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versation has run dry 

 

 토니 스타크가 뇌종양말기의 판단을 받았으며, 의사로 하여금 빠르면 두달에서 최고 5년안에 사망할거라는 말을 들은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 소식이 캡틴에게 닿은 바로 오늘. 캡틴은 맨하탄의 멀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해발 1000m이상의 디나르고원의 그어딘가에서 S.H.I.E.L.D 작전을 수행중이었다. 호크아이와 블랙위도우와의 동행이었다. 아열대성기후로 가득찬 우거진 산림지대는 작전수행당일부터 비가 퍼부어 캡틴은 다른 요원들과 마찬가지로 진흙탕에 빠진 왼쪽 다리를 끌어올리는 수고를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반복하고 있었다. 바닥이 늪처럼 질퍽해져 한걸음 내딛고 다음다리를 빼내고 또 한걸음을 내딛는 행동을 계속 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스티브는 꼭 두개골를 파고드는 게 목표라는 것처럼 세차게 쏟아지는 비의 군단에 대부분의 전자장비가 망가져 쓸모없어졌으리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대륙에서 쏘아올린 전자파를 자신의 소형무전기가 캐치해내었을 때의 그 의아함이 정말로 오래갔다. 캡틴은 그날 느낀 의아함을 평생 잊을 수 없으리라고 그뒤로도 되풀이하여 생각하였다. 아마 무전기에서 자신을 부르는 희미한 무전소리를 캐치했던 순간의 의아함과, 토니 스타크의 뇌종양소식을 들었을 때의 의아함이 뒤죽박죽이 되어, 심장에 박혀버렸기 때문이리라.

 

 한동안은 아무 생각도 못하였기 때문에

 사실 스티브 로저스도 그순간의 자신의 정황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닉 퓨리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저 귀환하라고만 반복하였기에, 캡틴은 그저 그 말을 따랐다. 호크아이와 블랙위도우는 자신들이 향하는 반대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캡틴의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곧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기 위하여 캡틴 아메리카의 등에서 시선을 떼내었다. 그럼에도 왠지, 블랙 위도우는 한 번 더 뒤돌아 캡틴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 등위로 쏟아지는 빗줄기로 인해 더욱 희미해진 캡틴 아메리카의 일렁이는 실루엣. 캡틴은 또 진창에 빠진 왼쪽다리를 천천히 빼내고 있었다. 그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굼뜬 행동은, 빗줄기가 가져온 착각이겠지. 블랙 위도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먼거리였기 때문에, S.H.I.E.L.D 전용기를 타고 날아왔지만 그래도 꼬박 하루가까이 걸렸다. 그동안 스티브는 한숨도 자지않고 단지 앞만을 노려보았다. 작기에 더욱 빠른 헬기 내부의 스티브 맞은편 좌석에는 아무것도 있지않고 텅 비어있었는데, 스티브는 그 작은 철제의자 위에 칠이 벗겨진 듯한 검은 부분의 어느 점만을 24시간 내내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몇시간이나 흘렀을까, 어느순간 스티브는 그 철제의자가 천천히 흔들리고 난후, 그 위에 앉아있는 토니 스타크와 만났다. 스티브의 흰자위 주위에 희미한 붉은끼가 번지면서 먼지막이 낀 것처럼 눈앞이 흐릿해진 어느순간이었다. 스티브는 가만히 눈을 감고,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눈두덩이 덮이면서 눈막 아래에서부터 눈의 피로감이 몰려오더니 곧 피로감이 순식간에 눈의 표면 전부를 한바퀴 돌았다. 스티브는 눈의 피로감이 뇌에 가 닿아 인식이 되기를 충분히 기다렸다가 다시 눈을 뜬 것이다. 토니 스타크의 상은 그 의자 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토니는 쓰리피스의 양복차림이었다. 하얀색 양말에 수제구두를 신고 한쪽다리를 꼬고는 그 위에 깍지낀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스티브와 눈이 마주친 순간을 천천히 기다리고 있다가, 스티브가 다시 눈을 뜨자, 정말로 천천히, 웃었다. 스티브는 토니의 그 웃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도그럴것이 언제나의 그 웃음이었으니까. 장난끼어린 눈의 꼬리를 가늘게 하고 눈주름을 길게 잡으며 씨익 웃을때마다 더욱 가늘어지는 입꼬리를 보고 있노라면, 웃을기분이 아니라한들 어떻게 따라웃지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스티브는 토니의 상에 이끌려 자기도 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토니의 상은 곧 그 웃음만을 남기며 천천히 사라졌고, 스티브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아, 지금처럼. 토니의 얼굴을 보면 지금처럼 제대로 웃을 수 있을까. 아니, 나 지금 제대로 웃기는 했던가. 스티브는 남은 비행시간 내내 그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용기는 곧장 스타크타워의 헬기장에 내렸고, 스티브는 파일럿이 엔진을 끄는 시간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스티브는 그저 잽싸게 문을 열고 훌쩍 뛰어내렸다. 스티브의 헬기에서 급하게 갈아입은 양복의 자켓이 프로펠러가 일으킨 바람에 쉴새없이 펄럭였다. 스티브는 급하게 뛰어가면서 반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턱을 쓸어내렸다. 언젠가 토니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났던 것이다. 왜 지금 하필 그런 말들만 자꾸 생각이 나는걸까. 토니는 스티브가 턱수염을 방치하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캡시클, 넌 나처럼 수염이 이쁘게 잘나는 타입이 아니잖아. 게다가 수염기르면 이십년은 늙어보여, 난 항상 젊은애인만을 추구해왔다고? 그러니 수염미남자리는 나한테 맡기고, 넌 반듯하고 매끄러운 턱선을 항상 유지해주면 아주 고맙겠어. 스티브는 세면대 앞의 거울을 통해 바라보았던 토니의 진한 눈썹이 이마위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을 지켜보았던 그날을 떠올리며 턱을 계속 매만졌다. 손바닥이 까슬거렸다. 헬기장에서의 24시간, 멍하니 있지말고 정리했더라면 좋았을걸. 스티브는 그렇게 생각했다.

 

 문을 열어 토니를 보니, 갑자기 묘하게 차분해졌다.

 스티브는 방금까지도 뜨겁게 달아올랐던 뇌가 한순간에 식은 것을 느꼈다.

 호흡도 조금도 힘들지 않았고, 숨이 차오르지도 않았다.

 스티브는 심지어 왼손을 들어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올리기까지 하였다.

 

 " 여, 달링. 왔어? "

 

 " ...다녀왔네. "

 

 " 어서와. "

 

 토니는 무사귀환 축하해, 그렇게 웃으며 다이닝바에서 이미 들고있던 잔을 스티브쪽으로 한 번 들어보이더니 한꺼번에 전부 입안으로 털어넣었다. 스티브는 토니가 방금 보드카 한 잔을 한꺼번에 비워버린 것을 본 것이다. 토니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보드카병을 들어 다시 한 번 빈잔을 채웠다. 스티브는 토니에게 비교적 천천한 걸음으로 다가갔음에도, 금방 토니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티브는 원래 걸음이 빨랐으니까. 토니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토니가 평소 즐겨쓰던 코롱의 향이라던지 향수라던지 깨끗하게 정리된 새옷의 냄새라던지, 여러가지 맑은 도시의 향기가 났다. 스티브는 토니의 손에서 잔을 받아들여 그 안에 담겨져 있던 보드카를 전부 자기의 입으로 털어넣었다. 한꺼번에 혀를 넘어 그대로 식도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 술의 줄기들은 목구멍 언저리에서부터 화끈하게 열을 내기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토니는 웃으면서 스티브가 전부 비운 자신의 잔을 다시 받아들였다.

 

 " 어때? 맛있어? "

 

 " 아니. 아무맛도 없군. "

 

 " 그래? 역시 그렇겠지. "

 

 " 맞아. 역시 그렇군. ─넌? 맛있나? "

 

 " 하하. 이봐, 캡. 자넨 아직도 애인을 너무 모르는구만. 난 이녀석을 맛으로 마셨던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 "

 

 " ...... "

 

 " 단 한 번만이라도 맛있게 느껴지는 날까지 마셔줄 작정이었는데 말이야. "

 

 " 토니. "

 

 " 그래. 내 얘기를 들었지? "

 

 스티브는 순간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 고개만을 아주 조금 끄덕였다.

 

 토니는 스스럼없이 말을 이었다.

 

 " 흠. 지금 그럼 이 사실을 아는 건 딱 네명이로군. 나, 나의 주치의, 닉 퓨리, 그리고 너. 아 자비스도 알고있지만 그녀석은 어쨌든 인간은 아니니 말이야. "

 

 " 토니. "

 

 " 한동안은 비밀로 할거니까 협력해줘. 캡. 어쨌거나 신변정리따위가 잔뜩 널려있어 벌써부터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사실을 아는 사람까지 많아지면 나 진짜 감당 못해 그거. 응? 알았지? "

 

 그렇게 말하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아래로 눈을 내리깔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하지만 사실, 역시 보고싶어져서말이야. 스티브 네가. ─그냥 네가 계속 내옆에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닉 퓨리에게 부탁한거야. 너 좀 임무에서 빼달라고. 나한테 돌려달라고. "

 

 " ...... "

 

 " 진짜 많이 보고싶었거든. 스티비. "

 

 " ...... "

 

 " 잘못한 거 아니지? 응? "

 

 그렇게 말하고 또 가느다래지는 눈꼬리를 바라보다가, 스티브는 허리를 굽혀 토니의 눈가에 키스했다. 토니의 속눈썹이 접힌 채 입술에 닿았다. 스티브는 토니의 반으로 접힌 속눈썹과 길게 이어진 눈가주름의 감촉을 입술로 느꼈다. 토니는 두 어번 눈을 깜빡이다가 소리내어 연하게 웃었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스티브의 목을 껴안고 스티브의 귓가에 짧게 키스하였다. 귓가가 간지러워 스티브는 순간 숨을 참았고, 그때 내뱉은 희미하게 뜨거워진 숨결에 토니가 만족한 듯 더욱 스티브의 턱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 부탁인데 앞으론 수염깎을 시간도 안주는 임무에는 안가면 안될까? 캡틴 아메리카 프로듀서로써는 정말로 탐탁치 못한 비쥬얼이거든? "

 

 스티브가 풋하고 소리내어 웃자, 토니는 웃으며 스티브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스티브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한.

 

 방금까지만 해도 언제 눈물이 쏟아질까 두근댔었는데, 이젠 마음이 가라앉은 것 같아 토니는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스티브.

 그러니까 네가 창백한 얼굴로 뛰어왔을 때,

 나 너에게 웃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 저기말이야, 스티브. 나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

 

 " 뭔가? "

 

 거의 담담하기까지 느껴지는 스티브의 목소리에 점점 더 편안함을 느끼며, 토니는 좀 만져도될까? 하고 물었다. 스티브는 금새 붉어지는 눈가언저리를 조금 물들일뿐 별다른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이뻐라. 토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들어 붉어진 스티브의 눈가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천천히 스티브의 까슬한 뺨을 쓸어내고는, 곧 어깨선을 미끄러져 내려와 스티브의 단단한 팔을 훑었다. 토니의 손끝에 남는 스티브의 체온의 여운. 손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시선도 그대로 천천히 움직였다. 네가 내옆에 있다니. 네가 있어주다니. 이런 기적이 또 어딨을까. 이런 게 세상에 또 있을까. 토니는 스티브의 가슴을 그대로 훑어, 스티브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가만히 멈춰있다가, 곧 웃음을 흘렸다. " 저기말이야, 역시 오럴섹스 해도 돼? " " ...안 되네. " 에이, 하며 토니가 아쉬워하자 스티브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두 어번 저었다. " 안 되네. " " 나 되게 잘하는데. 캡도 이젠 잘 알잖아. " "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게. ...적어도 샤워라도 좀 하고나서... " "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으면 애초에 지금 말을 꺼내지도 않아 영감님아. "

 

 그리고 허리를 잡고있던 손을 내려 스티브의 바지지퍼위에 손바닥을 포갠 채 올리고는 토니는 천천히 위아래로 닿은 부분을 매만졌다. 스티브는 토니가 손을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보고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목이 메이는 듯한 목소리를 억누르면서, 스티브는 결국 토니의 어깨위에 이마를 박는 것이었다.

 

 " ...제발... 토니. 지금 내가 설리가 없잖나. "

 

 " 하지만 만지고 싶은데. "

 

 " 자네 멋대로 하게. 하지만... 난 무리야, 제발... "

 

 " ...... "

 

 " ...제발 자네 어깨를 적시게 하지 말아줘. "

 

 " ...... "

 

 토니는 피식, 하고 웃었다.

 

 아아, 너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담담한 심장소리.

 언제나처럼 나의 심장마저 대신해주는구나.

 

 사실은

 네가

 나를 위해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알고 있어.

 

 " ...고마워. "

 

 토니는 스티브의 다리사이를 만지던 손을 떼고 그대로 스티브의 등을 안았다. 따뜻한 스티브의 체온과 함께, 스티브의 몸의 무게가 토니에게로 실려왔다. 이 포옹이다. 사실은 이 포옹만 있으면 다른 건 아무래도 다 좋았어. 사실은 정말로, 너무나, 이렇게 껴안아주기를 바랐거든. 어쨌든 한시라도 빨리말이야.

 

 " 스티브? " 

 

 " ...... "

 

 " 저기말야. 부탁하고 싶은게 또 있어. "

 

 " ...뭔가. "

 

 " 역시 내 캡틴 아메리카 트레이드 카드에도 싸인해주지 않을래? "

 

 " 아하하. "

 

 스티브는 토니의 등을 껴안으며 어깨를 흔들었다. 웃고있다. 그렇구나. 자신의 웃음소리에 몸이 울리는 스티브의 행동이 토니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 스티브의 몸의 울림이 자신에게 넘어오는 것도 너무나 좋았고. 토니는 스티브에게 얼굴을 묻었다. 스티브란 사람의 향이 느껴진다. 충분히 행복해. 나 지금 행복해. 난, 아주, 행복한 사람이야. " ...그리고, 좀 안아줘. 날 좀 안아줘 스티브... " 그리고 토니는 안심하고 스티브에게 매달렸다. 그러는 와중에 누가 누구를 껴안고 있는 것인지 그 경계가 사라져갔고, 어느새 대화도 사라졌다. 토니는 이 눈물도 말라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라버린 대화처럼, 없었던 것처럼 가버렸으면 좋겠는데. 왜냐면, 스티브의 셔츠가 젖어가. 스티브의 셔츠를 젖게 하고 있다고. 토니는 더욱 스티브를 끌어안았다. 스티브. 스티브. 스티브.

 

 하지만 너는 가버리지 말아줘.

 이렇게 있어줘.

 그저 이렇게만.

 

 스티브.

 

 

 

 

 

 

 

-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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