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ike to strawberry  

                                   - 난 딸기가 너무 좋아 너무 맛있어  

                                   - 레크나님 리퀘 

 

 

 

 

 

 

 

(1)

 

 제멋대로 도련님은 디저트에 과일이 첨가되어 있지 않으면 " 오늘은 왜 과일 없어? "라고 꼭 되물었다. 그리고 세끼 매번 다른 과일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디폴트였다. 그래서 정작 제멋대로 도련님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보다 그의 디저트를 준비하는 것에 더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메이드들이 아닐 수 없었다. 도련님은 과일도 쥬시한 것 중시로(라임을 의식하였음 힙합 좀 함) 타과일보다 비교적 퍽퍽한 타입인 바나나나 감 등은 그래서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그런 도련님이지만 어느날 한 번은 유행하는 건과일의 식감을 재밌어하며 제법 즐겨하였고, 그래서 디저트를 준비하기가 수월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물론, 제멋대로 도련님은 제멋대로 도련님이란 닉네임을 부여받은 만큼 건과일에 금방 빠졌던 것만큼 금방 질려하였고 그후로 두번다시 건과일을 찾지 않았다. 그때 지른 건과일들은 그래서 이제는 메이드들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그게 아직 몇십박스가 남아있는 게 문제로... 아니 진짜 문제는 남은 건과일 처리를 어떻게 해야하는 가따위가 아니라, 요는, 하여간 하루의 세끼 매번 다른 디저트를 먹는 게 당연한 건데 거기에 과일이 없으면 " 오늘은 왜 과일 없어? "라고 꼭 되묻는 요 제멋대로 도련님 그 자체인 것이다. 도련님의 저택에 포진하여 일류쉐프 겸 일류메이드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어벤저들은 그래서 매번 아침에 눈을 뜰때마다 절망에 빠진 듯한 기분을 맛보며 " 아아,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어... " 비적비적 복도로 걸어나와야 했다. 복도에서 만나는 하나같이 같은 표정의 어벤저들은 전부 모임과 동시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서서 누구 먼저랄 것 없이 사생결단의 기분으로 서로를 견제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샤우팅, " 가위바위보!!! " 그 샤우팅은 말하자면 오늘 하루동안 도련님의 식사담당을 뽑는 외침인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은, 클린트 바튼이 머리를 쥐어짜며 나지막하게 절망했다. " ...아침의 가위바위보로 세끼를 다 정하지 말고 하루에 세 번 가위바위보해서 한끼씩 정하면 안 됩니까 제발... " 남은 어벤저들이 그의 의견을 가볍게 무시했다. " 그것은 No. " 그것은 아무래도 No인 것이었다.

 

(2)

 

 어벤저들이 하루아침에 토니 스타크의 전용 쉐프(겸 메이드)가 된 것에 대부분의 어벤저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책임의 지분은 사실 스티브 로저스와 토르가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스타크가 시키는 대로 그의 쉐프(겸 메이드)가 되야한다면 그 두사람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한 것을 굳이 연대책임화 시킨 것이 바로 제멋대로 도련님으로 명명된 스타크이고, 그건 단지 스타크의 '재미있는 게 좋아, 오로지 나만'하는 기질이 발동된 수많은 일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스타크가 내뱉은 교묘한 언변은 이미 죄가 확정되어 발을 뺄 수 없는 로저스와 토르를 제외한 나머지 어벤저들에게까지 가벼운 죄책감을 느끼게 하였고 결국 대부분의 어벤저들이 한동안 그의 노예(!)가 되는 것에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확정하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오로지 단 한 명만이 그 사태에 끼지 않고 멀리서 콧방귀를 끼며 방관하였다. " 너의 서재를 청소하다 죄 한방에 깨부셔버려도 상관없다면 헐크도 기꺼이 하겠다. " 그리고 스타크는 정중히 헐크를 사양했다. " 캡과 토르 다음으로 나에게 가장 많은 죄를 지었던건, 사실 헐크 너지만 말이지. " 그래도 헐크가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은 도저히 상상이 안되지 않은가, 요리하는 헐크라면 한 번 보고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건 스타크는 제 입에 들어갈 음식의 안전성을 위하여 더 큰 재미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대부분의 어벤저들, 즉 헐크를 뺀 나머지 어벤저 전부를 자신의 노예(!)로 만드는 것에 만족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토니 스타크가 과로로 쓰러진 어느날에 그 발단이 있다.

 

 그것은 스타크의 건강상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로저스와 토르를 두 말 없이 노예로 만들기에 충분했으며, 스타크의 교묘한 언변만으로도 나머지 어벤저들 또한 그의 과로에 간접적인 책임을 지고 노예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하였다.

 

 단도직입적으로, 스타크가 과로로 쓰러지게 된 것은 즉 어벤저들의 탓이었다는 그 말이다.

 

(3)

 

 스타크는 스타크타워 재건을 위하여 하루의 대부분을 지붕과 천장이 날아간 타워의 상공에서 보내고 있었다. 타워는 물론 스타크의 집이었지만 현재 건물의 대부분의 구성요소가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에 침식은 어려워진 상태였다. 스타크는 임시거처로 사용하기 위해 한적한 곳에 위치한 대저택을 현금으로 구입하였고, 스타크와 연관된 대부분의 어벤저들에게 카드로 된 저택의 키를 주었다. 사용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편하게 마음대로 하라는 언질과 함께. 그리고 어벤저들은 스타크의 호의를 받아들여 대저택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는데, 정작 스타크만은 오히려 그 저택에 한 번도 가질 못했다. 너무 바빠서였다. 물론, 스타크타워 재건을 위하여 하루의 대부분을 지붕과 천장이 날아간 타워의 상공에서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타크가 ceo로써의 업무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할 정도로 바빠진 이유는 바로 쉴드때문이었다. 쉴드의 항공모함 헬리캐리어도 손상된 채고, 이 기회에 아예 쉴드의 대부분의 체계를 스타크공업의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재정비하려는 퓨리 국장의 제안에 흥미가 동한 스타크는 잠시 아이언맨을 휴업하고-거기다 스타크공업의 ceo도 휴업하여 대부분의 이사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쉴드쪽과 타워의 재건 양방향에 전력을 다해야 했던 것이다. 또한 스타크는 다시금 떠나 몸을 숨기려 하는 닥터 배너를 억지로 붙잡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고 그 일에 휘말려 배너는 쉴드시스템의 재정비 전력으로 투입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기본적인 성향이 다르나 어쨌든 주어진 목표가 있으면 목표 기준치의 120%는 웃돌아야한다는 천재근성이 두사람을 더욱 진심으로 쉴드재정비(와 스타크타워 재건설)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바빠죽겠는 스타크와 배너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고, 그러나 그 정신적 스트레스나 육체적 데미지를 깨달을 여유도 없을 만큼 앓느니 죽는 바쁜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이었기에 뉴욕으로 토르가 돌아온 것을, 그리고 기를 더듬어 대저택까지 스스로 날아 온 것을 환영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스티브 로저스 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비교적 한가한 로저스만이 천둥을 몰고 돌아온 토르와 어깨를 부딪히며 귀환을 환영하고, 로키의 뒤를 묻는 등 안부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로저스는 토르에게 현재 토니와 배너의 상황에 대해 자신이 아는 만큼 최선을 다하여 설명하였다. 나머지 어벤저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타샤 로마노프와 클린트 바튼또한 스타크의 호의에 기대어 대저택에 살고 있는 듯은 했으나, 그들은 쉴드의 베테랑요원이었고 언제나 그렇듯 거의 쉴틈없이 일을 하고 있었기에 같은 저택에서 마주치는 일은 전무에 가까웠다. 토르는 아쉬워하는 기색을 감출 생각도 없이 크게 실망하는 듯 하였으나, 진심으로 환영해주는 로저스의 연한 미소에 이윽고 마음을 풀었고, 둘은 곧 귀환을 자축하며 조용한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로저스는 토르의 귀환을, 토르가 미드가르드로 잠시 마실 나온 건지 아니면 눌러앉을 생각으로 온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의 귀환을 이곳저곳에 말은 해둬야 할 것 같았기에, 저택의 여기저기를 뒤져 찾아낸 페이퍼로 편지를 썼다. 그리고 로저스는 다시 저택을 뒤져 엄청나게 먼지가 쌓여있는 뉴욕시 주소전집 19번째 증간본을 간신히 찾아내어 스타크공업의 주소를 봉투에 적을 수 있었다. 토르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로저스의 행동을 바라보며 잔을 들어 그의 행동을 기꺼워했다. " 나의 친구의 노고 덕분에 그리운 토니 스타크도 얼굴 한 번은 볼 수 있겠군. " " ─사실 우표를 사서 여기 붙여야하지만, 당장 우표살 수 있는 곳을 모르니 이대로 편지를 그냥 부치고, 나중에 그 금액을 스타크에게 갚아야겠지. " " 나는 가지고 있는 미드가르드의 돈이 없소, 로저스. " " 토르에게 내라는 말은 하지 않아. 그런 말은 필요 없네. " 로저스는 그렇게 말하고 저택 10km밖에서 간신히 찾아낸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아마 5일, 길어도 10일안에 스타크에게 연락이 오겠지, 안심하고 로저스는 그동안 저택에서 토르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 토르, 설마 5일은 머물다 갈꺼지? " " 허락한다면, 물론. "

 

 그리고 이튿날, 정확히 말하면 일곱시간하고 삼십사분 뒤에, 개인 전용헬기로 속도위반하며(!) 날아온 잠을 거의 못자서 안색과 혈색이 나쁜 스타크가 빽하고 소리를 질러 숙취인 채 저택의 벽난로가 있는 거실에 기절해있는 두 사람을 깨웠다. " 보내신 편지보고 시간내서 이렇게 들렀습니다 이 젠장할 것들아?!!!!!! " 뒤늦게 헬기에서 내리는 배너도 어색하게 웃었다. " 손편지라니 신선해서 사실 전 좀 즐거웠는데 말이죠. " 그렇게 말하는 배너의 안색도 썩 좋지 않아 웃음이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머리속에서 종이 울리는 듯한 어지럼증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전신을 휘청이고 있던 로저스가(토르는 아예 일어날 생각도 없는 듯 몸을 뒤척이지조차 않았다. 아아, 그들은 대체 간밤에 얼마나 되는 양의 알코올을 지구에서 없애버리고 말았던가!) 간신히 세개로 나뉘어 빙글빙글 돌고있는 토니 스타크의 얼굴을 이해하고 입을 열었으나 " 오! " 곧 " 아... " 하고 쓰러졌다. 스타크는 제몸위로 다시 쏟아지는 로저스의 몸아래에 깔린 채로 다시 한 번 빽하고 소리쳤다. " 아오 술냄새에에에에엑 " 

 

 그리고, 그 사건은 이미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스타크가 감당해야 할 일의 세발의 피정도였다. 토르가 돌아온 것은 물론 기쁜 일이었지만 한 명이 늘어났다는 것은 곧 동시에 스타크가 해야 할 일이 배로 늘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이 토르였음으로 어떤 의미에서 세배로 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그가 행한 일중의 대부분은 자기 스스로가 해주겠다고 자처한 일이기는 하였다. 스타크는 배너가 손짓발짓을 모두 이용하여 토르, 로저스에게 저택내의 세큐리티시스템과 스마트TV,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에 진저리를 치며 " 이제 내가 영어를 하는건지 불어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티브. 토르. " " 우리야말로 자네가 영어를 하는건지 노래를 부르는 건지 모르겠는데. " " 오오 이것 참 답이 없는 픽셀 테크놀러지 테크닉 IT여! " " ...토르 지금 본인이 이해 못하는 단어들을 그냥 욕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 그대로 저택에 남아 이틀밤을 새가면서 로저스와 토르 전용의 실버폰을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 버튼 세 개만 만들어놨다, 단 세개야! 그 외 버튼은 숫자버튼밖에 없다고, 이젠 좀 알아듣겠지?! 제발 알아들어주라! " " ...하아 " 물론 그 사용법도 알려주는데에 적지않은 시간이 소요돼었고, 배너는 이때쯔음부터 거의 웃음을 잃었다. 

 

 피곤에 절은 대로 절은 두 사람이 그런식으로 딱히 쉬지도 못하고 저택에 머무는 동안 또 다른 일들이 연거푸 생겼다. 때마침 우연히 같은 시간에 임무가 끝난 바튼과 로마노프가 함께 대저택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기어코 한자리에 모이게 된 모두는 새삼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떠들어대다가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파티를 시작하였다. 물론 파티의 주최, 협력, 스폰서등의 모든 것을 스타크가 감당하게 되었다. " 나는 가지고 있는 미드가르드의 돈이 없소, 스타크. " " ...토르보고 돈을 내라는 말을 할리가 없잖아. 나 원 참. " 결국 극적인 대저택의 리폼까지 저질러가며 엄청난 나이트클럽을 방불케하는 조명아래에서 토르와 그 외 어벤저들은 모두 파티에 자신의 몸과 정신을 내맡겨버리고 말았다. 물론 무료로. 파티는 또 대부분의 밤과 낮을 없애가며 삼일 넘게 지속되었고, 어벤저들중 몇 명은 그냥 자신에게 들어오는 쉴드의 수신이나 그 외의 임무들을 모두 망각하기에 이르렀다. " 휴가냈습니다. " " 언제?! " " 이분뒤에. " " 안 되면 사표라도 낼 기세네. 이분뒤에. " " 그 말 너한테 그대로 반사. " " 어머. " " 나의 환영회를 위해 일조차 잊어가며 나서줘서 모두 감사하오, 어벤져스. " 물론 스타크와 배너는 무대포 휴가신청을 할 수 없는 분야에 손을 대고있는 사람들이었기에 파티 틈틈이 대저택의 한쪽 방에서 노트북에 자비스를 연결하여 주어진 일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매번 다른 어벤저들에게 방해받으며 억지로 파티장으로 끌려나와 제대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벤저들은 피곤해지면 자고 일어나면 다시 술을 마시는 행동들을 되풀이했다. 누군가가 자고 있는 도중에도 누군가는 꼭 깬 채로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스타크는 이 적은 인원으로 이런 파티가 이렇게까지 계속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누구보다 파티광인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한 어벤져스의 체력이란!) 

 

 그 와중에 토르는 흥분하며 자신의 묠니르로 대저택의 샹들리에, 2층의 창문, 1층의 대리석바닥과 나선계단, 그리고 화장실의 벽을 전부 깨부셨으며 " 아아, 필멸자들의 건물은 너무 약하오, 스타크... " " ...유리 밟지않게 조심해. " " 착하고 섬세한 스타크여... " " 됐고. " 토르의 파괴행동(혹은 주사)에 피해를 입지않으려고 몇 번이고 방패를 던진 로저스에 의해 대저택의 엘레베이터, 수영장과 정원, 섬세한 도자기장식장과 그 도자기들, 그리고 마호가니 가구들 여러개와 스타크타워 1/10000000 조형물이 부서졌다. " 고의는 아니었다. 정의실현일뿐, 스타크. " " ...괜찮아 보험돼어 있는거야. " " 보험이 뭐지? " " 그... " 그와중에 술잔을 든 채의 로마노프와 바튼이 대련을 시작하여 모든 방의 인도에서 직접 공수해온 고급비단카펫에 술을 쏟아댔다. " 잠깐만! 그 기술은 뭔데? " " 몽골에서 배운 실전무술이야. 잘못하면 거기가 떨어지지. " " 나한테 뭘 잘못할거라고?! " 그리고 토르와 로저스가 또한 기껏 쥐어준 실버폰을 세 번 박살내고 열여덟번 프로그램을 다운시켰으며, 말술이라 술에 안취하는 배너에게 자꾸 폰을 고쳐달라 난리여서 " 미안하오, 또 망가졌소. 그치만 머릿속에서 자꾸 음악이 들리니 또 할 수 밖에는 없게되었소. " " 아, 또 바이러스가.. 잠깐, 잠깐만요.. " 그래서 배너는 일하는 와중에 계속 파티장으로 끌려나와 실버폰을 고치게 되었고 " 동물들을 구하고 싶은데 문어가 자꾸.. 자꾸 날 괴롭히오. 아아 그 어둠으로. 차라리 문어가 아예 안나오게는 안 되오? " " 아니 그럼 게임을 하는 의미가 없... " 그 정신없는 파티사이사이 두 사람의 폰을 고쳐주다가 그들의 폰에 쉴드 내 일급비밀 저장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는 자신을 깨닫자 이내 스트레스가 폭발할 지경이 되어... 결국 배너는 헐크가 되었다. " 헐크 부순다아아아아 " 그리고 헐크는 부쉈고, 마지막으로 대저택의 천장이 완전히 날아갔다. 아, 물론 두 사람의 실버폰도 공중분해 되었고. 

 

 스타크타워가 스타크의 집이었으나 현재 대부분이 공사중인지라 그곳에서 지내지 못하고, 임시로 지내기 위해 산 대저택 또한 결국은 천장까지 날아가버릴정도로 만신창이가... 스타크는 저택안으로 휘몰아치는 바깥의 강추위를 피부로 느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아 젠장 이제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내 최후의 힘이여, 저 망할 것들을 죄다 쳐부셔버려. 그리고 스타크는 그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4)

 

 물론 주치의를 대저택에 부르는 등 소동을 부리는 스타크를 향해 어벤저들은 '약골'이니 '한심'하다느니 완전 '부잣집 아가씨'라느니 뭐 이것저것 볼썽사나운 닉네임을 붙여가며 비웃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스타크는 절대로 대저택의 지붕을 날려버린 일행들에게 그런 핀잔을 허용할 수가 없었다. 절대로, 단 1그램도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스타크는 자기 방 침대 앞에 동그랗게 모인 그들에게 먼저 선수를 치기로 하였고, 실제로 선수를 쳤다. " 야 이 망할 빌어먹을 놈의─ " " 힉 " 그의 화려한 스피칭 실력이 여기서 또 한 번 빛을 발하였다. 과연 몇천만의 대중앞에서 the truth is I am Iron man이라고 외친 남자다웠다. 그의 언변을 지금 여기서 다 기록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여간 대부분의 어벤저들이 고개를 숙였고 곧 이어진 그의 " 그런고로, 앞으로 너희들은 당분간 내 노예. " 라는 말에 절망에 빠졌다. " 노예라면, 무엇을? " 로저스의 질문에 그나마 살아남아 멀쩡한 자신의 오리털 베개에 깊게 목을 뉘인 채로 스타크는 눈을 한 번 깜박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 ...음, 그렇지. 우선 당장, 오늘 저녁부터 얼른. " 그리고 기약없는 그 '당분간의 노예생활'이 시작되었다. 단 한 명도 발을 뺄 수 없는 어벤져스 이래 최악의 수난기가 시작된 것이다. ...아, 배너로 돌아올 생각이 없어보이는 헐크를 제외하고.  

 

 

 

 

 

 

 

 

 

 

 

(5) 

 

 " 저들을 언제까지 저렇게 괴롭히실꺼죠? "

 

 " 음? 음... " 

 

 페퍼 포츠의 질문에 엷게 웃는 얼굴 그대로, 스타크는 단지 입안에서 콧소리를 굴릴뿐 딱히 대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그런 스타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포츠는 곧 짧게 한숨을 내쉬고 스타크의 잘 만들어진 침대 옆의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눈을 한 번 깜박일 때마다 긴 속눈썹이 연한 갈색물결로 흔들렸다. 자신의 침대에 누워 이불을 어깨 밑까지 내리고 두 손을 배 위에서 깍지로 맞잡은 채 눈을 감고 연하게 미소짓고 있는 스타크는, 지나칠 정도로 여유로워 보였다. 포츠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들고있던 보고서류를 내려놓고 스타크 주치의의 소견서를 집어들었다. 스타크의 상태는, 물론 양호. 라기보다, 무지 정상. 포츠는 소견서 확인란에 자신의 서명을 써넣었다. 

 

 " 그간 무리한 경향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완벽하게 건강해진 것 같군요. 그럼 이제 그만 침대에서 일어나기로 할까요? " 

 

 " 아니, 아직이야. 아직 완벽하게 건강해지질 않았거든 난. " 

 

 " 토니! 농담이 지나치군요! 언제까지 회사를 이렇게 방치해둘 생각이죠? 그리고 어벤저들도. 하루종일 꾀병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당신을 위해서 밥하고 빨래하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란 걸 알잖아요. " 

 

 " 꾀병아니야. 듣기 안좋군. 페퍼, 난 요양중이라고. " 

 

 " 제가 방금 토니 스타크는 완치가 되었다는 의사의 소견서에 서명을 넣었는데요. " 

 

 " 그거야 고작 의사의 소견일 뿐인거고. " 

 

 " 의학은 당신 전문분야가 아니죠? 토니? " 

 

 " 휴먼 메커니즘에 대해선 내가 의사보다 더 자세히 알걸? 난 아크원자로 인간의 바디에 맞는 슈트를 운용하는 천재거든, 아가씨. " 

 

 포츠가 눈썹을 사납게 세우며 스타크에게 좀 더 무언가를 말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타이밍에 맞춰 똑똑, 하고 스타크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아침의 희생양으로 결정된 어벤저의 노크소리가 분명했다. 포츠는 말할 타이밍을 놓친 것에 아쉬워하며 단지 짧게 한숨을 흘렸다. 스타크는 만족하는 미소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포츠는 완전히 다리를 펴고 일어선 자세로 짧은 스커트의 주름을 정리하며 조용히 대답했다. " 들어와요. " 몸이 반쯤 방문을 향해 틀어졌다. 

 

 " 오늘도 좋은 아침을, 나의 제멋대로 도련님. 아침을 가져왔소. " 

 

 포츠는 가르송의 복장을 하고 무뚝뚝하게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튼을 보며 이제 놀라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단지 눈동자 하나만을 굴려 스타크를 흘끗 쳐다보았고, 스타크는 여유로운 미소 그대로 아직도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바튼은 왼손에 들고있던 뚜껑을 덮어놓은 접시 여러개 중의 하나를 오른손으로 옮기며 포츠에게 눈으로 인사했다. 포츠도 상대와 똑같이 눈으로 인사했다. 바튼은 진짜 아침부터 포츠가 참 고생하는구나, 라고 짧게 생각하며 왼쪽 발로 문을 닫았다. 스타크가 요양을 핑계로 대저택의 비교적 천장이 멀쩡한 1층의 한쪽 구석 방 침대를 차지하여 줄창 누워만 있는 동안, 어벤저들은 그가 원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혹사를 당하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포츠도 매일 아침마다 스타크의 집으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그의 비서였으니까. 그리고 포츠는 바로 어제, 스티브 로저스가 자신의 몸에 딱 맞아 핏이 아주 좋은 메이드복 차림을 하고 보르시치를 담은 접시를 아침으로 내오는 것을 본 이후로는 더 이상 어떤 것을 보아도 놀라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고보니 그때의 메이드복도 깔끔한 흰색 에이프런에 긴 검은색 플레어 스커트였었지. 바튼또한 전신이 검은색인 복장이었지만 유일하게 소매끝과 깃만 보이는 셔츠만이 청결한 흰색이었다. 나이스 깔맞춤. 포츠는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한숨을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바튼은 무표정한 얼굴, 그러나 어딘가 불유쾌하다는 듯이 살짝 찌푸려진 눈썹인 표정 그대로 저벅저벅 걸어와 스타크의 머리맡에 그의 아침 접시를 내려놓았다. 스타크는 그제야 살짝 눈을 뜨고 바튼에게 인사했다. " 굿모닝, 클린트 바튼. 오늘도 잘생겼네. " 

 

 " 그 말은 도련님에게 그대로 반사해주지. " 

 

 " 하하. 안해도 되는데 그런 반사는. 어차피 알고있으니까. " 

 

 그리고 일어나 스타크는 자신의 무릎 위에 접시를 올려놓기 좋도록 다리를 쭈욱 뻗었다. 바튼은 스타크의 바로 옆까지 바짝 다가가 그의 음식의 뚜껑을 천천히 열어주었다. 접시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밖으로 쏟아지더니 곧 야채베이스의 포타쥬가 실체를 드러냈다. " 오, 오늘도 맛있겠네. " 바튼은 자신의 왼손에 걸쳐 놓고 있던 테이블손수건을 접시 아래에 받히고 한꺼번에 들어 이불 위에 내려놓은 후 다른 접시에 담겨있던 스푼을 스타크에게 건넸다. " 잘 먹을게. " 인사를 절대로 잊지 않는 겁나 예의 좋은 도련님, 진짜 목졸라 죽이고 싶다. 바튼은 그렇게 생각하며 또 다른 접시를 스타크가 보이는 곳에 내려놓고 그것의 뚜껑도 마저 열었다. " 그리고 디저트입니다, 도련님. " 먹고 죽어라, 디저트킬러.

 

 " ...... " 

 

 스타크는 그 접시에 담긴 디저트를 보고, 소리없이 웃었다. 

 

 " 딸기네. " 

 

 디저트는 딸기였다. 꼭지가 떨어지고 반으로 잘린 채 끝의 조금을 초콜렛으로 코팅한.

 역시 그렇군. 스타크의 예상대로였다. 스타크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가슴이 두근대는 속도가 빨라짐을 즐겼다. 

 

 " 네. 많이 드십시오, 도련님.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기분이 풀려서 슬슬 우리들을 놔주기를. 임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단기휴가가 강제 장기휴가로 변할 거 같아서. " 

 

 " 그래, 알았어. 고마워. 나가봐도 괜찮아. " 

 

 " 후. " 

 

 바튼은 짧게 숨을 내쉬고 남은 뚜껑들을 전부 집어들면서 포츠에게 목례했다. 포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썹을 구부리며 연하게 웃었다. " 식사를 안했다면 내려와요. 아직 좀 남아있으니까. " " 감사합니다. " 곧 바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는 저도 모르게 길게 한숨소리를 내며 복도를 이동하였고, 그 소리를 들은 포츠가 원망하는 눈동자로 스타크를 쳐다보았다. 스타크는 맛있고 따뜻한 아침에 만족해 하고 있었다. 기대한대로 맛있고, 디저트도 역시나 딸기고. 그는 밥을 먹는 도중에 때때로 딸기를 보는가 싶더니 피식, 하고 다시 미소짓기를 반복하였다. 포츠는 사납게 눈썹을 치켜들었다.

 

 " 토니! 언제까지 저들에게 이런 걸 시킬작정이에요? "

 

 스타크는 맛있는 아침을 두고 포츠와 의미없는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궁금한 것도 확인하였으니, 이 장난을 끝내어도 상관없었고. 스타크는 둥그런 눈을 반으로 접으며 포츠를 바라보았다.  

 

 " 아아, 그래 알았어. 알았다구. 걱정하지 않아도 슬슬 그만둘 생각이니, 그렇게 너무 들볶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

 

 포츠는 반색하며 기뻐하다가, 의심스러운 눈동자를 하며 스타크를 바라보았다. 

 

 " ...당신, 정말로 그럴 생각이 있긴 한거에요? " 

 

 스타크는 스푼으로 접시의 위를 두어번 휘저었다. 표면이 연해질 정도로 푹 삶아진 브로콜리가 스푼에 걸려 간단히 둘로 나뉘어졌다. 후, 스타크는 뜨거운 김을 불어대며 스푼을 한가득 입으로 밀어넣었다.

 

 " 어차피 이건 기간한정의 장난이야. 페퍼, 나도 바보는 아니야. 저들이 얼마나 바쁜 녀석들인지도 잘 알고 있고. " 

 

 " ...... " 

 

 " 난 그냥 누군가가 날 위해 이런 걸 해주는 게 참 좋은 것 뿐이야. 날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거나 해주는 게 단순히 기쁜거라구. " 

 

 " ...정말이지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에요. " 

 

 " 그래. 뭐, 그렇지. "

 

 정말로 그렇다. 스타크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장난을 3일 이상 끌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그 날 했던 말이야 반쯤은 농담인 것이었고. 몸은 피로했지만 단지 잠이 모자랐던 것뿐이니 하루동안 푹 잘자면 개운해질 정도의 것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물론 스타크도 어벤저들이 전부 다 모인 것에 기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핑계김에 그냥 다같이 밥이나 몇 번 같이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좋았고, 또 그것으로 끝내려 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늘이 약 9일째, 이렇게 길어진 것에는 스타크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스타크는 궁금했다.

 누가 밥을 해주는지를.

 덤으로, 디저트도.

 

 처음엔 매일 세끼마다 밥종류가 다양했고, 스타크의 장난끼 어린 " 오늘은 왜 과일 없어? " 에 따라 디저트 과일도 다양하게 나왔다. 스타크는 세계의 다양한 요리투어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 그것들이 모두 맛있었고 또 재밌기도 하였고, 하여간 식사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증폭하는 중이었다. 딱히 세계제일의 요리들도 아니었고 특별히 맛없는 날도 있기는 했는데, 그것도 그것나름 재밌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전혀 싫지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 스타크는 어느 순간부터 음식이 고정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맛은 여전히 다양했고, 물론 종류도 다양했다. 그러나 주로 모든 요리재료를 푹 고아 스프에 영양을 담는, 대부분의 요리재료가 흐물해지고 먹기 편한 종류로 변화하는 듯한 기분이, 즉 말하자면 음식이 병자용화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거기다 디저트가, 이 디저트가 참 재미있는 것이. 계속 딸기였다. 딸기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으로 변화하였지만 그래도 딸기는 딸기였던 것이다. 어느날은 기어코 레퍼토리가 떨어졌는지 그냥 딸기를 우유에 담근 디저트가 나오기도 하였다. 그 날의 연한 핑크색으로 물든 우유는 진짜로 하 얼마나 웃긴 맛이었는지, 스타크는 우유를 마시는 내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좀 뿜기조차 했던 것이다. 그 날부터, 스타크는 눈치채기에 이르렀다. 요리는, 내오는 사람은 다양할지언정 언제나, 한 명이다. 한 명이 만드는 것이다.

 

 그 한명은

 토니 스타크의 건강을 걱정해서, 먹기좋게 재료를 흐물하게 만드는 따뜻한 요리를 선호하고,

 딸기를 좋아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딸기에 함유된 몇가지의 비타민이 스타크의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아직 잘 알 수 없지만, 하여간에 그러하다. 스타크는 초콜렛 코팅이 된 딸기를 하나 손으로 집어들고 또 피식하고 웃었다. 그러니까 이 요리를 만드는 한 명은, 정말로 진심으로 나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는 거야. 정말로 큰일이었다. 자신을 향한 염려를 깨달은 그 순간부터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것이 있다니. 이 스윗한 요리에 정말이지... 푹 빠져서, 가능하면 이 장난들이 더욱 오래 지속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다. 정말이지 제멋대로 도련님이라니, 제대로로군. 누가 지었는지 그 말이 딱 맞다. 그렇게 어영부영 이어온 9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으니 더 이상 장난을 지속시킬 핑계거리가 없었다. 그러니 그만 끝내야 돼는 게 맞다. 그건 딱히 포츠가 말하지 않아도 스타크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주변일들에 대한 방치도 이제 그만 두어야 하고 자신이 진 책임도 다 해야 할 때였다. 스타크는 놀기 좋아하고 완전 제멋대로이지만 책임감이 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자기몫이 무엇인지도 잘 아는 사람이고. 단지, 이 요리가 너무 좋으니까. 이 요리에 담겨져 있는 마음이 너무 좋으니까. 언제까지고 누리고 싶어지는 마음이, 자꾸 생겨나니까.

 

 " ..... "

 

 그 사람인가.

 그 사람인게, 맞는걸까.

 만약 그렇다면.

 

 " ...아아. "

 

 아아.

 정말로 굉장하군.

 

 " 딸기가 너무 맛있어. "

 

스타크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흘렸다. 딸기는 아주 상큼했고, 아주 달콤했다. 흘러나온 한숨 끝에, 어쩔 수 없이 녹아나오는 아쉬움이 미련을 되새김질 했다.

 

(6)

 

 우엑, 바튼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표정변화는 물론 거의 없었다. 그의 포커페이스는 로마노프의 나이스 힙라인이 바로 눈앞에서 어른거려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다. 하지만, 하지만 저 장면은 정말이지... 외면하고 싶을 정도다. 허락된다면. 바튼은 손잡이부분이 여전히 망가져 아직 보수중인 나선계단을 되도록 중심을 벗어나지 않은 채 저벅저벅 걸어내려오면서 왼쪽의 소매버튼부터 하나씩 천천히 풀었다. 입을때도 피곤했지만 벗을때도 피곤해지는 차림이었다, 소매버튼이 무려 세개씩이나! 하지만 저.. 저.. 메이드군단의 옷을 입지 않고 일이 끝나서 바튼으로써는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저건 가슴에 단추가 무려 일곱개씩이나! 바튼은 후, 하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오른쪽 소매의 버튼을 풀면서 사다리에 올라타 그 위에 걸터앉은 채 샹들리에의 유리 다이아몬드를 하나씩 걸고 있는 토르의 넓은 폭의 플레어 스커트 안쪽의 다리를 마음껏... 젠장할 정도로 마음껏 감상했다. 사다리 위에 올라탄 시점에서 이미 무방비한 스커트 안쪽을 적나라하게 감상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토르는 치마 끝이 다리사이로 감기는 것이 영 불편했는지 그것을 한껏 잡아 옆으로 당겨 매듭을 짓기까지 한 채였다. 그래서 하여간 완벽한 근육질이고 엄청나게 튼튼해보이는 말과 비교해도 될 정도의 아름다운 토르의 다리를 바튼은 아주 닳을때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근데 과연 토르의 다리가 닳을까 내 안구에 금이갈까... 눈으로 먹고사는데 눈이 망가질 지경이라니 은퇴해야되면 어쩌지. 단기휴가가 장기휴가에서 영원한 휴가로. 바튼은 눈을 깜박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튼의 어깨너머로 그의 타이가 팔랑이며 떨어졌다.

 

 " 세계 순위권을 다투는 부자도련님이 집 보수공사로 이런 아마추어의 수작업을 선택하다니 몇 번을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야. " 

 

 " 오, 바튼. 스타크에게 아침을 갖다주고 오는 건가? 잘 먹던가? "

 

 바튼을 발견한 토르가 왼손을 흔들며 말을 걸었다. 토르의 밑에서 그가 올라간 사다리를 지탱함과 동시에 그가 걸고있는 샹들리에의 장식유리를 손수건으로 닦고있던 로마노프도 눈을 들어 바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메이드복은 거의 대부분 토르가 입고있는 것과 디자인이 비슷하였고, 스커트 길이 하나만이 결정적으로 달랐다. 좋군.) 바튼은 어깨를 으쓱하였다.

 

 " 글쎄, 먹었겠지. 먹기전에 나온거라서. "

 

 " 왜 먹는것을 확인 안하고 내려온거지? "

 

 바튼은 자신의 어깨너머로 들려오는 말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바틀러차림의 로저스는 양쪽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었을뿐 다른 곳의 모든 단추를 완벽하게 잠근 상태였다. 그는 배 아래에서부터 거의 자신의 턱에 가까운 위치까지 올라오도록 여러권 쌓아올린 책을 들고 두 손을 위 아래로 받힌 채 바튼의 어깨를 거의 스칠듯하여 옆으로 지나갔다. 바튼은 그다지 빠르지 않게 움직이는 로저스의 등을 바라보다가 허벅지의 중간쯤에서 왔다갔다 하는 그의 상의의 끝의 움직임을 보며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로저스가 들고있는 책의 맨 위의 권을 집어들어 성의가 느껴지지 않게 펼쳐보고는 그대로 페이지를 연거푸 팔락였다. " 그게, 이제 그래도 되겠다 싶어서. " 로저스는 2미터에 육박하는 자신의 키를 무리없이 넘기는 책장의 유리문을 열고 그 안에 책을 진열하는 틈틈이 바튼을 바라보았다.

 

 " 그게 무슨 뜻인가? "

 

 " 이 토니 스타크의 노예생활이 끝났다는 말입니다. "

 

 "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

 

 " 오오 클린트여, 그게 정말인가? "

 

 둘의 대화를 듣고있던 토르와 로마노프가 반색하며 로저스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거들었고, 바튼은 고개를 크게 끄덕여보였다. 로마노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에이프런의 등쪽으로 묶었던 리본매듭을 풀고 그대로 벗어던졌다. 토르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말고 쥐고있던 몇 개 되지 않는 샹들리에 장식을 마저 걸었다. 그것만 하고 사다리에서 내려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로저스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전부 꽂고나서 바튼이 들고있던 책 한 권도 빼앗아 마저 집어넣은 후 책장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끊었다.

 

 " 스타크가 그리 말했나? "

 

 " '그래, 알았어. 고마워. 나가봐도 괜찮아.'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

 

 " 과연. "

 

 연하게 웃으면서 로저스도 목을 조이고 있던 바틀러용 타이를 완전히 풀어냈다. 그렇게 조금씩 웃을 때마다 연한 색의 눈썹이 살짝 구부러지는 것이 로저스의 매력포인트였다. 바튼은 그런 그의 조용한 미소를 보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래서 바튼은 로저스의 미소에 이끌려 자신도 미소를 짓고있음을 깨달았고, 그런 자신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져 저도 모르게 로저스 앞에서 헛기침을 흘렸다.

 

 " 캡틴도 이제 평안을 되찾으실 수 있겠군요. 어쨌거나 선반을 뒤져가며 세계의 온갖 스튜요리 책들을 찾으실 필요도 없어졌고. "

 

 " 그래. 그렇군. "

 

 " 아쉽기는 합니다. 제법 가짓수가 많아졌으니. 백점을 줘도 모자를만큼 완벽하게 성공한 것도 제법 돼고. 언제 기회되면 또 만들어주십쇼. "

  

 " 물론, 별로 어렵지 않지. "

 

 로저스는 아까 바튼이 했던 것처럼 소매의 끝으로 손을 뻗었으나 셔츠가 자켓에 가려져 있어서 소매의 버튼을 풀지는 못하였다. 그제야 깨달은 사람의 표정을 하고 로저스는 조금 멋쩍은 듯한 연한 미소의 얼굴 그대로 나선계단을 향해 걸어가며 자켓의 단추를 가장 위에서부터 천천히 풀었다. 바틀러 복장의 단추는 양옆으로 여섯개로군. 단추많은 옷이 정말싫어. 지퍼로 하면 간단한걸. 바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로저스는 검은색의 자켓을 왼쪽어깨부터 벗어 두어번 턴 후에 반으로 접어 왼팔에 걸었다. 바튼은 로저스에게서 눈을 떼고 방금 로저스가 정리한 책장을 바라보며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이제 끝났으니, 둥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둥지가 이렇게 그리워질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로저스는 벗은 자켓을 나선계단 바로 옆에 있는 옷걸이에다 걸어두었다. 자켓은 선이 정확히 재봉되어 있어서 오히려 활동하기에 아주 편했다. 히어로 유니폼과도 비슷했다. 언뜻 불편해 보이는 디자인으로, 그러나 사실은 실용성 중시이기 때문에 전신에 조금의 압박감도 없이 일하기가 편하였고 그냥 서 있어도 군더더기가 없어보였다. 로저스는 피식하고 한 번 웃고는 어쨌든 두 번 다시 입을일은 없겠지만 촉감까지 마음에 든 바틀러의 자켓을 손으로 한 번 훑은 뒤에 나선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손잡이쪽 보수가 덜 되었기 때문에 되도록 중간지점만을 걸었다. 걸어 올라가는 도중 그의 방에서 나와 대리석의 복도를 하이힐로 울리며 천천히 걸어나오는 포츠를 만났고, 로저스는 되도록 무례해보이지 않게 포츠의 옆을 피하며 가볍게 목례하였다. 예의를 지키는 남자에게 최상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포츠도 가볍게 목례를 하였고, 그 덕분에 출렁이는 금발에 반사되는 어느 창문가의 햇살에 눈이 부신 로저스가 아주 조금 눈썹을 찌푸렸다. 포츠는 로저스의 어깨도 스치지 않고 지나쳐 나선계단을 내려갔고, 로저스는 시선을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하였으나, 포츠의 향수냄새만이 공기위에 길로 남아있어 그것을 인식한 순간 조금 낯간지러워져 목을 긁적이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방문앞에 서서, 로저스는 저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기척이 들린다. 

 그가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로저스는 가볍게 문을 두 번 두드리고, 안쪽에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속도로 방의 문을 열었다. 방문은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열렸다. 

 

 

 

 

 

 

 

 

 

 

 

 

 

 

 

 

 

 

 

 

 

 " 여. " 

 

 " ...... " 

 

 자리에서 일어나 서 있는 스타크를 보는 것은 9일만이었다. 스타크는 하얀 셔츠에 손을 한쪽 밀어넣고 있는 상태 그대로 로저스에게 인사하였다. 로저스는 9일전에 쓰러져 창백한 안색 그대로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간헐적으로 숨을 내쉬던 그의 기절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자꾸 착잡해져서, 아무런 미소도 지을수가 없었다. 지금 침대밖으로 나와 서 있는 스타크의 안색은 다행히 그때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언제 쓰러졌냐는 듯이 유쾌한 미소를 짓고 있기까지 하였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어, 로저스는 다시 한 번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설프나마 미소 비슷한 것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스타크는 눈에 띠게 안심하는 로저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비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로저스를 등진 채 셔츠 끝자락을 바지 안으로 밀어넣고 바지의 지퍼를 수습했다. 

 

 " ...좋은 아침일세. 스타크. 몸은 좀 괜찮은가? " 

 

 " 아아, 나라면 그만 걱정해도 돼. 완벽하게 다 나았으니까. 지금 완전 날아갈 것 같거든. 아, 말 나온김에 아예 당장 수트입고 날아서 출근 하기로할까. "

 

 우스갯소리를 내뱉을 정도라면 정말 건강해진 것이다. 다행이로군. 로저스는 후, 하고 미소지으며 이마위에 흐트러진 앞머리 몇가닥을 옆으로 쓸어넘겼다. "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 "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내 전매특허니까. " 눈가에 주름을 잔뜩 지으며 웃음띤 얼굴을 하고, 스타크는 전신거울 너머로 슬쩍 로저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 아니, 정말로 괜찮아. 응. "

 

 " ...... "

 

 " 덕분에 아주 괜찮아졌어. 그동안 신세많았어. "

 

 " ...... "

 

 " 물론 당신들 자업자득의 일이긴 했지만 말이야. "

 

 하하하. 그렇게 말하고 나지막하게 웃는다. 로저스는 셔츠의 단추를 말끔히 잠그고 넥타이를 능숙하게 매는 스타크의 뒷모습을 그의 방문에 비스듬히 기댄 채 보고 있었다. 전신거울 앞에서 셔츠의 깃정리를 하고 있는 스타크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로저스는 무의식적으로 팔짱을 끼며 눈을 깜박였다. 스타크는 셔츠의 소매 끝에 에르메스 커프스를 단 후에 자켓을 빠르게 걸쳤다. 주름하나 없이 반듯하게 양복을 입고나서, 스타크는 거울을 가만히 바라보는가 싶더니 양손으로 앞머리칼을 전부 뒤로 쓸어올린다. 로저스는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덮은 채 스타크가 하는양을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다가, 문득, 비스듬히 서 있던 몸을 곧추 세우고 후, 짧게 숨을 내쉬었다. 

 

 스타크가 건강을 되찾았다. 이제 일을 나갈 준비를 한다. 다행히 그동안 건강식을 만들기 위해 한 노력이 영 헛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겨우 이런 것밖에는 할 수 없어서, 많이 상심했었다. 그래도 이젠 괜찮아. 로저스는 왼손으로 앞머리칼을 마저 쓸어올리며 스타크의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 로저스의 발걸음을, 스타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붙잡았다.

 

 " 아, 특히 말이야. 딸기. "

 

 " ...... "

 

 고개를 돌려도, 스타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 딸기가 아주 맛있었어. "

 

 " ...... "

 

 " 나, 딸기를 무진장 좋아하거든. "

 

 정말이지, 딸기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렇게 중얼이며, 연하게 웃은 채 스타크는 로저스의 어깨를 가볍게 누르며 방을 나섰다. 빠르게 로저스의 옆을 스쳐 단 한순간의 시선도 마주치지 않았다. 선수를 빼앗긴 로저스는 순간 멍하니 혼자 주인 없는 방 안쪽에 남아, 비어 있는 전신거울을 쳐다보게 되었다. 스타크가 서 있던 잔향만이 남아있는 방안에서, 전신거울에 비치는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 얼빠져 보였다. 로저스는 눈을 질끈감고 고개를 두 어번 흔들며 멍한 상태에서 벗어났고 곧 되찾은 정신으로 서둘러서 스타크의 방문을 나섰다. 문은 아주 가볍게 쾅, 하며 닫혔고, 스타크는 어느새 나선계단의 대부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 토니 스타크? " 외치는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5미터정도 떨어진 스타크에게까지는 들릴만큼의 볼륨으로 로저스는 스타크를 불렀고, 그러나 스타크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단지 손 한 번을 가볍게 흔들었다. 나선계단의 될 수 있으면 중간지점을 빠르게 걸어내려간 스타크는 그대로 멈추지 않고 저택의 정문까지 향했다.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포츠가 때를 맞춰서 문을 열었고, 스타크는 포츠의 뒤를 따라 금방 저택에서 나가버리고야 말았다. 

 

 나선계단 위에서, 할 말을 잃은 채 정문쪽을 바라보고 있던 로저스가, 순간 입을 꽈악 다물었다. 

 

 " ...... "

 

 혹시, 들킨건가?

 

 단 한마디도 한 적 없는데. 다른 어벤저들이 굳이 말했을 리도 없을텐데. 로저스는 그렇게 우뚝 선 채로 가만히,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오늘 아침 야채를 자르다 어설프게 쥔 칼에 베여 오른손의 둘째손가락 끝에 상처가 아직도 붉게 남아있었다. 그래도, 들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빨간 얼굴을 한 채로, 로저스는 눈을 감아버렸다.

 

 

 

 -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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