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스티브 로저스는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럼로우도 또한 그렇지만 그의 뒤에 삼삼오오 모여 스티브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던 팀, 스트라이크는 캡틴의 유니폼을 하고 나타난 젊은 금발의 남자를 보자마자 동요를 감출 수 없어 웅성거렸다. 럼로우는 스트라이크팀을 등너머로 노려봄으로써 그들의 동요를 일축시켰다. "닥쳐. 소란피우지 마." 이런일로 동요하는 모습 보이지 말란 말이다, 다른존재도 아니고 저 '캡틴 아메리카'에게. 럼로우의 분노가 통했는지, 얼굴에 여전한 동요와 곤혹이 남아있을지언정, 스트라이크들은 웅성거림을 멈추고 허리를 똑바로 편 채 각자의 정자세를 취했다. 럼로우는 만족하며 다시 고개를 돌려 스티브 로저스- 캡틴 아메리카를 바라보았다. 요원 나타샤 르마노프의 에스코트와 함께 나타난 남자는 그야말로, 마스크만 하지 않고 있을뿐이지, 자료속의 '그'와 완전히 동일한 인물이었다. 럼로우는 눈을 흘기며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70년 전에 만들어놓은 자료속 모습 그대로 나타난 것에 대해, 놀라야할지, 자기보다 배는 젊어보이는 매끈한 미남의 모습에, 놀라야할지, 그것도 아니면 저 악몽같은 캡틴 아메리카의 유니폼을 입고 당당히 걸어오는 것에 놀라야할지, 럼로우는 지금 정확히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것은
명실상부한 캡틴 아메리카인게 정말로 맞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아니, 오히려 저 남자를 둘러싼 저 어리석은 자들(쉴드 속 배신의 하이드라를 모르는 쉴드요원들)의 꿈인 건지도. 저것은. 럼로우는 피식하고 웃었다. 스티브 로저스의 파랗고 진한 두 눈동자와 딱하고 맞부딪힐때에도, 그 어딘가 조금 불순해보이기까지하는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여전히 싱글대고 있었다. 스티브 또한 딱딱하게 굳은 입매를 변화시키지도 않은 채 태연히 럼로우의 웃음을 바라보고 있었고.
스트라이크팀은 나타샤를 향해 짧은 경례를 했고, 나타샤도 서둘러 인사를 끝냈다. 럼로우는 자신의 앞에 와 서는 나타샤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분이 바로 오늘 소개해주시겠다던 우리의 새로운 리더시로군요." 눈치는 채고 있었다. 원래 스트라이크팀의 리더인 브룩 럼로우에게 새삼 그보다 더 높은 계급의 사람을 붙여 다시 팀을 구성하겠다고 하는 이상하리만치 어색한 인사이동은, 럼로우 본인의 좌천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완성도가 높은 팀의 구성원을 이제와 바꿀리가 없지. 그래서, 소문에, 쉴드 내에 자자한 바로 그 소문 속 주인공, 남극의 깊은 얼음속에서 깨어나 하품을 채 끝내기도 전에 뉴욕을 구해낸 과거의 영웅-또한 현재에도 그때와 다름없는 영웅- 이 쉴드에 소속되어 활동할거란 것에 럼로우는 거의 확신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역시나였다. 오늘 첫만남을 갖게 된 쉴드소속 팀 스트라이크의 새로운 리더는 스티브 로저스, 코드명 캡틴 아메리카였다.
"눈치가 빠르네."
"이 업계에서 눈치가 없는 놈은 영 살아남기가 힘들지 않겠습니까? 나타샤. 소개 좀 시켜주십쇼."
"그래요. 이쪽은 다들 아시겠지만, 스티브 로저스. 스팁, 이쪽이 스트라이크팀의 전 리더 브룩 럼로우."
"반갑습니다. 캡틴." 럼로우는 경례를 하면서, 남자의 눈을 쳐다보았다. 남자는 처음 봤을 때와 거의 변함이 없는 고요한 표정을 띤 채로 가라앉은 입매를 하고 있었다. 나타샤의 한걸음 뒤에 서 있었지만 나타샤보다 훨씬 커서, 럼로우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 남자는 그야말로, 양뺨이 탄탄하고 이마가 매끈한 젊은 청년. 갈빛 금색 머리칼과 파스스 흐트러지는 긴 속눈썹 위로 그림자가 쏟아지는. 럼로우는 단숨에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캡틴을 쭈욱 훑어보았다. 양쪽으로 주먹을 쥐고 있는 캡틴의 두꺼운 손가락위로 솟은 힘줄마저 훑었다. "아, 캡틴이라고 불러도 되죠?" 그리고 럼로우는, 좌천의 형태를 띠게 된 현재의 자기처지에 큰 불만이 없었다. 단지 이해가 갔다. 왜 자기가 선택되었는지. 브룩 럼로우는 베테랑이었다. 현장요원으로써, 한팀의 리더로써, 쉴드의 요원으로써, 그리고 이중스파이로써도, 모두. 럼로우는 쉴드였고, 쉴드 속의 하이드라였으며, 쉴드가 그를 신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이드라도 그를 신뢰했다. 그러니까 브룩 럼로우는 완벽한 존재인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를 서포트하는 존재로, 또한 캡틴 아메리카를 감옥속에 가두고 감시하는 존재로. 럼로우는 습관처럼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할짝였다. 캡틴을 바라보는 럼로우의 두 새까만 눈 속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래, 난 완벽하다. 난 완벽하게 당신을 서포트하고 또한 당신을 감시할 것이다.
당신의 등을 지키면서
당신의 목줄기를 노릴 것이다.
나는 그리고 그 어느쪽이든, 앞으로 내가 당신 옆에서 행할 것들에 대한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꼭 내꿈인 것처럼 느껴지니까.
당신이 나의 환상인지, 쉴드의 환상인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럼로우는 호기심이 솟구쳤다.
스티브는 한참을 럼로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타샤가 침묵이 길어지는 것에 의아함을 가지며 고개를 돌려 스티브의 얼굴을 바라볼때 쯔음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부탁하네. 브룩 럼로우." 그렇게 짧게 말하고, 스티브는 눈을 돌려 럼로우의 뺨언저리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자네, 혹시 날 죽이고싶나?"
"......"
나타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스트라이크팀 사이에서 다시 침묵의 동요가 일렁이는 기분이 드는 가운데. 럼로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눈꼬리를 길게 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캡틴."
"자네 눈이 일렁거려서."
"하아."
"날 죽이고싶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글쎄요, 도움이 안 되면 죽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럼로우는 입술을 당겨 웃으며 그렇게 말했고, 럼로우의 농담에 동조한 듯 스티브도 곧 희미하게 미소를 흘렸다. 그제야 나타샤도 모든 것을 농담으로 버무리기 위해 가느다랗게 웃으며 농담에 참가했다. "재밌네. 캡틴 아메리카가 임무에 도움이 안 되면 진짜 재밌겠어." "그땐 날 자를텐가?" 럼로우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자르기 전에, 일단 제가 도와드리죠. 무능한 상사 도와드리는 것도 부하의 몫이니까요."
"곧 저없으면 뭘 제대로 못하시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캡틴."
"......"
스티브는 웃는 얼굴 그대로 럼로우를 한 번 바라볼 뿐,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럼로우도 스티브를 뒤따르듯이 입을 다물었다.
럼로우는, 지금, 오만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당장 스티브의 목을 누르고 목줄기를 따고싶단 생각과, 그의 등을 자신의 등으로 누르며 그를 무수한 총탄에서 지켜내고 싶다는 생각을.
눈빛이 레이저라면, 난 당신을 겨냥했겠지. 지금 당장.
용케도 눈치챘군. 조심하지 않으면. 럼로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눈앞을 가렸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손바닥이 만든 어둠속에서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눈을 뜬다. 눈을 한 번 감고 뜨자, 더 이상 럼로우의 눈에는 누군가를 향한 살의가 남아있지 않다. 그저 텅 비어 있을뿐. 그래서 지금, 럼로우는, 자신이 온전히 쉴드의 요원, 스트라이크팀 소속, 그리고 앞으로는 캡틴 아메리카의 보좌역으로- 잘해낼 자신이 그 어느때보다 강했다.
- done
트위터 스른 전력 3주차. 주제 : 첫만남
시간을 순간 착각해서 헐레벌떡 올리느라 거의 삼십분만에 씀 ㅠㅠㅠㅠㅠㅠ 럼로우가 뭔소리를 하려고 한건지 모르겠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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