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rl is cold

(스티브ts)

 

 "스텔라!" 토니는 복도의 저편에서 반대의 저쪽 통로를 이제 막 지나가는 스텔라의 모습을 스치듯 발견하자마자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사실 그녀의 얼굴을 정확하게 본 것은 아니었지만 잠깐 눈 저쪽 구석에 비친 실루엣이 딱 그녀같게 느껴졌기 때문에 토니는 망설이지 않고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그녀만큼 체격이 좋은 여성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 아니니까. 토니는 살면서 자기의 키와 비슷하거나 조금 큰 여성은, 뭐 솔직히 자주 봐왔었지만, 그러나 자신의 어깨넓이와 비슷한 넓이의 어깨를 가진 여성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비슷한가, 조금 더 넓은 정도인가? 토니의 자존심이 정확한 넓이를 아는 것을 거부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그냥 화끈하게 확 알아버리고 싶기도 한것이. 어쨌든 토니는 스텔라의 실루엣을 본 복도쪽으로 거의 달리다시피하여 그녀의 뒤를 쫓았다. "캡시클!" 복도의 통로를 지나면서 한 번 더 그녀를 부르기까지 하였다. 아니나다를까.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멈춰선 채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토니." 그녀의 웃음이 섞인 목소리.

 

 스텔라는 방금까지 캡틴 아메리카의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 듯, 머리의 가마부분이 엉켜서 갈빛금발이 전체적으로 부스스해져 있었다. 머리를 풀고다니는 일이 별로 없었던 그녀가 왠일로 길게 풀어놓았나 싶었더니,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내리며 정리를 하고 싶었던 가 보다. 40년대를 지난 여성들은 대부분 머리가 풀어져 있거나 헤쳐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목부분에서 잘끈묶다못해 머리끝까지를 전부 말아 정리해버린다. 아니면 확 단발로 쳐서 곱슬을 넣어버리거나. 스텔라는 토니의 머리를 풀고있는 자신을 신선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두 손을 들어 머리를 전부 움켜쥐고는 어깨 언저리에서 돌돌 말기 시작했다.

 

 "왠일인가! 쉴드본부까지."

 

 "뭐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잖아, 내가 쉴드의 본부에 오는 게. 사실 이게 놀랄만큼 드문일이긴 하지만... 아니, 아니 아냐. 아냐. 그렇게 하지 마. 풀어놓는 것도 아주 예쁜걸."

 

 토니가 양손으로 손사레까지 치며 머리를 두 손으로 잡는 걸 반대하자 스텔라가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토니를 흘겨보았다.

 

 "...닭살돋는 소리 나한테까지 하지 말게."

 

 "알았어. 그럼 본부 안내처 아가씨에게 그렇게 말해둘테니까 안내처 아가씨한테 말 전해들어. 알았지? 토니 스타크가 캡보고 머리 좀 풀고다니라고 했다고 말야."

 

 "......"

 

 스텔라는 토니의 능글거리는 웃음에 얼굴을 약간 붉히며 "정말. 그만하랬잖나!" 약간 언성을 높혔다. 그리고 두 손으로 돌돌 말던 머리를 전부 손으로 쓸어올려 머리위에서부터 돌돌 말아 올렸다. 그리고는 팔에 감아놓은 검은색 고무줄로 빙빙 아무렇게나 돌린 머리칼을 전부 한번에 묶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스텔라는 머리가 잘 말렸는 가 한 번 손으로 더듬고는 뒤따라 걸어오는 토니를 힐끗 노려보았다. 토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해보였다. 스텔라는 흥, 소리를 내고는 곧 힘차게 복도를 걸어나갔다. 토니는 스텔라의 뒤에서 후, 스텔라가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웃음을 띄운 후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아 저 노친네. 저 노친네는 진짜 모르는구만. 부스스하게 풀어헤친 머리도 아주 섹시하지만, 그렇게 아무렇게나 쓸어올려 묶은 머리의 뒷태는 거의 핵폭탄급이란 말이지. 토니는 스텔라의 노출된 목덜미위로 한가닥씩 흘러내린 금발이 달라붙어 있는 것을 바라보며 가슴언저리가 간질간질 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 저모습. 저모습은 정말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진짜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건만.

 

 스텔라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노력의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약간 뒤처져 걷는 토니의 걸음걸이에 맞춰 걷는 속도를 조금 느리게 하였다.

 

 "쉴드에의 볼일은 다 끝난건가? 어지간히 급한 일이었는가보군. 직접 여기까지 오고."

 

 "...뭐, 그렇게 급한 건 아니었는데. 하여간 직접 와서 더 편하게 해결하긴 했어."

 

 사실 쉴드에 오지 않아도 정리할 수 있는 건이었다. 평소에도 그렇듯 쉴드요원이 직접 스타크타워에 와서 일을 마무리짓기도 하였고. 그 요원을 따라 굳이 쉴드본부까지 온 것은 사실은 스텔라를 만나기 위해서였지만, 토니는 굳이 그 이야기를 스텔라에게 하지는 않았다. 스텔라의 성격을 아니까. 토니는 지금부터 스텔라에게 지금 주려고 하는 것을 그녀가 받지않을 수도 있을만한, 어떤 그러한 쪽으로 영향을 미칠만한, 그러니까 뭔가 스텔라가 부담을 가질만한 에피소드는 왠만하면 전부 다 빼버리는 게 좋다고 이미 판단을 내려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토니 스타크. 토니 스타크. 정신 차려야 해. 잘해야해. 엄청 아무렇지도 않게 이걸 그녀에게 건네주고 일을 잘 끝마쳐야 한다구. 그녀가 아무것도 이상을 느끼지 못하게끔 깔끔하게 해결을 해야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 진주는 결코 그녀를 위해 산 게 아니란 말이지. 우연히 공짜로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을 그냥 공짜로 그녀에게 주는 것이란 그 말씀이야. 토니는 그렇게 속으로 되새김질하며, 품에서 고급케이스를 꺼내었다. "......" 그러다가 토니는 스텔라가 앞을 보고 있는 틈을 타서 케이스를 열어 안에 진열되어있는 진주 목걸이만을 꺼내들었다. 아니지, 아니야. 고급티를 내면 안 되지. 어쩌다 우연히 얻은 물건엔 고급케이스따윈 필요없다구. 토니는 손에 진주목걸이를 들고 그대로 스텔라에게로 건넸다.

 

 "아 그건 그렇고. 스텔라. 혹시 이런 악세서리같은 거 해?"

 

 "뭐?"

 

 그제야 고개를 돌린 스텔라는 토니가 자기쪽으로 건네듯 뻗은 손안에 들린 진주목걸이를 바라보고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눈동자 전부가 다 보일정도로 동그랗게 뜨자 원래 큰 눈이 더욱 커져서, 눈속의 해바라기가 활짝 핀 것처럼 환해졌다. 토니는 스텔라의 눈동자를 보고 저도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지만 애써 티를 내지않고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를 지었다.

 

 "아, 이거. 집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건데. 아무래도 어머니가 쓰셨던 거 같아. 내 아버지가 선물한 것 같고."

 

 토니 손에 들려있는 진주목걸이는 작은 알갱이가 얇은 실에 연결되어있었다. 진한 하얀색의 진주가 서로에게 빛을 반사하여 그 경계선이 꼭 흐트러진 것처럼 보였다. 스텔라는 토니의 입에서 흐른 아버지란 단어에 반응하여 고개를 들었다.

 

 "아버... 하워드가?"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버지란 입에 그다지 담기 싫은 대명사였지만 토니는 티를 내지 않았다. 예상대로 스텔라는 하워드의 이름이 나오자 얼굴에 미미한 홍조를 띄운다. 쳇. 그것을 바라보는 토니의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토니의 계획은 맞아떨어졌다. 하워드 스타크의 이름을 쓰면, 그녀는 좀 더 호의로워지고, 그럼 그녀가 이 진주를 거절할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겠지. 토니는 밀어붙이기로 했다.

 

 "뭐 그렇게 엄청 좋은 진주는 아닌 거 같아. 자네야 이런 거 잘 모르겠지만 난 대충 알거든. 특a급은 아니야. 그래도 귀부인들이 하기에 품위를 망치거나 하지는 않을 정도의 품질제품이긴 해. 그런데, 뭐 자네는 모르겠지만, 요새 걸들은 이런 올드한 건 안하거든. 다이아몬드여야지. 사실 나도 이런 건 왠만한 여자들에겐 선물로 하기도 좀 그래. 내 품목을 의심받을 수도 있는 문제이고."

 

 그렇게 말하면서 토니는 진주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집에 쟁여놓기도 좀 그렇단 말야, 난 이런 종류의 물건은 사람이 자주자주 써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라서 말야. 그러다가 캡시클, 네가 생각이 난거야."

 

 "......"

 

 "자네에겐 딱 맞는 시대의 물건이잖아? 심플한 진주목걸이. 자네 이거 할래?"

 

 "......"

 

 "할거지? 응?"

 

 "토니."

 

 "팔아픈데 이제 그만 슬슬 받아주지. 캡."

 

 스텔라의 눈동자에 서려있던 동요의 빛이 곧 눈에 띄게 줄어들더니, 이윽고 파란색 눈동자가 잠잠해지고 조금 냉정하게 식기까지 하였다. 토니는 스텔라의 눈동자빛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였다. 스텔라는 곧 토니의 진주목걸이에서 시선을 떼고 흥미없다는 듯이 얼굴 표정을 지웠다.

 

 "-토니.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서. 말은 고맙지만 안받는 걸로 하지."

 

 토니는 눈을 깜빡였다. 스텔라의 굳은 얼굴 표정이 약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의 거절은 예상범위내이다. 토니는 일부러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뭘 그렇게 정색씩이나. 별로 내가 가지고 있어봤자 쓸 일도 없는 물건이라 그냥 나눠주겠다는 건데. 진주알갱이가 그다지 크지도 않으니 부담가질 필요도 없거니와."

 

 "토니..."

 

 "자네 아이스크림 먹지? 전번에 보니까 냇이 아이스크림을 쏘던데, 공짜로 맛있게 먹었지? 그거랑 별 다른 의미 없는건데 이거."

 

 "토니, 그건 자네 아버지가 자네 어머니에게 드린,"

 

 "맞아. 그정도의 의미는 있지. 그러니까 더더욱, 아들된 마음이, 이걸 그냥 장롱에 처박기 보다는 사람이 달고다니는 걸 보고싶다고 한다고, 아까 그렇게 말했었잖아."

 

 "......"

 

 순간 스텔라가 입을 다물었다. 토니는 한쪽 눈썹을 찌푸린 채 묵묵하게 입을 다문 스텔라의 얼굴 위에 쏟아진 그림자의 일렁임을 바라보았다. "...스텔라?" 문득 목언저리가 섬뜩해진 토니는 스텔라의 이름을 불렀다. 스텔라는 토니의 부름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긴 속눈썹을 흔들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일 뿐. 어느새 해바라기는 사그라들고, 스텔라의 눈동자가 아주 깊은 곳까지 잠긴 것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토니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진주목걸이를 쥐고있는 토니의 손가락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토니는 스텔라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 아주 싫었다. 이미 몇번이나 본 적이 있다. 이런 눈의 스텔라 로저스. 

 

 스텔라는 70년 전으로 흘러가있는 것이다.

 토니 스타크로써는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그 까마득한 과거로.

 

 "...난 진주를 안좋아하네."

 

 "......"

 

 간신히 침묵을 깬 스텔라는 눈을 깜박이며, 그렇게 말하였다.

 

 "그 정도 의미의 물건이라면, 다른 여성에게 선물하게. 자네말대로 다이아몬드가 아니면 받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분명 성의를 생각해서 잘 받아 소중하게 사용해줄 사람이 있을걸세."

 

 입맛이 점점 쓰게 변하는 토니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그래도 목구멍이 꽈악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게 네가 아니라는 거야?"

 

 "......"

 

 스텔라는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희미하게 미소를 띄웠다. 토니는 스텔라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는 것을 알았다. 스텔라가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것을 뒤쫓지 않고, 토니는 그자리에 서서 스텔라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몸에 부착하는 것들이 다 싫은 것은 아니지? 스텔라!"

 

 스텔라의 대답하는 목소리가 아주 조그맣게 들렸다.

 

 "진주는 너무 차가워서 말이야."

 

 토니 스타크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않는, 그 나지막한 목소리.

 

 

 

 

 

 

 

 

 

 

 

 

 

 "아, 하지만 그건 당신이 실수한 거예요."

 

 "하아?!"

 

 쉴드내의 캡틴 아메리카 정보통-필 콜슨이 없으므로 어느새 그녀가 쉴드내 일인자가 되어있었다-나타샤에게 뇌물로 안긴 하인꼬냑이 한 잔 한 잔 없어져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토니 스타크는 눈으로 왜?! 내가 뭘?! 하는 심정을 호소했다. 나타샤는 피식하고 웃으며 작은잔에 담은 꼬냑을 홀짝댔다. 그러면서 나타샤는 언젠가 스텔라에게서 들었던 옛날 이야기를 떠올렸다.

 

 "스텔라는 70년 전에 버키에게서 진주 한 알갱이를 선물 받은 적이 있어요."

 

 토니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또 그 잘나신 윈터솔저 양반!!?"

 

 "슈퍼솔저가 되기전의 스텔라에게 그것은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장신구였죠. 그리고 먼저 전장에 나간 소꿉친구와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것이기도 했고."

 

 "그 물건이 어떻게 됐는데?"

 

 "뻔하잖아요. 7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구요?"

 

 "......"

 

 나타샤는 불과같은 꼬냑의 뒷끝여운을 즐기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는 눈꼬리를 가늘게하고 웃음섞인 얼굴로 토니의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토니 스타크. 제임스 뷰캐넌 반스와 토니 스타크가 경쟁하기엔 너무 많은 무리가 있다고 보지않으세요?"

 

 "크아아악!"

 

 토니는 얼굴을 감싸쥐고 허공을 향해 그 상대를 알 수 없는 분노를 터뜨렸다. 토니의 절규에 가까운 적의가 방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산산조각이 났다. 나타샤는 쯧쯧, 혀를 차면서 남은 꼬냑을 홀짝대었다. 아니 애초에, 하워드 스타크도 이기지 못할 사람이... 나타샤는 토니의 주머니밖으로 비져나온 진주목걸이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 done

 

+ 스텔라 시름시름... 죄송해요 또 스텔라 썼어요... 짧은 분량이라 걍 쓱쓱 썼습니다. 거의 30분 소요된듯. 그나저나 나 대체 언제쯤 스텔라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거져...ㅋㅋㅋㅋㅋㅋㅋㅋ 스텔라는 진주목걸이가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 :>

 

+ 영원히 고통받는 토니 스타크.. ㅋ..ㅋㅋ... 토니 스타크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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