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이대로 달려나가면 부딪힐 것이 뻔했다. 하지만 이제와 궤도수정은 있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할당된 루트를 벗어나지 않고 일직선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는 것, 그것이 버키가 해야 할 일이었다. 버키는 이때껏 궤도를 벗어나 달리는 일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지시받은 방향 그대로 달리면 쓰러뜨려야 할 적이 마치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 길의 끝에 나타났고 버키는 나타난 적의 목줄기를 한 번에 잘라 적을 죽였다. 버키는 짐승처럼 숲의 길을 달리는 것이 능숙했다. 또 익숙하기도 하였다. 숲속 바닥의 상태도 이끼의 밭도 나무의 줄기도 뿌리도 버키의 방해물이 되지 못했다. 버키는 쉽게 줄기사이를 달리는 다람쥐와도 같았고 버키는 쉽게 나뭇잎 사이를 지나는 벌과도 같았고 버키는 멧돼지처럼 큰 몸집을 하고서도 남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고, 그순간은 자기자신을 바람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그가 지정해준 루트에서 달릴때에 성립되는 것이었다. 루트를 벗어나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버키는 자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어째서 이 루트를 거스르지 않고 달려야 하는지도.

 

 다른 무엇도 아닌 단지 킬러이다. 그를 위한.

 아니면 솔져.

 의 탈을 쓴

 역시 킬러.

 

 그렇기 때문에 버키는 부딪힐 것이 뻔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속도 그대로 길 한복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잠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잠자리의 날개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탓도 있었고, 버키 스스로가 달리는 속도를 멈추지 않는통에 더욱 발끝에 붙은 내리막길의 가속도에 의한 것도 있었고 해서 잠자리와 버키의 이마는 그야말로 거센 파동음을 내며 부딪혔다. 잠자리를 버키의 이마에 부딪히자마자 거의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버키는 그순간 눈하나 깜빡이지조차 못했다. 잠자리의 검은 다리 하나가 붙어있는 왼쪽 날개의 잔재가 눈가에 달라붙어 시야를 방해했다. 하지만 손을 들어 그것을 훔쳐내면 달리는 것에 지장이 온다. 그래서 버키는 잠자리의 잔해를 닦아내지 않고 그대로 길을 마지막까지 달렸고, 이 모든 것은 단지 약 10초동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버키에게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해다. 단지 버키는 다른 생각따윈 다 필요없고 오로지 정해진 루트대로 달리면 언제나 꼭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그 길 끝에 숨쉬고 있는 나의 적이. 버키는 망설이지 않고 숨을 멈추었다. 단칼로 목줄기를 따낼 때 숨을 들이마시거나 뱉으면 겨냥이 미세하게 빗나가고 만다. 그런 실수를 버키는 이 단칼을 든 이래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이 단칼. 버키는 생각했다. 그래. 내가 이 단칼 그 자체야. 내가 그의 단칼 그자체라고.

 

 버키는 그리고 적군의 병사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빠르게 오른팔을 놀려 병사의 목덜미 정중앙에 단칼을 단숨에 박았다. 버키의 악력이 단숨에 병사의 목을 뚫어 반대편으로 칼날의 끝이 튀어나왔다. 병사는 숨소리 하나 제대로 토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피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쓰러질 때 시체가 된 몸이 바닥에 닿으면 불필요한 소음이 나고, 버키는 그 소음을 없애야했다. 그래서 버키는 병사의 머리채를 잡고 그의 몸이 완전히 바닥에 떨어지지 못하도록 하였다. 시체는 무거웠다. 시체가 되기 이전보다 어쩌면 훨씬. 버키는 어깨의 뼈가 삐걱이는 소리를 들으며 더욱 힘을 줘 시체를 소리나지 않도록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뻗은 왼팔로 작동시켜 깜빡이는 라이트는, 신호탄. 버키가 세 번 깜빡이는 그 신호가 끝나기 무섭게 버키는 땅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가장 선두에는 당연히 그 사람이. 기동대는 순식간에 여기까지 와 모든 적군을 적군이 깨닫기도 전에 전부 없애버릴 것이었다. 그리고 그손안에 쥐어지는 것은 퍼렇게 빛나는 승리뿐으로. 버키는 자기가 닦아논 길을 따라 달려오는 그 남자를 기다리는 이 십초간이, 무섭도록 좋았다.

 

 눈을 깜빡이자 달이 흐릿해져, 눈가에 튄 피가 시야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버키.

 손을 들어 이마위를 훔치자, 검은피가 달라붙었다. 어쩌면 잠자리의 조각과 함께.

 

 

 

 

 

 

 

 

 

 

 수고했네. 정예부대 열두명이 친 천막의 어느구석 큰 돌에 앉아 수건으로 이마를 닦아내고 있던 버키는, 사실, 그의 손이 어깨에 닿지 않았던 순간부터 이미 그가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그의 큰 신체에 비례하는 큰 그림자가 먼저 자기에게 쏟아져와서. 현실적으로는 그의 발걸음도 잘 들렸거니와. 하지만 버키는 낭만적으로도 말할 수 있었다. 가령, 버키는 그의 목덜미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늘 그의 그림자 안에 잠길 정도로 뒤에 바짝 달라 붙어다니기에. 그리고 버키는 그가 내걷는 오른발보다 왼발이 조금 더 무겁다는 것도 구분해낼 수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래전 오른발을 심하게 다쳤었고 그것을 보호하려 무의식적으로 왼발을 더 디디곤하는 것이다. 그 미세한 차이는 아주 가끔 일어나기 때문에 버키도 사실 구분해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버키는 알 수 있었다. 아니아니, 좀 더 낭만적으로 말하자면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 버키는 그저 캡틴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그저 알 수 있었다. 그저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저 버키의 전신으로, 알 수 있었다. 그저 그뿐이고 싶었다.

 

 버키의 어깨를 짚은 캡틴의 오른손바닥에서 흘러오는 체온은 그가 내뱉는 수고했네, 라는 말보다도 더 묵직했다. 버키는 얼굴을 훔치다말고 수건을 내려놓았다. 아직 코끝에 피냄새가 가지않아 진득하게 뿜어져나온 적의 피가 얼굴에 달라붙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버키는 그것을 굳이 숨기지 않고 캡틴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어깨위에 올려져 있는 캡틴의 손등위로 자신의 손을 포개면서. 캡틴은 여전히 가면을 쓴 채였다. 버키도 물론 복면을 한 채였다. 검은색의 복면 위에 덜룩하게 묻은 피색의 얼룩에 캡틴이 조금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같았다. 버키는 캡틴이 복면을 쓴 채로 미간을 찌푸릴때의 미묘한 주름이 좋았다. 얼굴위로 지어진 주름이 선명해서 복면위로도 똑같은 주름이 패이는 것이 좋았다. 버키를 걱정해서 그런 표정을 지어주는 것이 좋았다. 괜찮나? 물론 그런 목소리도 좋고. 버키는 생긋하고 웃으며 캡틴의 손등을 들어 자신의 얼굴위로 올렸다.

 

 캡틴, 위로해줘요.

 

 어리광을 피우면, 캡틴은 조금 당황한다.

 

 하지만 금방 쓰다듬어준다.

 

 캡틴의 큰 손은 금방 버키의 작은 얼굴의 대부분을 덮으므로, 캡틴의 손이 아주 약간 움직이는 것만으로 버키의 얼굴위에 남은 피의 흔적들이 전부 닦여져 나갔다. 캡틴은 손가락에 가볍게 힘을 주고 버키의 얼굴을 손가락 끝으로 쓱쓱 문질렀다. 캡틴이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이 뺨을 문지르는 것에 눈을 깜빡이며 버키는 입안에서 킥킥거렸다. 간지럽다. 물론 캡틴의 손끝도, 그리고 지금 캡틴이 어쩌면 가지고 있을 그 감정이. 선공으로 적의 목을 먼저 따러 달려나가는 것도 적의 피가 얼굴에 튀는 것도 이제 너무나 익숙한데, 캡틴은 가끔 버키의 나이를 떠올리며 그것을 자신의 잘못인 양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럴때의 캡틴의 손바닥은 더욱 상냥해졌다. 그리고 버키는 그게 좋아서. 버키는 이럴때마다 가슴속이 간지럽다. 캡틴의 진지한 걱정을 느낄때마다 가슴이 뜨겁다.

 

 캡틴의 손등위에 자신의 손등을 포갠 채, 좀 더 캡틴의 손바닥에 뺨을 비비면, 캡틴이 부드럽게 웃는다. 버키는 캡틴의 손등위에 캡틴이 느끼지 못하도록 입술을 갖다댔다. 캡틴의 장갑 안쪽의, 캡틴의 손바닥에 가 닿기를 언제나 조금 바라면서.

 

 캡틴은 잊어먹고 있던 나의 나이를 떠올리고, 나의 슬픈듯한 표정을 보면서, 어쩌면 오늘 죽인 사람에 대해 내가 죄책감으로 잠겨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몫까지의 죄책감을 안으려 한다.

 

 사실 버키는 이미 죽여버린 병사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죄책감도 없다.

 

 차라리 얼굴에 닿아 부서진 잠자리의 얼굴에 닿은 날개 한 장이 더 오랫동안 그 감촉을 반복하며

 있는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버키는 그렇게 무뎌진 자신이 싫지 않았다.

 캡틴 아메리카의 가시밭길을 함께 가야하니까.

 섬세한 나는, 그의 등을 따라 갈 수 없다.

 그러니 그런 나는, 없어도 돼.

 

 끝까지 그의 그림자를 밟고 뒤따라간다.

 영원히 그의 그림자 속에 있어도 좋아.

 

 그게 버키의 유일한 바램이었다.

 평생을 거는.

 

 

 

 

 

 

 

 

 

 

 

 

 

  " 버키. 다음의 선두는 내가 할까? "

 

 " 그게 무슨 소리예요. 캡틴. 저의 할일을 뺏지 말아요. 있을 곳이 없어지고 만다구요. "

 

 " 그럴리가 없잖아. 자네가 있을 곳이 사라질리가. 단지 오늘 너무 지쳐보여서 그렇네. "

 

 " 최근들어 비밀작전이 많긴 많았죠. 하지만 그따위 것 전부 일상일 뿐이에요. 내가 너무 지쳐보인다는 말은, 오히려 캡틴이 지쳤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닌가요. "

 

 " 버키. 네가 힘든 건 보고싶지 않아. "

 

 "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스티브. "

 

 " ...... "

 

 " 당신은 나의 태양이니까. "

 

 " ...그런 말도 안 되는. "

 

 " 정말이에요. 진심으로. "

 

 " ...... "

 

 그리고

 나는

 황혼으로 해줘.

 

 당신이 저물 때

 당신 옆에서

 흐트러질게.

 

 당신을 안고

 흐트러질게.

 

 

 

 

 

 

 스티브의 손이 뺨에서 떨어져나갈때의, 그 아쉬움. 끈질기게 가슴에 퍼지는 그 아쉬움. 버키는 눈이 부신 듯 찌푸리며 위를 바라보았다. 스티브의 벌려진 손가락 사이사이로, 밤의 그림자가 얼굴 위로 밀려왔다. 스티브의 손바닥의 그림자. 스티브의 향이 남아있다. 전부 안고싶어. 버키는 팔을 벌리는 대신, 미소지었다. 스티브가 이끌리며 따라 웃어주기를 기대했다.

 

 

 

 

 

 

 

 

 

- done

 

+ 주제는 그림자. 주제에 좀 안맞게 나왔다.... 무비 버키스팁 설정도 아주 좋지만 원작 버키스팁 또한 매우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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