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프러포즈는 게임이 아닌듯..?


 

 때가 되었다. 스티브 로저스와의 개인적인 다섯번째의 만남에서 토니 스타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티브는 스테이크의 기름부분을 떼어내는  토니를 보며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고, 와인을 따르는 도중 실수를 한 종업원의 잿빛이 된 얼굴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스티브는 기본적으로 상냥하고 착한 사람이지만 토니가 보기에 오늘은 특히나 그의 관대함이 정점에 달해 있었고, 토니가 생각하기에 이는 스티브가 토니와 단둘이 있는 것에 퍽 익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였다. 레스토랑의 화장실에서 스티브가 개인칸에서 나오길 슬쩍 기다렸다가 갑작스레 키스를 쏟아부을 때에도 그랬다. 두번째, 세번째의 개인적인 만남일 때 이런짓을 했다면 스티브는 너무나 놀라며 토니의 어깨를 내려쳤을 것이고 토니의 쇄골뼈가 부러졌건말건 신경쓰지 않고 토니에게 이런짓은 해서는 안 된다는 훈계를 해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벽에 기댄 채 자신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토니를 보고 깜짝 놀라 그 깊고 푸른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기는 했으나 토니가 시도하는 키스에 당황하거나 도망치려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벽에 살짝 등을 기대려는 듯 몸을 뒤로 젖힌 채,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아오는 토니의 손바닥 체온에 녹아들 듯 다리를 당기고서는, 토니의 입술이 깊게 들어오는 것에 맞춰 살며시 눈을 감는 것이었다. 토니는 키스가 끝날 때까지 눈을 감지 않고 스티브의 얼굴을 그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있었다. 아 그 금색 가루를 뿌려논 듯이 반짝이던 긴 속눈썹과, 홍조 띈 뺨. 하얀 뺨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토니는 무엇보다 좋았다. 매끄러운 피부위에 물드는 붉은색은 마치 토니가 그에게 안겨주는 사랑과도 같았다.


 키스가 끝난 후에도 잠시 동안 눈을 뜨지 못하는 스티브를 바라보며 덩달아 얼굴이 붉어진 토니는, 그리고 확신했다. 때가 되었다, 고.


 프러포즈 하자!


 토니 스타크는 힘차게 외쳤다. 물론 속으로.







 "그런데 프러포즈를 하려는데 왜 미술관 예약을 하는건데요?" 미스 페퍼는 눈을 깜빡이며 그렇게 물었다. 페퍼가 생각하기에, 프러포즈를 하기에 적합한 장소는 레스토랑이었다. 그것도 고급인. 그리고 토니 스타크와 스티브 로저스의 유명세를 생각해서 하룻밤동안 전세를 낼 수 있어야 하는. 하지만 토니는 레스토랑이 아닌 미술관을 예약하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대규모의.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엄청 유명한 미술관을 하루 통째로 빌려 멋대로 야간개장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토니는 페퍼가 의아한 나머지 빠르게 눈을 깜빡이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의자에 앉은 채 몸을 빙글빙글 돌렸다. 의자는 몇바퀴나 돌아갔지만 더 낮아지거나 더 높아지지는 않았다. 토니는 입술을 쭈욱 내민 채 왜 그것도 몰라 당신, 하는 표정으로 페퍼를 바라보았다.


 "그치만, 그 늙은이는 4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미술관 아니면 야간 퍼레이드지 않아?"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페퍼는 무척이나 결이 얇은 금발을 귀 너머로 쓸어올렸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토니." 토니는 하얀색 볼펜을 하나 집어들더니 손가락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저런 손장난은 잘 안하는 사람인데. 프러포즈란 말만 꺼냈을 뿐인 지금 단계에서도 은근히 긴장이 되는 것인가. 새삼 토니의 귀여운 면을 발견한 페퍼는 목 아래로 웃음을 삼켰다.


 "페퍼, 30~40년대의 프러포즈로 끝나는 영화들을 좀 보라고. 그들은 대부분 프러포즈를 하기 전이나 하고 난 뒤에 빙글빙글 춤을 춰. 그리고 장소는 자기 집 대저택인데, 그들의 대저택 1층 로비는 보통 미술관처럼 장식되어 있단 말이야. 실제로 미술관처럼 개방하기도 하고. 하지만 내 집엔 미술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 빙글빙글 춤을 출 수 있는 장소야 충분하지만. 내 방이나 로비같은 데에 아트가 몇 개 걸려있긴 하지만 그건 너무 현대적이란 말야. 보통 그런 영화들이 벽에 걸어놓는 것들을 보면 르누아르, 모네, 드가, 고갱에 마네라고. 시간을 좀 들이면 대부분 어떻게 공수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데에 발품을 팔바에야 그냥 그런 작품들이 걸려있는 미술관을 통째로 빌리는 게 더 낫잖아. 안그래?"

 "......"


 그리고 미스 페퍼는 입을 다물었다. 저 미친 소리에 대체 뭐부터 지적을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페퍼는 뭔가 말하는 대신에 그냥 세상 얼간이 바라보는 눈으로 토니를 바라보았고, 토니는 눈살을 찌푸리며 페퍼의 견딜 수 없는 시선을 마주봐야 했다. "아, 왜! 완벽하게 미션을 컴플리트 하기위해 미술관을 셋팅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뭐가!" 토니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프러포즈는 게임감각으로 해야되잖아! 퀘스트 깨듯이! 아니면 미션 컴플리트 하듯이! 그래서 내가 그런 감각으로 해주겠다는데 뭐 잘못되기라도 했습니까?!" 네. 잘못됐습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페퍼는 스스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실은 깨닫고 있으면서 억지로 깨닫지 못한 척 하는 토니 스타크의 묘하게 거슬리는 태도에 그저 한숨밖에 내쉴 것이 없었다. 저건, 그러니까 그거였다. 프러포즈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닿은 것은 좋은데, 프러포즈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하나 너무 고민을 한 나머지 완전히 이상한 방향으로 가버리게 된. 아니 어쩌면 프러포즈를 해야한다는 그 생각자체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저렇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지. 하여간, 지금 토니 스타크는,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 묘한 기류를 탄 나머지 스스로 궤도수정이 되지 않는 어느 지점에 발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리고 미스 페퍼는 단호하게 그 흐름을 끊어줄 사람이 이곳에서 자기밖에 없단 사실이 좀 당황스러웠다. 어쨌든 페퍼는 여성의 대변인으로써 프러포즈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그의 비서로써 프러포즈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토니 스타크보고 정신차려 라고 소리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정신차려요! 프러포즈는 게임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했다.


 토니는 합쭉이가 되었다. "...그렇지." 괜히 어깨도 좁아지고.


 의자위에서 한참 작아진 토니는 페퍼의 긴 한숨소리에 더욱 몸을 움츠렸다. "그럼 어떡하라고... 나 어떡해..." 낮은 목소리로 우물거리는 것이 퍽 심상치가 않았다. 토니 스타크의 이런 자신없어보이는 모습을 페퍼는 거의 처음보는 것이었고, 아 이걸 영상녹화해서 미스터 로저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게 차라리 완벽한 프러포즈이겠다... 고 잠깐 생각하였다. 페퍼는 자조했다. 아니, 페퍼, 정신차려. 말려들지 마. 프러포즈는 게임이 아니라고 방금 자기 입으로 소리쳐놓고 그런 장난스런 프러포즈를 생각하면 어떡하겠다는 거야... 페퍼는 길고 얇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었다.


 "음, 그러니까... 토니, 반지는 준비했어요?"

 "나 혼자 가서, 18캐럿으로, 퍼펙트하게."

 "프러포즈 문구는요?"

 "직설적으로 나와 결혼해줘, 감성적으로 영원히 함께 있어줘, 시적으로 너는 흰색 수트를 나는 검은색 수트를 입는 날을 원해, 어때? 셋중에 뭐가 나아?"

 "대충 다 괜찮네요. 다 말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음, 식장, 신혼여행 장소, 신혼집 등의 준비는요?"

 "그건 프러포즈 뒤에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네요! 그럼 음,"


 손가락을 꼽으며 말하는 페퍼 포츠와 손가락을 꼽으며 대답하는 토니 스타크. 누가 보면 참 가관이라 할 것이었지만, 다행히도 토니 스타크의 사무실에는 토니와 페퍼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둘은 안심하고 이상한 모습이었고 서로가 서로의 이상한 모습을 의식조차 않고 있었다.


 그리고 긴 웃음섞인 한숨과 함께, 페퍼가 드디어 결정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 뒤는, 토니, 당신다운 모습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요?"


 토니는 눈을 깜빡였다. 나다운?


 "당신다운 장소에서 당신스러운 태도와 행동으로 프러포즈하는 게 제일 나을 거 같아요."


 그리고 페퍼 포츠는 너무나 시원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순간 그녀는 토니가 이때까지 봐왔던 그 어느때보다도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에, 토니는 미스 페퍼의 말을 철썩같이 믿어버렸다.


 그야말로 그녀가 말한 그대로를 실행한 것이다.







 그래서, 토니는 스티브를 유혹해 자기 침실로 데려와 침대에 눕히고, 흥분에 채 옷도 제대로 벗지 못한 상태에서 속옷부터 먼저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 준비한 윤활제로 스티브의 엉덩이 사이를 질척질척학 만든 후 너무 흥분한 나머지 거의 전희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선 자기 것의 가장 앞쪽 부분부터 꾸욱 집어넣어버리기 시작했다. 윤활제덕분에 매끈매끈 미끄럽게 들어갔지만 애초에 길자체가 좁아터진 이 상황에서, 스티브의 신음에 토니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스티브 역시 어딘가 폭발할 것처럼 새빨개진 채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토니는 서로 마주한 채 다리를 자기 양옆으로 넓게 벌리고 있는 스티브를 바라보았다. 하얗고 빨갛게 하여간 너무 이뻐 죽겠는 스티브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을 보고 있었다. 잔뜩 지어진 얇은 주름들을 보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붉은 아랫입술을 보고 있었다. 잔뜩 주름진 턱을 보고 있었다. 홀쭉하고 매끄러운 뺨을 보고 있었다. 솜털이 파르르 떨리는 이마를 보고 있었다. 토니는 넋을 놓고 스티브의 안쪽 깊은 곳의 감각을 더듬다가, 아 맞다 프러포즈! 하고 퍼뜩 생각이 나 눈을 깜빡이며 외쳤다.


 "스티브! 사랑해 결혼해줘!"

 "어, 어?"


 넋을 놓고 있었던 건 스티브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는 토니의 말을 순간 놓치고야 말았다. 스티브는 다리사이에서 밀려와 배 안쪽을 압박하는 감각에 필사적으로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토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그냥 허벅지 근육이나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스티브는 초점이 흐릿해진 눈을 간신히 들어 토니와 눈을 마주쳤다. 토니는 뚫어져라 스티브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티브는 흥분한 자기 얼굴을 토니에게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로 흥분한 토니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도 부끄러워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토니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캡틴, 사랑해. 토니 스타크와 결혼해주십시오!"


 "...하?"


 스티브는 눈을 깜빡였다.

 토니는 두 번이나 얼빠진 대답이 돌아온 것에 당황하여 순간 말을 멈추었다.


 "...그... 걸... 왜..."


 그걸 왜 지금.. 말.. 하는... 데?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이순간? 왜 하필 너는 나에게 들어오고 나는 너를 받아들이려 하는 이 순간에 하필?

 스티브는 눈을 깜빡였다.


 토니는 스티브의 마음을 읽었다. 그리고 순간 "아니 페퍼가, 페퍼가 제일 나다운 장소에서 프러포즈하는 게 좋다기에..." 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그 말에 스티브의 머리위로 뜬 물음표가 더욱 더 많아졌다. 그게 뭔데? 그게 무슨 소린데? 그게 뭔가? 뭔소린데? 스티브의 눈이 반짝이며 한결같이 그렇게 말해왔다... 어버버버. 지금 이순간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이게 만약 게임이었다면. 미션이었다면. 그 어떤 것도 생각해내지 못한 채, 토니 스타크는 그저 넋을 놓아버렸다. 어버버버버.




 

 

- done


트위터 스른전력 67차 전력 주제 : 게임/놀이

주제랑 좀 빗나간 거 같긴 하지만 어쨌든 짧게나마 썼음. 코미디. 나는 코미디를 좋아해... ㅎㅎㅎㅎㅎㅎ

 

저 뒤 두사람 은 /서먹 해진 나머지 하던 떡마저 멈추고 각자 샤워실로 들어가 ??? 뭐지?? 방금 뭐였지 ????? 했다고 합니다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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