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과 막 사이

 


 토니 스타크가 다시 피터 파커를 찾아온 것은, 그 일이 있고나서도 한참 뒤였다. 그 날 여기저기를 다친 피터의 상처조차도 거의 아물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고, 매일이 정신없이 흐르고 있는 십대 소년에게는 심지어 그 날조차도 아득해질만큼의 한참 뒤. 물론 피터는 이렇게도 늦게 자신을 찾아온 토니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찾아오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피터 파커는 전장을 떠나가고, 그 뿐이었지만, 토니에게는 그 뒤에도 많은 일이 있었으리라. 피터는 오늘이란 날이 올때까지 토니가 겪은 일들이 정확히 어떤 것들인지조차 잘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피터는 그것들을 함부로 가늠해선 안 된다는 것, 그것들에 대해서 자신이 섣불리 입을 열어서는 안된다는 것 정도는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피터는 자신을 찾아온 토니에게 처음 토니를 만났던 그 날과 마찬가지로 그를 맞이했다. 아니 어쩌면 그 날보다는 조금 더 친숙하게. 일부러라도 약간은 어색하게. 피터는 그래서 아주 조금 낯을 가리 듯한 태도로 그를 맞이했고, 토니는 약간 날이 선 채 피터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피터는 토니의 태도에 상처받지 않았다. 토니는 피터 파커에게 말로 하지 않을뿐인 죄책감으로 가득차 있었으므로.


 그리고 피터는 토니 스타크의 자신을 향한 그 죄책감을 어느정도는 이해했다. 피터는 너무 아무 것도 몰랐고, 토니는 너무 많은 부분을 생략한 설명만을 안겨주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토니도 피터도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피터는 토니에게 이끌려 그 공항을 향할 때만해도 자신이 뛰어들게 될 그 일이 '어떤 생각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이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이 아득해질만큼의 오랜시간이 흐르고, 그 동안 토니 스타크가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여러가지 일로 정신없이 바쁘거나 혹은 그냥 정신을 놓고 있을 때, 피터의 몸에 난 여기저기의 상처도 흔적없이 아물 때 쯔음에야, 그 날 일어났던 일들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피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그 날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전부 조사하고, 읽어보고, 추리하였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오랜시간을 들여 생각을 하고 또 했다. 그리고 피터는 그 조사와 이해가 자기가 무작정 전장에 뛰어들기 이전에 먼저 선행되었어야했음을 뒤늦게 깨달았으며, 자신의 경솔함을 깊게 후회해야만 했던 것이다. 아마 그런 반성이 토니의 자신을 향한 죄책감을 바로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리라. 어쩌면 그 시간동안 피터만큼이나, 토니도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테니까. 피터는 토니의 살이 빠진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자신이 그 전장에 아무 생각도 없이 뛰어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자신을 그 전장에 끌어들였다. 그리고 토니는 그것을 지금에와서 너무나 후회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좀 더 나이가 많았다면, 아니 어쩌면 내가 조금만 더 심사숙고할수만 있었다면, 오늘의 이 슬픈 시간은 없었을까. 토니가 슬퍼하는 걸,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것을 바라는 이는 사실 아무도 없건만. 피터는 토니에게 '나는 괜찮아요.'라고 말할까 말까를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옆얼굴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토니 스타크는 너무나 슬퍼보였고, 또 지쳐보여서, 자신의 말은 전혀 들리지도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전에 무슨 말을 해도 스스로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란걸, 피터도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피터는 문득 그 날의 캡틴 아메리카를 떠올렸다. 가면너머로도 잘 알 수 있을만큼, 자신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그의 얼굴을, 피터는 그날이 아득해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그라면 아마 오늘의 토니를 위로할 수도 있겠지. 그의 목소리는 틀림없이 닿을거야. 그게 어느때라도. 피터는 그런 생각을 했다. 갑작스레 전장에 뛰어든 자신을 키드라고 부르면서도, 캡틴은 그런 자신을 한 번도 무시한 적이 없었다. 아니, 아니야. 피터는 그날 자신의 움직임과 캡틴의 움직임을 비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그는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한없이 나를 '봐주었다'. 피터도 그정도는 알았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노련한 캡틴의 움직임을 따라갈수는 없었다. 물론 그에게 한 방 먹이기는 하였지만, 정말로 그뿐이었다. 그러고 그는 아무것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전장에 무작정 뛰어든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지도 않고 어이없게 여기지도 않고, 그저 어디출신이냐고. 언제든 다시 만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담담히, 앞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꼭 가르침을 아끼지 않고 퍼부어줄 것처럼. 피터는 캡틴의 방패에 맞았던 부위가 생채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나은 것으로 그가 자신을 얼마나 봐주었는지를 느꼈더랬다. 스티브 로저스. 당신이라면 저리도 우울한나머지 미안하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저 분을 위로하는 방법도 틀림없이 잘 알고 있을텐데. 그리고 솔직히 피터도 그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그의 방패를 만진 손이 저릿거렸다.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상상할때마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너를 끌어들인 것과, 완다 막시모프에게 한 짓은 내가 완전히 잘못한 거야. 일말의 변명거리도 없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겨우 입을 연 토니가 그렇게 말했고, 그 작은 목소리에 피터는 저도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지 않아요! 라고 외치려던 것을 참기 위해 전신에 힘을 주어야했다. 자신이 그렇지 않아요라고 외쳐봤자, 토니는 서글픈 미소로 답할뿐일거란 걸 피터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모르겠다, 이럴 땐 대체 무슨 소리를 해야할까? 누군가 알려줄만한 사람이 나에게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피터는 그저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 토니의 옆에 가 앉았다. 침대의 싸구려 스프링은 온갖 소리를 냈고 토니는 자신의 어깨에 닿은 따뜻한 타인의 기운에 문득 고개를 들었다. 피터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 커다랗고 맑은 눈. 젠장. 내가 어째서 그런 짓을 했을까. 토니는 토니 스타크가 원망스러워 죽을 것 같았다. 언제나 네가 옳아, 스티브. 그리고 난 항상 네가 옳고 내가 틀린 게 너무나도 싫었어. 젠장. 네가 내옆에 있어야만 하는데. 네가 내옆에 있었어야만 했는데. 토니는 피터의 어깨 위로 가볍게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놓았다. 아직 덜 큰 소년의 몸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토니는 또다시 토니 스타크가 원망스럽다.


 토니 스타크는 드디어 자각했다. 드디어 깨달았다. 자신의 눈앞에 블라인드가 처져 있었다는 것을. 그렇지만 정말 시간이 없었다. 그대로 두면, 자신은 스티브를 영영 잃어버릴 것이었다. 그리고 토니는 처음부터 스티브를 잃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던 것이다. 자각조차 하지 못할정도로 너무나도 절실히 그를 자기 옆에 두고 싶었다. 그가 가버리는 것을 용납할 수가, 자신의 옆에 그가 없는게, 그가 자신의 옆에 없는 게...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너무 절실했다. 그 공항에서 스티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무슨일이 있어도, 어떤짓을 해서라도, 스티브를 붙잡아야만했다. 붙들어야만 했다. 그를 붙들어 옆에 두고 싶었다. 네가 내옆에 있어야만 했다. 절대로 그래야만 했다. ...그런 생각들이, 자각조차 하지 못했던 그 생각들이, 토니의 눈에 블라인드를 친 것이다.


 그래서 이제야, 시간이 토니를 도운 이제서야, 토니는 토니 스타크가 이렇게도 원망스럽다. "미안하다." 씁쓸하게 흘러나오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에 토니는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또 어쩔 수도 없이, 반복한다. 나는 늘 잘못을 반복해. 스티브. 네가 옆에 있어야하는데. 토니는 다시 피터를 바라보았고, 하얀 얼굴을 한 소년은 슬픈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이 멍청한 사람의 마음을 전부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착한 녀석이야. 넌 정말 착한 소년이야. 토니는 아주 조금 미소를 지어보였다. "상냥한 녀석." 그렇게 속삭이니, 피터의 표정이 더욱 울적해졌다. 피터는 천천히 토니의 눈 앞에 왼 손을 펼쳐보였다. 소년의 작은 손바닥 위에 아주 조그마한 생채기가 길게 그어져 있었다.


 "캡틴의 방패를 받다가 생긴 상처예요. 토니."

 "......"

 "저에겐 이것밖에 남아있는 게 없어요. 아무 힘도 되지 못해 죄송해요."


 "...아니야." 토니는 간신히 그렇게 속삭였다. "정말 아니야." 자신이 들어도 한심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토니는 자신을 향해 펼쳐진 피터의 손을 감싸쥐었다. 희미한, 아주 희미한 붉은 자국은 마치 주먹을 쥐었을 때 남은 손톱자국마냥 여렸다. 이제 금방이라도,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그래 그 사람이라면 너에게 진심으로 방패를 던지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진심이 아닌 채 방패를 던지지도 않았을 거야. 스티브. 네가 내옆에 있어야하는데. 네가 알려줘야 하는데. 네가 없으니까, 내가 이렇게도 한심하잖아. 네가 없는 난 이렇게도 한심하잖아. 그걸 다 알면서. 그걸 넌 다 알면서. 그리고 토니는 눈을 질끈 감았다. 피터의 희미한 자국이 남은 그 손바닥 위에, 문득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정말이지 간신히 참아내면서.


 




- done

뭐냐면, 시빌워와 홈커밍스파이디 사이쯔음의... 글이에요. 그래서 '막과 막 사이'. 쓸까말까 고민했는데 내가 내 캐해석&영화해석으로 글을 쓰는데 망설일 필요가 뭐가 있엌ㅋㅋㅋ 싶어서 조각글이나마 씀미다.

두 십대들을 대하는 방식은 토니 스타크가 크게 실수했지요. 용서할 수가 없더라고요 나는 ㅎㅎ 그래서 꼭 좀 사과하길 바랐어요. 사실 완다에 관해서는, 스티브 로저스의 대처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는 소년병을 슬퍼하고, 다신 이 어린이들이 전장에 끌려나가지 않도록 전쟁을 종식시키고 싶어하는 40년대 군인이었는데요... 근데 완다한테 싸우는 법을 가르치다니... 아니 거대한 힘을 가진 자의 책임을 제대로 익히게 하기 위해 1부터 트레이닝을 시킬 것 같기도 하긴 한데... 근데 너무 군대식이잖아요, 스티브 로저스는 히어로이기전에 군인이기때문에 좀 헷갈려요 항상. ㅎ


스티브가 나오지 않는 토니스팁이네요. 홈커밍 하나도 기대는 안 되지만 보러는 가야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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