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me more love
키스하고 싶다. 토니는 스티브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까부터 천 번은 더 했을 생각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원탁으로 된 테이블 위에 대놓고 팔꿈치를 올리고 손등에 턱을 괸 채로, 토니는 하는 것 하나 없이 그렇게 스티브의 이 방의 그 누구보다 가장 바빠보이는 스티브의 등을 쫓고 있었다. 토니는 무료하게 눈을 깜빡였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스티브의 등이 토니의 눈동자에 새겨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토니는 정말이지 최근 계속 스티브의 등만을 쫓고 있단 기분이 들었는데, 실제로 그것이 딱히 토니의 기분탓만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달링은 그간 토니의 침대에 찾아오지도 않고, 심지어 자기 침실에조차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는 하여간 바쁜 것이었다,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았던 그 수면시간조차 다시금 반토막이 날 정도로. 아직 남아있는 소코비아 붕괴의 뒷처리, 아직 남아있는 하이드라 잔당의 뒷처리, 아직 남아있는 쉴드 잔당의 뒷처리, 거기다 새로 만든 쉴드본부 뒷처리, 거기다 새로 만든 어벤저스 멤버들에 대한 뒷처리까지! 아, 대체 이세상은 캡틴 아메리카 없이 70년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단 말인가. 세상이 이렇게나 캡틴을 필요로 하고 있어. 하지만 나도 캡틴이 필요해서 죽을 것 같아. 캡틴이 모자라서 죽겠어. 토니는 스티브가 바빴던 그간동안 독수공방한 자기신세가 불쌍해서 어느새 이를 뿌득뿌득 갈고 있었다. 나도 캡틴이 필요해, 사실은 누구보다 캡틴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알아? 그 누구보다 스티브의 옆에 있었던 토니 스타크가 이제는 발길을 뚝끊은 달링의 최신 소식을 자비스에게 들어야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토니는 이제 일주일 전 향기가 남아있는-그렇다고 생각이 드는-스티브가 썼던 베개에 코를 박고 그의 향기를 떠올리며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수가. 세상은 아이언맨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일까? 필요할텐데? 캡틴 아메리카가 필요한 만큼 필요할텐데? 그렇게나 세상에 필요한 아이언맨이 지금 죽어가고 있어. 그러니 아이언맨을 살리기위해서 세상아, 나에게 캡틴 아메리카를 돌려줘.
"대체 무슨 생각 하고 있는 건데?"
나타샤가 끼어들어서, 거의 침을 흘리다시피하며 상념에 빠져있던 토니의 상상이 뚝하고 끊겼다. "...혼자 노는 거니까 끼어들지 말고 냅두셔." 토니가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을 거면서 왜 나왔어?" 사실 토니도 바빴다. 스타크 원자력을 끌어와 소코비아의 부흥을 돕기위해 도로속에 혹은 바다속에 전선을 박는 막노동일에 투입된 채 몇날몇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아이언맨은 유능했고 그 일은 아이언맨 군단을 파견하여 이미 90%완료한 상태였다. 하지만 토니는 괜히 쌓인 일거리 중 몇개를 떠넘겨받게 될까봐 아직 공사끝낼려면 멀었다고 미적대고 있는 중이었다. "일 도와주러 나온 거 아냐. 달링 얼굴 보러 온거라구." 토니는 양손바닥을 펼쳐 턱을 괸 채로 툴툴대며 다시 스티브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 바빠보이는 스티브 로저스의 등을. 나타샤는 피식하고 웃으며 토니가 앉아있는 의자의 팔걸이에 엉덩이를 갖다붙였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얼굴 보러 온 게 아니구 등 보러 온거잖아?"
토니는 더욱 눈살을 찌푸리며 아랫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누가봐도 지금 토니 스타크가 삐쳤단 생각이 들게끔.
"나는 얼굴 보러 온 건데 달링이 얼굴을 안보여주고 있는 거 뿐이거든."
"버림받은 거 아냐?"
"농담으로라도 한 번만 더 그 말하면 다시는 프라다 안사줄줄 알아, 냇."
"어머, 무서워라. 난 또 싸웠다구? 아까 하도 큰소리를 내는통에."
"......"
토니는 뚱한 얼굴 그대로 더욱 나타샤를 노려보았다. 나타샤는 토니의 불퉁한 얼굴을 바라보며 쿡쿡 웃었다. 토니는 자기를 비웃는 나타샤에게 화를 내기는 커녕,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내신세야."라고 중얼거렸다. 0초단위로 스티브 로저스의 현위치를 갱신하는 자비스의 최신 정보에 따라 토니 스타크는 스티브의 얼굴을 보러 그가 있는 본부의 사무실까지 무작정 찾아왔다. 더는 독수공방 외롭고, 냄새도 기억이 안나고 까딱하며 그 웃는 얼굴마저 잊어버릴 거 같기에.(물론 그럴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점심이라도 같이 먹으며 잠깐이라도 좋으니 꽁냥거려주길 바란 것이다. 사소한 대화도 하고, 가볍게 쪽쪽도 대고, 스티브가 시간이 나면 둘이 같이 화장실 같은 칸에 들어가 주물주물도 좀 해주고. 어차피 다 늙어빠진지 오래라 연인 어깨에 코를 박도 다소 킁카킁카 해대다보면 금방 끝나거든... 삼십분, 이십분도 안걸릴거라고. 하지만 토니의 예고없는 등장에 스티브는 기뻐하긴 커녕, 노골적으로 귀찮아보였다. "당신, 그건은?" 대뜸 이렇게 물으며 엄지손가락으로 토니를 가리키는데, 토니는 순간 쫄아서 이미 공사는 마지막단계에 들어갔는데 아직 안들어갔다고 뻥친 게 탄로난 줄 알았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더니! 하지만 그게 아니었고, 알고보니 토니가 찾아오기 전에 뭔가 일들이 줄줄 터져서 종일 스티브가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느라 심기가 다소 불편해진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다 예고없이 토니 스타크가 찾아와 스티브도 저도모르게 짜증을 내고야 만 것. 허, 캡틴 아메리카도 인간이었구나. 토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쨌거나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티브를 귀찮게 쫓아다녔다. 일이야 터진 것이고 당신 심기 나빠진 것도 알겠고, 그래도 어쨌든 당신의 연인인 나도 일주일 이상 방치된 것에 대한 보상을 받고싶다 이거야, 심기는 고로 나도 불편하다고. 그러나 점심을 이미 대충 샌드위치로 떼운 스티브는 토니에게 노골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지금 너랑 장난질할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으니 볼일 없으면 그만 돌아가게 일침. 그 지나칠정도로 차가운 말투에 토니도 화가 나서 울컥. 그러다 둘은 복도에 서서 대판 싸우고 말았다. 그것이 두어시간 전에 있었던 일. 지금 토니는 말 한 번 못붙일정도로 냉랭하게 식은 스티브 로저스의 등이나 계속 쳐다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여간 사랑이 없어. 사랑이."
토니가 중얼거리는 말에 풋하고 웃으며 나타샤는 목을 간지럽히는 머리칼을 손등으로 쓸어넘겼다.
"캡틴 아메리카가? 이세상의 사랑으로 완성된 것 같은 그사람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건 당신뿐일걸."
"그럼 나한테만 사랑이 없는거겠지."
아이고, 단단히 삐지셨네. 나타샤는 키득대기를 멈추지 않았다. "왜, 사랑이 가득하니까 싸움도 하는거지."
"사랑싸움이란 거 몰라?"
"몰라. 그리고 난 그런 거 하고싶지 않아. 그냥 사랑이 하고싶다구."
"사랑하고 있어, 당신. 생각해봐, 스티브가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대한적 없잖아. 누군가에게 짜증을 부린다거나 심지어 화풀이 버럭을 하다니 그게 말이 돼? 당신이니까 하지."
"......" 토니는 나타샤의 말에 쳇, 쳇, 연발하면서도 "...하여간 위로 고마워." 라고 중얼거렸다. 사실은 토니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 괜히 심통 한 번 부려보는 것이다. 어쨌든 토니도 정말 외로웠고, 그동안 정말 스티브가 부족했고, 정말로 스티브가 보고싶었기 때문에. 토니는 다시 한 번 쳇, 하고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타샤는 눈썹을 위로 들어 토니가 드디어 움직이는 것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토니는 오랜만에 스티브의 얼굴을 보자마자, 정말이지 그 어깨를 끌어안고 그의 입술에 마구 키스를 해대고 싶었다. 그 충동을 정말이지 간신히 참아낸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면, 토니는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당황하는 너의 목을 끌어안고 새빨갛고 부드러운 입술에 꾸욱하고 내 입술을 갖다대고 눌렀을 거라고. 그러면 너는 양뺨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은 천천히 스르르 감기고, 어쩌면 긴 속눈썹이 내뺨에 닿아 파르르 흔들리며 나를 간지럽히고. 그럴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스티브는 토니를 보자마자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고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일안하고 놀고다니느냐는 듯이 힐난하는 시선이기도 했다. 물론 스티브 로저스의 그 표정들은 전부, 페이크였다. 진짜 자신의 표정을 감추기 위한 포커페이스. 토니는 순간 눈이 마주친 스티브의 눈동자가 반가움에 촉촉히 젖어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더랬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만 알 수 있는 거였다, 그런건.
그러니까, 사실은 당신도 내가 보고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는 거 다 알아. 사실은 외롭고 지치고, 내가 모자르고, 내가 필요해서, 어떻게도 할 수 없었던 거지. 하지만 막상 눈앞에 내가 나타나니까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질 잘 모르겠어서, 너무 반가워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가 순간 부끄러워서 당황해서, 괜히 어느때보다 더 쌀쌀한 표정을 짓게 된 거야. 아는데, 알지만, 알아도 스티브의 그 태도에는 토니도 내심 상처받았다. 환하게 웃어주진 못할망정 얼굴 보자마자 그 냉정한 태도는 대체 뭐냔 말이야. 반도의 유명한 츤데레도 아니면서 이럴때 갑자기 왜 부끄러움을 숨기고 난리실까. 토니는 성큼성큼 다가가 토니를 향해 다가오지 말라는 듯이 냉랭한 기운을 내뿜는 스티브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티브 로저스!"
"...!!"
그리고, 토니는 그대로 스티브의 목덜미를 낚아챘고, 스티브는 순간 뒤로 크게 휘청였다. "이제 그만 적당히 충전 좀 시켜주라구! 모자라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하늘을 바라보며 당황하여 벌려진 입속으로 토니는 자신의 혀를 밀어넣고, 그대로 스티브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에 자신의 입술들을 포개고는, 원없이 입맞춤하였다.
젠장. 그냥 처음부터 이렇게 할 걸. 괜히 체면 차렸네! 답지않게.
스티브의 속눈썹은 여전히 결이 얇고 길고, 부드러웠고.
"...그럼 나 갈게."
"...잘가."
돌아가는 토니 스타크의 배웅을 하게 된 나타샤는 토니를 향해 힘없이 오른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너진 나타샤의 포커페이스 위로 나타샤가 곤란할 때 흘리는 땀방울이 굴러떨어졌고, 나타샤에게 곤란함을 선사한 토니 스타크의 부어있는 오른쪽 뺨은 스티브 로저스의 왼쪽주먹의 자국 그대로 더욱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한 방, 한 방이면 충분했다. 상대는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가. 토니 스타크야 아이언맨 아머가 없으면 그저 부자인 민간인일뿐인 것을. 토니는 점점 진해지는 빨간색이 부풀어오르는 자기 뺨을 매만질 엄두도 내지못하고 서 있다가, 나타샤를 향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봐라, 사랑이 없지?" 나타샤도 이젠 토니의 말에 수긍을 해주는 수 밖엔 다른도리가 없었고. "...조금 모자르긴 하네."
"사랑받고 싶어..." 훌쩍이며, 토니는 자기가 타고온 스포츠카에 들어가 자동운전모드를 선택했다. 뺨이 아파 운전을 할 기력이 없었다. 나타샤는 도로를 따라 빠르게 주행을 시작하는 토니의 차량 뒷꽁무늬를 쳐다보며 여전히 안타까워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킥킥. 얼결에 토니의 뺨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나서 한참을 화가 난다는 듯 씩씩은 대겠지만, 그래도 곧 사람들 눈을 피해 뺨을 붉히며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더듬고 있을 스티브가 안봐도 비디오였다. 나타샤의 걸음걸이마다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나타샤를 지나치는 누군가가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라고 묻기에, 나타샤는 마지막으로 킥킥거리며 대답을 해주었다. "아, 가끔은 사랑구경도 재밌구나 싶어서."
- done
걍 둘이 꽁냥대는 게 보고싶어서 씀.. ㅋㅋㅋㅋㅋ 스티브야! 왜그러니! 부끄러워하지말고 마주안아주라구! 토니 토끼는 외로우면 죽어버린단마리야! <
스티브 대사가 회상씬에 하나있고 그 외엔 하나도 없습니다..ㅋ... 스티브.. 너란 남자 과묵한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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