 언제나 럼로우에게 남는 것이라곤 그 손바닥에 그의 목을 조르는 감각 뿐이다. "럼로우. 자네 체중이 급격히 감소했더군." 조용히 화초처럼 얌전히 있다가 갑자기 입을 여는 스티브의 말하는 타이밍은 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럼로우는 갑자기 말을 시작하는 스티브앞에서 너무 당황하지 않고 스티브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도 지나치게 짧은 시간에. 뭔가 자네의 신변에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난거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란 생각이 드네." "......" 럼로우는 가만히 스티브의 말을 듣다가 문득 팔짱을 풀고 왼쪽의 목어딘가를 긁적였다. 과연. 그런 얘긴가. 럼로우는 목을 긁적이다 그대로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뭐... 딱히 별 일은 없는데요, sir. 네, 뭐 별로." 럼로우의 대답에도 스티브는 어딘가 불안정한 기색이었다. 그리고는 어려운 말을 간신히 꺼내는 것처럼 내키지않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변에 별 일이 없는데 그렇게 갑작스럽게 체중이 줄다니... 그럼 혹시 최근 내가 자넬 너무 혹사시킨 건 아닌가?"
"지금 자네부대는 오로지 내 리드에서만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리고 스티브는 닉 퓨리가 자기에게는 알리지 않고 브록 럼로우의 부대를 또 어딘가의 임무를 수행케 명령했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럼로우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내 휘하에 움직이는 직속부하의 건강상태가 신경쓰여서 말이야. 솔직히 자넬 찾아오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더군... 몸이 힘들거나, 임무의 량이 많거나, 나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숨기지 않고 전부 말해주게. 나에게 자넬 선처할 수 있게 해줘." "......" 그리고 럼로우는 다시 팔짱을 꼈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했다. 순식간에 불쾌해진 기분을 잘 컨트롤해서 스티브에게 시비를 거는 말투로 말을 내뱉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데에도, 럼로우는 꼭 입을 열면 툴툴대는 말투가 될 것 같아 차라리 말을 참아내는 편이 낫다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답을 요구하는 스티브의 눈길을 받으며 그렇게 입다물고 있을 수만도 없어서, 럼로우는 결국 한숨과 함께 입을 열고야 말았다. "그건 뭡니까... 그러니까 이런 뜻입니까? 슈퍼솔저의 서포트도 제대로 못하는 평범한 뱁새의 가랑이가 찢어지기 전에 미리 보고하라 이말입니까?"
"보고하면 뭐, 당신 서포트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살까지 빠진 보통 군인인 브록 럼로우을 이제 앞으로의 당신 서포트에서 빼기라도 할겁니까?"
"럼로우."
"아니면 당신이 임무를 다섯개 해치울 때 전 두 개에만 참가하게 되거나 뭐 그런겁니까? 세상에, 캡. 지금 당신은 저란 군인을 모욕하고 있다는 자각정도는 가지고 있겠죠?"
"......"
"부하의 자존심마저 당신이 컨트롤할 생각입니까?" "아니야, 그런 게 아닐세." 스티브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면서도 럼로우는 딱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기분은 상했고, 다소 화는 났지만, 스티브는 럼로우의 표정에서 그것보다는 좀 더 온화한 어떤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럼로우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 참. 캡. 부하의 자존심도 부하의 컨디션도 당신이 신경쓸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내 컨디션 관리는 나스스로 할테니 냅두십쇼. ...아, 그래도 걱정을 끼쳐드린 건 좀 미안하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내 체중이 감소된 것은 당신과는 별 연관이 없어요." 사실은 스티브 로저스 때문이지만, 그걸 당신에게 설명할 리가 없잖아. 말 할 리가 없잖아. 럼로우는 또 길게 한숨을 내쉬며 스티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스티브는 여전히 내켜하지 않는 표정으로 럼로우는 바라보고 있었다. 그 힘없이 처진 듯한 어깨에서 럼로우를 향해 미안하단 기분을 발산하고 있었다. 스티브의 파란 눈동자가 부하를 걱정하는 파동으로 일렁이고 있었고, 럼로우는 스티브의 하얀 얼굴 위 파란 눈동자가 자기때문에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기분이 나아지고 있음을 자각했다. 럼로우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관심이 자기에게 쏠리고 있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었다. 그가 날 걱정하는 것도, 이순간 그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건 브록 럼로우일 거란 것도, 전부 기분좋은 일이었다. 당신의 걱정으로 상기된 얼굴도 전부 꿈만 같았다.
그래서 내가 지금, 당신의 그 무방비한 목을 향해 두 손을 뻗어 당신의 목을 조이면
당신의 그 상기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하면
내 기분은 더 좋아질까? 훨씬훨씬.
아니면 오히려 나빠질까? 훨씬훨씬.
대체 어느쪽일까.
어느쪽일지 알 수가 없어서, 자신의 마음을 모르겠어서. 당신의 목을 조이며 당신을 죽이는 그 꿈이 대체 달콤한 건지 괴로운 건지조차 모르겠어서. 그 꿈은 흉몽인가 아니면 길몽인가. 나는 당신을 죽이고 싶어서 죽이고 있는가 아니면 죽이고 싶지않은데 죽이고 있는건가. 나는 꿈속에서 당신을 죽이는 것을 행복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슬퍼하고 있는가. 그걸 도저히 모르겠어서, 그래서 럼로우의 살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란 것을, 대체 럼로우가 스티브에게 알릴 리가 없지않은가. 럼로우는 그저 자신의 의문에 가득 찬 마음을 풀어내고 싶을 뿐이다. 자신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최악인 게 달리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미안하네."
스티브의 사과에 웃음이 나온다. 이건 그냥 웃어버려도 되는 거겠지. 럼로우는 풋하고 소리를 냈다.
"사과하지 마십쇼. 절 위한 말이었단 걸 모르는 건 아닙니다."
"음. 하지만 자네 기분을 상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네. 저도 앞으론 건강관리에 더 주의하도록 하죠."
"그래, 오늘밤 저녁 같이 어떠십니까? 캡. 완전 고칼로리로 먹으러 가시죠." "좋겠지." 럼로우의 권유에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스티브의 입가에 다소 미소가 지어졌다. 럼로우도 웃으며 스티브의 어깨위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스티브는 럼로우가 어깨동무를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것을 무례하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럼로우는 웃는 얼굴로 자기 코앞까지 다가온 스티브 로저스의 무방비한 목을 바라보았다. 오늘밤도 같은 꿈을 꿀 것이었다. 스티브 로저스의 무방비한 목을 양손으로 조르는 꿈. 럼로우는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 꿈에서 만날 스티브 로저스의 표정은 과연 어떨까. 내가 이 손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고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게 다름 아닌 나란 걸 알게 된 스티브는, 지금과 같은 웃는 얼굴을 할 수 있을까. 아님 역시 슬퍼할까. 궁금해. 럼로우는 웃음이 났다. 현실보다 꿈이 더 간절해지는 날이 올줄이야. 럼로우는 점점 자신의 마음이 종잡을 수 없게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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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어요 며칠이 지난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썼단데 의의를 두고 왠지 뿌듯해햐기로한다 ㅋ
럼로우스팁 넘나 오랜만에 써봐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것... 럼로우 참 매력적이다. 멋진 아저씨... 내년의 캡틴 아메리카 3에 비중이 얼마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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