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하지 못할 실수를
이건 실수니까, 그렇게 말하고 토니는 스티브의 어깨를 밀어냈다. 스티브는 토니가 오른손으로 그의 팔을 움켜잡고 자기쪽으로 그를 잡아당겼을 때와 마찬가지로 토니가 밀어내자 또한 아무 저항없이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토니는 마치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고는 어딘가 쥐어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힘겹게 미안해, 라고 말했다. 스티브는 여전히 표정의 변화도 없이 토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토니가 키스를 하기 전과 하고 난 후에도, 스티브 로저스는 너무나도 표정에 변함이 없었고, 토니 스타크는 스티브의 그 무표정함에 두 배로 상처를 입었다. 멋대로 그를 잡아당겨 멋대로 그에게 키스를 한 건 나인데, 그런 내가 상처받은 기분이라니, 이 얼마나 뻔뻔하고 제멋대로인 감상인가.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그러나 토니는 어쩔수도 없이 스티브 앞에 자기의 노골적인 표정을 제대로 감추지도 못하고 허덕였다. 미안해, 다시 한 번 그렇게 내뱉고, 결국 토니가 먼저 스티브를 외면했다. 여전히 무표정한 채 복도에 우뚝 서 있는 스티브를 뒤로 한 채.
실수라고 부른다면 실수일수도 있었지만, 사실 방금 토니가 한 짓은 실수라기보다는 약간 마가 낀 것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언젠가 이런 일을 저지를 것만 같다는 불안을 또한 스스로 안고 있었으므로 더욱 우연히 저질러버린 실수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토니는 언젠가 스티브에게 키스를 해버릴 것 같은 기분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건 언젠가 꿨던 꿈의 영향일수도 있었다. 그 꿈에서는 스티브가 먼저 토니에게 달려왔었다. 그리고 토니의 어깨를 감싸안고 토니에게 키스를 보챘다. 맞닿은 키스에는 아무 감각도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아 그제야 그 모든 상황이 꿈인 것을 자각하고서, 토니는 아 이 꿈속의 스티브 로저스는 내가 실제하는 스티브 로저스에게 바라는 모습이구나 하였다. 실제 스티브에게 자기가 바라는 모습이 꿈에 나온다는 건, 십대 때의 몽정보다도 더 부끄러운 진실이었다. 토니는 얼굴을 붉히는 것조차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 물론 모든 것이 꼭 그 꿈때문만은 아니었다. 토니가 언젠가 스티브에게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건 스치며 지나가는 스티브의 목덜미에서 맡을 수 있었던 그의 은은한 피부의 냄새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 날 토니는 벙찐 채 스티브의 목덜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캡시클, 너 향수 뭐써?" 뭐 그런 것도 물었었다. 그런 토니를 돌아보며 웃었던, 아아 스티브의 그 웃는 얼굴. "나는 향수같은 건 안뿌리네만. 자네같은 멋쟁이가 못되서." 스티브의 그 웃는 얼굴.) 아니면, 역시 그 날의 영향일까? 스티브가 체육관에서 트레이닝을 하는 걸 벽에 가만히 기대어 지켜보던 그 날, 토니는 종일 스티브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티셔츠가 땀에 젖어 날개죽지와 허리라인이 선명하게 드러났던 그때 토니는 스티브의 움푹패인 척추길, 한시도 멈추지않고 꿈틀대는 팔뚝의 힘줄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토니! 언제부터 보고 있었나." 그리고 토니가 스티브를 보고 있기를 약 한시간, 그제야 토니를 눈치 챈 스티브는 그렇게 말했다. "...방금 왔어." 토니는 선글라스에 얼굴을 감추며 그런 말밖에는 못했고.)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오늘의 토니에게 영향을 끼친 것일지도. 언젠가부턴가, 토니는 스티브를 옆눈길로 훔쳐보면서 언젠가 자기가 이런 일을 벌일거라 예감하고 있었다. 예감은 오랫동안 토니를 괴롭혔고 그의 목덜미 어딘가를 싸하게 했다. 나는 언젠가 스티브를 끌어안고 말거야. 그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킁킁대거나, 아! 그의 입술에 입맞춤을 퍼부어버리고 말거야. 끔찍해! 정말 끔직한 예감이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예감은 더욱 진해져갔고 토니는 오른손가락이 근질거리는 느낌에서 예감이 점점 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은 마치 호흡곤란이나 공황장애의 증상과도 비슷했다. 선글라스에 분산되는 시선은 애써 감춘다 할지라도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만은 멈추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스티브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 스티브는 그저 그 웃는 얼굴. 그 웃는 얼굴인 것이다.
참을 수가 없었고, 토니는, 이윽고 자신의 예감이 바로 지금 이순간, 현실이 될 것임을 자각했다.
말릴수 조차 없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자기자신임에도 어딘가 무척 낯설게 느껴지는 자기자신에게 조종당한 것마냥 토니는 그런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스티브의 어깨를 잡고 자기쪽으로 당기는 그 순간에. 스티브는 눈을 깜빡이며 토니가 당기는 대로 순순이 토니에게 끌려왔고-조금 당긴 것만으로 휘청거릴만큼 부실한 그일리가 없다. 아마 상대가 나이기 때문에 순순히 당겨져 온 것이겠지. 넌 나를 믿고있고, 난 지금 너의 그 믿음을 와장창 깨부수려 하고 있어. 나도 잘 알아, 안다고. 토니는 소리없이 오열했다-토니는 스티브의 눈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그리고 포개진 입술의 감촉과 함께, 눈에 가까운 뺨에 스치듯 닿았던 스티브의 긴 속눈썹. 토니는 눈을 감은 채 스티브의 지금의 표정을 상상했다. 커다란 눈을 더욱 커다랗게 뜯고 있겠지. 동공이 팽창한 눈동자 깊은 곳에서 당황이 진하게 녹아있겠지. 스티브가 토해내는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것보면, 저도모르게 호흡마저 멈추고 있는 것일까. 포개진 스티브의 입술은 꿈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만개가 넘는 감각이 전부 입술에 모인 것처럼 입술이 뜨거워졌다. 스티브의 입술은 부드럽고 촉촉하고, 행복했다. 토니는 입술을 떼면서 다시 눈을 떴고, 스티브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토니는 스티브를 자기쪽으로 잡아당긴 것과 마찬가지로 그를 다시 밀어내었고.
그를 복도에 내버려두고 먼저 고개를 돌려 복도를 빠르게 걸어나오면서, 토니는 자신의 입술을 한손으로 가린 채였다. 죽고싶다. 토니는 그런 생각을 곱씹으며 복도를 거의 달리다시피했다. 망할, 망할! 차라리 죽어없어지면 이 끔찍한 순간을 견디지 않아도 될 거야. 토니는 있는 힘을 다해 어벤저스 본부를 벗어났다. 아, 이런 날이 토니 스타크에게 찾아오다니, 정말 꿈에도 몰랐다. 토니는 모든 것을 후회했다. 지금 이곳에 자기가 있어야하는 것, 그리고 여전히 이곳에 있는 것, 앞으로도 몇 번이고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전부 캄캄했다. 심지어 자신이 지금 살아있다는 것 마저. 토니는 차를 타고 서둘러 어벤저스 본부를 빠져나갔다. 그야말로 뒤도돌아보지 않고 말이다.
토니 스타크는 두려움에 떨며 자기집에 자기를 가두었다.
삼일이 흘러, 나타샤에게서 연락이 왔다. 슬슬 본부에 얼굴 보이지 않으면 곤란해진다는 그녀의 말에, 토니는 무뚝뚝하게 전화기를 내팽개쳤다. "나는 못가!" 내팽겨친 전화기를 향해 그렇게 소리치니, 내구력이 튼튼한 전화기는 여전히 나타샤와 연결이 되어있는 듯 수화기에서부터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못온다고? 본부에 한 번 들를 여력도 없이 그렇게 바쁜거야, 토니?" 토니는 새빨간 얼굴로 귀를 꽈악 틀어막았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난 이제 어벤저스 본부에는 못간다고! 그곳에 또 가면 난 죽어버릴 거야! 사실 지금도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지만!"
"...? 토니, 뭔일 있..."
"그래 있다, 뭔일 있어. 산더미만큼 있다고! 그리고 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견딜 수가 없다고!"
"......"
"난 대체 무슨 얼굴을 하고 그를 다시 본단 말이야!"
"......" 그리고 나타샤는 아주 조금 토니의 말들을 생각했고, 토니가 이만큼이나 자괴감에 빠질만한 상대가 대체 본부에 있는 이들중 과연 누구일까를 또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의 시간은 아주 짧았다. 토니 스타크를 이정도로 패닉에 빠지게 할 만한 사람은 나타샤가 알기론 딱 한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에 생각에 긴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타샤는 미간을 좁히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캡한테 무슨 실수라도 했어?" 그리고 토니는 기어코 머리까지 싸매며 침대위로 뛰어올라가 자기의 얼굴을 감추었다. "돌이킬 수 없는 걸 저질렀다 왜!!!" "...왜는 무슨 왜야. 정말..." 다 큰 사람이 왜 그사람한테만 그렇게 애처럼 되는 건지. 대체 나이가 몇인데 묘하게 소년기 첫사랑같은 행동들을 하느냐고... 나타샤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기 이마를 짚었다.
스티브는 눈을 떴다. 뺨이 뜨겁다. 마치 열이 나는 것 같은 이 기분.
두 손으로 양쪽 뺨을 감싸면서 눈을 깜빡였다. 천장은 빈 허공.
스티브는 꿈을 꿨다. 토니 스타크의 입술이 자기 입술에 스치는 꿈을.
"...정말 큰일났네."
다시 눈을 감으며 스티브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토니가 실수야, 미안, 하고 내뱉고 사라진 뒤 매일밤마다 스티브는 같은 꿈을 꿨다. 꿈 속의 토니 스타크는 실물보다 묘하게 더 아름답다. 마치 스티브의 눈에 그런 필터가 씌여있는 것처럼. 지금이라면, 실물의 토니 스타크를 봐도 그 필터가 작용해 실물보다 더 아름다운 토니를 보게 될 것만 같고.
난 대체 언제까지 이런 꿈을 꾸게 될까? "...토니..." 토니, 책임져줘. 정말 자네 탓이 커. 전부 자네 잘못이야.
...고작 실수로 사람의 마음에 이런 걸 새기지 말란 말이야...
스티브 로저스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뺨이 여전히 뜨거웠다.
- done
트위터 스른전력 72차 주제 : 실수
스티브한테 뽀뽀하고 실수야~ 하고 얼버무린 후 내뺀 토니 스타크... 아저씨... 나이 몇개야...<<<히돗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력 지각은 이제 습관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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