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후에
꿈이구나. 다행이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결국 그런 거였다. 그 끔찍한 공간이 전부 꿈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토니는 그 무엇보다 가장 커다란 위로를 느꼈다. 커다란 침대에는 공허하게 혼자뿐이고, 토니 스타크는 그 누구의 체온도 없이 혼자 식은 몸을 양손으로 끌어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꿈 속의 그곳이 깨고나면 사라지는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토니는 40년넘게 살아온 것이 그렇게 잘못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건 오만도 뭣도 아니었던 것이다. 토니는 땀과 함께 눈물을 떨구었다. 땀도, 눈물도 차갑게 식어 덜덜 떨리는 몸과는 다르게 완전히 뜨겁다. 토니는 부스럭거리는 이불을 집어들어 몸을 돌돌 감싸면서 자신의 허벅지 위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대었다. 이런 슬픔에 휩싸여 혼자 울고 있는데, 옆에 있어줄 단 한사람도 생각나지 않는 밤. 이럴때에 전화한통 걸어 위로를 구걸하면 웃지도 않고 그저 토니가 바라는대로 토니의 말에 응, 응 하고 말동무나 해줄 사람, 그런 것 하나 만들지 못한 어리석은 토니 스타크. 토니는 떨리는 호흡을 내쉬며 또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40년을 그렇게 잘못 살아온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역시 아무 의미없는 삶이란 초라하고 외롭군... 토니는 습관처럼 자신을 동정하며 자조하였다.
아, 아니다.
생각났다.
한사람이 있었다.
이럴때에 전화하라며 자기에게 웃어주던 남자가 토니는 불현듯 떠올랐다. 토니는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빠르게 고개를 들고 캄캄한 방의 어딘가를 눈을 커다랗게 하고 바라보았다. 자신의 전화기가 놓여있는 곳이었다. 남자는 언제나처럼 햇살같은 미소를 하고서 위로가 필요할 때 혹시 내가 생각난다면 부담없이 전화를 하라고 했었다. 그 말은 진심이었을까? 진실이었을까? 겉치레는 아니었을까, 그냥 해본소리였던 건 아니었을까? 그 남자도 입에만 좋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일까? 토니는 자신의 전화기를 멍한 눈으로 쳐다보며 아랫입술을 덜덜 떨었다. 방의 난방은 완벽함에도, 토니 스타크의 몸은 여전히 싸늘하게 식어있었고, 토니의 몸은 여전히 오한에 떨리고 있었다. 토니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염세주의자다. 토니의 냉소는 늘 기본적으로 인간을 깔보는 마인드로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 사람은? 토니는 그런 사람은 이때까지 만나본적이 없었다. 아마 이후에도 그런사람은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믿어지는가? 웃는 얼굴이 햇살같다는 건 그사람의 표정에 비유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사람이 어떤마음으로 살아왔어야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일까. 아마 진심일 것이다. 그사람이 나에게 했던 말은 다 진실일 것이다. 겉치레도 아니고, 그냥 해본소리인 것도 아니고, 그 남자는 결코 입에만 좋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해도 될만한 인간일까.
토니는 간신히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몰라. 난 모자른 인간이라는 걸 스스로 자각하는 것조차 포기한 사람이야. 그리고 지금 그런 걸 따지기엔 내가 너무나 외롭고 위로가 필요하다. 토니는 입을 열었다. "스티브 로저스 전화번호." 토니의 핸드폰은 토니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스티브 로저스의 전화번호를 화면에 띄었다. "연결." 곧 울리는 무미건조한 신호음은 토니 스타크의 심장소리같았다. 토니는 자신의 심장소리만큼이나 차갑게 들리는 신호음을 컴컴한 방에서 들으며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한 번, 깜빡였다. 날 위로해줘. 날 안아줘. 이 어두운 방에서 날 구해줘. 별꿈이 아니라고 해줘. 그런 악몽에서 벗어나라고 해줘.
"여보세요."
"스티브."
모든 생각이 한꺼번에 입밖으로 나올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스티브의 목소리가 들리자, 토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토니. 반갑네. 좋은 밤이로군."
"......"
이 밤중에 무슨 일이냐고, 이 밤중에 왠일이냐고 묻지 않은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스티브."
"그래. 스티브 맞네."
"......"
"...? 토니?"
한참 말을 잇지 못하고 어깨를 더욱 움츠리니, 스티브는 아주 조금 기다려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토니는 여전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토니. 방의 불은 켰나?"
"...아직."
"그래. 그럼 방의 불을 켜는 것부터 시작할까?"
"응."
토니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니는 이불에서 벗어나 몇걸음 걸어 불의 스위치를 눌렀고, 방이 환해졌을 때쯔음엔 더 이상 오한도 느끼지 않았다. "잘했네."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은 타이밍으로 말하는 스티브가 토니는 신기했다. "어떻게 알았어?" "전화 성능이 좋아서 말야. 자네의 조용한 발걸음까지 들리는군." 스티브는 그렇게 말하고 웃는 소리를 냈다. 토니는 스티브의 웃음소리에서, 그의 웃는 얼굴을 떠올렸다. 작아지는 눈. 푸른빛이 거의 사라지는 대신에 긴 금색의 속눈썹이 양옆으로 길게 늘어진다. 눈꼬리에 잡힌 주름이 구부러질 때마다 느껴지는 그의 천진함과 상냥함.
토니는 그제야 스티브와 함께인 나날속에서 자신이 받았던 축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자기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어둠속에 갇혀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토니는 아무도 보지 않았음에도 느끼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다 붉어지고 말았다. 토니는 새삼 밤중에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스티브 앞에서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초조함을 느끼며 토니는 고개를 숙였다.
"저, 저기. 캡. 뜬금없이 밤중에 전화해서 미안해."
"아냐, 난 괜찮네. 언제든 전화주면 기쁘니까."
"응. 정말 미안해. 좀 악몽을 꿨어."
"저런. 가엾게."
스티브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미 창피한 토니는 그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으면... 했다. 어린아이 달래는 것 같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젠 괜찮으니까." 토니는 힘없이 그렇게 말했다. 창피함이 도를 넘어 이마가 뜨거워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전화통화를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스티브의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고 싶었다.
그래서 이미 한계까지 창피함을 느끼고는 있지만, 전화를 끊지않고 억지로억지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는것이었다. 토니는 새빨개진 얼굴을 한 채로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 한숨이 스티브 귀에 들리지않기를, 하고 빌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전화기에서 뒷걸음질을 하면서 영상통화로 걸지않은 자기자신에게 무한히 다행이다, 다행이다를 연거푸 속삭였다.
- done
하루늦은 스른전력... 키워드 악몽.
너무 내용이 아무것도 생각이 안났다 ㅠㅠㅠㅠㅠㅠㅠ
짧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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