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ring Flower

 



 3월의 어느날. 스티브 로저스는 아주 달콤한 향을 느꼈다.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공기에 실려온 부드러운 향기가 꽃향기라는 것을 눈치채는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티브는 자켓을 뚫는  차가운 공기속에서도 부드러운 봄의 기운을 느꼈다. 기다려마지않은 바람 찬 봄날이었다. 스티브는 우산과는 상관없이 사선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저도모르게 우산밖으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투명한 빗물이 스티브의 손바닥 위에 떨어지더니 몇방울들은 튀어오르기까지 했다. 비는 차가웠지만 스티브는 싫지 않았다. 도리어 아까까지만 해도 경직되어 있던 스티브의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주는 것 같아 이 서늘함이 좋기까지 했다. 주변사람들이 보면 미친자 취급을 할지도 모르지만, 21세기의 요새 사람들은 절대 이런일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스티브는 머리위에 올려둔 우산을 내리고 그대로 빗줄기를 전부 맞아 흠뻑젖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스티브는 지금 비에게서 위로를 느꼈다. 그럴리는 없었지만, 어차피 보잘 것 없는 작은 인간의 그깟 착각이 뭐 어떠랴 싶었고. 스티브는 아직 어렸을 적 비가 올때마다 맨발로 아파트를 뛰어나가 이미 기다리고 있던 버키와 어깨동무를 한 채 진흙이 가득한 물웅덩이로 몸을 던지며 놀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물론 가장 행복한 한시간을 위해 그 뒤 며칠이고 앓아누워야했던 작은 스티브 로저스였지만, 그래도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던 한시간이었어. 스티브는 우뚝 멈춰 선 채 좀처럼 다시 걸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아. 내가 정말 많이 의기소침 하고 있구나. 생각보다 훨씬 상처를 받았어. 스티브는 사내가 집어던진 화병에 부딪혀 볼록 튀어나온 이마의 혹을 손으로 더듬으며 숨을 참았다. 혹에서 찌릿한 고통이 흘러넘쳤다.


 "이제와서 무슨! 꺼져버려!" 라고 외치며 사내는 자신의 격정을 참지 못하고 스티브 로저스의 머리를 향해 화병을 던졌다. 스티브는 거의 몸을 틀지도 않고 사내의 얼굴을 보고만 있었다. 애초에 화병이 자신과 정통으로 부딪히지 못할 각도로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화병은 완전히 스티브를 비켜나지는 않았고 스티브의 이마를 스쳤다. 화병 안에 꽃들을 고정할 때 쓸 목적이었던 단단한 고정쇠가 들어있었기 때문에 화병이 스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아팠고 스티브는 "윽,"하는 소리를 짧게 내뱉었다. 희끗한 머리칼이 거의 없고 거무죽죽한 피부가 축 처진 사내-사실 노인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는 스티브가 짧게 내뱉는 신음에 뭐가 좋은지 하하하, 하고 큰소리로 목청을 울렸다. "그래, 천하의 캡틴 아메리카도 돌팔매질엔 고통을 느낀다 이거지? 같은 인간이라 이거지?" 사내는 이미 오래전부터 난장판이 되어있었을 게 분명한 자신의 집 마루위로 습관처럼 침을 내뱉었다. 그 가래가 꽈악 차있는 듯한 목소리, 둔탁한 두 눈동자. 스티브는 정신없이 식탁 위를 더듬는 사내의 떨리는 손가락들을 바라보며 그가 이미 만성 알콜홀릭에 절어있음을 눈치챘다. 입맛이 썼다. 화병이 스친 이마도 욱씬대며 아파왔지만, 그것보다 눈앞에 한때 그 누구보다 용감했을 참전군인의 몰락한 모습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스티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사내는 기어코 엉망이 된 식탁위에 손때가 낀 더러운 술병을 하나 집어들었다. 찰랑이는 오래된 술을 아랑곳없이 목구멍으로 집어삼키며 사내는 입밖으로 주르륵 흐른 술들을 거칠게 입으로 닦았다. 사내는 테이블 위에 술병을 세게 내려놓으며 크게 휘청였다. 술에 취해 중심을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오래된 인조다리가 말을 안듣고 삐걱거려, 사내는 이미 절뚝거리며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하게 된 것이었다. 사내는 버럭 소리쳤다.


 "같은 인간은 무슨 같은 인간이야! 어디가 같은 인간이야! 이걸 봐, 이 꼴을 좀! 나는 영웅이었고, 나는 45사단 제2대위로 공을 세웠고 심지어 훈장을 두 개나 받았단 말이야! 하지만 이제와 내 꼴을 봐, 이 인간몰골도 아닌 꼴을 보라고! 그리고 너를 봐, 이게 어디가 같은 인간이란 말이야?!"


 "....." 스티브는 대위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위의 모든 술에취해 굳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은 혀가 만드는 어설픈 발음을 감내하며 스티브는 대위가 하는 욕을 전부 들어주었다. 몇 분을 그렇게 소리를 내지르더니 곧 얼마없는 기운이 딸렸는지, 사내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의자에 요란하게 주저앉았다. 스티브는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안색이 창백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래도 사내는 숨이 넘어갈 듯 넘어가지 않은 채, 이렇게 살아있었던 것이다. 이제와서 무슨, 이제와서 무슨, 돌이킬수도 없으면서... 노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까무륵 잠이 들었다. 스티브는 천천히 걸어가 사내앞에 무릎을 꿇고 사내의 코아래로 손가락을 갖다대보았다. 역시나 죽지 않았다. 스티브는 늙은 고목나무처럼 딱딱하고 주글주글해진 사내의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바닥을 올리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악한 노인 혹은 말이 통하지 않는 치매노인으로, 이미 이웃에서 온갖 소리를 다 듣고있었던 70년전의 참전용사로, 스티브가 힘들게 찾아낸 사람이었다. 스티브가 참가한 마지막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은 이미 너무 나이가 들어 거의 무덤속에 있거나 병원에 누워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찾고찾아, 이번이 겨우 두 번째였다. 첫번째는...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두번째는 일방적으로 원망을 들었다. 스티브는 사내가 잠들기 전 중얼이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70년전으로 돌이킬 수도 없으면서, 왜 70년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거냐.


 그것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다면 나도 원이 없을텐데. 이런 모습으로 돌아와놓고, 정작 모든 걸 70년전으로 돌려놓을 수는 없다니. 돌아갈 수도 없고. 스티브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가진 달러지폐다발을 전부 꺼내어 사내의 테이블 위에 올려주고 뒤를 돌아 나섰다. 처음 그의 집을 찾아올 땐 맑았던 날씨가 어느새 바뀌어, 비가 빠르고 굵게 쏟아지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지로 떨어지는 걸 듣지도 못하고 있었다. 저사내에게 집중하느라. 스티브는 노인의 낡은 집 바깥에 세워져있는 의외로 멀쩡해보이는 우산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내가 가져가자. 값은 이미 지불했으니까. 스티브는 소소한 도둑의 기분을 느끼며 우산을 펼쳤다. 거미줄이 몇가닥 붙어있었지만 역시 사용하는데에 큰 무리가 없는 우산이었다. 스티브는 바지밑단이 젖을만큼 크게 도약하며 길을 걸어나섰다.


 이미 노인이 다 되어 죽을날만을 기다리는 자를 굳이 사내라고 부른 것에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스티브가 그와 동갑이기 때문이었다. 스티브는 마지막 전장에서 함께 있었던 군인들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스티브는 마지막 전장의 작전명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의 서류를 비교적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서류는 쉴드에 부탁하니 쉽게 찾아주었고, 그 뒤 스티브는 쉬지않고 그들을 찾아다녔다. 그 중 40명이 이미 죽었다. 4명은 병원에서 눈 한 번 꿈쩍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이들은 다섯도 채 안 되는데, 이들중 또 몇 명이 살아있을지, 살아있다면 말을 할 수는 있는 상태일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제와 무슨짓이냐고?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으면서 대체 왜 찾아다니는거냐고? 스티브는 비에 젖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혹이 스쳐 따끔거렸다. 알 수가 없다. 나도 모른다고. 스티브는 이를 뿌득 갈았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건지 스티브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스티브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쓸데없는 일에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어째서 이런 아무 의미없는 일을 반복하는 걸까. 난 누구를 찾고있는지, 무엇을 하고싶은지, 무슨말이 듣고싶은지. 도저히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스티브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어간다. 스티브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봄을 알리는 빗줄기를 우산너머로 쳐다보았다. 스티브는 사내가 쏟아내뱉는 욕을 듣는동안,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그때의 편안한 마음이 묵직하게 가슴에 녹아 있었다. 그렇게 면전에 대고 악을 쓰며 욕해주기를, 스티브는 고작 그런 걸 위해 그렇게도 그들을 찾아다녔던건가. 자신이 한심해서 걷잡을 수가 없어, 스티브는 혀를 찼다. 그 어느때보다도 허탈해서 스티브는 다리의 힘이 쑤욱 빠졌다.




 

 맨하탄의 아파트로 털레털레 걸어가고 있으려니, 저렴한 아파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가 아파트 입구에 서 있었다. 스티브는 현대의 차에 전혀 익숙하지 않지만, 그 차는 눈에 익숙했다. 스티브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차의 운전석 쪽 창문을 노크했다. 빗방울이 굴러떨어져 스티브가 두드릴 때마다 튀어올랐다. 창문은 스티브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않고 밑으로 내려갔다. 토니 스타크는 비가 한창 오는 중에도 아무 의미 없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스티브는 토니의 평소와 다름없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고, 아니 이래야 역시 토니 스타크지... 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토니는 아무 말 없이 스티브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차에 타라는 행동인 걸 눈치채고,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다. "신발이 다 젖었네." 스티브는 생각없이 웅덩이를 헤치며 걸었더랬다. 70년보다 더 오래된 옛날, 소중한 친구와 진흙범벅이 되서 놀았던 비 웅덩이를 생각하면서 발로 웅덩이를 차기도 했더랬다. 바지도 아랫부분이 온통 젖어 축축하게 스티브의 다리에 달라붙었지만 스티브는 신경쓰지 않았고, 오래된 뉴욕의 지하철에는 젖은 옷감의 악취가 흐르지않고 고여 평소보다 더욱 우중충했더랬다. 그리고, 뉴욕의 지하철은 스티브가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요란했다. 한밤중에 지하철을 올라탄 취객 몇몇은 괜히 스티브에게 시비를 걸었고 지금부터 출근하는 듯한 창녀 중 누군가는 스티브의 고환을 손으로 움켜잡았다. 스티브는 창녀의 새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손을 바라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고자새끼!" 스티브는 지하철이 다 흔들릴정도로 커다랗고 소리를 내지르던 창녀의 욕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고. "시트가 젖을걸세. 미안해서 싫네." 토니는 더 이상 스티브의 말을 듣지않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스티브가 들고있던 우산 속으로 몸을 구겨넣었다. "토니..." 곤란해하는 스티브의 목소리는 듣기싫었다. 토니는 스티브에게서 우산을 낚아채듯 빼앗아들고 성큼성큼 아파트로 먼저 걸어들어갔다. 스티브는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으로 훑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한 걸음으로 토니의 뒤를 쫓았다.


 토니가 자신의 아파트의 비밀번호를 알고있다는 것이 이제는 의아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가 모르는 것이 더 어색한 일일 것이다. 스티브는 자기멋대로 스티브 아파트의 비밀번호를 바꾸어 자기를 골탕먹였던 언젠가의 토니를 떠올리며 웃음을 흘렸다. 비밀번호는 토니 스타크의 생일이었다. 도리어 한 번에 맞추지 못했다며 화를 내는 그 날의 토니는, 정말로 신선했었다. 갑자기 스티브도 제멋대로, 자기멋대로 해버리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였다, 이 아무 의미없는 일들을 시작한 것은. 토니에게 말한적은 없었지만, 말하자면 토니가 계기가 되어주었었다. 그것은 삶의 의미와도 비슷했다. 스티브는 피식웃으며 자신의 미간을 꾸욱 눌렀다. 두통이 왔다. 혹 때문일 것이다.


 "이리와." 토니는 답지않게 짧게 말했다. 스티브는 토니가 화를 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군인을 찾으면 혼자가지말라고, 토니는 바로 어제에도 신신당부를 했었다. 스티브는 토니의 말을 무시한 셈이된다. 자신의 말이 무시당하고 기분좋을 사람은 당연히 없는 것이다. 스티브는 토니가 하는대로 순순히 따랐다. 스티브는 토니가 앉아있는 소파의 옆에 자기도 앉았다. 바지가 축축해서 슬슬 차가웠다. 토니는 거의 무표정으로 스티브의 벨트를 풀고 바지의 지퍼를 열었다. 스티브는 당황했지만 두 손으로 안절부절할 뿐, 토니의 행동을 막지는 못했다. 토니는 망설임없이 스티브의 바지를 전부 벗겨냈다. 스티브는 당황해서 두 다리를 붙이며 앞으로 두 손을 모았다. 순진한 행동에 토니도 반사적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토니는 언제 꺼냈는지 보송한 타월로 스티브의 다리를 닦았다. 스티브는 여전히 아무말도 못했다. 이럴때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토니는 스티브의 다리의 물기를 다 닦은 후 그의 맨다리위에 담요를 올려주고 머리카락에서도 물방울을 떨구는 스티브의 얼굴을 훔쳤다. 그리고 혹을 발견하자마자 얼굴을 확 찌푸렸다. "젠장." 아니나다를까. 또 상처다.


 "망할 노인네. 왜 하나같이들 상관없는 인간한테 화풀이야."


 토니가 화를 내며 그렇게 씹듯 내뱉자, 스티브의 뺨이 붉어졌다. 이런 걸 걱정해서 혼자 가지말라고 말했을텐데, 결국 혼자갔다가 또 봉변을 당했으니. 토니가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싶어 살짝 민망했다. 스티브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미안하다는 입에발린 말조차 오늘따라 잘 나오질 않았다. 처음 토니는, 스티브가 그들을 찾아다니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다지 반대하지 않는입장이었다. 어차피 이미 대부분 죽었다며 미련을 갖지말라는 나타샤에게, 의미없는 행동일지라도 본인이 하고싶다하면 하게 냅두라고 말해주기까지 했다. 그런 토니의 기분이 바뀐 것은, 처음으로 만난 죽지않고 살아있었던 참전용사가 스티브의 배에 칼을 꽂은 사건이 터져서였다. 노인, 사내는 스티브 로저스-70년 전과 조금의 변함도 없이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캡틴 아메리카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원래도 치매로 죽어가고 있던 노인이었다. 사내는 스티브의 얼굴을 보자 순식간에 70년전의 전장의 참극으로 돌아간 듯 공포에 떨었다. 스티브는 머리를 감싸쥐고 전쟁의 비극에 비통하는 노인의 등을 두드리며 나타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앗차하는 순간이었다. 스티브의 배에 노인이 칼을 찔러넣은 것은. 스티브 본인은 물론 주변의 그누구도 반응하지 못했다. 스티브의 하얀 셔츠는 금방 피로 물들었고 식칼은 스티브의 배에 꽂힌 채 흔들렸다. 스티브가 잽싸게 사내의 손목을 잡고 비틀지않았다면 그대로 스티브에게서 식칼이 뽑혀나갔을테고 그럼 좀 더 큰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기본 스티브의 몸속을 흐르는 슈퍼세럼덕분에, 스티브는 크게 다쳐도 그 병세가 오래가지 않았다. 보통인간이라면 내장이 다쳐 몇달은 병원신세를 져야할 상처도 스티브는 일주일 정도에 전부 나았다. 그리고 병원에서 나왔을 때, 토니 스타크는 스티브 로저스에겍서 나머지 군인들의 서류를 돌려달라고 말했다. 토니는 스티브가 보아온 그 어느때보다도 단호했다. 스티브는 어딘가 아파보이는 토니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대로 토니에게로 꼭 허물어지고 싶었지만, 스티브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저 토니의 내민손을 거절하였고.


 "이번엔 또 어떤 일을 당했어?" 오늘 스티브가 찾아간 남자가 치매끼는 있지만 그래도 나이에 비해 비교적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토니는 알고 있었다. 알콜홀릭, 오래된 의족, 기타 노인병을 보유한 것치고는 튼튼하여 아직 죽을날이 보이지 않는 남자. 토니는 스티브가 분명 기대했을거란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스티브 본인은, 자기가 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서 그들을 찾아다니기로 했는지 제대로 모르는 게 분명했지만, 토니는 눈치채고 있었다. 스티브는 그저 위로가 필요한거였다. 70년전의 절망을 자기과 똑같이 피부로 겪은 사람들과 함께 부둥키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는 작은 말한마디가 듣고싶은 거였다. 토니는 그것이 비록 아무 의미 없는 것일지라도, 스티브가 홀로 텅비어버린 70년의 공백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거라 여겼다. 그런데 이것들이, 하나같이. 사람을 유령보는 듯 하고. 이때다하고 국가영웅한테 화풀이나 해대고. 제기랄. 토니는 욕을 숨기지않고 내뱉었다. 어차피 스티브는 그들에게 절대로 욕하지 않는다. 이사람이 욕을 할 리가 없지. 그러니까 대신해주는 것이다. 사실은 당신이 직접 해야 할 몫까지.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안 당했네."


 "그냥 돈이나 좀 쥐어주고 왔다네. 겨우 이런 거 밖에 못해서 오히려 미안할지경이야."

 "바란다면 언제든 말해.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하고있는 자선사업은 많으니까. 전쟁참전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캡틴 아메리카 재단 하나정도는 더 만든다고 힘들 것도 없어."

 "하하. 자네도 참."

 "농담 아니거든. 진담이거든. 물론 공짜로 해주는 거 아냐. 당신이름으로 만드는 재단이니까 캡시클이 직접 발로 뛰며 일해야겠지. 당신 그런 거 잘하지? 핀업 모델은 당신 전직이잖아."

 "토니 스타아크."

 "타발음 길게 끌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거야. 일안하는자 먹지도 말라, 전쟁세대의 영감주제에 그걸 몰라?"


 그런 뜻으로 화낸 게 아닌데. 핀업어쩌구로 놀려대서 그런거였는데. 스티브는 짐짓 화난 듯 눈썹을 세우다가 곧 풀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안다. 토니가 일부러 그런 말들을 한다는 것 정도는. 자네는 언제나 그렇지. 언제나 내 마음을 구해주려고 힘을 써. 그럼 난 대체 너에게 뭘 얼만큼 어떻게 갚아야하지. 하워드. 자네 아들은 왜 이럴까. 어떻게 이럴까. 스티브는 토니의 밉상스런 말을 내뱉는 입 위에 부드러운 눈빛을 하고있는 토니 스타크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왠지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토니 스타크는 스티브가 묘하게 안심하는 표정을 지은 것에 이윽고 만족했다. 토니는 스티브의 갈 길을 잃은 미아같은 눈동자 깊은 곳에 피어오르는 자신을 향한 안심에 가슴이 달아올랐다. 쉘터가 되고싶었다. 방공호가 되고싶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걸 안바래. 강한 사람이라서 그런 걸 안바란다고. 좋아. 그럼 방공호 말고, 쉼터는 어때. 쉼터 정도야 몇 개나 가지고 있어도 되는거잖아. 안 그래. 토니는 오른손을 들어 스티브의 눈가를 손등으로 쓱쓱 닦았다. 스티브는 피부가 토니의 손에 당겨지는 느낌을 받으며 눈을 깜빡였다. 스티브는 웃었다.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꼭 토니가 눈물을 닦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네 어떻게 안건가." "응? 뭘?" 내가 지금 꼭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것 말야. 스티브는 눈썹을 구부리며 웃었고, 토니는 그런 스티브의 뺨에 짧게 키스했다. 한 번 더, 한 번 더 해줘. 스티브는 어리광이 부리고 싶어 목구멍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스티브가 먼저 그렇게 내뱉을 것도 없었다. 토니는 기다리지 않고 스티브의 입술 위에 키스를 퍼부었으니까.


 


 


 


 


- done

 

 언젠가 이런 글을 한 번 쓰고싶었는데... 지금 쓰네용. 음 한 두시간 정도 걸린 거 같애여..

흐 스티브 울지마... ㅜㅜㅜㅠㅠㅠ

바람찬 봄날입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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