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하네, 토니 스타크

(이건 스티브 로저스의 백세 생일 축하글이 맞습니다...ㅎㅎ)

 

 

 토니 스타크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고급 레스토랑의 예약-물론 통째로 하룻밤 빌림 코스-을 취소했다. 폰을 쥐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 것은 레스토랑을 예약할 때보다 세 배로 손해배상을 해주고 취소를 한 것에 대한 분노때문은, 전혀 아니었다. 토니 스타크가 그런 푼돈을 아까워 할 리가 대체 없지않은가. 토니가 그렇게 떨고 있는 것은 레스토랑 취소를 명령(?)한 스티브 로저스 때문이었다. 토니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때때로 그를 홱 돌아보며 그의 코앞에서 예약취소전화를 하는데에도 태연한 표정으로 차나 홀짝여대는 저 얄미운 백세 늙은이 때문에 말이다.


 전화기를 거의 화풀이 식으로 집어던지며-그러나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나면 스티브에게 타박받을 게 분명했고, 오늘만은 그런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기에 토니는 일부러 소파를 겨냥했고, 폰은 무사히 소파 위 쿠션에 안착했다-토니는 또 한 번 홱 스티브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노려보는 토니의 이글거리는 눈동자에도 퍽 태연히, 선 채로 식탁에 기댄 채 잡지를 뒤적이고 있던 스티브는 또 한 번 차를 마셨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자, 시키는 대로 레스토랑 예약까지 말끔히 다 취소했다. 이 늙은이야."


 토니의 퍽 화를 참을 수 없다는 듯 한 목소리에도, 어디까지나 스티브는 태연했다. "수고했네." 그 태연함은 당연하게도 토니의 화에 불을 질렀다.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는 해? 스티브 로저스."

 "?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

 "토니 스타크가 토니 스타크가 아니게 만들었어!"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우리 말로 좀 해주게."

 "좋아, 그럼 친절한 스타크씨가 우리 로저스씨 수준에 맞게 쉽게 풀이해서 설명해줄게. 토니 스타크는 태어날 때부터 억만장자의 운명을 타고 났고, 성장하면서는 조만장자가 되었어. 억만장자란 억만의 순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고 조만장자는 조만의 순재산을 가진 사람을 뜻 해. 여기까진 이해해?"

 "......"


 스티브는 잠시 눈알을 돌렸지만 이 시비의 의도가 다분한  토니 스타크의 말투를 괜히 걸고넘어지지는 않기로 했다. "...대충은."


 "그런 토니 스타크는 유치원생일 때부터 돈의 위력을 알고 있었지. 그런데 이때의 돈의 위력이란, 정확히 말하면 돈의 쓰임을 말하는 거였어. 잘 따라오고 있는거지 영감? 돈의 쓰임이란 즉 토니 스타크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을 쓸 때 발생하는 위력을 뜻하는 거야! 그게 뭔 말이냐면, 유치원생 때의 나는 짝사랑하던 담임선생의 생일에 그 누구보다 가장 비싼 선물을 함으로써 선생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었다는 그런 뜻이지!"

 "...자네 유치원도 다녔었나? 의외로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냈군."

 "역시 못따라오고 있잖아-!!"


 스티브 로저스 나라의 언어는 뭔데 당장 가르쳐줘 하나부터 프로그래밍하게! 토니 스타크는 빽 소리치며 머리를 감싸쥐고 소파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스티브는 코끝을 긁적이며 푹신한 쿠션에 코를 박고 엎드린 토니 스타크를 바라보았다. 마흔 넘어서 삐졌다고 강력하게 어필하며 엎드리는 꼴을 한심하다고 할지 아니면 그 어린애의 뇌물에 순순히 넘어간 그때 그 유치원 선생의 선생자격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스티브는 그냥 찻잔을 탁하고 내려놓았다. 사실 토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도는 스티브도 잘 알고 있었다. 토니 스타크는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중요한 날에는 자기가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이길 항상 원했다는 그런 뜻이었다. 토니 스타크가 사랑하는 사람는 보통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당연히 생일날 많은 선물들을 받았다. 그리고 토니는 그 선물중에서도 자신의 선물이 가장 좋은 선물이길 바랐다. 아니, 선물이랄까, 다른 누구보다도 토니 스타크가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날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이길 원하는 것이다.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날에, 다른 사람이 더 많은 돈을 쓰게 둘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왜냐하면, 그게 토니 스타크니까. 토니 스타크는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으니까.


 하지만 스티브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말을 토니가 할 때마다 좋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건 토니의 그간 인생에 많았던 그가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질투도 조금은 있었지만 사실 그것보단 이 이야기가 안겨주는 토니 스타크의 애정결핍의 일면때문이었다. 토니 스타크가 애정을 돈으로 사는 사람인가? 그런 면도 어느정도 있겠지만,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의 소중한 날에 다른 누구보다 자기가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것, 자기가 가장 좋은 선물을 해주는 것, 그런 것으로 토니 스타크의 기억을 상대방에게 오랫동안 남기게 하려는 고요한 집착이 스티브에게는 더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건, ...왠지모르게 헤어지고 난 뒤를 고려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리고 그건 꼭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다지 오랫동안 함께 할 생각은 없으며, 그렇지만 헤어지고 난 뒤에도 나를 간간히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처럼 느껴졌다. 그런 모순 된 바람이 토니 스타크의 안에서는 그다지 모순적이지 않는건가 싶기도 하고. 어째서 스티브 로저스는 토니 스타크에게 이런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토니 스타크를 잘 몰랐던 때 편견으로 고정되었던 그의 이미지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스티브는 이미 무너지고 없는 오랜 옛날의 스타크 타워를 떠올렸다. 모두가 볼 수 있을만큼 커다란 스타크 타워와 누구보다 가장 돈을 많이 쓴 생일선물. 스티브는 토니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이 씁쓸함에 대해서 결국 그에게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러나 오늘 그에게 어떤 것도 받고싶지 않은 기분은 분명 그곳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렇다, 물론 오늘은 스티브 로저스의 생일이었다.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연인을 위해 아낌없이 쓸 생각을 몇 달 전부터 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스티브는 아침부터 선물을 들고 찾아오는 많은 방문객들을 받느라 제법 바빴다. 그런 스티브의 뒤에서 눈을 이글거리며 토니는 자기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는 압도적으로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토니가 이때까지 사귀어왔던 많은 러버중에서 단연 압도적으로, 인류를 통틀어도 압도적이겠지만, 하여간 그만한 규모로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의 생일날 누군가가 그에게 섬을 사줄지도 모른다, 스티브 로저스라고 이름을 딴 별을 안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토니는 당장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을 준비해야했다. 물론 토니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고 스티브는 분명 그럴 가치가 있었다. 그가 받은 선물의 수준을 바로 확인하고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그것보다 더 높은 레벨의 것을 준비해내야했고 토니는 그렇게 할 것이었다. 스티브는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일축하한다는, 그 말 한마디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말할거라고 토니는 생각했다. 그 말이 자신에게 얼마나 쓸모없는지에 대해서 스티브에게 어떻게 이해시킬지도 이미 전부 생각해내 에이포용지에 쫘악 정리까지 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스티브는 사람들의 모든 생일축하한다는 인사와 모든 생일선물을 활짝 웃는 얼굴로 받아들인 후, 자기차례를 기다리고기다리던 토니 스타크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다. 네가 오늘 준비한 모든 것을 캔슬하라고.


 레스토랑의 취소전화가 가장 마지막이었다. 스티브는 토니가 준비한 많은 목록들을 보는 것만으로 질려버리고 말았다. 토니는 여전히 쿠션에 코를 박고 있었고, 스티브는 잔에 남은 마지막 차 한모금을 꿀꺽 마신 뒤 그런 토니에게 척척 걸어갔다.


 그가 엎드리고 있는 소파의 등받이에 양팔을 올리고서 무게를 가하니, 소파의 푹신함이 꾸욱 눌린 채 스티브를 지탱하였다. 토니는 소파에 가해지는 무게를 피부로 느꼈지만 고개를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스티브는 눈가를 가느다랗게 한 채 웃고 있을까? 언제나의 그 웃음. 아니면 눈썹을 조금 아래로 하고 한숨이 담긴 입술을 삐죽이고 있으려나? 언제나의 그 한숨.


 "토니."

 "토니 아니야. 토니 없어. 토니 스타크는 이제 토니 스타크가 아니야."


 토니의 목소리는 쿠션에 코가 눌린 탓인지 평소보다 더 잠겨있었다. 스티브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 그렇지?"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인데에도 그를 위한 선물 하나 제대로 준비 못했으니까."


 스티브는 피식 웃었다. 웃음에는 한숨이 섞여 있었다. 토니는 두가지를 다 맞추었지만 정답이라고 해서 그게 기쁜 것은 아니었다.


 "자네가 선물을 준비 못한 게 아니잖나. 기껏 준비한 것들을 내가 다 취소하라고 시킨 거지."


 잘 아네. 그러니까 이건 다 니탓이야. 내가 우울한 것도 당장 회복이 안 될만큼 상처를 받은 것도, ...심지어 당신에게 생일축하한단 말자체를 여태 못한 것까지 말이야.


 "그래. 맞아. 하지만 그럴만한거겠지? 그 정도로 내가 준비한 것들이 마음에 안들었다는 거잖아? 스티브."

 "...토니."

 "그래, 알겠어. 알겠다구. 물론 하나같이 네 맘에 안드는 것들이었을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렇더래도 적어도 저녁식사 정도는 함께 할 수 있는 거잖아. 그 정도는 내가 사게 해줘야하는 거 아니냐고."

 "......"


 네가 오늘같은 날 나에게 돈을 쓴다면, 이때까지의 많은 사람들과 내가 다를 바가 없잖아.

 스티브는 불쑥 그런 말이 목구멍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한편으로, 토니의 돈을 쓰지 못하는 것이 상처가 되는 그것이 바로 애정결핍의 증거가 아니냐는 말같은 것도 떠올랐지만, 이 말은 더더욱 토니에게 할 수 없었다. 이 말은 차라리 하워드 스타크가 들었어야 할 말이었다. 그는 틀림없이 이 말에 귀따가워 하며 슬쩍 시선을 피하리라. ...그렇게 슬쩍, 시선을 피할 기회라도 너에게 있었다면 좋았을까. 하워드. 스티브는 하여간 여러가지로 목구멍 안쪽이 간지러웠다. 그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목언저리를 긁적였다.


 "그런 거 아닐세. 내 말도 좀 들어줘야지. 토니."

 "그래, 말해봐. 어디 말해보라고. 난 스티브 로저스 나라 언어 자격증 시험이 코앞이니까 안그래도."

 "......"


 어휴, 진짜.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아버릴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티브는 손을 뻗어 토니의 왼 손을 낚아챘다. 머릿속으로 난폭한 생각을 하는 것과는 반대로, 토니의 손을 잡아드는 스티브의 손길은 부드러웠다. 그의 등을 내려다 보는 시선도 물론.


 "돈이라면 내가 쓰고싶었네. 물론 토니, 자네에게."

 "...?"

 "내 생일이잖아. 내 마음대로 하게 해줘야지. ...자넨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야. 그리고 뭐, 조만장자? 인? 후후. 그런 토니 스타크라면 분명 이것의 몇 천배나 하는 좋은 걸 지금 당장 내 눈앞에 가져올수도 있을테지만."

 "......"

 "그래도 이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거네. '스티브 로저스가 직접 돈 주고 산 물건'이니까."


 스티브 로저스가 다른 누구도 아닌 토니 스타크를 위해서 사 온 거라구. "그러니까 아무리 토니 당신이라도 이것보다 더 한 걸 구해올 순 없을걸?" 그리고 스티브는 토니의 왼손의 네번째 손가락을 잡고 한참을 꼬물거렸고, 토니 스타크는 쿠션에 얼굴을 박은 채 부들거리며 버텼지만 이건 도저히 고개를 들지 않고는 못견디는 거라서 결국 벌떡 몸을 일으켜 자신의 왼 손을 내려다보고야 말았다. 스티브 로저스는 한 번도 본적없을 정도의 의기양양한 얼굴로 - 그야말로 이겼다! 라고 써져있는 얼굴이었다- 소파에 팔을 기댄 채 토니를 바라보고 있었고, 토니는 자신의 왼 손 네번째 손가락에 끼어져 있는 깔끔한 실버링에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토니는 역시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었고, 물론 그건 아까와는 다른 이유에서의 떨림이었고, 그는 최선을 다해 콧잔등을 찌푸렸는데 뺨에 그어진 주름 하나하나에 어린 것들이 하나같이 다 같은 말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래서 스티브는 뭐 이이상 더 말할 것도 없겠네, 하고 생각했다.


 토니 스타크, 스티브 로저스 나라의 언어맛이 어때?

 꼴좋군, 대체 아까부터 아무말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마무리는 해줘야겠다. 그리고 스티브 로저스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토니 스타크에게 완벽하게 쐐기를 박는 단 한 마디를.


 "토니. 생일축하한다는 말은?"











- done

스티브 내 아픈 손가락. 백세 생일 축하해! 스티브 생일 축하글을 써 본 기억이 없는 것 같군요... 왜죠...

7월 4일이 한시간 남짓 남은 이 시간, 어쨌든 이렇게나마 시간맞춰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짧지만...ㅜㅜㅜ

스티브의 생일인지라 스티브에게 '이겼다!'란 생각을 하게 하고싶었어요 ㅋㅋㅋㅋ  그런 스티브를 별로 못본 거 같아서 ㅋㅋㅋㅋ

토니만 완전 두들겨맞았네요. 하지만 러브게임은 때로 지는 게 이기는 거 아닌가요. (? 뭔 말이지. 어쨌든 토니는 저 뒤 너무 기뻐서 메챠쿠챠 섹스했을 겁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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