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s wedding

 

 슬슬 결혼하자, 라고 선뜻 내뱉었던 토니에 비해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의 스티브는 굉장히 당황하고 머뭇하는 태도를 취했다. 결과적으로 스티브의 태도는 토니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되었다. 그날부터 3일넘게 불과같이 화를 내는 토니를 어르고 달래기 위해 스티브가 얼마나 진을 뺐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지금 설명하지 않아도 언젠가 자세하게 이야기 할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단지 스티브가 자신의 태도를 반성함과 동시에 토니의 마음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또 자신이 그에 얼마나 감사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사실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물론 많은 시간이 걸렸고 토니는 여전히 조금쯤 불퉁해하고 있지만 말이다. 스티브는 삐딱한 태도로 자신에게 프러포즈링을 건네는 토니에게 어색한 웃음으로 답하며 링을 집어들었다. 토니는 사납게 링을 빼앗아 스티브의 손가락에 밀어넣었고, 링은 우스울정도로 손가락에 딱맞았다. 굵고 긴 손가락에 어울리는 조금 두꺼운 타입의 심플한 링이었다. 토니는 아직 삐진 여파가 남아있어 일부러 스티브가 싫어할 말한 말을 골라했다. " 웨딩링은 캡시클에게 어울리는 엄청 굵은 다이아 하나 박아줄게. 이따만한걸로 응? " 스티브는 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토니를 달래기 위한 몇 번의 '가슴만질래?'를 반복하였다. 이게 스티브 로저스가 시전하는 최고의 특효약이었다.

 

 토니 스타크가 바라왔던 방향성과는 다르지만 어쨌거나 둘의 결혼은 양자결연이라는 형태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진행을 전부 나타샤 로마노프가 맡았다. 토니는 두사람의 결혼식에 쉴드가 끼어드는 것에 질색팔색하였지만 사태가 사태이므로 쉴드에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사태란 세계에 그 얼굴이 알려져 있는 빌리오네어이거나 슈퍼히어로이거나 하는 토니 스타크의 결혼 그자체였다. 스티브쪽은 그래도 차라리 나았다. 물론 그도 슈퍼히어로이지만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캡틴 아메리카가 아닐때에는 평범한 '스티브 로저스'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호적또한 쉴드가 그누구도 눈치채지 못할만큼 말끔하게 한 번 소멸한 호적을 부활시켜 정리해두었기도 하고 말이다. 따라서 게이결혼이 가능한 나라에서의 혼인신고가 문제가 되는 것은 양자결연을 반대하는 토니 스타크 본인뿐이었던 것이다.

 

 스티브는 자신이 '스티브 스타크'가 되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지만 이미 토니에게 지은죄가(프러포즈앞에서 머뭇거린죄) 있었기에 그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더군다나 둘의 결혼에 쉴드가 끼어들어 주도하고 혼인신고가 아닌 양자결연이 된다는 것에 있는화 없는화 내지르는 짓을 토니가 이미 선점하고 있었으므로 스티브는 거기에 더 보탤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스티브는 나타샤에게 항의하는 토니의 뒤에 멀치감치 서서 단지 목뒤만을 매만지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선을 여러군데로 흐뜨러뜨리고 있었다. 마음의 불편함을 토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면서.

 

 그래서 스티브의 그런 낌새를 눈치챈 것은 나타샤뿐이었다.

 

 양자결연서의 서류를 들고 토니의 사무실에 찾아간 나타샤는 긴 붉은머리를 어깨너머로 살짝 묶고 있었다. 언뜻 단정한 수트일체의 옷이 타이트하게 몸의 라인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섹시미를 더하고 있었고. 토니는 나타샤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타샤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제와 허무하기까지한 입으로 하는 나타샤의 몸매에 대한 공치사가 나타샤를 실소하게 만들었다. 토니는 나타샤가 건네는 서류를 들어 펄럭이며 읽는둥 마는둥하고 잽싸게 책상위의 볼펜을 집어들어 싸인을 해야 할 몇몇의 곳에 망설이지 않고 서명을 써넣었다. 이곳과 이곳과, 그리고 바로 이곳에 Anthony Edward Tony Stark. 그리고 토니는 서류를 책상위에 그대로 올려놓은 채 다시 자기 자리에 앉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해보이는 한숨이었다. 나타샤는 토니가 자신의 배위에 두 손을 깍지낀 채 올리는 그 모습 그대로 정지화면처럼 미동이 없어진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뭔가 여전히 마음에 안드나봐요? 토니. "

 

 토니는 눈썹을 치켜뜨며 두 손을 까딱였다.

 

 " 네가 내입장이라하고 한 번 생각해봐, 요원 로마노프. 내결혼식, 나의 결혼식인데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라구. 어떻게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어? "

 

 나타샤는 붉은머리를 귀뒤로 쓸어넘기며 또 짧게 한숨을 끊어 쉬었다.

 

 " 요원 로마노프가 참견하는 게 아니라 나타샤가 친구 결혼식을 도와주고 있는 거라 하면요? 좀 마음이 편해져요? "

 

 " ...... "

 

 토니는 조금 생각하면서 입술을 삐죽였다. 그건 반성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기분이 불유쾌하다고 나타샤의 기분까지 나쁘게 만드는 것이 결코 옳은 일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토니도 알고 있었다.

 

 " 그래. 그건 좀 편해. 그래도 여전히 백프로 좋은 기분은 아니야. "

 

 " 토니. 당신은 일단 그것보다 좀 더 다른 걸 신경써야 해요. 예를 들어 지금 로비의 소파에 앉아 당신이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캡이라던가. "

 

 " 스티브? 왜? 어디 안좋아보이기라도 했어? "

 

 토니는 여전히 자신의 프러포즈를 앞에두고 조금 망설였던 스티브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타샤가 스티브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나타샤는 그런 토니의 반응에 살짝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곧 그 기색을 숨기고 평소와 다름없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내가 스티브였다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았어요. 이뒤에 무슨 일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스티브를 스타크타워에서 당신을 기다리게 하다니 너무 배려가 없군요. 토니. "

 

 " 응? 그게 왜? "

 

 " 여긴 페퍼가 있잖아요. "

 

 " ...아. "

 

 그리고 그건 페퍼에게도 너무 배려가 없는 거 아닌가요. 나타샤는 굳이 뒷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말을 내뱉은 것과 마찬가지의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당황하는 토니가 벌떡 일어나는 소리에 맞춰서.

 

 

 

 

 

 

 

 

 

 

 

 

 

 " 스티브! "

 

 페퍼는 목소리를 높여 스티브 라고 외치는데 약간의 기합이 필요했다. 페퍼는 스티브가 최근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약간의 데면데면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스티브는 평소 젠틀한 태도와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었지만 이또한 여자의 육감이 발동한 케이스랄지. 페퍼는 그동안 스티브의 언뜻언뜻 스치는 어두운 기운을 토니가 알고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스타크타워의 상위층 토니의 사무실이 있는 바깥쪽의 커다랗고 깨끗한 로비, 한구석 장식나무 옆에 멀치감치 서서 스티브는 토니가 일을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스티브가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음을 눈치챈 페퍼가 순간 아주 조금 망설였음을 숨기거나 하지는 않겠다. 페퍼는 자신도 스티브를 못본척 그냥 지나칠까 아주 잠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스티브를 목소리높여 외치는데에 약간의 기합을 끌어모아야만 했었다. 스티브의 데면한 태도를 느끼면서 그를 반갑게 부르기란 사실 페퍼에게도 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페퍼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스티브에게 뺏겼다.

 

 그런 것이다.

 

 " ...포츠양. "

 

 자신의 목소리에 언뜻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연하게 웃음을 띠며 스티브가 성큼 다가왔다. 그래도 여전히 커다란 장식나무의 멀찌감치의 옆. 페퍼는 웃으며 긴 생머리 블론드를 귀뒤로 쓸어넘겼다. 페퍼는 여전히 자신을 성으로 부르는 스티브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슬픔을 느꼈다. 안녕하셨어요. 스티브. 그렇게 말하자 네, 덕분에. 포츠양도 좋아보이십니다. 그렇게 말하는 스티브는 안심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럼 친구라도 붙잡고 울고불고 할 줄 알았나. 페퍼는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스티브의 왼쪽 팔목을 꽈악 잡았다.

 

 " 저는 안녕해요. 스티브. 오히려 당신이 조금도 안녕해보이지가 않네요. "

 

 " ...... "

 

 사실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스티브의 안색이 너무 좋지 못했다. 나를 만나서-라고 하기엔, 오래전부터 느껴왔어. 그의 쓸쓸함을. 어쩌면 모두에게 결혼을 발표한 그날부터 계속. 페퍼는 아무렇지도 않게 스티브의 팔안으로 팔짱을 꼈다. 스티브가 당황해하는 것에도 아랑곳않고 페퍼는 앞장서서 스티브와 함께 로비에 준비된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는 팔짱을 낀 손을 그대로 스티브의 손등에 포갰다. 스티브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그저 가만히 페퍼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얇은 블론드의 머리칼이 사락거리는 것과, 그 끝에서부터 아주 조금씩 풍겨오는 달콤한 향. 스티브는 얇고 긴 손가락끝의 반짝이는 손톱을 바라보면서 가슴언저리의 묵직한 것을 묵묵하게 받아들였다.

 

 페퍼도 올려다보는 스티브의 가느다란 속눈썹을 쳐다보고 있었다. 젊고 반듯한 얼굴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페퍼는 스티브의 파란 눈이 슬퍼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토니와는 별개로, 아니 사실은 완전히 별개로 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스티브. 나는 당신도 좋아한다구요. 정말로 아주 많이. 입술로 길게 호선을 그으며 페퍼는 부드럽게 웃었다.

 

 " 스티브. 내 말을 들어줘요. 난 여전히 토니가 지구에서 제일 사랑하는 여자예요. 그리고 난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해요. "

 

 " ...... "

 

 " 내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죠? "

 

 손등위를 포갠 손에 힘을 주며 페퍼가 말했다. 스티브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 가령, 예를 들어. 어느날 아침 토니방에 갔더니 침대옆에 다른 여자가 누워있다면, 난 토니에게 불같이 화를 낼거예요. 헤어질지도 모르죠. 하지만 토니옆에 당신이 누워있다면, 난 당신을 깨울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졸린 눈을 비비며 굿모닝이라고 한다면 난 기꺼이 당신뺨에 키스할거구요. 난 정말 그럴거예요. "

 

 " 포츠양. "

 

 " 페퍼예요. "

 

 " ...페퍼.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

 

 " 그리고 다음에 오는게 s로 시작하는 거면 받아주지 않겠어요. 그냥 t로 끝내는 게 좋아요. "

 

 " ...... "

 

 " 정말 그걸로 돼요. "

 

 그리고 페퍼는 다시 스티브의 손에 깍지를 끼고 그를 강하게 잡았다. 그리고 스티브의 넓은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페퍼의 가느다랗고 긴 머리가 어깨에 닿아 퍼지자 스티브는 눈을 감았다.

 

 " ...페퍼. 사실 나는, 당신에게도 미안하지만. 토니에게도 미안해요. "

 

 " 그에게 뭐가요? "

 

 " 저기, 나는... 70년시간을 건너뛴 살아있는 것에 확신이 없는 사람인지라. 그러니까, 내가... 그를 두고 먼저 죽을까봐서요. "

 

 " ...! "

 

 페퍼는 그제야, 결혼을 발표하고 난후부터 불안한 기색을 보였던 스티브의 그 한없는 불안함의 이유를 깨달았다. 설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 세상에. 스티브. 오히려 토니야말로 결혼발표를 한 후로 헬스시간을 배로 늘리고 있는데요. 당신을 위해서. "

 

 젊은신부와 오래오래 함께 살려고 말이죠. 뒷얘기는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더니, 스티브가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래서 페퍼도 그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살아있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란 말엔 정말 할 말이 없구나. 페퍼는 단지 좀 더 스티브의 어깨위에 꼬옥 달라붙었다.

 

 " ...스티브. 그럼 이렇게 해요. "

 

 " ...... "

 

 " 만약 당신이 죽고난 후에 어느날 아침, 내가 토니의 방으로 갔는데 옆에 모르는 여자가 누워있으면, 토니에게 불같이 화를 내줄게요. "

 

 " ...... "

 

 " 당신이 그의 뺨을 한대치면 그의 앞니는 몽땅 부러져버릴테니까, 저도 그만큼의 악력을 가질 수 있도록 운동할게요. "

 

 " ...세상에. 페퍼. "

 

 하하, 나지막하게 웃으며 어깨를 들썩이다가, 스티브가 가만히 속삭였다. " ...고마워요. "

 

 그리고 페퍼의 머리위에 살짝 자신의 머리를 기대듯 고개를 좌로 하고는 다시 눈을 내리감는 것이었다. 페퍼의 달콤한 향수의 향과 페퍼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몸만이 스티브가 느끼는 전부였다. 페퍼도 조용히 웃으며 눈을 감았다. 스티브의 고맙다고 하는 목소리는 꼭 겹겹이 포개지는 낙엽처럼 마냥 가벼웠다. 조금 행복한 마음이 들어. 페퍼는 안심했다.

 

 

 

 

 

 

 

 

 

 

 

 그리고 사장실에서 빼꼼, 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 둘을 지켜보던 토니와 나타샤. 둘의 대화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토니는 눈을 부릅뜬채 두 블론드가 서로서로에게 기대어 눈을 감고 그 순간의 공기를 음미하는 장면을 처음부터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토니는 부들부들 떨며 사장실의 문을 부수어버릴듯이 꽈악 움켜쥐었다.

 

 " ...저기 나타샤. 나 지금 사진찍고 싶은데 혹시 찰칵소리안나는 도촬용 카메라 갖고있는 거 있어? "

 

 " 그 머릿속 청소시킬만한 방법은 알고있는데요. 인지능력 되찾게하는 건 내특기거든요. "

 

 " ...그건 그냥 머리세게 치는거잖아. "

 

 " 그냥 세게 머리 한대 치고싶은 발언 방금 했잖아요. "

 

 " 그치만 ㅠㅠ 엉엉. "

 

 토니는 우물우물 하면서 일부다처제 세상에서 살고싶다고 중얼거렸다. 이 망할놈... 나타샤는 진심으로 주먹으로 토니 스타크의 머리를 한대 내려치고 싶은 걸 겨우겨우 참았더랬다.

 

 

 

 

 

 

 

 - done

 

+ 주제는 결혼. 머릿속에 상상할 땐 재밌었는데 글로쓰니 이도저도 아닌게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던 글.. 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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