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 됐어

 이제 날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

 

 샘 워싱턴은 파란 하늘을 향해 그렇게 중얼거렸다. 눈이 시릴정도로 파랗게 펼쳐진 하늘아래로, 자신의 눈 아래로, 샘은 넓고 멀리 퍼져 있는 도시들의 수많은 건물들을 보고 있었다. 건물숲속에 서 있을때와는 딴판으로 보이는 도시의 건물들에 샘은 조금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작아보이다니. 이렇게 낮아보이다니. 이 건물들이 전부 내 아래에 있을수가 있다니. 샘은 까마득한 건물아래를 내려보고 히죽 웃었다. 처음에 섰을때의 발끝을 타고 밀려오던 고소공포증이나 어지럼증은, 이제 거의 없어져 있었다. 밑에 보이지 않는 저 밑을 쳐다보아도 이제 조금도 현기증이 생기지 않았다. 샘은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됐어. 이제 날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처음에 자살하러 올라왔을때에는 내심, 누군가가 자기를 발견해주기를 바랐다.

 

 샘은 자살에 거의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치밀하게 준비한 것도 아니었고 단지 습관처럼 죽고싶다, 죽자, 길을 걸으며 그렇게 되뇌이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무작정 모르는 마을까지 온 것도, 버스에서 내려 정류장에서 가장 높아보이던 이 건물의 옥상까지 몰래 숨어든 것도 그러니까 전부 확신없이 한짓이었다. 그러나 샘은 이상하게도 일이 참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세큐리티가 치밀해보이는 건물에 잠입했는데도 영화에서보던 비상벨같은 게 울리기는 커녕, 낮잠에 빠져있는 경비원은 샘의 허둥지둥 계단을 오르는 요란한 모습조차 놓쳤다. 십층까지 걷자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샘은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그냥 엘레베이터를 탔고, 샘이 꼭대기층까지 오를동안 수많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지만, 아무도 샘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말을 거는 단 한명의 사람도. 아무 확신없이 설렁설렁 될대로 되라 싶은 심보로 움직였는데, 그것이 도시의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에까지 별탈없이 샘을 도착하게 만든 것이다. 샘은 자신에게 이렇게 일이 잘풀리는 일이 달리 있었던가를 생각했다. 아니, 없었어. 하늘이 처음으로 샘 워싱턴을 돕고 있었다. 그의 자살을.

 

 " 하하하. "

 

 샘은 힘없이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그의 허공에 가까운 바람에 휘날리는 넥타이의 끝자락처럼 아무렇게나 휘날렸다. 샘은 몇가닥 남지않은 머리칼을 귀뒤로 넘기면서 두 손에 추욱 힘을 빼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완벽할 수가 없었다. 자살하는 날로.

 

 거의 확신없이 행하는 자살이,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는가. 샘은 눈을 깜빡였다. 처음에 높은 곳에 올라와 생긴 두통이나 어지럼증, 멀미와 비슷한 고소공포증의 증세에 허덕이면서 샘은 역시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주길 바랐다. 저 까마득한 아래의 누군가가, 시력이 아프리카인 혹은 몽골인 정도로 좋은 누군가가 때마침 지나가서 까마득한 위의 샘 워싱턴, 자기자신을 목격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사람이 '저기 누군가가 자살하려고해요!'따위를 외치면 기적처럼 그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샘에게도 들리고, 샘은 아래를 바라보며-그때 때마침 죽음앞에 서서인가 샘은 처음으로 몽골인과 같은 시력으로 아래에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된다-안경을 쓸어올리고 씁쓸하게 웃으며 'To be or not to be'. 그리고 샘은 곧 자신의 발치에 잔뜩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된다. 그들의 얼굴의 표정도 읽을 수 있게된다. 그들은 어쩌면 사람이 떨어지는 재미난 장면을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겉으로나마 그들을 지배하는 도덕과 윤리가 드러나 일그러진 얼굴위에는 하나같이 샘 워싱턴을 걱정하는 웅성거림으로. 샘은 그 얼굴들이 보고 싶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얼굴들이 보고싶었다. 언제부턴가, 어느순간부턴가, 이 거대한 대지위에 오로지 홀로 살아가고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했을 때부터, 샘은 단지 그 생각뿐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충동적으로 무사히, 이 옥상의 난간위에 올라서 있기는 했지만, 샘 워싱턴은 그다지 진심은 아니었다.

 죽음이 가까워오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설사 타인이어도 모르는 사람이어도 좋으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죽음을 빌지 않아주기를 기대하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샘 워싱턴은 외로웠던 것이다.

 

 

 

 

 

 

 그러나

 샘 워싱턴은 가벼운 절망앞에 서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 됐어

 이제 날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

 

 그것이 진심이었는지, 역시나 거짓이었는지. 그러나 샘은 뒤돌아볼 수 없었다. 그럴 수 없었다. 이 옥상의 난간에까지 무사히 도착한 이상, 샘 워싱턴이 선택할 수 있는 정답은 A. 뛰어내린다였다. 다른답이 존재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샘이 서 있는 건물의 아래에는 아무도 모여있지 않았다. 타인, 그들중 그누구도 샘을 눈치채지 않았다. 샘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 자기가 밟고 서 있는 이 건물속의 수많은 불특정다수조차도 전부 샘과 같은 방향을 향해 시선을 쫓고 있으리라. 모두가 거기에 집중하여 아무도 샘을 보지 않고 있었다. 샘조차 샘을 보지않고 있었다. 샘 워싱턴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비극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발치아래에 있는 모두와 마찬가지로. 샘의 눈에 찬바람이 닿아 시린 눈물이 고여 천천히 뺨을 흘렀다. 샘은 바로 맞은편 공원에서 일어난 커다란 불을 보고 있었다. 불은 공원의 키가 큰 나무의 절반 조금 못되는 정도를 잡아먹고 기세를 더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무가 만들어낸 잿더미를 파헤치며 난장판 속으로 소리치며 들어가거나, 소리치면 벗어나거나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요란한 사이렌소리, 바람을 가르며 거칠게 샘의 귀를 파고들었다. 공회전하는 자동차의 바퀴소리와 도로에 쌓이고 쌓이는 비명소리와, 인명구조를 위하여 눈에 띄고 불과 바람에 강한 옷을 입은 채로 달려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마을은 더욱 요란해져 가고 있었다.

 

 샘 워싱턴은 그 사고를 보고 있었다.

 화재.

 오늘밤 9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기에 충분한 대규모 사고였다.

 

 그와중에 샘은 차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밀릴대로 밀린 도로에서 멋대로 빠져나가려고 차를 움직이다가 앞차를 들이박은 사고를 보았다. 들이박은 차가 그대로 가로로 도로를 막아 가만두면 뒤의 차들이 줄줄이 제때 서지못하고 전부 서로 박아버려 큰 사고로 이어질 것 같았다. 샘은 안경너머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 사건을 쳐다보고 있었다. 죽음앞에서, 신이 작은 기적을 준 것이 분명했다. 시력이 나쁜 샘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 사고현장이 클로즈업한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심지어 샘 워싱턴은 차무리 사이를 점프하며-말 그대로 점프였다, 올림픽 신기록을 가뿐히 뛰어넘을 듯한 엄청난 점프였다-달려나오는 금발의 미남의 얼굴까지도 알아볼 수 있었다. 샘은 눈을 깜빡이며 남자가 사고현장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남자는 리더나 군인이나 혹은 경찰, 그런 존재처럼 보였다. 사복이었지만 그의 행동을 보면 금새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사고현장의 2차 3차피해가 더하지 않도록 차량을 통제하였다. 그리고 괜히 나서서 일을 크게 만든 차의 주인을 질책하지 않고 단지 그를 부서진 차안에서 구해내는데에 여념이 없었다. 차량의 통제를 경찰들에게 맡기고 부축한 다친 사람을 어느새 도착한 구급차에 맡기고, 그는 또 쉬지않고 화재현장으로 뛰어들어갔다. 자욱한 잿가루와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사이를 서슴지않고. 소방관들이 합심하여 불길은 거의 사그러들은 와중에, 샘은 미남의 모습을 띄엄띄엄 확인할때마다 그가 점점 더러워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러가지 다양한 오물들로. 심지어 소방관이 뿌려댄 물에 푹 젖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가 모습을 감추고 다시 모습을 드러낼때마다, 사람이 한 명씩 구출되었다. 그가 또 잿더미 사이로 사라지고, 샘은 눈을 깜빡이며 그 미남을 다시 찾았을때는, 어느새 다리를 다친 소녀를 품에 안고 걸어나오고 있었다. 한손에는 그 소녀의 소중한 테디베어를 쥐고.

 

 샘 워싱턴은 안경을 집어올리고 눈가를 닦았다.

 

 아아.

 정말이지 나는 세계 최고로

 운이 없다.

 

 구원을 받고싶은 것은 바로 나였는데

 저렇게 듬직하게 기댈 수 있는 품이 필요했던 것은 바로 나였는데

 

 설마 자살하려고 결심한 이 날조차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내 눈앞에 생길줄이야

 

 " 설마 자살하려고 하는 순간에 인명구조를 목격할줄이야... "

 

 연거푸 눈물을 닦으며 샘 워싱턴은 크게 오열했다. 어차피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으리라.

 

 누군가 내가 죽지않기를 바래주기를

 바랐건만

 아무도 나에게 신경써주지 않아,

 

 하필이면 죽을 자리로 사고현장 앞을 고르다니

 정말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나의 삶이, 이렇게 가루가 될만치 아무의미가 없는 나의 삶이

 설마 마지막까지

 마지막까지 이렇게

 뒤로 밀려날 줄이야.

 

 " 누가 나 좀 살려줬으면 좋겠는데... "

 

 눈물을 닦으며, 간신히

 웃었더니

 그또한 별볼일 없게 느껴졌다.

 

 샘 워싱턴은 두 손을 크게 벌리고 한 발을 들어, 난간의 밖으로 뻗었다. 밟아봤자 아무것도 밟히지 않는, 끝없이 밑으로 단지 떨어지기만을 남은 감각.

 

 " 모두 안녕. 건강하게 잘 있어요. 아무도 죽지 않았길 바라요. "

 

 그리고 샘 워싱턴은 두 다리를 완전히 건물의 난간에서 떼어내었다.

 

 순간, 새가

 새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정말로 꼭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그 찰나의 순간.

 

 

 

 

 

 

 샘 워싱턴은 꼭 감고 있던 두 눈을 간신히 떴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여전히, 허공이었다는 것.

 

 그러나 샘은 자신이 아직 허공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만큼, 다른 것에 전신의 신경을 빼앗기고 있었다.

 

 설마 이제와

 혼자가 아닐 줄은 몰랐기 때문에.

 

 

 

 

 

 

 

 

 온통 검댕이 묻고 두 팔에 다친 상처, 얼굴에 까만 잿가루로 가득한 미남은, 코앞에서 보니 금발이었다. 그남자의 품안이 이렇게 따뜻하고 듬직한것이었을줄이야. 상상보다 훨씬 가혹한 기적이었다. 샘은 울고있는 자기가 미남의 자켓에 눈물콧물 죄다 묻혀버렸다는 것에 더욱 좌절하고 있었다. 정작 미남은 그런 것따윈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있는 듯 했지만. 샘은 대체 미남이 어떻게 저거리의 화재현장에서 자기가 서 있는 옥상까지 달려왔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혹시 날아왔어요? 라고 물으면 "맞아요"하며 웃으며 대답할 것 같아서 그게 더 무서웠다. 샘 워싱턴은 남자의 말도 안 되는 점프를 다시 떠올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방금 뛰어버린, 그 옥상의 난간 너머로, 샘은 다시 돌아왔다. 남자의 듬직한 품에 안겨. 한참 뒤에야 샘은 뛰어내리 자신의 축 늘어진 육체를 그대로 안아들고 미남이 다시 옥상의 바닥에 착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샘은 남자의 어깨안쪽에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뛰어내리기전과 조금도 달라진게 없는, 그저 볼품없는 자신의 육체를. 샘 워싱턴은 뛰어내리려던 압력에 의해 코피가 조금 흐르다 금방 멈추었고, 오른손과 왼손의 손바닥 살갗이 조금 베여 있었다. 찌릿한 아픔이 밀려왔지만 그뿐이었다. 샘은 눈을 깜빡이며 옆으로 삐뚤어진 안경너머의 미남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미남은 웃으며 크고 두꺼운 두 손을 들어 샘의 안경을 바로 끼워주었다.

 

 안경이 똑바로 양쪽 눈에 맞아떨어지자

 샘 워싱턴은 남자의 얼굴을 더욱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 웃는 얼굴을.

 

 "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봐주지않겠어요? 미스터. "

 

 그 걱정하며 웃기에 아주 조금 일그러진 웃음을.

 

 샘은 아랫입술을 덜덜 떨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 나를... 봤어요? " 

 

 " 물론이요. 당연하잖아요. "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아까아까전보다 더 목을 놓아 울으려니, 샘 워싱턴의 쉬고 갈라진 목소리가 꺼이꺼이대며 미남의 가슴위로 쏟아졌다. 미남은 그게 전혀 부담이지 않았는지, 단지 울고있는 샘에게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어 건넬뿐, 그 미소 그저 그대로. 샘은 검댕이 묻어 더러워진 그의 손수건 위로 코를 박았다. 오, 하느님. 오, 하느님. 오,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날까지 날 살아있게 해줘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느님.

 

 

 

 

 

 

 

 

 

 

 

 

 

 

-

 

 

 

 토니는 턱을 괴고 다소 삐딱한 자세로 자신의 손목시계를 툭툭 내려치고 있었다. 일초 일초가 흐를때마다 툭툭을 반복하였다. 토니는 심기가 매우 불편해보였고, 실제로 매우 불편하였으며, 그러니 누군가 붙잡히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이 불쾌한 기분을 다 쏟아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토니의 구부러진 앞머리가 그의 찌푸린 미간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토니의 마음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토니는, 이 인기레스토랑의 저녁시간 예약을 잡기위해 자신이 부렸던 권력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을 위해 새로 맞추었던 턱시도가게의 점장의 얼굴도 떠올렸다. 두번, 아니 세번 저녁시간 예약을 미루었음에도 웃으며 스타크기업의 사장을 대하던 이 레스토랑 오너의 훌륭한 접대태도도, 그리고 토니의 물잔이 비워질때마다 잽싸게 채우러 달려오는 일개 종업원도 모두모두 떠올렸다. 그리고 더이상 떠올릴 게 완전히 없어지고 난 후에야 간신히, 토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 눈앞에 놓인 상황을 타개하는 방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캡시클, 넌 죽었어.

 

 일방적으로 바람을 맞추기전에 전화 한통, 문자 한 번 찍으면 끝날 것인데 그걸 기어코 안해서, 나라는 사람을 60년대 구식 로맨스물 남자주인공으로 만들었겠다? 이 바쁜 내가 두시간이나 기다려준다는 게 무슨 의민지나 알건가, 그사람은. 나도 참 정성이다 정성이야, 젠장... 그렇게 생각하며 토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다리위에 펼쳐둔 냅킨을 그렇기 때문에 제일 먼저 테이블 위로 던졌다. 그러면서도 내심 자비스에게 물어 캡틴의 gps를 확인해보라고 할까말까 엄청나게 망설이고 있었다. 화났어, 화났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선 오늘은 내가 먼저 찾아대고 전화하고 이런 걸 안해야되는 게 맞는데, 근데 아 젠장.. ...캡시클 이 망할사람 대체 지금 어딨는거야?!

 

 그리고 토니가 마저 일어나기도 전에 종업원이 다가왔기에 토니는 자리에서 일어날 기회를 놓쳤다. 종업원은 토니의 옆에서 허리를 굽히며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 지금 레스토랑밖에서 어느 입장이 곤란한 분이 토니 스타크씨에게 이걸 전해주라며 하셨습니다만, " 그리고 종업원이 쟁반위에 담아 내보이는 것은 레스토랑의 로고가 들어있는 티슈 한 장이었다. 토니는 한쪽 눈썹을 위로 올리며 그 티슈를 집어들었는데, 종업원이 약간 어색해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종업원이 지금 뭐라했더라? 아, 이 레스토랑에 입장이 곤란한 사람이라고 했다. 토니는 티슈를 펼쳤고, 티슈에는 짧은 단문의 글이 적혀있었다. " ...shit. "토니가 중얼이는 소리를 종업원이 들었을까? 종업원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토니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을 뛰어나갔다. 티슈를 한손에 강하게 움켜쥔 채.

 

 " 스티브!! "

 

 " ...... "

 

 스티브는 레스토랑 옆 어두운 그림자가 쏟아져있는 작은 골목길의 한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그리고 토니가 자기를 부르는 쪽으로 고개는 돌렸으나, 역시 지은죄-저녁약속에 엄청나게 늦어버린 점-가 있어 토니에게 말을 건네지는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토니가 지금 자기 꼴을 보면 얼마나 놀랄 것인가. 화를 낼수도 있어, 위험한 일을 혼자서 하고 오면 토니는 언제나 못견딜정도로 화를 내거든.. 그리고 그 화가 걱정이라는 것을 알기때문에 스티브는 아무말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그냥 몰래 집에 가서 씻고 갈아입고 했으면 끝날 일인데, 그럼 토니를 더욱 더 소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속에 있게하는 게 되어서. 스티브는 화재현장에서 박살난 핸드폰을 주머니속에서 만지작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토니가 자신의 몰골을 보고 말문이 막힌 듯 눈만을 동그랗게 뜨고있는 얼굴에 괜시리 어깨가 구부러졌다.

 

 " 그... 미안하네, 토니. 또 늦었네. "

 

 " 그 몰골... 그 몰골 뭐야 너. "

 

 " 아 그게, 저기 오는길에 화재현장을 만나서 말이지. 택시를 타고 처음엔 지각하지 않고 잘 오고 있었는데 말야. 아무래도 눈앞에서 큰 불이 퍼지니 그게... 어떻게든 도와야겠기에. "

 

 " ...하아..... "

 

 " 그.. 연락 미리 못해 미안하네. 전화고 뭐고 할 여력이 안 되서... "

 

 토니는 지친 듯 길게 한숨을 내뱉은 후에 손을 뻗어 스티브의 검댕이 묻은 뺨을 쓰다듬었다. " 앗, 안되네. 토니. 지금 나 많이 더러워서- " " 다친데는? 스티브. " 으아, 엄청 낮은 목소리의 토니다... 스티브는 그 목소리를 낼때의 토니에게는 반항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쯤은 이미 학습하고 난 뒤였다. 이런 상태의 토니는 그냥 토니가 하고싶은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젤 좋은 것이다. 스티브는 어느새 턱시도 안의 블라우스 소매를 쭉 빼들고 자신의 이마나 뺨을 훔쳐대고 있는 토니에게 쩔쩔대면서도, 그를 피하지 않은 채 가만히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아아, 토니의 고급 흰 블라우스 소매가 검댕으로 더러워져가고 있군... " 아니, 나는 거의 안다쳤네. 정말로. 가벼운 생채기정도야 있을수도 있지만 그정도는 다쳤다고 하기에도 민망하지 않은가. " " ...... " " ...덕분에 아무도 죽지않고 인명구조를 무사히 끝낼수도 있었지. " " ...... " 토니의 침묵이 무겁다. 스티브는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왼쪽뺨을 손으로 쭉 잡아뺀 블라우스로 닦고있는 토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얼굴에 집중하고 있는 토니의, 걱정이 서려 붉어진 두뺨. 갈색의 눈동자가 스티브의 상처가 난 뺨에 고정되어 있었다. 스티브는 최선을 다해 미소지었다.

 

 " 아무튼 기다려줘서 고맙네. 토니. "

 

 " ...... "

 

 저렇게 웃는얼굴에는, 달리 할 말을 찾을 수 없다.

 넌 정말 치사해. 캡틴.

 

 그뒤 뒤따라오는 몰골이 이래서 레스토랑안에는 차마 못들어가고 메시지만 전해달라고했는데, 고급 레스토랑 점원들은 확실히 교육받은 정도가 다르군 내가 부탁한대로 잘해줘서, 다음에 혹시라도 다시 가게되면 고맙다고 꼭 인사를 전하고싶은데, 어쩌구하는 스티브의 말에 확실하게 네, 네, 라고 대답하면서도 토니는 어느새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스티브의 얼굴이나 목덜미, 손등같은데에 묻은 검댕들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간신히 얼굴이나 손가락정도만 수습이 되었을쯔음에 자신의 리무진을 불러 스티브를 태우고 자신도 같이 탔다. 좋은차에 더러워진 옷을 입고 타는 게 미안한지 작게작게 행동하는 스티브를 보다가 그렇게 걱정되면 이거라도 깔아앉고 있으라고 자기가 입고있던 턱시도의 자켓을 스티브의 엉덩이아래로 밀어넣는 토니. 스티브는 이 리무진의 시트가 더 비싼가 아니면 토니의 턱시도자켓이 더 비싼가를 도저히 판단할 수 없어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토니는 스티브의 혼란은 신경쓰지 않고 스티브가 오늘 하루 화재현장에서 구한 인명에 대해 쭈욱 묻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지막 자살을 시도했던 남자의 이야기가 나왔을때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건너편 건물에서부터 뛰었다고?! "

 

 " 응. 그랬네. 그렇게 안하면 도저히 시간에 맞출 수 없을 거 같아서. 생각보다 별로 안어려웠네. "

 

 아니, 이제와 토니가 캡틴 아메리카의 신체능력에 놀라워할리가 없지않은가. 토니는 단지 다른 것이 걱정되었다. " 캡틴 아메리카 마스크 안했었잖아!? "

 

 " 앗차. 맞아 그랬지... "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스티브. 토니는 어이가 없어 눈을 깜빡였고, 문득 스티브는 어쩔 수 없지하는 체념의 미소를 지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뭐, 별 수 있겠는가. 설사 내 정체를 그 미스터가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땐 그뒤에 또 무슨 다른 해결방법이 있을걸세 분명히. "

 

 " 태연하다? 캡시클? "

 

 " 그래. 그정도는 해결하는 것에 방법이 존재하니까 괜찮네. 그 미스터를 구해내는 것은 그렇지 않았거든. "

 

 " ...... "

 

 " 정말이지 별다른 방법이 없었으니. 무엇보다 그를 보고 있었던 건 나밖에 없었고. "

 

 " ....정말이지 넌... "

 

 " ? 뭐라고했나, 토니? "

 

 " 됐네, 별 말 안했어. " 그렇게 말하고 토니는 리무진에 준비된 샴페인과 간단한 빵종류를 꺼내들었다. 너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못먹어서 배고프다. 일단 이거먹고 나중에 치즈버거 사러가자. 그렇게 말하며 빵 한덩이를 건네기에 스티브도 건네받으면서 나지막하게 웃었다. 또 치즈버거? 자네는 정말 질리지가 않는가보군. 토니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샴페인의 입구를 열었다. 그럼. 질리지 않고말고. 한 번 마음에 든 건 정말로 안질릴 자신이 있거든? 스티브는 토니의 의미심장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런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고, 토니는 그 표정을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이봐, 캡시클, 캡시클아. 대체 누군가에게 아주 태연하게 등불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에게 어떻게 하면 질릴 수 있다는거야, 응? 샴페인의 기포가 퐁하고 터지더니, 곧 리무진 안에 부드러운 샴페인의 향이 가득 차올랐다.

 

 

 

 

 

 

 

 

 

- done

 

+ 주제:등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외국인 이름 갖다썼다가 피봤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ㅅㅂ..ㅋㅋㅋㅋ 어쩐지 이름이 입에 착착 감기더라니 모유명 연예인 이름! ;;; 그래서 이번에 이름 바꾸고 업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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