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외로움에 대하여
(시빌워 이후. 시빌워 스포조심)
"스티브."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술에 취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술취한 사람이 누구나 그러하듯이, 제아무리 토니 스타크정도 되는 사람이라도 결국 술취한 사람은 술취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토니는 모든 술취한 사람이 그러하듯이 판단력과 사고력을 잃어버렸고 결국 눈앞에 있는 것이 스티브 로저스라고 인식해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것은 스티브 로저스가 아니었다. 스티브가 지금도 토니의 옆에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평소의 토니 스타크라면 그것을, 잘 알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토니는 술에 취한 상태고, 알코올은 뭐든지 눈에 보이는 것 전부를 토니가 원하는 것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러므로 지금 토니 스타크의 눈앞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스티브 로저스였다. "네가 돌아왔구나." 토니는 스티브의 꿈을 꾸었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그 전부에 스티브, 네가 있다. 토니는 행복했고 또 슬펐다. 잔혹하고 아름다운 꿈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결국 현실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토니는 눈앞의 스티브에게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다. 스티브는 언제나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스티브. 네가 돌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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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는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지는 것처럼 아팠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본 것은, 세 명의 나체의 여인이었다. 늘씬하고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누워있어도 위를 향해 있는 탄력있는 젖가슴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토니는 잠들어있는 금발의 여인의 허리를 쓰다듬었다. 여인은 깨지 않았다. 토니는 웃음도 나지 않았다. "최악이군." 토니 스타크는 그 어느때보다 실망하고 있었다. 자기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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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는 토니를 경멸하지 않았으므로, 그래서 토니는 오히려 이 공기가 더 버거웠다. 그녀가 차라리 자신을 경멸해주면 좋겠는데. 그럼 기꺼이 토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페퍼에게 넘기고 자신은 랩에 틀어박힐 것이었다. 토니는 자신의 머리가 이상해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정신과상담을 받아야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토니 스타크는 토니 스타크였기에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은밀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 누구에게도 진짜 마음을 말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토니는 소파에 앉은 채 페퍼가 세 명의 여인을 처리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아, 그건 마치 스크린 너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았다. 토니는 참 왜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여전히도 이렇게 자신의 현실같지가 않은 지 궁금했다. 아버지, 당신도 그랬을까요? 그러고보니 당신과는 이러한 이야기를 나눈적이 없었네. 왜 이다지도 당신은 내가 바랄 때 항상 없고, 내가 원할 때 날 내치곤 했던걸까. 페퍼는 기계처럼 여인들이 말하는 상당히 무리한 요구들을 그 자리에서 처리해주었다. 그것은 간밤에 술에 절어 화려한 4p를 벌렸던 토니 스타크에 대해 언론에 팔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기 위한 대가였다. 페퍼는 의기양양한 여인들을 향해 "고작 그걸로 되는거에요? 나 원 참. 생각보다 훨씬 착한 아가씨들이네." 라고 말함으로써 그녀들의 자존심을 완벽하게 폐기시켜버렸다. 창녀도 아니었으면서 조만장자를 앞에 두자마자 순식간에 창녀가 된 아가씨들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토니의 저택에서 퇴장하였다. 페퍼는 여인들을 보내고 난 후 특유의 눈꺼풀을 올리는 제스처를 취하며 소파에 앉아있던 토니를 돌아보았다. 토니는 페퍼를 바라보았다. 아니, 페퍼의 눈을 피했다. 아니, 페퍼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니, 페퍼의 눈을 피했다.
"토니. 당신 하루사이에 많이 늙었네요. 젊은 애들에게 기가 다 빨린 거 같아요."
페퍼의 말은 대못처럼 토니의 가슴에 박혀 큰 구멍을 내는 것 같다가도 곧 여름의 희미한 바람처럼 산들거리며 토니의 뺨을 그저 스쳐지날 뿐이었다. 페퍼는 혼자만의 잠에 빠져있는 듯한 토니의 외로운 눈동자를 읽어냈다. 페퍼는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토니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이 자기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누가 그를 구해준다는 말인가? 스티브 로저스인가? 상처를 주는 사람도 그 상처를 치료해주는 사람도 결국은 같다는 말인가? 하지만 토니는 결코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가 아니다. 물론 토니는 그 반대의 역할을 할 수있을만큼 건강한 사람도 못된다. 스티브는 그를 구해주러 올까? 오히려 토니가 그를 구해주러 가야하나? 페퍼는 토니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전부 다 들었다. 토니가 스티브에게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일들과 또한 스티브가 (버키가) 토니에게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토니의 입 밖으로 술이 쏟아졌고 헛구역질이 쏟아졌고 고통이 슬픔이, 모든 것이 쏟아지는 하룻밤동안, 페퍼도 지쳐버리고 말았다. 페퍼는 토니를 사랑했다. 토니의 모든 것을 다 사랑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소중했고 그의 상처받아 조각난 마음들이 반짝일 때마다 때론 그것보다 다 아름다운 것은 없단 생각도 들었다. 그가 무언가 사소한 것에 절실히 매달릴 때마다 토니 스타크의 상처난 마음이 빛나는 것 같았다. 스티브를 쫓아다닐 때에는 마치 소년과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거 알아요? 토니. 당신 참 귀여운 거." 페퍼는 다가가 토니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를 향한 사랑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건 마치 무거운 늪 아래에 깔린 침전물처럼 그 형태가 변했다. 페퍼는 토니의 무거운 외로움을 있는 힘을 다해 보듬어 줄 생각이 더 이상은 들지 않았다. 토니 스타크는 스티브 로저스에게 잠겨 있었다. 페퍼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토니는 페퍼가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느끼려는 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부끄러워."
나는 더 이상 알콜중독자가 아닌데. 토니의 아랫입술이 희미하게 떨렸다. "창피해. ...정말 미안해."
페퍼는 웃으며 토니의 마른 뺨 위에 키스를 했다. "당신은 배신했어요. 당신 자신을." 스티브를 향한 사랑을 품고있는 자기 자신의 가슴을. 토니는 페퍼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언제나 나에게 준열한 말을 해주는 당신이 좋아. 당신같은 사람이 그래도 아직 내 옆에 있어서, 나는 아직은 완전한 바닥이 아니라는 안심을 하게 해줘." 페퍼는 웃었다. "내 기준으로 보면 당신 지금 완전 바닥이거든요." 페퍼는 토니를 꼬옥 끌어안아주었고, 토니도 페퍼의 품에 꽈악 끌어안겼다. 이렇게 울고 싶어질 때, 사람은 결혼을 하는 걸까. 하지만 프러포즈를 해봤자 그녀는 당연히 나를 거절하겠지. 나도 알아.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토니의 입술은 어리석은 형태로 움직였다. "페퍼. 나와 결혼할래?" 페퍼는 기가 찬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 방금 세계 최고로 최악인 남자로 등극했어요." "오. 또 하나 타이틀을 얻었다, 예이-." 토니는 숨을 들이마셨다. 스티브 로저스를 사랑한다. 하지만 어떻게 스티브 로저스를 사랑해야 할 지 모르겠어. 페퍼는 당연히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토니 스타크의 두 손도 텅 비어 있다. 토니는 페퍼의 품 안에서 조용히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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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찾아온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요." 브루스 배너는 토니 스타크의 얼굴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그렇게 말했다. 다소 수척해져 있는 배너는 여전히 세상 모두에게 사과를 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 그렇지." 배너의 말에 토니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코를 훌쩍대었다. 사실 토니도 배너를 찾아온 이유를 말하라면 딱히 말할 거리가 없었다. 토니는 단지 비상구가 없는 캄캄한 곳을 한없이 헤매이다 퍼뜩 그 언젠가 마치 카운셀링을 하듯 긴 소파에 누워 배너에게 모든 것을 시시콜콜 말하던 기억이 났을 뿐이었다. 겨우 몇 년전의 일인데 그순간이 마치 전생에 일어났던 일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배너는 무거운 입술을 다물며 다소 캄캄한 곳 어딘가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토니는 배너의 지친 듯한 한숨과 느슨한 손놀림을 바라보았다. 배너는 토니에게 할 적당한 말을 찾고 있는 듯 했다. 토니가 그에게 어떤 말을 기대하면 좋을까? 또 어리석은 짓을 한 것에 대한 질타? 아니면 상냥한 배려가 가득한 위로? 토니는 대체 배너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온 걸까. 배너는 토니의 시선을 피하며 안경을 들어올렸다. 순간, 토니는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날 구해줘. 배너. 날 잡아줘. 토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배너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그는 벌린 입술 밖으로 자신의 손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배너. 날 구해줘. 날 좀 고쳐줘." 배너의 눈동자는 어느덧 측은지심을 품고 있다. "...당신은 어디도 잘못된 곳이 없어요." "아니! 아니, 잘못되었어. 어딘가가 잘못되었어. 토니 스타크는 완전히 망가진 게 분명해. 내가 망가진 게 아니라면 내가 어딘가 이상한 게 아니라면, 스티브 로저스가 날 그렇게 죽이려 들 리가 없잖아!" 비명은 천이 찢어지듯이 브루스 배너의 낡은 보금자리에 울려퍼졌고 캄캄한 어둠은 그의 낡은 안경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배너의 낡은 안경에는 기스자국이 너무나도 많았다. 배너 스스로가 토해내는 숨조차 차올라 안경알도 점점 부옇게 되어갔다. 안경알이 흐릿해져갈수록 눈앞이 뿌옇게 되어, 배너는 자신이 토니를 보지 못하는 것인지 토니가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인지가 헷갈렸다. 그게 어느쪽이 더 다행인건지도 다소 헷갈렸고.
"토니. 스티브가 당신을 죽이려고 했나요?"
"아니! 아니, 아니! 스티브는 날 죽이려 하지 않았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날 죽일 생각이 없었지!"
"...."
"하지만, 나. 나! 나는, 나는 있었어."
"......"
"...오, 세상에. 세상에. 배너. 날 좀 살려줘. 나 좀 어떻게 해줘. 난 그를 죽이려 했어."
"내가 그를 죽이려 했어. 죽이지 않으면 그에게 죽임을 당할 거라 생각했어. 그에게 미사일을 쏘지 않으면, 그의 방패가 날 갈라놓을거라 생각했어! 난 그에게 더 이상 나를 사랑해달라고 말할 자격이 없어. 그가 나를 향한 사랑을 유지하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 수도 없어! 나는 사랑해, 스티브를 사랑해. ...아아, 말도 안 돼. 사랑하면서, 그를 죽이려고 했어. 나는 내 마음을 배신했어..."
배너는 자신에게 매달려오는 토니 스타크의 팔을 꽈악 잡았다.
토니는 두 손으로 배너의 옷깃을 잡은 채 그대로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토니의 수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배너는 토니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경이 흐릿해진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배너는 지금의 토니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토니의 얼굴에 떠오른 절망어린 표정을 배너는 결코 보고싶지도 않았다. 배너는 자신이 토니에게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절절이 느꼈다. 토니 또한, 배너에게 어떤 말을 들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지금 토니에게 필요한 것은? 매달릴 어떤 것? 따뜻한 체온? 아니, 아닐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그런 것일 것이다.
토니 스타크는 돌아갔고, 브루스 배너는 돌아가는 토니의 뒤를 배웅했다. 배너는 나타샤에 대해 묻지않았고, 토니도 나타샤에게 했던 심한 폭언들에 대해 그에게 용서를 빌지 않았다. 물론 그녀에게 해야 할 사과를 배너에게 하는 것은 퍽이나 이상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스타크 인더스트리로 돌아와, 토니는, 그 어느때보다 왕성하게 일했다. 회사의 신제품 개발이 관여하고 마케팅, 행사, 모터쇼, 모든 일들에 다 참여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파티도 성실히 했다. 그와 더불어, 모든 기부단체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직접 만든 재단을 운용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만든 재단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오늘은 아프리카 내일은 소코비아, 또 그 다음날은 미국. 정신없었다. 토니 스타크는 그러나 조금도 살이 빠지지 않았다. 바쁘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언론에 드러나는 토니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도 아름다웠다.
어느날, 토니 스타크에게
스티브 로저스가 보내는 폰이 도착했다.
토니는 그의 편지를 한참동안 읽었다.
글자라는 것을 마치 그 날 처음 보는 것 같이, 모든 것이 생경한 기분이 든다.
그를 배신한 자기가 그를 보지 못해 슬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물은 떨어졌고, 토니는 어쩔 수 없이 스티브가 그리웠다.
스티브가 보고싶었다.
돌아오라고 하고싶었다.
그 말들을 차마 하지 못해, 토니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꺽꺽대며 숨이 울려퍼졌다. 토니는 책상위에 머리를 박았다. 그 모든 것이 그리울 때에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지, 하워드 스타크에게 묻고싶었다. 그는 정말로 언제나, 토니가 가장 필요로 할 때에 항상 옆에 있어주지를 않는다.
- done
트위터 스른60분전력 56차 주제 : 배신
그를 사랑한다는 자신의 마음을 배신한 토니 스타크. 란 뜻입니다. 의미전달이 됐을까? 넘 내가 쓰고싶은대로만 써서 뭔소린지 모르겠다고 하실 분 2959명정도 있으실듯...ㅋㅋㅋㅋㅋ 시빌워 뒤의 억장이 무너진 토니 스타크가 컨셉이죠. < 하 시빌워... ...없어져야 할 마블영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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