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ng him home
(미드 에이전트 카터의 마지막화(1기 8화) 스포가 다량함유되어있습니다.)
그 날, 스티브는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흐렸고 짙은 회색구름이 잔뜩 껴서, 환한 맨하탄의 말그대로 하늘색의 하늘도 보이지가 않았고, 무거운 구름은 곧 비를 떨굴 것처럼 온종일 지상으로 몸을 수그렸지만 결국 빗방울은 떨어지지도 않고, 단지 공기만이 우울했다. 토니 스타크가 만든 어벤저스 타워는 자동공기청정기능이 붙어있어 오늘같이 습도가 높은 날에도 타워 내 공기는 묘하게 안정되어 있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날씨와 피부에 닿는 날씨가 다른 점이 오히려 스티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스티브의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 맨하탄의 6월 날씨와 21세기의 비적응시스템에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모습을 감추었던 닉 퓨리가 왠일로 오늘 모습을 드러내어 스티브가 요구했던 여러가지의 기밀서류를 갖다주었고, 그것들은 당연히 실드의 탑시크릿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것들이었다. 아주 오래되고 두 번 다시 역사위로 올라오지도 않을거라, 전자활자로 옮겨지지조차 않은 것들. 스티브는 그 중 하워드 스타크에 관한 내용을 읽고 침울해져 있었다.
하워드 스타크와 쉴드에 관련된 내용을 읽고, 토니 스타크의 얼굴을 보려니 더욱 울적했다. 토니는 이것에 관한 내용을 알고 있을까? 스티브는 어리석게도 닉 퓨리에게 이 서류를 받기 전에, 토니에게 하워드에 관한 것들을 물었다. 토니는 하워드 스타크가 이뤄낸 하워드산업에 관해 1부터 잘 정리가 되어있는 여러 '하워드 스타크 자서전'을 스티브에게 선물했다. 스티브는 그 다양한 시선의 자서전을 밤을 새워 읽었다. 어떤 것들은 아주 하워드에게 호의적인 훌륭한 위인전에 속했고, 또 어떤 것은 철저히 하워드를 공격하는 비판서에 속했다. "당신은 어느쪽이야?" 자서전 여러권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워졌을 때 스티브는 설상가상으로 닉 퓨리가 가져다준 기밀서류까지 읽은 것이다. 쉴드와 하워드에 관련된 여러 비밀 계약과, 창설멤버에 관련된 기밀조항들. 스티브는 토니의 반 농담 반 진담삼아 던지는 그 질문에 단 한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 그리고 그 질문이 꼭 시발점이 되어 스티브의 기분이 우울해지고 말았다. 스티브는 활자 위의 모든 하워드 스타크에게 깊은 슬픔을 느꼈다.
"너무 진지하게 고민하지 마. 캡시클."
"......"
자신의 질문이 그를 아프게 하고 있단 사실을 뒤늦게 눈치채고, 토니는 늦어서나마 자신의 농담을 수습하려 노력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때맞춰 맨하탄의 날씨는 더욱 우울해졌고 오후 다섯시, 오후 여섯시정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창밖은 어두워져 꼭 흐린날의 새벽 네시처럼 보였다. 스티브는 침묵에 잠긴 얼굴로 창에 기댄 채 멍하니 어딘가의,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 끝의 색이 죽은 이파리들을 바라보는 둥 하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외면하는 그 턱선이 아무도 말을 걸지 말라는 은연중의 압박을 풍기고 있었고, 덕분에 그 날 저녁 내내 아무도 스티브에게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자기 방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은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행해야 할 많은 저녁 스케쥴때문이었지,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스티브는 진작에 자기 방에 들어박혀 하워드를 생각했을 것이었다. 스티브가 떠나고 난 뒤의 하워드 스타크의 무수한 행보들을, 그의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들과, 칭송받아 마땅한 행동들, 또한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그의 비밀행동들과, 그 비밀 속에서도 역시나 칭찬받을 것들과 또 구분되는 비판받아야 할 것들을. 스티브는 저녁 시간 내내, 그저 하워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싶었다. 하워드와 대화가 하고싶었고, 하워드의 어깨를 감싸쥔 채 그에게 묻고 싶었다. 어째서 그 많은 일들을 전부 저지른거야? 왜 당신이 누군가를 상처입히는 무기들을 만드는 것에 앞장선거야? 전쟁무기를 팔아 긁어모은 급이다른 액수로 쉴드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의 어디가 당신이 원하던 영웅적인 삶, 훌륭한 삶인거지? 당신은 스스로를 히어로라고 말한 적 물론 한 번도 없었지만, 하지만 하워드, 나는 알고 있었는데. 당신은 절대 당신의 이상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분명 당신을 잘 알고 있는데.
하워드. 자네와 너무 많이 닮은 토니의 얼굴을 보고 있기가 힘들어.
그래도 스티브는 무뚝뚝한 입매를 한 채 오늘의 마지막 스케쥴을 전부 소화해냈다. 스티브는 무거운 한숨과 함께 간신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스티브의 안색만큼이나 무거운 어둠이 내린 방안에서, 스티브는 불 한 번 켜지를 않고 침대위로 그저 올라가 베개에 머리를 뉘였다. 목 아래로 버석이는 이불이 그대로 스티브의 발끝까지 길게 놓여져 있었다. 스티브는 이불 속으로 들어갈 생각도 하지않고 단지, 베개위에 얼굴을 깊게 뉘인 채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엎드린 채 눈을 깜빡이노라니, 스티브의 긴 속눈썹이 베개위에 놀려 겹쳐진 채 파닥거렸다. 하워드. 자넬 이해하는 건 무리일까. 어떤 방식으로든. 활자속에 있는 자네는 내가 아는 자네가 아닌걸. 하지만 난 이걸 설명할 기재가 없어. 그때의 당신을 아는 건 이제 나뿐이고, 나는 자네를 위한 그 어떤 기록도 남긴 바가 없으니까. 이건 뭘까. 하워드. 이 마음은 대체 뭘까.
나는 외로워.
외로워.
이해할 수 없는 자네로만 둘러쌓여, 내가 알고있던 하워드 스타크를 한톨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외롭다니.
그저 우울한 마음으로 가득한 이 날 밤, 스티브는 꿈을 꾸었다. 거의 꿈을 꾸지 않는 스티브였기 때문에, 이 희뿌연 안개같은 것만이 가득 깔려있는 공간에 홀로 서자마자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단 번에 알아차렸다. 차가운, 차가운 바람위로 흩어지듯 퍼지던 안개는 그저 스티브의 시야만을 앗아갈뿐 흐르지조차 않았다. 스티브는 추위를 느끼는 피부위로 돋는 소름에, 꿈임에도 묘한 현실감을 느꼈다. 맨발로 느끼는 바닥은 꼭 솜처럼 푹신했다. 혹은 구름처럼. 시야를 가리는 안개는 아주 새하얗고, 이따금 회색이었다. 낮에 보았던 구름같아 보였다. 어쩌면 어느 숲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잠복했던 날 밤의 공기였을지도. 스티브는 그곳에 한 참 서 있었다. 꿈이었고, 꿈이란 자각이 있었고, 스티브는 이 익숙하면서도 결국 어딘가 낯선 공간에서 깨어나는 방법을 자각하고 있었으면서도 (눈을 뜨면 된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몸이 자신의 의지를 거부하고 있는 듯 우뚝 선 채, 움직이지도 않고, 단지 때로 주먹 쥔 양손만이 추위에 파들파들 떨려왔다.
곧 스티브는 안개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산산이 부서지는 흰 눈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바람에, 휘말려, 너무나 빨리 모였다 흩어지는, 차가운 흰알갱이의 무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하얀 세계의 어딘가, 회색처럼도 보이는 그 어딘가에서, 하워드 스타크는 파일럿의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스티브는 자연스럽게 언젠가 자신을 운반해주던 그 비행정을 몰았던 하워드 스타크를 떠올렸다.
하지만 스티브는 또 그날과는 완전히 다른 날의, 스티브가 전혀 모르는 그 어느날의 하워드 스타크일 수도 있겠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워드?"
스티브는 하워드의 이름을 불렀다. 스티브가 눈을 헤치고 나타난 하워드의 이름을 부르자, 하워드는 스티브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자신의 이름이 하워드라는 것을 그때 처음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하워드는 크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내가 도착했어." 하워드는 거의 비명과도 같은 환희를 내지르며 푹신한 바닥을 맨발로 달려오다시피하여 스티브의 목을 끌어안았다. 스티브는 내팽겨쳐진 듯 홀로 서 있던 아주 차가운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느낀 타인의 체온에 깜짝놀라 목을 움츠렸고, 자신의 목을 끌어안는 하워드의 양손을 떼어내지는 못했지만 결국 그를 마주안는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이것봐. 내가 도착한 거야. 나는 나의 삶 속에서 가장 되돌리고 싶은 시간으로 결국 올 수 있었어."
"하워드? 하워드."
스티브는 하워드의 감격한 듯한 목소리, 그리고 목소리만큼이나 높은 체온에, 갑작스레 그 모든 것을 견딜 수가 없어 꼭 울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꿈 속에서까지 스티브의 울적한 기분이 묻어온 것이다. 스티브는 갑작스레 눈물이 핑 돌아 코를 찡긋거렸다. 찌푸린 코끝에 열기가 모여 스티브의 콧날을 따라 새빨갛게 물이 들었다. 스티브는 자신의 목에 있는 힘을 주고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하워드의 희미하게 떨리는 등에 손바닥을 가만히 갖다대며,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하워드. 당신, 당신 어째서 그런거야? 어째서 군수산업같은 데에 손을 댔어? 왜 전쟁무기를 만드는 데에 심혈을 그만큼이나 기울였던 거야?"
"아아. 스티브."
"돈을 모으기 위해서였어? 그렇게 돈을 모아서 당신이 한 일이라곤 쉴드를 만들고, 쉴드에 돈을 대고, ...끊임없이 나를 찾는 거였어. 고작 그런 일을 위해서, 그저 죽은 나를 찾기위해서 그렇게 많은 돈을 모아야했던거야?"
"스티브. 스티브. 아아. 너구나. 스티브."
고작 그런 일을 가지고. 고작 이미 죽어버린 나를 위해서. 하지만 스티브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꽈악 다물었다. 그런 말로 하워드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말들로 당신을 아프게 하고싶은 게 아니라고. 그리고 스티브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든 하워드가 울면서, 울면서, 울면서 두 손을 뻗어 스티브의 양뺨을 감싸쥐었으므로.
"스티브. 스팁. 로저스. 스티브!"
"......"
눈물범벅이 된 하워드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웃었다. 환한게 밝아지는 그의 갈색 눈동자에 눈물이 차고넘치게.
"이것 봐. 내가 다 바로잡을 수 있잖아."
"......"
"난 당신을 집으로 데려올 수 있다고, 내가 언제나 말했잖아."
"......"
"난 당신을 데리고 갈 거야. 데리고 갈 거야. 내가 다 바로잡을 수 있어. 이것봐."
당신이 내 옆에 있잖아.
난 당신과 함께 갈 거야.
당신을 집으로 데려다 줄거야
내가
내가
눈을 떴을 때, 스티브는 천장을 향해 오른손을 뻗고 있었다.
안다. 그 손이 왜 그런 모습으로 굳어 있었는지.
스티브는 꿈속에서 무심코 오른손을 뻗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있는 하워드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했던 것이다.
꿈이 아직 생생하여, 귓가에서 여전히 하워드가 자신을 향해 외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스티브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스티브의 긴 속눈썹 위에 맺힌 눈물이 도르륵 굴러떨어져 귓가에서 사라진 것은, 그 바로 다음 순간.
"스티브. 네가, 내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이세상에 한 좋은 일이었어."
"....하워드."
스티브는 허공으로 내뻗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꽈악 주먹을 쥐고는, 그대로 눈물이 연거푸 떨어지는 자신의 얼굴위로 떨구었다.
하워드. 하워드. 당신.
그정도였어?
그렇게도, 그렇게도 슬펐던거야?
나의 죽음이.
"...그렇군. 내가 당신을 그렇게나 슬프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던거군..."
스티브는 그렇게 잠시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다시 굳게 입을 다물었다.
얼굴을 가리는 스티브의 오른팔의 그림자가, 어둠속에서도 길게 늘어져 스티브의 얼굴 전부에 드리웠다.
스티브는 제뺨을 가르는 자신의 눈물방울의 온도를 느끼며, 긴 속눈썹을 천천히 깜빡였다.
지금은 몇시일까. 머나먼 도시의 밤은 이 타워 안의 방처럼 따뜻할까. 하워드. 당신이 더 이상 울지 않아야 할텐데. 스티브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천천히, 다시 기나긴 밤 속에서의 잠을 청했다. 이번에는 꿈을 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꿈도 꾸지않고 긴 잠에 들었다가 깨고나면, 이 밤에 꿨던 당신의 꿈도 전부 잊어버리고 난 후일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그걸 바라고 있단 생각이 들어. 너무 내 좋을대로의 생각일지도. 스티브는 다시 숨을 내쉬었다. 스티브는 더 이상 눈썹을 떨지 않았다. 그리고 스티브는 다시 긴 밤의 잠 속으로 빠져들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 done
에이전트 카터 8화.. 마지막편을 보고 펑펑 울고 난뒤에 이런 것들을 상상했었더랬다. 스티브가 저 마지막편을 보면 얼마나 슬플까? 당신이 죽고 난 뒤, 당신을 사랑했던 이들이 슬픔에 잠겨, 저마다의 슬픔을 표현해낸 저 8화를 보면서 당신은 정말 펑펑 울거야.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그래서 스티브에게 8화를 보여주고싶단 생각을 엄청 했더랬음 ㅋㅋㅋ 미안하겠지만 그래도, 당신이라면 분명 '봐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할 거 같아서.
하지만 ㅋㅋㅋㅋ 그게 될 리가 없고 ㅋㅋㅋㅋㅋㅋ 뭔소릴 하는거람 내가 ㅋㅋㅋㅋ 그래서 이런식으로 글이마나 써보았음. 그래서 꿈 속의 하워드의 대사는 거의 대부분이 미드 '에이전트 카터'의 8화 마지막 하워드 스타크의 대사와 거의 흡사합니다. 약간의 문맥에 의한 수정은 했지만 거의 하워드 스타크의 원대사와 같음요. 카터 8화의 하워드의 대사들은 진짜 넘 슬퍼서 심장이 미어져 죽는 줄 알았더랬습니다 ㅠㅠ 거기다 카터의 브릿지위에서의 마지막 대사는 또 어떻고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잘은 모르지만 내가 혹시 새드엔딩의 어떤 스른원고를 하게 된다면 그건 무조건적으로 카터의 브릿지위에서의 그 마지막 대사, 절대로 그것이 될 거예요. 흑흑. 여러분 혹시 아직 안보셨다면 어서 에이전트 카터를 보십시오. 스른러로써 그 드라마는 꼭 봐야하는 거..... 꺼이꺼이. 이제 내안의 하워드스팁은 그저 짠내가 ㅠ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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