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pa Chups

 

 여름이 끝나가는구나. 스티브는 문득 스치는 공기속의 마른 냄새를 맡으며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다, 계절은 돌고도는 거였다. 70년 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자연스럽게. 스티브는 괜히 비어있는 두 손을 바지의 양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언제나처럼 계절의 끝자락에 서면 밀려오는 쓸쓸함이 스티브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고 있었다.

 

 "생활감이 하나도 안느껴지네요. 캡틴은." 그러고보면, 이라고 운을 띄우면서 스트라이크팀의 리더인 브록 럼로우는 그렇게 말했었다. 스티브는 문득 스트라이크팀과의 세번째로 매치하여 작전을 수행할 때 잠깐 럼로우와 나누었던 담소를 떠올리며 늘 들르는 그 카페의 늘 앉는 그 지정석에 천천히 앉았다. 스티브를 보자마자 눈짓으로 아는척하며 자연스럽게 그의 테이블로 다가오는 종업원에게 거의 아무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스티브는 그 날의 럼로우와의 대화를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며 떠올리고 있었다. 종업원을 무시하는 그 시간은 럼로우와의 대화가 하나하나 공기속 부스러기처럼 떠오를 때마다 점점 길어져 갔다. 종업원은 문득 얼굴을 붉히며 스티브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떠났다. 아는척 하는 게 아니었다. 재수없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런 생각으로 거의 눈물까지 글썽이는 종업원의 사정따위야, 사실 지금의 스티브에게는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였지만. 아마 그녀가 삼십분 뒤에 퇴근이고 그 뒤 친구들과의 즐거운 저녁약속이 있었지만 방금, 스티브에게 무시비슷한 것을 당한 것때문에 진한 부끄러움과 미묘한 상처를 갖게 되어 약속까지 취소하고 헐레벌떡 집에 들어가 이불을 감싸안고 펑펑 울고야 말 것이라는 것을 스티브가 알았다면, 많이 미안해 했을 것이다. 그는. 왜냐하면 스티브 로저스는 사실은 여성을 울리는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니까. 아무래도.

 

 "나에게서 생활감이 안느껴진다고?"

 

 "네. 작전수행 중이 아닐때에는 대체 무엇을 하시는지 도통 감이 안잡힌달지..."

 

 "...나도 그냥 평범하네만. 다른 사람들처럼."

 

 "음... 왜, 프라이빗에 관한 일같은건 보통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대충 파악하게 되지 않습니까? 가령 영화, 책, 음악, 그 몇가지라도 개인의 취향을 파악하게 되는 법이라고요. 그런데 제법 캡틴과 일을 많이 하고 있다싶은데도 그동안 캡틴의 개인적인 것에 관해선 아무것도 파악이 안 됐습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취미같은 것을 즐기기는 합니까, 그림 이외에? 라는 럼로우에 질문에 긴 속눈썹이 흔들리는 그림자의 사선까지 다 보일정도로 아주 천천히 눈을 깜빡깜빡하다가, 스티브는 끝을 길게 끌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속삭이듯 말을 내뱉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평범하다니까. 그런 것에 대한 취향도. 물론 지금에 비교하면 취향은 '고전적'이 되겠지만. 스티브의 어설픈 개그에 럼로우는 피식하고 웃으며 목을 긁적였다. 캡틴과의 개인적인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가, 캡틴의 개인적인 것에 대해서 은근슬쩍 알아내고, 늘 베일이 쌓아놓은 것처럼 거의 보이지 않는 캡틴 가슴속에 고여있는 것에 대해서 슬쩍 훔쳐보려고 했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 남자야. 럼로우는 그런 자신의 의도를 숨기려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며 어깨를 흔들어 조금 길게 웃음을 흘렸고, 곧 고개를 들었을때에는 늘 그랬듯이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띤 훈남의 얼굴로. 그리고 럼로우는 앞주머니를 뒤적여 츄파츕스를 하나 꺼내어 스티브에게 내밀었다.

 

 "가령, 캡틴. 이것중엔 무슨맛을 가장 좋아합니까?"

 

 "......"

 

 스티브는 곤란하다는 듯 눈썹을 구부린 채 웃음지었고.

 

 

 

 

 그 뒤에도 시간이 조금 남아, 럼로우는 조금 더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느낀 감상에 대해서. 심지어 캡틴은 화장실도 안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그쯤되면 농담도 지나친 것 같아 스티브는 럼로우의 어깨를 내리두드리며 말을 멈추게 했고, 럼로우도 곧 손사레를 치면서 말을 멈추고 말았지만, 하여간 그와 나누었던 그날의 대화는 스티브의 가슴을 꾸욱 눌렀다. 어느정도냐면 이렇게 시간이 제법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자꾸 떠올리게 될 정도로. 스티브는 주머니에서 그 날 럼로우에게 받은 츄파츕스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주름이나 잡티 하나 없이 깔끔한 흰색 테이블보위에서 데구르르 굴러가는 츄파츕스는 딸기맛. 스티브는 피식하고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이것중에 무슨맛을 제일 좋아하느냐 이전에, 애초에 이 사탕을 보는 것은 럼로우가 쥐어준 이것이 처음인데. 스티브는 테이블 위를 손가락 하나로 톡, 톡, 내려치다가 문득, 손가락으로 츄파츕스의 모양을 테이블보위에 여러번 반복하여 그려대기 시작했다. 테이블보는 스티브의 손가락을 중심으로 점점 주름이 이어지고.

 

 생활감이 하나도 없다는 그의 말은, 생동감이 없다는 것처럼도 들리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같고.

 

 아니, 오히려

 이 세계에 있는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처럼 들려서

 그래서

 이 세계에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려서.

 

 

 

 

 

 

 "언제까지 할 생각이야 그거?"

 

 "...!"

 

 퍼뜩, 깨달았을 때에는, 스티브는 오른손으로 온통 테이블보위를 주름지게 만들고 있었고, 그 주름에 의해 겹겹이 겹쳐진 테이블보위를 츄파츕스가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는데, 그 맞은편에 어느새 약속시간이 다 되었는지 시간에 늦지않고 알맞게 카페를 찾아온 토니 스타크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스티브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스티브는 선글라스 너머로 고요하게 가라앉은 그리고 다소 피곤해보이면서도 스티브의 의미없는 행동을 굉장히 의아해하고 있는 갈색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을 보고 퍼뜩 정신을 되찾았다. 아, 이런. 스티브는 꼭 보여주기 싫은 아직 미완성의 그림을 토니가 보고 있는 것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당황하며 허둥지둥 자신이 연신 구기길 반복했던 테이블보를 두 손으로 다시 쫙쫙 펼쳤다. "아니, 자네. 사람이 참. 왔으면 왔다고 기척이라도 좀 해주면 좋을 것을."

 

 "한창 재미보고 있는 중인데 말걸면 실례잖아."

 

 "내가 무슨 재미를 보고 있었다고. 그냥 잠깐 멍했을 뿐일세."

 

 "아하. 난 또 90년정도 살면 그렇게 테이블보를 돌돌 마는 것에도 재미를 느끼게 되는 줄 알았지. 근데 캡시클 당신이 멍을 때리기도 해?"

 

 어느새 아이스커피를 시켰는지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는 얼음을 하나 입안으로 털어넣어 입 양쪽으로 요리조리 옮기면서 토니가 그렇게 말했다. 문득 그의 말투가 거슬려서,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중얼였다. "...나는 뭐 사람 아닌가."

 

 "뭐?"

 

 "...아닐세."

 

 "...흐음."

 

 괜한 화풀이를 하게 될 것 같군. 스티브는 입을 꽉 다물었다. 토니의 입안에서 그의 치아를 지나치며 점점 작아지는 얼음이 구르는 소리만이 잠시 둘의 테이블을 가득 메우다가, 문득 스티브는 럼로우에게서 받은 츄파츕스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토니에게 내밀었다. 토니는 어느새 두 손을 깍지낀 채 머리를 기대고 있었는데, 스티브가 자신을 향해 사탕을 내미는 것을 보자마자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스티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눈을 하고 보지말게. 나도 왜이러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으니까. 스티브는 토니의 시선을 피했다.

 

 "나는 안좋아하는 맛이네. 자네가 좀 먹어주게."

 

 "...직접 산 거 아냐?"

 

 "아니네. 받은걸세."

 

 "그래?"

 

 그리고 순순히 츄파츕스를 받는 토니. 스티브는 토니가 츄파츕스를 감싸고 있는 포장껍질을 사탕의 머리위에서 두조각으로 갈라내어 빠르게 벗기고는 달아보이는 붉은색을 한 원형의 작은 사탕을 금세 입안으로 넣는 것을 보고 있었다. 토니의 입술밖으로 얇고 하얀 막대만이 비죽 튀어나와 수시로 오른쪽 왼쪽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토니는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고 테이블 위에 그걸 내려놓더니 사탕을 혀위에 데굴데굴 굴리며 툭 내뱉었다.

 

 "아, 이거 확실히 당신은 안좋아할만한 맛이네." 

 

 "...어."

 

 토니의 그 말투가 꼭, 자기는 스티브의 입맛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좀 더 상큼한 거 좋아하잖아."

 

 "......"

 

 그리고 그것은

 지금 스티브가 제일 듣고싶어하는 말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토니는 알고 있을까.

 

 "맞지?"

 

 "...아."

 

 그리고 스티브는 언젠가부터 그가 이런식으로 그냥 흘리는 이러한 말들에 위로받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토니 스타크의 말 하나하나가 전부 스티브 로저스의 어깨를 지긋이 눌러주어, 꼭 이곳에 당신이 서 있는 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고. 그것은 어딘가 붕떠있는듯했던 스티브의 두다리를 꽈악 잡아 대지위로 되돌려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서

 

 그래서, 스티브가 이 세계에 있는 것이 이렇게나 자연스러운데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에 대해서 대체 왜 의심을 하느냐고

 그렇게 말해주고 있는 듯한

 

 "그...런지도."

 

 토니는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 역시 알 리가 없지.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 도움만을 계속 받고있는데.

 

 스티브는 저도모르게 눈을 구부리며 웃었다.

 

 "뭐야, 왜 그렇게 웃어?"

 

 "...아니 별 의미는 없는데."

 

 "별 의미 없는데 그 눈꼬리는 뭐야 그 눈꼬리는. 그런 눈꼬리를 하고 쳐다보면 유혹하는 거라고 생각할건데 괜찮아 당신?"

 

 "...안괜찮네."

 

 "그럼 그 눈꼬리 좀 치우지."

 

 "......"

 

 내 눈꼬리가 뭐 어떻다고. 사람 말하는 거 하고는. 스티브는 저도모르게 얼굴을 조금 붉히며 두 손을 들어 자신의 눈꼬리를 꾹꾹 눌렀다. 토니의 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스티브는 얼굴을 한층 더 붉히며 입술을 저도모르게 삐죽거렸다. 아, 그사람 참. 조금도 우울해 할 시간을 주질 않는다니까. 하지만 우울해했다는 걸 들키면 그때부터 토니의 공격은 한층 더 심해질테니까, 비밀로 하지 않으면. 스티브는 화끈거리는 양 뺨 위로 두 손등을 번갈아가며 대며 열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였고, 그러는 동안 내내 토니의 메롱하는 혀끝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츄파츕스를 빨아대서 더욱 붉어진 토니 스타크의 혀의 끝. 그리고 스티브는 토니의 그 메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체 어떤 모션을 취해야하는지 내내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아아, 이럴수가. 도저히 괜찮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 done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뭐야. 나중에 저 사탕을 럼로우가 준 건 줄 알면 토니가 깜짝놀라서 정밀검사하고 난리가 나겠네요. 사탕에 무슨 죽을약같은 거 탄 거 아니냐면서.

한동안 글을 안써서 손 좀 풀겸 짧게 써봅니다. 여기저기 미흡하네용. 스티브 미안해요. 흐 글쓰는 거 어렵당.

토니스팁 그냥 결혼이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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