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hug

 

 편의상 멸치스팁, 줄여서 멸팁이라고 부르는 이 호칭아닌 호칭이 묘하게 착착 달라붙는 것 마냥. 평소에도 토니 스타크는 그를 그의 이름으로 제대로 부르지 않고 다양한 별명으로 부르길 좋아했는데, 어쩌면 그때문이 아닐까하는 의문. (아니 차라리 그때문이었으면 하는 바람.) 말하자면 토니는 '멸팁'이라고 하는 단어를 캡틴, 캡, 캡시클, 70년산 늙은이, 영감, 노인네 등등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런 태도가 어떻게 나오겠는가. 그것도 토니와 스티브 단 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주변의 누가 있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심지어 어벤저스멤버가 있는 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쉴드의 말단 직원이 꽉 있는 쉴드의 비밀본부 현관 로비에서 까지도, 토니는 그런 태도였다. 스티브를 부를때마다 손을 흔들며 "헤이, 멸팁"이라고. 헤이, 멸(치스)팁이라니. 이게 대체 캡틴 아메리카를 부를 때 가당키나 한 호칭이란 말인가? 그가 아무리 망할놈의 빌런빔에 당해 70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하더라도. 가뜩이나 빌런빔의 성분도 알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지도 막연해 죽겠구만. 대체 지금 쉴드의 전원이 얼마나 큰 비상사태에 처해있는지 알기나 아는 건가 망할 억만장자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타샤나 바튼이 번갈아 이마를 감싸쥐며 토니보고 제발 캡틴에 대한 호칭 좀 조심해달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당최 토니는 들어먹어주질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아 멸치같이 된 스티브를 보고 멸치스팁이라고 부르는 데 뭐가 잘못됐단 말이야."라고. 어깨까지 으쓱하는 아메리칸 특유의 제스츄어로. 그래서 스티브는 소위 말하는 멸팁의 모습이 된지 슬슬 일주일 정도가 다 되어가는 동안 토니에게서 거의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불려본 적이 없게 되었다. '스티브 로저스', 설마 이름을 잊어먹은 것은 아니겠지만서도. 스티브는 홀쭉해진 뺨에 길게 그어진 주름을 손등으로 쓰다듬으며 토니를 바라보았다. 토니는 능글한 표정 그대로 씨익하고 웃으며 스티브에게 눈으로 why? 라며 묻고 있다. 스티브는 피식하고 웃었다. 어쨌든 스티브는 토니의 그러한 스티브의 주변사람을 모두 화나게 하는 태도에도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멸팁이라는 호칭은 어쩌면 스티브의 말라깽이 모습을 놀리는 듯 들리기에 다분한 소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토니는 어차피 항상 그런 식으로 스티브를 대하는 사람이었지 않은가. 얼음속에서 70년 있었던 사람이라, 캡시클. 그래서 나이는 이미 80살도 훌쩍 넘겼으니까 아무리 겉으로 창창해 보여도 어차피 늙은이, 아니면 영감. 더더군다나 지금은 세럼을 맡기 전의 평균 이하의 신체능력을 갖고있는 별볼일 없는 브루클린의 비실이, '멸치스티브'이다. 세럼맞기전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데, 이제와 멸팁 멸팁 부른다고 해서 기분이 나빠지고 파르르 떨며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소리에 소리를 지르는, 그런 대응을 할 수 있을리가 있나. 이렇게나 호칭이 낯설지 않고 그저 익숙하기만 한 것을. 멸팁은 그래서 그저 웃으면서 토니에게 화를 내는 사람들을 향해 손사레를 치며 오히려 그들을 말리는 것이었다. "괜찮네. 뭐라고 부르든 난 상관없네. 일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돼." 그래. 일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된다. 토니 스티브가 지금의 스티브를 뭐라고 부르든, 하여간 지금 토니는 자신의 이상해진 몸상태를 위해 쉴드 본부에 계속 남아있는 상태였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폐를 끼치게 되어 미안스럽고. 나타샤는 곱슬끼가 완전히 빠진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스티브 말도 맞지만, 그 고마움을 완전히 상쇄시키는 저 얄미움을 대체 어떻게 해야하냔 말이죠." 라고 내뱉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바튼도 나타샤를 거들었다. "아니, 그 말엔 찬성 못 해. 오히려 넘치고 흐르잖아. 얄미움이." 스티브는 눈썹을 여덟 팔자를 하고 웃었고.

 

 "하여간 다들 나만 못잡아먹어 안달이야." 토니가 툴툴대며 현미경 아래의 미세한 세포를 바라보았다. 현재의 스티브 로저스의 세포조직이었는데, 실로 연약하기 짝이 없었다. 70년 전 세럼을 맞기 전의 스티브 로저스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정말 몇 번을 봐도 뭐라 할 말이 없는 게, 솔직히 말해 '살아있는 것이 용한 상태'라고 부르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토니는 현미경을 들여다볼때마다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이런 몸으로 어떻게 살아있는 거고, 어떻게 살아남은 거야. 아니, 그전에. ─대체 왜 군대에 들어갈 생각따윌 한 건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냐고. 토니는 실험실 한쪽에서 다소곳이 두 발을 모으고 그 모은 무릎앞에 두 손을 얹은 채 정자세로 앉아 가만히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스티브를 곁눈질 하였다. 토니의 실험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 먼저 말거는 법이 없이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 그 모습이 결코 힘들어 보이지도 피곤해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스티브는 천식이 다시 도져 목안쪽이 퉁퉁 부어올랐고, 그 덕분에 온 몸에 열이 나고 있는 실정. 양뺨이 붉게 물들고 입 주변이 살짝 부풀어올라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는데, 스티브는 참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토니가 실험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으면 몇시간이고 언제까지고 저렇게 정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것처럼. 아 젠장. 왜 저런 사람이 다 있지. 어째서 저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저 모양이야. 토니는 머리를 긁적이며 목에 걸고있던 실험도구를 신경질적으로 벗겨냈다. 토니가 도구를 선반위에 아무렇게나 던지는 소리가 나서 스티브가 고개를 살짝 돌렸고, 그래서 스티브와 토니는 눈이 마주쳤는데, 스티브는 토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사적으로 눈을 구부리며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토니는 그런 스티브의 웃음에도 괜히 신경질이 나서 한숨을 내쉬었다. 왜 저런 사람이 있을까. ...당신은 대체 왜 이럴까.

 

 토니는 스티브가 앉아있는 의자에까지 단숨에 걸어가 그의 뒤에서 그의 양 어깨를 짚었다. "토니?" "......" 평소보다 배로 좁은 어깨. 몸집도 작고 허벅지도 얇고, 심지어 목소리까지 다소 가느다랗다. 얼굴에 살이 하나도 없어서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는데, 덕분에 원래 큰 눈이 배로 커보여서 눈만 땡글땡글 구르고. 스티브가 그 눈으로 올려볼때마다 토니는 꼭 하늘속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토니는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며 서 있는 채 스티브의 양 어깨를 짚은 그대로 고개만 숙여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스티브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 스티브가 깜짝놀라 눈을 더욱 크게 뜨며 울대를 움직였다. 자신과 겹쳐진 스티브의 입술이 통통하게 부어 있었다. 그리고 입술의 표면이 지나칠 정도로 뜨거워서, 토니는 아까보다 더 열이 올라갔구만... 하고 생각했다. 뺨언저리를 금새 붉히며 스티브는 두 손을 들어 토니의 양 팔을 움켜잡으며 눈을 스르르 감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자네는 항상 갑자기, 갑자기가 너무 지나치네." 스티보의 모기같은 목소리에 목덜미의 간지러움을 느끼며 토니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곧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야, 멸팁의 이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는 게 훨씬 더 지나친 거 같아." "...?...!!!!..!?!" 스티브는 어느새 자신의 셔츠 안쪽으로 손을 밀어넣은 토니가 그 안을 더듬으며 셔츠를 위쪽으로 들어올린 것에 당황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키스하면서 스티브의 셔츠안쪽을 더듬다가, 토니는 손가락에 걸리는 갈비뼈의 선명한 길을 훑고 있었다. 아아, 이렇게나 말라서. 배는 쑥 들어가고. 토니는 스티브의 이마에 쪽 소리가 날 만큼 키스를 하고 곧 스티브에게서 떨어졌다. "먼저 방에 들어가서 쉬어. 의사들이 처방해준 약 꼬박꼬박 먹고. 난 좀 더 당신이 맞은 빔의 성분을 고민해볼테니까." "토니."

 

 "얼른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면 내가 먼저 죽겠어."

 

 "......"

 

 그리고는 다시 현미경쪽으로 눈을 돌리는데, 스티브는 먼저 가는 수 외엔 도리가 없구나 라고 작게 중얼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토니는 완전히 현미경 안쪽에 빠져 있었다. 스티브를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스티브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한심하게 됐네, 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에 대한 표현은 조금도 하지 않고, 그저 먼저 실험실을 나섰다. 원래 자기가 일을 하는데 스티브가 비교적 한가하면, 책을 읽던 커피를 마시던 음악감상을 하던 게임을 하던, 뭘 하던 상관없으니, 자기 옆에서 해달라고 했었던 토니 스타크였다. 당신은 한가하지만 나는 바쁘니까, 그러니까 한가한 쪽은 어디서 뭘 하고 있건 어차피 똑같은 거 아니냐면서. 그런 이기적인 말들을 태연하게. 하지만 스티브는 그 말이 별로 이기적이란 생각도 안들고, 그냥 평범한 투정같기도 하고, 어리광 같기도 하고. 사실은 토니가 그렇게 말해준 것에 오히려 설레기도 해서. 그래서 토니가 항상 랩실 한쪽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스티브는 어느새 자신을 위해 준비되어있는 적당히 넓은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공간에서 그야말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음악감상도 하고, 해본 적 없던 게임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토니가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도, 문득 토니와 눈이 마주치면, 저도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씽긋 웃고. 그러면 다가와서 키스를 하는데, 키스 해달라고 쳐다본 거 아니었냐고 토니는 으례 하듯 말하고, 스티브도 스티브 대로 절대로 아니었네!!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데, 토니는 스티브의 그 고함을 bgm삼아 다시 일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그 분위기가 참 좋았었는데. 스티브 로저스는 토니 스타크가 홀로남은 실험실의 문을 바라보며 그렇게 한숨을 내쉬었다. 토니 스타크는 평소의 토니 스타크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스티브는 멸팁이니 뭐니, 그 아무래도 좋은 호칭따위는 조금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토니에게 느껴지는 날이 선 감각은 스티브만이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다. 겉으로야 멸팁멸팁하며, 평소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금, 누구보다 화가 나 있는 사람은 토니 스타크라는 것을.

 

 스티브 로저스가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린 것에 대해서 누구보다 화가 나 있는 사람

 누구보다 스티브를 걱정하고 있는 사람

 누구보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사람

 

 스티브 본인보다 더 스티브를 걱정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 그것을 눈채채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스티브 로저스였다. 스티브는 자기보다 더 자기걱정을 해주고 있는 토니에게 넘치는 미안함을 느꼈다. 토니가 무엇을 걱정하는 지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어떻게, 영원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과거에 가지고 있던 수많은 병의 목록들을 떠올리며, 스티브는 토니의 실험실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토니 스타크가

 다시 한 번

 

 실험실의 문을 열더니, 곧 밖으로 뛰쳐나와

 

 복도를 천천히 걷고 있는 스티브 로저스를 뒤에서

 

 껴안았다.

 

 "...?!! 토니?!"

 

  깜짝놀란 스티브가 걸음을 멈출 타이밍을 놓쳐 미끄러지듯 다리를 헛디뎠는데, 토니가 스티브의 양어깨를 꽈악 안고 있어서 전혀 미끄러지지 않았다. 토니는 그대로 스티브의 등을 자신의 가슴 속으로 꽈악 품으며 스티브의 목덜미에 입을 묻었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걸 깜빡했네."

 

 "...!!!"

 

 "기운 좀 줘. 스티브."

 

 "......"

 

 그리고 둘은 그렇게 복도에 가만히 서있는 것이었다. 제법 긴 시간을. 스티브는 자신의 등뒤에 닿는 토니 스타크의 차갑고도 뜨거운 아크리엑터의 감촉에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러니까, 자네는 항상 너무 갑자기가 지나치다고... 대체 몇 번을 말하는데..." "하하하." 토니가 웃으니 그 웃는 소리에 스티브의 몸이 울리는 것 같았다. 아아, 혹시 지금 모든 걸 다 알아채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토니가. 그럼 역시 내 심장소리도 자네에게 다 들리고 있는 건가, 지금 내가 자네의 아크리엑터의 감촉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며 스티브는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복도 끝의 어딘가로 시선을 흘리는 것이었다. 목덜미에 닿는 토니의 숨소리가 간지럽다고 생각하면서.

 

 

 

 

 

 

 

 

 

 

- done

 

+ 그냥 절대 같이 나올일이 없을 토니x멸팁의 조합이 보고싶었을 따름으로. 0ㅅ0 빌런빔은 참 편하네요 여러모로. <<

 

+ 저러다 곧 빌런빔을 쏜 빌런을 성나서 어쎔블한 어벤저스가 사정없이 때려부수고 다시 빌런빔을 맞아 스티브는 원래의 스티브로 돌아가게 됩니다. 걱정은 노노해 오키? >.0 ㅋㅋㅋㅋㅋ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