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dkiss

 

 버키는 후회했다. 그러지 말 것을. 지난 이틀전 밤엔 자신이 너무 했었다. 분위기를 너무 탔다. 그렇게 반성하면서도, 버키는 내심 스티브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이쁘랬나. 쓸데없이. 왜 샴페인에 적당히 취해가지고 홀쭉한 뺨이 빨갛게 달아올라선, 왜 샴페인잔 들고 흔들면서 기분좋아서 노래를 부르며 그 앙상한 팔다리를 이리저리 흐느적대며 춤을 추느냐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새까만 가을밤 별이 총총 박힌 가을공기 아래에 춤추는 네모습이 평소보다 세배로 더 이뻐보이지 않았겠어. 게다가 가을밤에 코가 새빨갛게 되선 하후하후 내뱉는 호흡에 새빨간 코가 어른거리는 그 모습이 얼마나 날 충동질했는지 알기나 해. 그리고 버키는 심중에 그렇게 스티브의 매력을 탓하는 자기자신이 있음을 엄청나게 실망하였다. 내가 이렇게 좀만한 녀석이었다니. 그래도 실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쨌거나 자기자신에 대한 실망보다 스티브의 매력을 탓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이다. 뭐 이렇게 되는건 어쨌거나 스티브 로저스에 관해서만이다. 그가 작고 말랐고 안색이 좋지않고 건강이 좋지않고, 그런 외관때문에 그의 매력이 가려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거지. 그에 관해서는 나만 알면 돼. 버키는 반성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독점욕으로 마무리하는 자신의 상념을 목구멍 아래로 꾹꾹 눌렀다. 내심이 어떻게 돌아가든 버키는 겉으로나마 정말로 반성하고 있다는 표정을 열심히 지어야만 했다. 어쨌거나 감기에 걸려서 끙끙대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앓고 있는 스티브 로저스를 앞에 두고 진행되는 버키의 반성은 상당부분이 진심이기도 하였다.

 

 가뿐 호흡을 내쉬며 열에 달떠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지 스티브는 흐릿한 눈을 반쯤 꿈속에 잠기게끔 한 채였다. 의식도 반은 깨고 반은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와중에도 버키가 시야에 띄여서 그런지 연하게 웃고 있다. 이 추위에도 흘리는 땀, 얼마나 열이 높으면 뺨이나 이마에 열꽃이 피어올랐다. 버키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스티브의 이마에 쟁여놓은 물수건을 다시 집어들었다. 벌써 이렇게 뜨겁다니. 버키는 미리 물을 떠놓은 대야에 물수건을 첨벙 빠뜨려 가볍게 주물주물하며 " 미안. 정말 미안해. 스티비. " 하고 내뱉었다.

 

 버키의 사과에 스티브는 그냥 호탕하게 웃었다. " 하하.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사과를 하, 콜록 콜록! " 웃다가 기침하다가 버키에게 대답을 하다가 스티브는 정신이 없었다.

 

 버키는 팔자눈썹이 된 눈썹을 제위치로 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기침을 하는 스티브의 가슴을 꾹꾹 눌러주었다. 호흡이 가빠 가슴은 짧고 빠르게 운동하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심장박동이 너무 빨라서 버키는 안절부절 못하였다. 끝이 갈라지고 탁한 소리를 끝으로 스티브가 겨우 기침을 진정시키고 길게 한숨을 내쉬자, 버키는 조심스럽게 스티브의 이마위에 물수건을 다시 얹었다. 얼굴전체로 수건의 차가운 기운이 퍼지자 안심이 되는지 스티브의 얼굴이 천천히 긴장에서 풀렸다. 버키는 스티브의 이마에서 굴러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을 살짝 훔쳐내고 생수병을 들어 스티브의 입술만을 가볍게 축였다. 살 것 같아. 스티브는 그렇게 생각했고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연속적인 기침을 하고나니 목구멍이 아파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버키는 호흡이 안정돼어 미간의 주름이 살살 펴지며 다시 깊게 잠에 빠지는 것 같아 보이는 스티브의 모습에 겨우 한숨을 돌리며 헝클어진 갈색머리를 쓸어올렸다. 밤새도록 스티브의 기침이 끊이지 않고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옆에서 스티브의 등을 쓸어내리며 물을 먹이고 몸을 닦아주고 하느라 버키도 사실은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여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스티브가 자신의 기침에 버키도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연거푸 말하며 그냥 냅두고 돌아가지, 라고 말할때마다 죄책감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가슴을 쿡쿡 찔렀다. 이틀째에 들어서야 약간의 안정을 찾은 듯한 스티브의 얼굴을 보면서도 물론 흐려지지 않은 죄책감이 버키로 하여금 마른세수를 하게했다. 부탁하면 대부분 들어준다. 그건 스티브가 호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날 신뢰하기 때문이지. 날 좋아해주고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대중을 잘 잡아야하는건데, 스티브의 호의에 기대어 도를 넘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버키는 손가락 사이로 슬쩍 스티브의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보았다.

 

 근데 솔직히 이쁘긴 했었다.

 

 누가 올까봐 무서워 품안에서 숨고싶은 것처럼 몸을 움츠리며 바들바들 떨던 스티브.

 

 작은 스티브가 버키의 어깨너비 속으로 한아름 품자 전부 다 폭하고 안겨들어오는데 그 따뜻함과 파들거리는 감촉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들킬까 숨죽이며 겨우 갈라지는 신음이나 내뱉는 모습도 너무 사랑스러웠고.

 

 버키는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이틀전 밤 생각에 얼굴을 붉혔다. 또 한 번 한숨이 흘렀다. 어쨌거나 가을이 원수다. 가을밤의 마력이 원수다. 가을은 이상한 계절이라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이것봐. 가을의 별밤아래 적당히 술에 취해 기분이 좋은 스티브가 너무 이쁜 나머지 내가 부탁해버리고 말았잖아. 미안하지만 집에 갈때까지 못참겠으니까 저쪽 뒷골목 구석에서 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말하자마자 스티브는 한순간 붉어졌다가 파래졌다가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한 것처럼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간신히 한다는 말이 난 길거리 창녀가 아닐세. 그 말에 순간 울컥했지만 스티브가 정말 당황해서 뜻도 정확히 헤아리지 않고 그렇게 내뱉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가 그만큼 당황하게끔 만든 것이 나니까 그정도는 이해해야겠지. 그래서 나는 그때 머리를 긁적이며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 내가 널 창녀처럼 대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고 네가 말한다면, 난 목을 맬거야. 아니면 총을 관자놀이를 향해 쏘겠어. 라고 했다. 스티브도 곧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푸르죽죽한 안색 그대로. 그리고 스티브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틈을 타 그를 안고 뒷골목 어둠속으로 달렸지. 스티브는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다가 이윽고 포기했는지 내목에 두팔을 감싸며

 

 " 버키... "

 

 라고.

 

 누가 참아. 그 사랑스러움을?

 참을 이유는 또 뭐고.

 

 그리고 보시다시피 결과가 이렇다.

 

 야외섹스는 그 어느때보다도 가장 뜨거웠건만 추운 가을밤 공기를 스티브의 연약한 몸이 별탈없이 견딜 수 있을리가 없었던 것이다. 버키는 기댄 등에서 스며드는 어느 가게에서의 벽이 무척이나 차가운 것에 반해 다리를 부여잡고 껴안고 있던 스티브의 몸은 지나칠정도로 뜨거웠던 그 부조리에 미친듯이 흥분했던 그 날의 자신을 떠올렸다. 최대한 스티브가 추워하지 않도록 거의 벗기지 않고 살짝 엉덩이만 드러나게끔 했는데 역시나, 그것만으로는 안됐던 것이다. 버키는 가쁜 호흡을 내뱉는 스티브를 내려다보며 자문했다. 솔직히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스티브가 허약하다는 건 먼 죽음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가까운 사실인데. 그런 차가운 곳에서 그를 안으면 이렇게 될거라는 걸 정말 몰랐아고? 아니 알고 있었을걸. 알고 있었지만 참을 수 없었던 거다. 그를 안고싶단 생각에만 사로잡혀 다른 건 그냥 다 무시해버리고 만 거야. 그가 이렇게 아파하게 될 줄 뻔히 알면서도.

 

 나란 놈은 항상 그래.

 늘 그랬지. 스티브에게.

 

 " ...... "

 

 난 아픈 스티브를 앞에 두고 뭘 잘했다고 이쁜 스티브가 나빴네 따윌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거야. 이게 정말 나의 진심이라는 것이 역겨워 토할 것 같아.

 

 버키는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안았다. 스티브를 보기가 힘들어서.

 

 

 

 

 

 

 그때 버키는 뺨에 닿은 인기척에 손을 내렸다.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스티브의 물기어린 파란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의 손바닥이 버키의 볼을 꾸욱 누르고 있었다. 아프지는 않고 단지 뜨겁기만 한 스티브의 말랑한 손바닥에 한 번 놀라고, 연하게 웃고있는 스티브의 상냥한 눈매에 두 번 놀라고. 버키는 여전한 팔자눈썹을 바꿀 생각도 못한 채 스티브의 손바닥을 자신의 손바닥에 궤어 꼬옥 쥐었다. 마음이 필사적이 되자마자, 버키의 표정이 더욱 간절해졌다.

 

 " 스티브. 미안해. "

 

 " 멍청한 사과 좀 그만해. 애초에 내가 허약한 게 죄지. "

 

 " 그래도 내가... "

 

 내가 너의 매력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버키는 다행히 뒷말을 삼켰다. 스티브를 괜한 부끄러움에 흥분하게 만들 필욘 없지않은가. 가뜩이나 독한 감기에 건강도 안좋은데. 스티브는 더 이상 말로 내뱉지는 않아도 여전히 온몸으로 자신을 향한 사과를 되풀이하고 있는 버키를 바라보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버키는 참 웃긴 녀석이다. 솔직히 야외섹스는 추운데다 몸 여기저기도 아프고 지금처럼 후폭풍도 심하고 별로 좋은점은 없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도 널 원하니까 허락한건데.

 

 근데 넌 언제나 날 안은 후에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것 같아.

 

 내가 뭐 불면 날아가기라도 하는건가? 너의 그런 점은 정말 재미가 없다.

 

 어떻게 해야 알아주려나.

 

 " ...저기 말이야, 버키. 저쪽 서랍안에 너 줄 선물이 있었는데. 이제 없네. "

 

 " ? 뭐? "

 

 왠지 감정이 복받쳐서 눈시울까지 붉어진 버키가 손가락 끝으로 눈물꼬리를 쓱쓱 닦으며 스티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스티브는 여전히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버키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약간 의아한 듯 고개를 흔들며 스티브가 말한 서랍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보니 그안에 진갈색의 목도리가 포장된 채로 얌전히 뉘여 있었다. " ...... " 버키가 성급하게 포장을 뜯어 목도리를 들어올리자 도톰한 목도리가 제법 길게 펼쳐졌다. 버키는 예상하지 못한 물건에 어색한 느낌으로 목도리를 주섬주섬 수습하며 다시 스티브에게로 걸어갔다.

 

 " 어.. 이거.. "

 

 스티브는 쯧쯧하고 혀를 일부러라도 세게 차더니 짐짓 화가난 듯이 눈을 내리깔며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그거 버키 선물로 샀던건데, 날이 추워져서. 근데 역시 선물은 취소하기로 하지. "

 

 " 어.. 왜? "

 

 " 나하는 게 낫겠어. "

 

 그러고 스티브는 버키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 그래야 다음에 밖에서 할때를 대비할 수 있을 거 아닌가. " 

 

 " ...! "

 

 버키는 순간 입을 벌렸다가, 곧 다물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정말이지

 당해낼 수가 없다.

 

 이길 수가 없어.

 

 

 

 

 버키는 숨길 수 없는 미소를 결국 쏟아내며 스티브의 열에 부어서 도톰해진 입술위에 쪽하고 키스를 했다. 입술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아주 뜨거웠다. 쪽하는 소리가 어느때보다 귀에 달라붙었다. 스티브는 감기 옮네, 라고 했다. 버키는 역시 그 소리하는구나. 그럴 줄 알았어, 라고 했다. 스티브의 웃음소리가 들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좋네. 너의 웃음소리는. 버키는 스티브의 두 뺨을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도톰한 입술에 다시 키스하였다. 스티브의 새빨간 입술을 버키의 마른 입술이 꾹 눌렀다가 톡하고 떨어져나갔다. 스티브는 피식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역시, 그 어느때보다 쪽하는 소리가 귀에 달라붙는다.

 

 

 

 

 

 

 

 

-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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