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s touch, touch is love

 눈을 뜨고보니 토니가 옆에 없었고, 스티브는 그가 언제 나간지에 대한 감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조금 어리둥절했으며, (그가 대체 왜 옆에 없는가?) 그래서 잠시 더 그렇게 누워 있었다. 그리고는 베개에서 머리를 들어올리는데 스티브는 왠지 조금 안타까웠다. 이불속에 파묻힌 헐벗은 다리를 조금 접고 세운 무릎위에 얼굴을 갖다대면서, 스티브 로저스는 이 감정이 안타까움이란 단어에 어울리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안타까움, 보다는 쓸쓸한? 외로운? 아쉬운? 스티브는 눈을 깜빡였고, 얇지만 보온이 완벽한-가벼워서 더욱 놀라운-부드러운 이불에 자신의 속눈썹이 눌려서 접혀졌다 펴졌다는 감각에 잠시 빠졌다. 곧 스티브는 자신의 감정이 아쉽다에 제일 가까운 기분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건 사실 꽤나 쑥쓰러운 자각이었다. 아쉽다니. 눈을 뜬 순간, 당연히 그가 옆에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자신을 자각할 수 밖에 없다니. 스티브는 코끝을 찡긋거렸다. 얼굴에 열이 몰리는 건 늦잠때문만은 아니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토니 스타크에게 어제와 같은 일은 별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40년의 삶속에 새로운 연인과의 첫날밤과, 그 다음날의 아침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겠는가? 스티브는 화끈거리는 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눈을 감은 채로 위대한 개츠비의 첫구절을 생각하면서도 문득,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그에겐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겠지." 스티브는 토니가 자기와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스티브 로저스는 자신이 없었던 긴 시간들을 살아온 토니 스타크의 인생을 단 한 번도 부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를 오해했던 많은 시간동안 그를 너무나도 부정해왔기에 더 이상은 그러고싶지 않다는 반증일지도 몰랐지만. 하여간 그래서 스티브는 개츠비를 떠올리며, 그는 참 많은 부분에서 토니 스타크를 묘사한 것처럼 느껴진다, 한편으로 더 많은 부분에서 토니 스타크와는 하나도 닮지 않았고, 그렇게 냉정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 어제는 우리가 연인이 되고 처음으로 가진 밤이었고, 토니 스타크와 스티브 로저스는 완전한 나체가 된 채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잠들었지만 그건 스티브가 생각한 것만큼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었다, 토니 스타크에게는. 그리고 그건 조금도 섭섭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스티브는 밀려오는 잠시간의 아쉬움은 제어하지 않기로 했다. 몇 분, 몇 분 정도는 이 감정속에 빠져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스티브 로저스의 20년 남짓, (얼음속에서 잠든 채 보낸 수십년은 빼고. 그건 삶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죽지않은 시간일 뿐이니까.) 에게 어젯밤과 같은 날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과 같은 이 아침은 어떻고. 낮잠마저 스티브 로저스가 생각하기에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기에 완벽한 해프닝인 것 같은데. 하지만 그 모든 완벽함에 토니 스타크만 없고, 스티브는 그가 언제 침대에서 나갔는지도 알 수가 없는 채로 홀로남았다. "쳇." 스티브는 살면서 그다지 차본적이 없는 혀를, 찼다, 자신의 비어있는 옆자리를 바라보며 조금 의도적으로, 일부러 좀 큰소리로.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옆에 있길 바랐으니까. 마악 깬 듯한 눈동자 네 개가 마주친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굿모닝."을 내뱉는 그 순간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으니까. "좀 옆에 있어주지않고서." 그래서 스티브는, 지금 이순간만은 마음껏 아쉬워 하기로 했다. 토니 스타크가 옆에 없는 것에. 이불위는 따스했지만, 괜히 차갑게 느껴지니까.


 자기 전에 가지 말고 옆에 있어 라고 말했다면 좋았을까?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토니, 너와 눈이 마주치면 좋겠어.

 그렇게 말했다면 어땠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얼굴이 화끈거려서 도저히 얼굴을 못들겠어서, 스티브는 아까보다 더 깊숙이 양무릎사이로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얇고 하얀 이불이 스티브의 두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가면서 길고 가느다란 주름이 잔뜩 생겼다. 그런 말을 했으면 토니는 기쁜 내색을 감추지도 않고 크게 웃으며 스티브를 가득 끌어안고 기꺼이, 마이 스위트, 같은 소리를 했겠지. 그리고 나이도 잊은 채 팔베개를 하고서 잠이 들고는, 아침에 일어나 제일먼저 감각이 없는 왼팔을 부둥켜 안고선 굿모닝! 근데 난 약간 배드모닝이야. 이런 인사를 하게 될 것이고. 스티브는 빨개진 귓불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이불속에 파묻은 채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따땃한 숨이 이불을 데웠고 스티브의 얼굴 전체로 축축한 공기가 퍼졌다. 하긴 모르긴 몰라도, 아무리 결심을 했다손치더라도 결국 어젯밤의 스티브는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잠든 시간대의 경계가 모호했으니까. 도저히 언제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스티브는 토니의 품안에서 그의 손과 입술에 엉망으로 흐트러졌고 그것이 대체 몇 십 분 몇 시간이 지속되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자기가 언제 잠들어버렸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으니 더 말할 것도 없을 수 밖에. 귀한 보물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치곤 뭐 하나 제대로 기억하는 게 없군. 이거 토니를 탓할 때가 아니잖아. 스티브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혼자 아쉬워하며 옆에 없는 토니에게 샐쭉거리는 자신이 주제넘게 느껴져서, 스티브는 한동안 이불안쪽에 발가락을 겹친 채 꼼질거렸다. 왼발위에 오른발을 올려 함께 열개의 발가락을 꼼질거리며, 지난밤을 떠올렸다.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게 무엇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스티브는 될 수 있으면 전부를 기억하고 싶었다. 모든 시간대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말이다. 기억은 새로운 기억을 불러오니까 뭐 하나만 제대로 떠올리면 그 다음은 꼬리를 물고 줄줄이 생각이 날 것이다. 부끄러워도 창피해도 중간에 멈추지 말아야지. 그리고 그제야 스티브는 지난밤 자기자신이 어땠는지가 새삼 걱정되었다. 아, 토니는 정말 완벽했는데. 뛰어났는데. 그 아래에서 스티브는 그저 어쩔 줄 모르고 허우적대고만 있었다. 토니가 손을 허리에 둘러, 라고 말하면 그제야 허둥지둥거리는 두 손으로 토니의 허리를 감싸고, 키스해줘라고 말하면 그제야 허둥지둥하며 입술을 모으고. 꼬옥 감은 채 눈물을 떨구다가 간신히 조금 눈을 뜨면 그때마다 보이는 토니 스타크의 간절한 얼굴에 심장이 부서질 것 같아서 다시 눈을 감아버리고, 그런 반복. 스티브는 꼼질거리던 것을 멈추고 꽈악 발가락을 조였다. 간간이 눈을 뜰때마다 마주쳤던 토니의 표정을 다시 떠올리니, 역시나 심장이 부서질 것 같았다. 아 이 모든 것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 스티브는 왜 자기가 이렇게 어젯밤을 전부 떠올리려 했는지 그걸 감당이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지 질타하며 후회했다. 가슴은 쉬지않고 두근거리고 얼굴은 새빨개지다 못해 폭발을 할 듯 하고... 하지만 스스로 생각한대로 기억은 언제나 새 기억을 불러오니까. 그래서 스티브는 지난밤의 토니를 떠올리는 것을 결국 멈출 수 없었다. 귓가에 울리던 토니 스타크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뜨거운 숨소리. 헐벗은 나체의 부드러움과 애틋함. 겹쳐진 몸위에 미끄러지던 모든 토니의 감정들 따위를 말이다. 아, 토니는


 참 행복하다고 했었다.

 귀에 대고 그렇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속삭였었다.


 스티브, 행복해.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 아, 당신이 나와 함께 해주다니. 당신이 나와 함께 있어주다니. 세상에 이런 기적이 존재했다니.


 스티브의 긴 금색의 속눈썹에 떨어진 것은 틀림없는 토니 스타크의 눈물이었다.

 그의 따뜻한 눈물 방울이었다.



 



 "스티브! 굿모닝 마이 스위트하트! 잘잤어?! 정말 내 생 최고로 아름다운 아침이야!" 그리고 그 순간 그렇게 외치며 방문을 박차고 등장한 토니 스타크는, 사실은 어디에도 가지 않았고 거실에서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사와 가수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이름모를 곡을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스티브가 정말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지금 조금 이야기하자면, 물론 스티브가 토니보다 먼저 잠이 들었다. 뜨겁고 애절한 순간은 폭풍처럼 왔다가 파도처럼 밀려가고, 그 흐릿한 여운속에 잠긴 채 숨을 고르는 동안 토니는 스티브의 발그스레한 얼굴에 쉴새없이 키스를 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입술이 눈 코 입 그 어딘가를 스쳤다 다시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그 단조로운 행복이 스티브를 서서히 잠의 세계로 인도했다. 토니는 눈을 감은 스티브의 속눈썹 끝에 매달려있는 마지막 눈물방울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훔쳤다. 이마위에 흐트러져 있는 그의 머리칼도 손가락 끝으로 살짝 집어 위로 쓸어올려주고, 그러고 난 뒤에도 아주 오랫동안, 토니는 잠들지 않고 스티브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잠들었기에 스티브는 조금도 알지 못하는 그 시간속에 토니는 그렇게 스티브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틀림없이 내 생에 가장 귀중한 시간이야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토니는 스티브보다 먼저 일어났다. 스티브의 늦잠이 반짝이는 보석같다고 생각하며 토니는 그를 위해 아침을 만들었다. 스크램블 에그 레시피 여러장과 유튜브 동영상을 틀어놓고, 토니 스타크는 물론 화학식을 정확하게 외우고 정량을 정확하게 재는 법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물론 완벽한 스크램블 에그가 탄생하였다. 잠들어 있는 스티브의 얼굴 위로 환한 아침의 햇살이 드리워지는 것을 5분정도 지켜 본 토니는 그 가수와 가사가 정확하게 기억나지도 않는 노래를 요리하는 내내 흥얼거리게 되었다. 러브 이즈 터치. 터치 이즈 러브. 아름다운 나의 스티브. 나의 스티브. 그리고 유튜브 동영상 뒤에 숨어있던 자비스가 sir, 그 분이 깨어나셨습니다, 라고 말했고, 토니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프라이팬을 들어 접시 위에 스크램블 에그를 빠르게 담았다.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고 토니는 한걸음에 달려가 깨어난 스티브를 가득 끌어안고 모닝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이 스크램블 에그를 좀 더 예쁘게 모은 뒤에 접시 주변을 꾸미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토니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스크램블 에그 윗부분에 미리 만들어놓은 버터감자 하나와 구운 아스파라거스 두 개를 교차하여 올리고, 파슬리도 좀 올리고. 그리고 오렌지 주스를 따라야겠지만, 에이 그건 빨리 스티브를 끌어안고 모닝키스를 실컷 하고 난 뒤에 하자! 그래도 되겠지. 그리고 토니 스타크는 빠르게 달려간 것이다. 스티브가 있는 자신의 방으로, 그의 침대로.


  

 

 여기까지가, 스티브는 전혀 알지 못하는 시간속의 토니 스타크였다. 그리고 지금 스티브는 "스티브! 굿모닝 마이 스위트하트! 잘잤어?! 정말 내 생 최고로 아름다운 아침이야!"하고 외치며 방안으로 뛰어 든 토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뜬 채. 그런 그의 머릿속에 당장 든 생각이란, 정말이지 하나 뿐이었다. 아, 대체 왜 토니가 여기 있는거지. 왜 그가 어디 가버리지 않은거지. 정말이지 스티브는 방금까지 하고 있었던 바로 지난밤의 회상에 푹 빠져 있던 자기자신이 너무나도 창피할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방금까지 토니 스타크의 헐벗은 몸과 부둥켜 안고 있던 지난밤을 회상하고 있던 것을 들킨 것도 아닌데 (토니는 뛰어난 과학자이자 멘탈리스트였지만 결코 사람의 마음은 읽는 초능력자는 아니니까) 혼자 괜히 창피해서 기절할 지경이 된 나머지, 스티브 로저스는 토니 스타크의 얼굴을 보자마자 방금전까지만해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을 빽하고 내지르고야 말았다. "토, 토니! 왜 아직도 여기에 있지?!!" "뭐, 뭐라고?!" 그리고  토니는 스티브가 내지른 그 말에 덜컥하고 마음이 꺾이고, 동시에 무릎까지 꺾여버렸다. 토니는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문을 붙잡았다. "뭐... 그 말은 내가... 옆에 없었으면 한다는... 그런 뜻이야...?" 토니는 울고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그렇게 중얼거렸고, 패닉에 빠진 스티브는 이불을 들어올려 얼굴을 가리며 마구 허우적거렸다. 악! 왜 자네가 아직도 여기 있는 건가! 왜 아직도 있어! 그런 소리를 내지르길 반복하면서.







- done


아 오랜만에 토니스팁 썼습니다!

어벤저스 촬영 파파라치 사진 보니깐 막... 뽕차서 ㅎㅎㅎㅎㅎ

하 스티브... 내 스티브 :)

나는 사랑에 면역이 없는 스티브가 좋아요. 그리고 이것저것 다 해봤으면서, 스티브를 상대하면 새삼 모든 게 다 처음인 것 같이 느껴지는 토니가 좋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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